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몽골의 스키타이 지역문화인 울란곰 문화에서는 청동제로 제작된 일상생활 유물은 청동솥, 청동송곳, 버클, 청동걸쇠와 거울이 있다. 거울은 일상생활 용품 혹은 의례품으로 볼 수도 있을 듯 한데, 유적을 발굴한 사람은 일상생활용품으로 보았지만 필자는 의례용품으로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겠다.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솥은 손잡이가 청동솥의 입구 위로 수직으로 달린 것인데, 스키타이 청동솥 가운데 늦게(기원전 5~3세기) 나타나는 형식이다(그림 1-1~3). 거의 퇴화된 손잡이 모습(그림 1-5)도 발견되었다. 솥 가운데 다리 세 개가 붙은 형식은(그림 1-4)는 울란곰 유적 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천산부근의 카자흐스탄 유적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이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청동솥

 

모든 장신구를 생활용품이라고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청동버클은 일상생활용품으로 볼 수 있다.

청동버클 가운데서 고정된 ‘혀’가 있는 형식(그림 2-4,6)은 늦은 형식이다. 청동걸쇠(그림 2-20)는 이전에 소개해 드린 알타이의 유적에서는 볼 수 없지만 알타이의 다른 무덤에서는 발견된다. 주로 허리 부근에서 나오는데, 무기를 고정시키는 고리로 생각할 수 있다(쿠바레프 슐가 2007.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청동제장신구

 

이 외에도 청동으로 제작된 무기는 청동화살촉, 청동검과 청동칼, 투부 등이 있다. 이들 유물은 철제품과 골제품(화살촉)도 있다. 청동제품 무기와 철제품 무기 중에서 더 파급력이 높은 것은 철제품일 것이다. 단 청동화살촉은 실제 무기일 가능성이 있다. 청동으로 된 검은 주조(거푸집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지만 철을 뼈대로 해서 만든 것도 있다.

 

철제 단검은 23호와 33호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손잡이 끝장식이 고리모양이거나 납작한 숫돌형이 있다. 날에 난 돌기형태의 칼날 멈추개가 있다. 청동단검 보다 크기가 크다. 철제 투부(그림 3-5)도 청동제품 보다 크기가 큰데, 타격부는 뭉특하게 처리되었다.

 

그림 3. 울란곰 유적의 투부

 

화살촉은 골제와 청동제이다. 골제품은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튀어나온 부분(슴베)이 있는 형식(그림 4-9~12)이고, 청동제는 자루를 삽입할 수 있도록 안이 비어 있도록(管형)만들어진 것이다. 청동제품은 단면이 삼각형이다. 이러한 형식의 청동유물은 투바에서 기원전 5~3세기에 나오는 유물이다.

 

 

청동단검, 청동투부, 청동거울 가운데 청동단검과 청동거울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르거나 혹은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이른 형식이 발견되는데,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유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청동제품이 일상생활 용품이라기 보다는 의례품이다.

 

이 유적에는 말이 없이 무덤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구는 발견되지 않아서 연대추정의 자료로 사용되는 유물은 화살촉과 청동솥, 토기(따로 설명)이다. 또한 울란곰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사글리- 바쥐 II유적은 울란곰과 매우 비슷한 무덤 특징, 유물이 출토되는데 기원전 5~3세기 유적으로 탄소연대로 측정되었다.

 

 

그림 4. 알타이 추야강과 우슬라 강 유역의 테르베독 유적 1호(1~4)와 2호(7~12) 출토품, 1. 청동걸쇠, 2. 허리띠의 일부분, 3. 투부 자루, 4. 청동단검, 5-청동칼, 6-일종의 장신구, 7-재갈, 8-투부, 9-12: 골제 화살촉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몽골의 지역문화인 울란곰 문화는 울란곰 유적으로 정의된 문화이다. 울란곰유적에는 나무로 만든 무덤과 돌로 만든 무덤이 공존한다. 각각 22기와 20기이다. 유적을 발굴한 노보고르도바는 나무방무덤과 돌널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가족 규모가 달랐을 것으로 구분했다. 나무방은 대가족이고 2세대가 함께 묻힌 것이고, 돌널무덤은 2인 혹은 1인이 묻혀서 소가족으로 분석했다.

