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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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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에서도 알타이 산맥 중에서 우코크 라고 불리는 고원에 위치한 무덤을 살펴보는 중이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확인되는 문화를 파지릭 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의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지난 달에는 별명이 얼음공주라고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무덤을 살피고 있다.

우코크 고원의 위치는 어제 포스팅에서 찾으실 수 있다.

 

이 무덤은 얼음공주 무덤보다 3년 일찍 발굴되었다. 무덤을 절개한 면은 그림1과 같다.

무덤의 제일 윗 부분은 움푹들어 갔는데, 원인은 가장 바닥에 있는 무덤방인 목관의 천정부가 내려앉아서이다. 주로 목재가 썩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언제가 공개하게 될 파지릭 유적에서는 천정부가 완전히 내려앉아서 무덤의 최상부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무덤방은 얼음으로 차 있다고 보고서에도 적혀 있고, 실제로 그림 1에도 얼음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단면도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계속 얼음이 차 있었다면, 무덤방이 내려 앉았을 이유가 없다. 도굴일가능성? 도굴되었다면 무덤방의 뚜껑 및 그 아래의 관도 모두 도굴당했을 것이다.

외부의 요인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상부는 가장 중간이 약간 씩 내려앉은 모습이다.

무덤구덩이는 무덤방 위와 무덤방이 아닌 말무덤 위를 채운 공간의 돌은 크기가 다르다. 말무덤 위는 2.6m까지 큰 돌로 채웠고, 무덤방 위에는 무덤구덩이를 만들 때 퍼 낸 흙으로 다시 덮었고, 깊이 1m가 되어야 큰 돌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층은 깊이 0.5m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무덤구덩이의 깊이는 2.9m 가량이다. 구덩이를 파자 9줄의 통나무가 양쪽으로 쌓여진 것이 확인되었다. 길이 4.6m두께는 9cm정도이다(그림2). 무덤구덩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 쌓았다. 발굴할 때도 이곳이 무너지지 않게하기 위해서 철제 사다리를 받쳐두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그림1을 좀 더 자세하게 확대.

 

무덤 단면도를 공개했으나, 이제 여러분은 모두 다 눈치챘을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2명이라는 사실을,,

통나무관이 2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부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두 유적의 거리는 3km 가량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얼음공주 무덤이 있었다. 베르텍 마을과 12km 떨어진 곳으로 좀 더 가깝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 중에서도 우코크 구원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50.3307878,87.9890127,6.35z/data=!4m13!1m7!3m6!1s0x42b7eb0e314da4fd:0xaf8aeded3a068607!2sAkalakha!3b1!8m2!3d49.6937885!4d87.4078366!3m4!1s0x42b70a2829374ba7:0x6d63a380c8591ae1!8m2!3d49.3077771!4d87.5947237!5m1!1e4?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발굴전에는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였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방향은 17.5m, 동서방향은 8m가량이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는 49cm이다. 무덤의 중앙은 0cm로, 고도와 같았다. 무덤이 중간에 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토(지표면을 덮은 흙)를 제거하자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큰 돌로 호석(가장자리를 두른 돌)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표토만 제거, 남쪽에는 고리모양의 원형 돌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무덤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호와 관련된 제사 유구로 생각된다. 무덤 중앙을 가로지는 선은 발굴할 때 사용했던 기준점이다. 그 옆의 숫자는 돌의 위치이다. 가장 중간이 ocm이다. 숫자의 간격은 1m이다. 

 

호석 안쪽으로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여 있었고,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이를 제거하자 2차 호석이 드러났다(그림2). 1호분의 주인공이 있는 무덤구덩이는 깊이 2.9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며 크기는 4.8×4.75m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제거 후 드러난 호석과 무덤구덩이, 가운데 네모꼴이 원래 무덤주인공의 무덤구덩이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시가 엉뚱한 사람의 무덤 위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적석을 제거하는 가운데 무덤 중앙을 기준으로 깊이 24cm에서 1호분과는 전혀 관련없는 14세기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뚱한 사람?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얄팍한 사람들은 아크 알라하 1호분의 무덤에 사용된 돌을 치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사지를 쭉 핀 신전장으로, 두향은 서쪽으로,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자세로 놓았다. 두개골은 흙의 압력으로 눌러서 부서졌다(그림3). 허리춤의 오른쪽에는 철제 원형 재갈(말의 고삐를 채우는 장치) 2점(그림4)과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로 보아서 14세기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없었는데, 유물로 보아서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출토품

 

 

그런데 의문스럽지 않으십니까?

과연 14세기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까?

힌트는 앞에서 이야기 한 무덤의 깊이에 있다. 파지릭문화의 사람은 바닥까지 3m까지 파야 그 사람 무덤에 다달수 있었으나, 14세기에 장례식을 치르던 사람들은 24cm정도만 파서 사자를 묻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알았지만 손대지 않고 자신이 알던 사람만 그곳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죽어서 만났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 아크 알라하 무덤)

구글지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젊고 유능한 샤먼이었다고 한다.

