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중에서 평지성은 방형, 다각형, 개방형으로 평면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3) 개방형 성곽



이 형식에 해당하는 유적은 소볼레프카 강 하류의 해안 단구대 위에 위치한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유적(http://소볼레프카 강 유역의 성곽)만이 해당된다.

이러한 형식의 성은 주변이 절벽이어서 성벽을 모든 면에 돌릴 필요가 없어 직립평행하는 성벽이 몇 개 있는 모양이다.


. 평면형태. 내성과 보루, 장대 등이 없는 단순하다.

. 성벽의 축조방법-치와 문지가 없는 석성이다.

. 용도-취락의 방어용.

. 문화적 특징과 연대. 출토되는 유물은 말갈 트로이츠코예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7~8세기 보다 이르지 않다.


. 기원. 원래의 지역적인 특징과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성곽의 지형학적인 면은 중국과 발해의 전통으로 보인다. 성벽의 모양이 곶의 모양에 따라서 축조되었기 때문인데, 이와 같은 경우에 발해와 말갈 중에서 트로이키코예 유형과의 혼합된 양상으로 판단된다. 발해가 국가영역을 넓혀 갈 때 소볼레프카 강 유역의 일부지역에서 연해주 동북지역의 새로운 영역에서 지역민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평지성은 성곽의 자체적인 발달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사실을 함께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장 전통적인 형식은 방형성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발해의 것으로 8세기 초를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방형성에서 자체적으로 발달한 다각형 평지성은 방형성에서 두 모서리를 잘라낸 형태로 지형학적 입지와 방어기능 때문에 이런 모양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지형과 고고유물로 보아서 발해의 초기에는 아주 평화로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농경과 목축, 사냥, 어업 등을 행하였다. 연해주 북동지역의 방형 평지성의 존재는 이곳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발해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로 강의 중 하류역에 분포한다. 유물로 판단컨대, 연해주 북동지역에 존재하던 행정관청은 현정도 였을 것이다. 성의 크기나 내성의 존재 등으로 보아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이 현의 행정관청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의 경계는 방형 평지성과 산성가운데서 고개에 위치한 성의 위치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제르칼나야, 루드나야, 드지기토프카, 브루실로프카, 말라야 케마 강 가에 위치하고 있다. 남서와 서쪽의 경계는 베누코보 고개로 들어가는 베뉴코프스코예 성지와 포드네베스노예 고개로 들어가는 포드네베스노예 성지가 있다.


동쪽의 경계는 동해로 바시코프스코예와 클류치 성지가 동해를 지키고 있다. 이 현의 남쪽 경계는 2개의 석성인 스미르코프 클류치와 자볼로트나야 성지가 있고, 평지성으로는 세레브랸카 강 유역 말라야 케마 성곽이 있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발해인과 트로이츠키 말갈인과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데, 곶 성이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중에서 평지성은 방형, 다각형, 개방형으로 평면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2) 다각형 성곽



평지성 가운데 이 형식에 해당하는 유적은 켐스코예 성곽이 해당되는데, 동해로 들어가는 켐스코예 강 하류에 위치한다. 평면형태가 다각형인데, 좀 더 정확하게 하면, 방형 성지에서 두 모서리를 잘라낸 형태를 하고 있다.




 

. 내부형식- 단순한데 내성, 보루와 장대는 없다. 평면크기는 17,000이다.

. 축조방법- 치가 없는 단순한 구조인데, 성벽은 자갈돌로 높이 1~1.5m가량 세웠다. 문지는 2곳으로 성벽을 절개해서 만들었는데,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용도-다각형 성곽은 취락을 위해서 축조되었다.

 

. 기원과 연대- 유적에서 연대를 판단할 수 있는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대와 문화적 특징 혹은 소속 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단지 평면형태로 볼 때 발해의 평지성 일종으로 연해주 남부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아마도 다각형 평면형태는 중국 전통인 방형 평지성에서 기원했을 것인데, 이 성곽보다는 좀 더 늦은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9세기 보다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각형 평지성은 발해의 특징으로 생각되는데, 발해가 중국과는 다른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서 내부법을 만들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간에는 신생한 퉁구 만주국가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을 때인데, 말갈족의 후손들도 포함된다. 이 때는 평화로운 시기는 아니었고, 중국 사서에 남아 있듯이 발해가 중국에 사신을 몇 번에 걸쳐서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발해는 또한 거란족과 충돌이 있었을 때로 성지가 방형보다는 좀 더 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결과로 이런 평면형태 다각형의 성지가 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 2유형. 평지성


