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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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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강 유역의 가이모노바 쿠르간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등장하는 여신상이 그려진 골제판이 한 점 출토되었다. 가로 길이가 10cm가량의 이 유물은 같은 크기의 골제판에 남성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무덤방 3번에서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유물은 반원형 아래에 붙은 띠모양 판이 더 발견되었다. 여성 아래에는 화초문양 남성 아래에는 새가 그려진 판이 더 있었다. 결국 이 유물은 머리 빗의 장식판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머리빗의 하단부는 보존되지 못했지만 크기가 같은 2개씩의 장식판은 머리장식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비슷한 유물로 솔로하 유적의 황금빗이 있다(포스팅참고). 인물이 장식되어 있고 비슷한 크기로 가이모노바 유적의 골제 빗을 복원하는데 참고가 되었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골제 빗, 1번 남아 있지 않음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astsearoad.tistory.com

앞서서 이 유물을 보고한 사람들은 뱀다리 여신이라는 표현을 필자는 맘에 들지 않아 했다. 여성의 다리부분이 뱀 이라기 보다는 화초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뱀 다리 여성이라는 표현은 결국 또 헤로도투스의 기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포스팅한 바 있는 볼쇼야 침발카 유적과 쿨 오바 유적의 여성형상물은 옷의 끝자락 장식으로 뱀을 장식하고 있다.

 

그럼 과연 이들 유물은 그냥 그리스 신화속의 뱀 여성을 표현한 것일까?

 

 

로스토에프(1922)는 그리스 예술의 하위개념으로 스키타이 문화를 생각했지만 베스소노바(1983)는 달랐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땅(지하)의 신이 있었고(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 신을 나열하면서 있었음) 이는 뱀 신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리스의 에키드나, 메수사도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가이모노바 유적의 여성상에 그려진 화초는 지하신의 생명력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여성의 옷자락에 뱀만 그려졌다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지만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화초가 그려진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여성이 의미하는 바가 땅의 생명력을 의미하며 뱀 다리 여성도 같은 의미 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의미하는 세이렌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Бессонова С. С.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 К., 1983.(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의 종교적 믿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전통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어떤 형태로든지 교육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전통이나 문화가 전해지는 것이겠죠? 가장 최소단위의 교육은 가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교육은 있었을 것입니다만. 알수는 없네요....ㅋ

 

다시 돌아가서...

 

 

 

2500년 전 우리의 얼리어답터는 모피 코트 위에 허리에 가죽으로 된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그림1-1).

허리띠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몸에 닿는 벨트와 벨트에 물건을 달 수 있는 가죽끈이 따로 달려 있었다. 가죽끈 끝에는 고리형태의 매듭이 있어서 물건을 달 수 있게 되어 있다(그림 1, 그림 2).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가죽벨트(1), 청동거울(2), 가죽주머니(3)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 가죽벨트와  나무벨트장식

 

벨트 옆에는 가죽주머니(그림 1-3, 그림 3) 안에 청동거울(그림 1-2, 그림 3)이 확인되었다. 청동거울은 손잡이 부분이 결실된 것인데, 결실부위의 형태가 U자형으로 손잡이가 있었던 것이다. 무문양 거울이다.

청동 거울 옆에는 뿔로 만들어진 빗(그림 4)이 확인되었다. 빗은 아르잔-2 유적에서도 출토되고, 이미 시베리아 청동기시대의 문화에서도 자주 출토되는 유물이다. 아마도 현재의 빗과는 다른 기능 혹은 다른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사냥도구의 일부였다던지....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 거울과 가죽주머니, 벨트장식 외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 뿔로 만든 빗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 목제 벨트장식

 

벨트에는 나무판 6개를 달아서 장식했다. 아무것도 없는 무문양이다(그림 5). 나무판으로 된 벨트 장식은 아크 알라하 I유적의 남성전사에게도 있었지만 호랑이문양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은 그렇지 않다.

 

사실 그림 2와 그림 3은 아크 알라하 I유적의 2호분인 어린아이의 무덤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바 있다. 너무 비슷해서인데, 약간 달랐지만 베르흐 칼쥔 II유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못했다. 정정합니다. 그 만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과 아크 알라하 I유적의 2호분 유물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크 알라하 I유적의 2호분에서 출토된 무기류는 특히 어른의 것을 어린아이의 사이즈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트와 무기는 남성의 필수품이다. 아르잔-2 유적에서 남성 주인공이 여성주인공과 달랐던 점 중에 하나가 허리에 벨트를 착용하고 있는 점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예를 볼때 여성의 허리띠는 안으로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형태도 다르다. 남성은 허리띠를 밖으로 착용해서 물건(무기 및 부적종류)를 달고 다닌다. 아르잔-2 유적에서는 고리트와 연결 시키기도 했다. 이미 소개한 남성들도 전부 허리띠를 차고 그곳에 뭔가를 달고 다녔다. 특히 말타는 사람에게 허리띠는 필수품이었을 것 같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은 웬지 모르게 심플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빠르고, 심플하고, 군더더기는 싫어 할 것 같은 사람.

벨트장식에 아무런 문양이 없는 것과, 말의 굴레장식도 가장 심플 한 것을 단 것이 그렇게 느껴진다. 그 시대에 비슷한 직업의 사람들이 주렁주렁 달고 다녔으나, 정작 본인은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느낌?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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