 

그림 1.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강 계곡

 

여성무덤을 살펴보았으니, 당연히 남성무덤도 살펴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기왕이면 그녀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던 무덤을 살펴보고 싶었기에 이 무덤을 택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이다. 이 남성무덤은 미라는 없는데, 인골이 남아 있었기에 남성무덤인 걸 알 수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 5기와 제사유구복합체 1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문화의 시기는 1호와 2호이다(그림2). 1990년에 발견되었고, 그 해 1호고분과 그 고분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를 조사했다.

 

K-1이라고 씌여진 1호 고분에서 서쪽으로 25m정도 떨어져서 돌을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돌을 직경 5m 되게 둥글고 빽빽하게 쌓고 이 유구와 붙어서 동쪽벽에 돌을 고리모양으로 듬성하게 돌렸는데, 완전한 것 6개와 불완전한 것 1개가 남아 있는데, 원래는 7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길이는 8m가량이다. 높이는 높지 않은데, 지점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장 높은 곳은 17cm가량이다(그림 3). 그리고 그림 1에서 K-1이라고 씌여진 남쪽 25m떨어진 곳에 직경 8.5m 가량의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는데(그림 4), 그림2와 함께 제사유구로 생각한다. 유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한 층위로 높이는 지표에서 18~22cm정도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1 유적 전면도

 

 

그림 3.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서방향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파지릭문화에서 무덤 주변에 이러한 제사유구가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무덤의 서쪽으로 1~3개의 고리모양으로 쌓인 돌 유구가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쿠바레프 1987)

제사유구를 오랫동안 연구한 쿠바레프는 제사유구에서 확인되는 고리모양 돌 유구에 대한 재밌는 해석을 했다. 만약에 돌 고리 한 1기가 크지 않은 무덤에서 확인된다면, 그의 직계가족이 와서 제사 지낸 표시라고 생각한다면,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에는 직계가족 뿐만 친척까지 7개의 그룹이 와서 문상 온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쿠바레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에서는 미라처리는 되어있지 않지만 인골이 확인되었고, 말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만들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무덤에서는 무덤방 외곽에 말을 구겨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면, 이 무덤은 ‘말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통나무로 만들었다.

 

말은 몇 마리 들어 있었을까?

9마리다. 얼음공주 무덤의 말 6 마리나 말 9마리나 거한 장례식은 마찬가지이다.

그냥 말이 아니라 말은 충분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무덤의 주인공의 성(性)이 달라지면서, 남아 있는 유물도 차이가 있다. 특히 남성의 복장도 달라지고 출토유물도 약간 다르다. 이미 설명한 제사유구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없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강과 우코크 고원의 풍경

 

참고문헌

쿠베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카 무덤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녀의 직업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필요한 것은 대부분 했지만 빠진 유물이 있는데 거울과 목걸이이다.

 

러시아학자들은 그녀가 소지했던 유물 가운데서 거울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무사무덤에서도 출토되고, 더 좋은 소재로 정교하게 만든 유물이 나오는 유적도 있기 때문이다.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목제 거울에 얼굴을 보는 면은 청동을 붙인 것이다. 거울의 이면에는 화려한 뿔이 있는 사슴이 조각되어 있다(그림2). 청동은 납과 주석을 합금한 것이고, 표면을 수은으로 코팅해서 반짝거렸다(그림1).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의 보는 면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의 뒷면, 필자촬영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 주머니, 펠트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말총달린 붓

 

유적을 발굴한 후 유물에 대한 연구를 했을 대 물리 화학전문가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금속유물을 분석한 결과, 알타이 산맥의 여러 곳에서 채취된 광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거울은 그녀의 왼쪽 다리 부근에서 펠트로 만든 주머니(그림 3)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 옆에는 말총으로 만든 검은색 털이 달린 붓도(그림4) 확인되었다. 끈은 이미 삭아서 없어졌지만, 대롱모양의 옥으로 끈을 잇고 그 가운데 말총을 붙인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화장도구로 생각한다.

 

거울과 정반대로 최상급이라고 하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같은 유물이 출토된 것은 그녀의 목걸이다. 어제 필자가 포스팅 한 것에서 복원한 모습에서 동물장식을 부착한 목걸이를 눈여겨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유물은 목제로 보이지만, 사실 그 위에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날개달린 표범장식인데, 그리핀이라고 할 수 있다. 8마리가 목을 들고 있다. 낱낱의 동물모양은 일종의 ‘2D’가 아니라 ‘3D’기법으로 조각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평평하게 평면이다. 그러나 이 유물은 그리핀이 목을 들게 해서 조각되었기 때문에 입체적인 유물이다(그림 5).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목제 그리핀 목걸이. 실제로는 금박으로 씌워진 것이다. 필자촬영.