이 성지는 강 주변에 설치되는데, 그 중에서도 높고 편평한 범람원으로 홍수의 영향이 받지 않는 곳이 선택된다. 연해주의 북동지역에서 평지성은 모두 12개로 브루실로프스코예, 사도비 클류치, 보고폴예, 에스톤카, 프리스탄스코예, 드지기토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체렘샤니, 말라야 케마, 켐스코예-돌리노예,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성곽 등이다.

평지성은 농경에도 편한 지역으로 물과 접근성이 좋은 중류역이나 하류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진다. 1) 방형(장방형), 2) 다각형, 3) 궁형(개방형)

 

(1) 1형식. 방형 성지

현존하는 평면형태 방형의 평지성은 브루실로프스코예 http://브루실로프카 성곽 유적 , 사도브이 클류치, 에스톤카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드지기토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말라야 케마, 체렘샤니,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지 등 모두 9기이다.



. 평면형태. 단순하고, 내성과 보루가 없다. 예외적으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지에는 아주 작은 내성이 있다. 성지의 내부는 아주 편평하고, 장대가 없다. 성내부에서 소토가 확인되는 유적은 브루실로프스코예, 드지기토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에스톤카, 체렘샤니 유적 등이다. 성벽과 가까운 곳에서 구덩이가 확인되는데, 이 곳에는 성벽을 축조할 때 사용된 흙을 채취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돌로 만들어진 우물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유적은 에스톤카, 브루실로프스코예 유적 등이다. 성의 내부에서는 생활구역과 생산구역으로 나누어진다.

 

. 성벽의 축조방법. 성벽은 치가 없는 단순구조로, 성의 크기를 계측한 후 모서리부터 축조되기 시작한다. 성벽은 흙을 층층이 다져서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이용하였는데, 성벽의 외벽은 돌을 경사지게 해서 쌓아올렸다. 이렇게 성벽을 경사지게 쌓아 올리는 것은 성의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 평면특징. 방형의 성에서는 문지가 2~4기 확인되는 것이 보통인데, 드물지만 1개인 것도 있다. 문지는 대개 단순한데, 2~5m의 성벽을 절개해서 만든다. 여기에 다른 기술을 더한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의 높이는 산성과는 차이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높지 않고 1~2~2.5m에서 가량이다.

평면형태 방형의 성지는 성벽 외측에 해자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보로비요프가 언급했듯이 2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성으로부터 물이 빠져나가게 하는 일종의 하수도 역할과 다른 하나는 방어적인 요소이다(보로비요프 1983).

가장 큰 방형 평지성은 디지기토프스코예 성으로 57,600, 다음은 브루실로프스코예 성곽으로 28,900이다. 나머지 성곽의 평면적은 10,000를 넘지 않는다.

 

. 용도. 평지에 위치한 성지는 높지 않은 성벽과, 단순한 성문, 치와 집석 시설의 부재, 화재나 다른 파손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서 평온한 시기에 평지의 방형성지가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성들은 사냥, 어업 등 퉁구스-만주족의 생업활동을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베뉴코프 1960). 성곽에서 생활구역을 발굴한 결과, 그 곳에서 오랜기간 동안 정주한 흔적이 있다. 이는 방형 성지가 취락을 위한 것임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 문화의 특징과 연대.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현재는 방형 성지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대략 3가지로 구분되는데, 연질토기, 녹로제 토기, 손으로 만든 후 녹로위에서 완성되는 토기로 구분된다. 연질토기는 원래 원주민의 전통으로 모든 유적에서 말갈토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녹로제 토기는 발해형식의 토기로써, 방형 성지가 발해국가와 관계가 많음을 보여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유적에서 발해토기가 출토하게 된 것은 발해와 말갈 간의 경제교류가 아주 깊었거나 혹은 이 지역에 발해인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많다. 녹로제 토기는 인화문이 시문되어 있다. 이러한 토기는 필자가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발해국의 남쪽인 연해주에서 보이는 이 토기가 아무르강 하류 여진족 문화의 일부와 유사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토기를 녹로에 놓고 성형하는 기술과 기형 등은 중국의 기술이다. 그래서 평지성 중에 방형 성지도 연해주 동북쪽에 위치한 성곽은 말갈문화의 것으로 생각된다. 말갈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국가가 발해(698~9226), 여진(115~1234), 동하국(1217~1234)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볼 수 있다. 방형 평지성에서 출토된 토기는 전체적 양상으로 보아서 8~10세기 발해 국가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적에서 출토된 말갈토기 옹형 토기의 기형은 9~10세기에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유적의 연대는 그에 따르는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댜코바 1983).