 

아직 다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나무방에 묻힌 사람은 총 116명이다. 최소 2명부터 최대 9명까지 나무방에 매장되었다. 여러 명(?, 기준이 정확하지 않음)이 매장되었을 때 2세대가 매장되었다. 마모노바(형질 인류학자, 뼈를 분석)의 의견에 따르면 무덤 속의 뼈에서 유전병의 흔적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서 친족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33호 무덤의 인골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다리를 굽히고 매장되었다. 11호, 23호, 31호에서는 한 그룹은 오른편, 다른 그룹은 왼편으로 누었다.

돌널 무덤에서는 혼자 묻힌 남성은 5인, 여성은 3인, 남녀와 어린아이가 매장된 경우는 2번 확인된다.

결혼한 성인과 어린아이를 포함한 두 세 개가 매장되었다는 사실은 피장자 모두가 대가족 관계였을 수 있다고 노보고르도바는 보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두 세대가 한 무덤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노보고르도바는 비슷한 가족관계가 확인되는 울란곰 유적의 북쪽에 위치한 투바(미누신스크 분지)의 사글리-바쥐 II유적의 예를 참고해서 울란곰 유적에서도 추가 매장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 스키타이 지역문화는 타가르 문화라고 알려져 있다. 이 문화의 가장 큰 고분은 살브익 유적인데, 그 곳에서도 복도시설이 발견된 바 있다, 포스팅 참고)

 

2020.12.03 - [교과서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미누신스크 분지/타가르문화] - 시베리아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수장의 무덤

 

시베리아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수장의 무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에서는 타가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번성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적으로 살브이크 쿠르간은 1955년, 1956년 발굴되었는데 이 무덤을 볼쇼이 살브

eastsearoad.tistory.com

 

사글리-바쥐 II유적 층위조사에서 집단매장된 가족묘에서 무덤구덩이로 들어가는 곳에 추가매장을 위한 갱도, 일종의 복도시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통로에는 나무를 깔아서 만든 것이고, 무덤 방의 덮개에 문이 따로 달려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다(그라치 1980).

이런 무덤구조라면 울란곰 유적에서도 두 세대가 묻힌 무덤이 발견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무무덤방에는 2세대가 묻힐 수 있었고, 돌널무덤은 단인장 혹은 최소단위의 가족이 매장되었을 수 있다.

 

앞서 보여드린 울란곰 유적의 나무방 덮개의 중앙이 파손된 경우가 많았는데, 도굴의 흔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무덤설명에는 없었지만, 노보고르도바가 자신의 저서에서 ‘도굴되지 않은’사글리 –바쥐 II유적이라고 강조한 것을 보면, 자신이 발굴한 유적은 도굴 당했다는 것을 돌려 말하고 있다. 울란곰 유적은 이미 채석으로 인해서 인접한 도시에서 건축할 때 봉분의 대부분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충분히 그 가능성은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남성 두개골, 투부, 철검 등에 맞은 흔적

 

울란곰 유적에서는 죽음을 강제로 당한 여성의 인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두개골에 창상이 있는 인골은 남성들이며, 한번에 매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노보고르도바는 자연사하거나 혹은 창상이 있는 남성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아주 단기간(전투)에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보았다. 무덤에 매장된 남성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모노바도 고분축조가 매우 빠르게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나무방 무덤 가운데 6기에는 어린이의 뼈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무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분석된 같은 시대의 무덤에서 어린아이의 비율은 31.6~61.4%에 달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현저히 낮기(21.2%) 때문이다.

 즉 다른 무덤 유적은 자연 스럽게 죽은이를 위해 만들어졌고, 당시에 죽은 아이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다른 무덤에서는 아이의 비율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울란곰 유적에서는 어린아이의 비율이 낮은 점은 자연스럽지 않고 어떤 큰 변이가 있었다고 판단가능한 것이다.

마모노바는 이 시기의 다른 고분에 묻힌 어린아이의 비율 총계로 여성이 낳은 어린아이의 수를 계산했는데 평균 6명의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고 밝혔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이제 막 태어난 아기, 몇 개월 된 아이 등이 매장되었다(마모노바 1978).

 

 

울란곰 유적에서는 청년과 장년의 남성이 많이 매장되었고, 남성노인들은 아주 드물게 있는데, 나이들도록 살지 못했거나 전투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반면에 여성노인들은 남성노인에 비해서 비율이 높다.