 

그림 6.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목제 그리핀 목걸이, 그림 5와 동일유물, 필자촬영 

 

 

그녀의 살아생전 직업에 대해서는 이야기나 동화처럼 ‘공주’였다면 좀 더 많은 대중성이 확보되었겠지만, 러시아학자들은 실제로 그녀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샤먼’일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공주’라면은 좀 더 큰 무덤에서 좀 더 화려한 유물과 함께 주변에도 같은 급의 무덤이 여럿 있었을 것으로 러시아학자들은 생각한다.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특징과 비교해 볼 때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높은 계급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정교하게 복원되고 처리된 미라, 나무방, 통나무관 높은 머리장식이 붙은 가발, 실크제 블라우스, 목걸이 등을 설명할 수 없고, 최상급의 높은 계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덤도 작고, 부장된 유물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아이러니 한 무덤이다.

그녀도 살아생전에 그랬을까?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dvadtsat-let-spustya/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제까지 거의 20여일에 걸쳐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여성미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얼음공주라고도 알려졌다. 그녀는 죽어서 매우 여행을 많이 했다. 93년에 발굴되어서, 95년에는 서울과 부산에도 다녀갔고, 미국 뉴욕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지금은 그녀가 묻힌 곳과 최대한 가까운 고르노 알타이 시의 박물관에 있다. 원주민들은 박물관과 분쟁 중이다.

필자는 생각해 보니 그녀와 2번 만났다. 95년 대학 1학년때 가을에 한 번, 2009년에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노보시베리스크의 아카뎀고로독에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연구소의 전시실에서 그녀를 보았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는 여성이 혼자 묻힌 경우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처음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 베렐 유적, 바샤다르 유적과같이 높은 계급의 무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여성이 배장된 경우는 대부분 남성과 함께이다. 투엑타 유적이라고 하는 무덤2호에서 단독 여성이 8마리의 말과 함께 확인되었는데, 너무 도굴이 심해서 여성 1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혼자 단독으로 묻힌 유일한 여성미라다.

학자들이 두 무덤을 자주 비교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을 최상급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투엑타 유적의 2호분 때문이다. 이 무덤은 직경이 32m,높이가 2.6m인데, 아크 탈라하 3유적은 직경이 18m,높이가 0.57m이다. 무덤 크기의 차이는 동원인력의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유목을 기반으로 한 생업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흩어져서 지내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힘의 차이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할 때는 겨울이 되기 전에 여름 목초지에 있던 사람이 겨울목초지로 이동하기 전에 모여야 한다. 여름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보다 힘든데, 겨울목초지에서는 사람들이 더 분산되어서 지내기 때문이다(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이 봄과 가을에 무덤을 쓴다고 했는데, 영구동토대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아마 목초지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이게 하기 위해서도 한 몫 했을 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그들은 죽는 것도 계획해서 죽었을 껏 같다. 나무도 태어나기 전부터 구해야 하고, 죽을 때도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시절을 택해야 했다니...

 

 

그런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다른 파지릭문화의 고분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이 유적의 2호분과 3호분은 투르크시대의 무덤이기 때문에 기원후 7세기대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덤안에서도 혼자 있었지만, 그 주변에도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지릭 문화의 고분은 대게 가족장으로 한 계곡에는 친족구성원(그림1)들이 열을 이루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것은 아니지만 민족지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식의 무덤은 대게 살아 생전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사람이거나, 샤먼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노비크 1984).

 

그림1.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문화의 고분

 

그럼 이 여성의 신분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청동거울, 여러 소재로 만든 그릇 등은 일반무사 계급에서도 출토된다. 문신도 특별하기는 하지만, 일반무사의 어깨에서도 문신이 새겨지는 점을 볼 때 그녀의 직업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러시아학자들은 말 6마리의 말 장식을 주목한다. 목제로 보이지만, 그 위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일반무사의 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다. 대형 무덤방, 통나무관 및 통나무관에 부착된 아플리케 장식, 발삼처리 된 시신 등은 최상은 아니지만 보통의 계급도 아니다. 이외에도 그녀의 계급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실크로 만든 여밈없는 블라우스 라고 한다. (위에 거론된 유물은 전부 앞의 포스팅에서 확인가능하다.)

이 여성의 무덤에서는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제 쟁반 아래의 철제 칼은 고기를 자른 칼로 생각한다. 파지릭의 여성전자? 무덤은 아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 복원도. 머리장식에 새가 없어서,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머리장식은 앞의 포스팅을 참고시기 바란다. 

그림3. 얼음공주의 가발 장식 가운데 붉은 삼각형 머리위를 장식한 사슴모양장식(금박+목제). 실제 책에는 이에 관련한 내용은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필자가 촬영한 사진에서 찾았다. 뿔이 떨어진 흔적이 있다. 금박은 쉽게 벗겨져서 말을 장식한 마구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필자촬영 

 

그림 4. 그림3과 같은 유물, 다른 방향에서 찍음

 

러시아학자들은 전문화된 특별한 재능(샤먼)을 가진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누가 알겠는가?

 

참고문헌

 

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Кляшторный С.Г., Султанов Т.И. Летопись трёх тысячелетий. Алма-Ата: Изд-во Казахстан — Петербург, 1992. 373 с.(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3000년의 연대기)

노비크 1984 Новик Е.С. Обряд и фольклор в сибирском шаманизме. М.: Наука, 1984. С. 294.(노비크 1984,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의식과 민속)

폴로시막 2001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