 

. 기원. 방형 평지성은 아주 잘 지어진 방어시설로서 기원전 10세기부터 10세기 까지 이 지역에는 없었던 건축물이다. 방어시설이라도 단순히 곶 위에 짓는 정도이다. 바둑판 같이 반듯한 평지성은 고대부터 중국의 기술로 정확한 계측을 통해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주로 방형성은 궁정 등을 짓는데 이용되었다(이보츠키나 2003). 러시아 극동에서 방형성지는 발해(698~926)이후에야 볼 수 있는 건물지이다. 발해는 연해주로 바로 들어온 것은 아니다. 중국 사료에 기록되어 있듯이, 중국 당나라의 행정을 모방해서 국가의 기초를 9세기 초반에 만들었고, 방형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오랑캐의 땅인 연해주도 하나의 현으로 들어가서 지역 주민들을 통제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치가 없는 방형의 평지성에서는 확인되는 고고유물 가운데 무기가 지표에서도 수습되지 않고, 토층에서도 거의 확인되지 않는데, 이러한 점은 연해주의 북동 지역에 발해는 처음에는 아주 평화로웠다는 점을 반증한다. 성은 그 지역과 주민의 관할하는 하나의 관청으로써 역할이었다. 성의 지위는 그 규모와도 일치하는데,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지는 동북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성곽은 인접한 포드네베스노예 성곽에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사면으로부터 들어오는 문지를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곳은 동해까지 이어져서 드지기트 항구까지 다다르는 길을 통제한다. 또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곽의 위상은 내성의 조재로도 알 수 있다. 고고학유물 중에서 확인되는 말갈토기의 존재는 이 평지성이 지역민인 말갈 군인들이 관장하던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는데, 아직까지 외래문화(발해문화)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존재하던 시기에 발해 토기가 나타난 것은 이 지역에 새로운 고고문화를 규명할 수 있다. 방형의 평지성과 녹로제 토기 등은 중국 전통인데, 중요한 것은 성벽의 축조방법이다. 현재까지 러시아의 연구자들은 판축 기법이 예외적으로 연해주에서는 여진족과 관련된 12~13세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평지의 방형성이 발해의 것이라는 판단이었지만, 성벽축조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연해주의 북동지역에서 말갈족에게는 너무 이른 기술이었는데, 아마도 중국 기술자에 의해서 평지성이 계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간접적으로 발해의 국가 영역에 들어간 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4) 절벽 산성



이 형식에 해당되는 산성은 스칼라 데르수(사진), 달네고르스코예 성곽이다.

자연성지로 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하는데, 관찰과 방어를 위해서 축조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진. 스칼라 데르수의 전경


. 평면형태-자연면을 그대로 이용해서 단순하다. 움푹 들어간 부분에 주거지가 위치한다.

. 방어시설-자연방어시설이기 때문에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 연대-출토된 토기로 보아서 발해문화의 것으로 생각되고 8세기 보다 이르지 않다.

. 용도-루드나야와 제르칼나야 강 유역에서 나가는 길목을 지키는 지점이다.