노보고르도바는 여성을 강제로 죽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이 죽었을 때 여성을 함께 죽이는 풍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앞서 말한 대로 대규모 집단 매장은 추가장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1980 :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М.: ГРВЛ. 1980. 256 с. (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Мамонова Н. Н. Демография Улангом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Саяно-Тувинская

культура V—III вв. до н. э.).— Археология и этнография Монголии. Новосибирск, 1978 (마모노바 1978 기원전 5~3세기 울란곰 유적의 인구통계)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 울란곰 유적은 1972년에 처음 발굴되었는데, 1호로 명명된 무덤이 가장 최대의 성과였다고 한다. 이 무덤에서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이 붙은 토기(그림 1)가 발견되었다. 이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은 출토지가 명확하고,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암각화의 동물그림도 언제 그려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노보고르도바는 이 토기 때문에 유적을 전부 발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 출토 토기

 

1호는 이미 서쪽이 모래 채취로 인해서 파괴되었는데, 처음 발굴에서 트렌치의 벽에서 반쯤 썩은 통나무가 나왔고, 이를 정리해서 무덤구덩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전에 문화층 조사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유적의 단면을 잘라서 보는데 그 때 구덩이를 파게 된다. 우리나라는 긴네모꼴로 파지만, 러시아에서는 정사각형으로 판다. 트렌치는 그 구덩이를 일컫는다. 필자가 어렸을때는 수박장수는 수박을 세모로 잘라서 익은정도를 보여주고 팔았는데, 비슷한 행위이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지만... )

 

1호(그림 2-A, Б-, В)는 나무무덤이 다. 통나무방은 높이 80cm이고, 4단을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동쪽은 2.4m, 북쪽은 2.5m, 남쪽은 1.85m이고 바닥에는 직경 5~8cm의 나뭇가지가 깔려 있었다.

통나무 위는 두꺼운 나무로 나무방과는 반대방향으로 덮었고, 그 사이의 작은 나뭇가지로 메꾸었다. 무덤구덩이는 모래와 잔돌로 채웠다. 바닥에는 나뭇가지 위에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일부만 보존된 인골, 완전히 보존된 2기의 인골이 각각 놓여 있다. 무덤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인골은 2기만 있었고 나머지 3기는 부서진 상태이다. 4명의 성인(성인 남성, 장년남성, 장년 여성, 성인여성)과 10~12살 어린 아이의 인골이다. 완전한 인골은 모두 다리를 웅크린 상태이다.

피장자의 다리 부근에서는 화살촉 두 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화살통 2기가 들어간 것이다. 골제 화살촉(단면 삼각형)이 대부분이고 청동화살촉은 2점 발견되었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과 출토 유물, A- 단면도, Б-무덤 평면도, В-무덤방덮개, 1-철제 칼, 2-5: 청동칼, 6-청동거울, 7-12: 화살촉 13,14, 16-18, 25-27: 청동버클장식, 15-청동제 갈고리, 19-청동제 송곳, 20-축소된 투부(전투용도끼),21,22-청동화살촉, 24-멧돼지 이빨 펜던트, 28-청동제 버클, 29-석제 원판? 용도미상

 

두개골 부위에서 중요 유물들이 나왔는데, 손잡이가 달린 청동거울, 축소된 투부, 청동버클, 은제 반지, 석제 원판, 토기 항아리(그림 1)도 두개골 근처에서 나온 것이다. 울란곰 유적의 모든 용기는 대부분 두개골 위에서 발견된다. 인접한 지역과의 차이이다.ㅋ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의 초기철기시대는 울란곰 문화라고 하는데 인접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공통점이 많다. 넓은 의미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각 지역문화이다.

파지리크 유적 보다는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XII, I) 유적, 졸린 유적 등과 더 비슷한데, 나무무덤방, 석관묘 등이 한 무덤에서 발견되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알타이 쪽의 무덤은 대부분 1명씩 피장되고, 각 무덤이 일렬로 배치된다. 하지만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무덤방에 최대 9인이 들어가고, 무덤의 배치도 분산되어서 차이가 있다.

