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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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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8.08 스키타이 문화의 성곽
  2. 2018.07.31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의 성곽 1
  3. 2018.07.24 암구 강 유역의 성곽 2

 

스키타이 문화의 주거 유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기원전 4세기 카멘스코예 성곽(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Kamenskoye settlement)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카멘’은 러시아어로 돌이라는 뜻]

 

발견당시 19세기는 러시아제국이었으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경 속에 있다. 처음 유적의 평면도가 그려진 것은 1899년으로 이때에 발굴이 시작되었다(그림 1).

주로 발굴은 1938년부터 1950년 사이에 이루어졌고, 1980년대에도 성벽조사가 이루어졌다(그림 2).

 

그림 1. 19세기에 작성된 유적의 지형도와 평면도

 

그림 2. 1938~1950년도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의 평면도와 발굴위치

 

 

그림 3. 1950년도 발굴범위 9에서 확인된 지상식 주거지

 

 

그림 4. 1950년도 발굴범위 9의 3번 주거지의 화덕자리 평면도와 단면도

 

이곳에서는 주거지가 수혈식 집도 있지만 대부분 지상식 주거지이고, 집 내부에 화덕자리가 있는 모습이다.

필자가 이 자료를 찾은 이유는 ‘아크로폴’ 때문이다. 아크로폴이라고 한 것이 필자가 알고 있는 ‘내성’의 의미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카멘스코예 성곽은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성벽을 양쪽 끝에 쌓았다. 지형상 좁은 곳에만 성벽을 쌓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로폴 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그리스식으로 공간을 나눈 구획은 확인되지만 사실 스키타이 사람들이 살았던 구역과 구분되었다. 한 공간에 거주한 것은 맞지만, 스키타이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살았다.

 

생각보다 금속을 생산한 장소가 많이 발견되었다. 발굴범위 바깥에서도 여러 곳에서 금속기 생산하는 층이 발견되었다(그림 2). 이는 발굴 전에 그 층이 많이 노출되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그라코프는 이 유적이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생산과 무역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Граков Б. Н. 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непре //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археологии СССР. М., 1954. № 36(그라코프 954, 드네프르 강의 카멘스코예 성곽)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은 지보피스나야 강, 세셀레프카(Сеселевка ) , 세바스탸노프카(Севастьяновка) 강으로 모두 세 개의 강이 흐른다. 이 강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에서부터 해안가로 20~25km 떨어진 곳에서 위치한다. 부루스니치나야 언덕 부근의 강의 하류에서 합류되어서 동해로 하나로 합쳐져서 들어간다. 이 강의 상류는 시호테 알린 산맥에서 발원하지 않는다. 지보피스나야 강은 거의 암구 강 유역(남쪽에서 서쪽)과 마시모프카 강(북쪽)과 맞닿아 있다.

 

 

아르세네프는 이 소욘 강이 늪지대라고 하였다. 강의 하류에는 석호가 형성되어 있는데, 수렵채집 등이 주요한 생업활동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고기는 해류를 따라서 아주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모기와 파리 등 해충은 없다 밝히고 있다.


지보피스나야 강 (소욘) 유역에는 두 개의 유적이 확인된다(그림 109). 하나는 세셀레프카 강의 상류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세 개의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있다. 유적에 대한 설명은 상기한 순서대로 이다.

 


그림 109 . 지보프스카야 강 유역의 성곽(48, 세셀레프카 강, 49, 소욘 강)

 



1) 세셀레프카 성곽


지보피스나야 강(세셀레프카 강)의 상류에 위치하는데,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곳이다(사진 61, 그림 110, 11). 1908~1909년도에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평면도를 작성했(그림 110). 이 성은 평면형태가 오각형으로, 산꼭대기부터 동쪽 경사면으로 축조되고 있다. 이 성벽은 곳곳이 허물어져 있는데, 주로 산 아래 쪽이다. 전체 성벽의 둘레길이는 100m이다. 성벽은 돌로 축조되었고, 남쪽과 서쪽이 잘 남아 있다. 북쪽과 동쪽은 경사가 심한 암벽이어서 자연적인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다.

2007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다시 조사하였다.


  

그림 110. 세셀레프카 성곽 평면도(1908~1909년에 작성됨)

 

*세셀레프카 성곽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오각형이고, 성 내부에 내성이나 보루도 없고 편평하다. 성벽에는 치도 없다. 성벽은 돌로만 축조되었다. 이 성은 방어와 보호용으로 도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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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 데두시킨 클류치 성벽


암구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그림 99). 타타르니코바가 처음으로 이 환호를 발견하였고,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에 의해서 연구되었다. 데두시키나 강과 돌가노바 강 사이의 언덕 정상위에 위치하며, 서쪽 경사면에는 27기의 수혈이 확인되었다. 동쪽에서부터 서쪽 경사면에는 2기의 석벽이 잔존한다. 북쪽의 것은 직진하는데, 끝이 안쪽으로 굽었다. 그 내부에 수혈이 잔존한다. 환호 벽의 길이는 95m가량이다. 남쪽 벽은 서쪽으로 굽은 부채꼴 모양이다. 성벽의 길이는 60m 정도이다. 성벽의 높이는 0.5m를 넘지 않는다.


  


  


그림 99. 데두시킨 클류치 성곽


유적 내에서 시굴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토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부식토 층 0.04m

2. 희미한 황등색깔의 사양토 두께 0.02m

3. 자갈이 혼입된 적갈색 사양토 두께 0.24m

4. 자갈층, 생토


3층에서는 4개의 문양이 없는 연질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경부에 돌대가 부착된 구연부 편, 직립된 구연부 편인데, 기면이 울퉁불퉁하다. 편평하고 둥근 자갈 2점이다(그림 101).

데두시킨 클류치의 환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 성이 청동기대로 기원전 1천년기 후반(기원전 6~4세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01. 데두시킨 클류치 성곽에서 출토된 토기


*데두시킨 클류치 성벽는 산지성으로 개방형이다. 성 내면은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에는 치와 같은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용도는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스트라시니 곶, 우툐스노예, 켐스노예-스칼리스토예, 우스티-베렘베, 두브로빈스코예 성곽과 같은 성격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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