. 기원-석성은 고구려 전통의 것으로 생각된다. 퉁구-만주족은 지리적으로 고구려와 인접한 지역에 거주했다. 중국 사서에 남아 있는 대로, 우호적인 관계만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전쟁과 같이 대체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고구려에만 적대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동아시아 전체를 상대로 그러한 경향이 있다. 7세기 고구려의 멸망이후 고구려의 유민이 넘어와서 발해로 넘어와서, 말갈과 함께 구성원이 되었고, 그 때 함께 산에 석성 짓는 기법도 넘어 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흙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돌만을 사용하는 축성 기법은 한국과 중국에서 지금까지도 사용되지만, 중국사람 연구자들도 이는 고구려의 기술이라는데 동의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곳에 떨어진 구릉 위에 성벽을 모두 둘린 석성은 고구려 전통의 것이다. 바시코프스코예 성곽은 평면형태가 궁형으로 고구려의 축성기법과 입지는 말갈인 들이 주로 세우던 곶 위에 세워진 두 가지 전통이 혼합되었다. 성내에서 말갈토기가 확인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연해주의 석성은 7세기부터 확인되는데, 발해의 건국시점보다는 올라가지 않는다. 절벽성의 하부형식 궁형의 석성은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8~9세기정도이다. 고구려-말갈 혼합형 성이라고도 분류할 수 있다.

산성은 4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구릉 산성, 고개산성, 봉우리 산성, 절벽 산성 등이며 그 기원은 각기 다르다. 구릉 산성은 여진성으로써 동하국(1217~1234)의 군사 행정관청의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댜코바·사크마로프 2002c). 고개성은 중국 축조기법에 발해의 산성 특징인 고개에 축조된다는 점에서 두 가지가 혼합되는데, 이는 주요 교통로를 통제하던 기능을 한다. 이러한 고개는 현재까지도 도로망으로 이용되고 있다. 봉우리 산성은 고구려의 축성기술에 원 지역민(말갈족)들이 산지를 지키던 곳에 축조되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 3형식. 봉우리 산성


동떨어진 언덕이나 구릉 위에 성이 축조되며 돌로 쌓은 성벽이 특징이다(15).

유적은 강의 전체를 관찰 감시 할 수 있는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특징인데, 강으로 접근하거나 성곽으로 올라오는 것을 즉시 볼 수 있는 곳이다. 구릉의 경사면 자체가 돌로 쌓여져 있어서, 누군가 한 발 짝 땔 때마다 돌이 움직여서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형식의 특징은 자연적 지형에 따른 것으로 돌이 많은 언덕위에 위치한다. 스미르코프 클류치, 자볼레첸나야, 클류치, 바시노프스코예, 세셀레프스코예, 야수 성곽 등이다.

클류치 성곽은 동해안의 디지기트 항구를 통제하고, 바시노프스코예 성곽은 루드나야 항구, 스미르코프 클류치 성곽과 자볼레첸나야 성곽은 세레브랸카 강의 지류를 지킨다. 세셀레프스코예 성곽은 지보피스나야 강을 지킨다.

평면형태에 따라서 타원형 성곽과 궁형성곽으로 나눌 수 있다.


A. 타원형 성곽

성벽은 성의 모든 면에 다 돌아가는 폐쇄형으로 돌로 축조되어 있다(자볼레첸노예, 스미르코프 클류치http://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석성2, 세셀레프스코예 , 야수). 


. 평면형태-단순한데, 취락이나 생업과 관련된 건축물은 구릉 상의 평지나 그와 가까운 곳의 단구대 시설을 이용한다.

. 성의 축조방법-성벽은 돌로 쌓는 것이 특징인데, 돌 사이의 다른 흙이나 부수적인 것 없이 오직 돌만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성벽의 높이는 1~7.5m까지 다양하다. 문은 단순한데, 2~5m가량의 절개면이다. 성벽 전체 흑은 하부만 경사지게 만들어졌다. 성곽의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직경 1~3m, 깊이는 0.7~1m가량이며, 화살촉 등이 발견된다.

.용도는 동해안의 디지기트, 세레브랸카 항구 등으로 향하는 길의 문을 지키고 감시하는 역할이다.

 

B. 궁형성곽

바시코프스코예 성곽은 궁형으로, 성벽은 돌로 쌓았다.http://루드나야강유역: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 평면형태- 자연입지를 그대로 따랐는데, 성벽이 부채꼴로 휘어지는 궁형의 모양이다.

. 용도-루드나야 강과 동해의 루드나야 항구로 들어가는 길의 문지를 통제하는 성격이다.

. 연대-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다른 유물을 통해서 말갈문화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석성의 전통은 고구려의 것으로 발해시기에 축조되었다.

. 기원. 입지는 곶에 위치지만, 돌로 쌓은 성벽은 고구려 전통으로 원주민인 말갈과 고구려 전통이 혼합양상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6 7 8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