 

앞서 살펴본 울란곰 유적의 23호에서는 7인이 피장되어 있었는데 청동거울이 3점 발견되었다. III호 여성과 VI호, VII호 남녀 커플이 가지고 있었다. III호 여성은 화살통 옆에 청동거울이 발견되었고, VI호 남성은 오른손 끝에서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다. VII호 여성은 두개골 아래에서 청동거울과 나무잔이 함께 발견되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 23호 부장품. 1-목제 쟁반, 2-9: 삼익형(날개가 세 개 달린)청동화살촉, 10-청동송곳, 12-청동장식판, 13, 14, 18-청동거울, 15-17: 청동 단추, 19~21: 구멍이 있는 골제 장식판, 22-철제 투부, 23-철제 칼, 24, 25-철제 검, 26-32: 토제 항아리

 

남성이 가지고 있었던 청동거울은 다른 2점에 비해서 크고, 고리가 달린 것이다(그림 1-18). 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머리맡에 놓여진 것이었다. 그 중에서 1점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잔뜩 새겨진 것이다(그림 1-28). 정확하게 누구의 것인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비슷한 표식이 시문된 토기가 다른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토기의 형태는 다르다.

 

이 유적에서 단검은 대부분 청동제 이지만 철제로 제작된 것은 23호와 33호에서 발견되었다.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하다.

 

몽골의 고분에서는 토기가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데, 이 유적은 그들 보다는 토기 출토양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피장자는 자기의 항아리가 있었고 머리맡에 놓은 채 매장되었다.

 

알타이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과 마찬가지로 청동거울은 대부분 무문양이지만 간혹 거울의 뒷면에 동물문양이 음각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르잔-2호, 파지리크 유적의 거울에서 볼 수 있듯이 거울의 뒷면에 꼭지가 붙은 형식은 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거울의 특징으로 만 보면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5호묘 청동거울(김재윤 2021)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고분)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혹은 초기철기시대에 해당되는 스키타이 시대의 암각화 주인공은 대부분 동물이다. 굽달린 동물종류가 가장 많은데 산염소, 산양, 다양한 사슴, 말, 낙타 뿐만 아니라 물고기, 뱀, 하이브리드 동물 등 실제 존재했거나 혹은 상상한 동물을 그렸다. 차간 사알라와 바가 오구이 유적, 출루우트 유적 외의 알타이 암각화에는 다양한 하이브리드 동물 그림들이 있다.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에 발견되지 않고 초기 철기시대인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이미 소개해드린 유스티드,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 문양이 없는 것이 많지만 간혹 거울면이 아닌 뒷면에 음각으로 동물그림이 그려진 경우가 있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유적? (왼쪽), 울란드리크 유적(오른쪽), 이 사진은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박물관에서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와함께 전시된 유물이다. 울란곰 유적의 53호 청동거울도 오른쪽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참고하시면 된다. 

 

울란곰 유적에서도 2명의 남성 무덤속에서 남성 1명이 말 그림이 그려진 청동거울(그림 2-8)을 지닌 채 매장되었다(II호 남성). 53호 무덤은 돌널무덤(깊이 1m, 90×1.5m)이다. 1명은 유로포이드 다른 1명은 몽골로이드라고 알려졌다. I호 인골은 성인과 2호 인골은 청소년이라고 알려졌고 둘 다 머리에 구멍이 났다. 그림과 같이 시베리아 장법(?)으로 무릎을 굽힌채 측면으로 누워서 있고, 머리 아래에는 돌베개가 놓여 있다. I호 인골의 골반부근에서는 허리띠의 부속품으로 보이는 청동클립과 물고기뼈, 청동칼(그림 2-1)가 발견되었다. II호 인골은 늑골 밑에 조개와 구슬, 갈고리 모양(그림 2-6), 등 부근에는 청동장식(그림 2-7), 팔 부위에는 투부(그림 2-5)와 손 아래에는 검집에 든 청동검(그림 2-9)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골반뼈 부근에서 가죽주머니 속에서 청동거울(그림 2-8)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머리위에서는 토제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무덤에서는 검과 칼, 투부는 주로 허리부근에서 출토되었는데, 53호 인골 II호는 손 아래와 팔 부근에서 검과 투부가 나온 점이 다르다.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한 무덤에 들어가는 경우는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어서 크게 새로운 점은 아니지만  흥미롭기는 하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53호 돌널 무덤과 출토품. 1. 청동칼, 5. 투부(전투용도끼), 6, 청동고리(11번이 아닌 6번), 7. 청동패식, 8. 청동거울. 9 청동단검, 10,11토제항아리

 

 

유스티드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겠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6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