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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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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르트의 마지막 도시라고 알려진 테이시바이니 유적은 우라르트 전쟁의 신 테이세바의 명칭을 도시명에 붙인 것이다. 유적은 기원전 7세기 경에 세워졌고 적의 공격으로 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하기 전까지 테이시바이니는 매우 풍족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에서는 와인 저장고가 발견되었고, 성의 남쪽에는 포도 뿐만 아니라 살구, 사과 , 석류, 버찌, 호두, 복숭아 등을 길렀던 과수원도 발견되었다. 과일씨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림 1. 테이시바이니 성곽의 평면도, 그리드는 50m간격


성곽내에는 창고들이 발견되었는데, 알곡 저장소, 참기름 제작소, 포도주 제조공간, 양조장 및 맥주 보관소 등이 확인되었다. 알곡보관소에서는 중앙에 구멍이 있는 부침개 모양의 커다란 빵도 발견되었다. 참기름을 제조하던 공간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의 흔적과 돌통이 발견되었다. 포도주 제조공간에도 같은 통이 발견되었다.

그림 2. 테이시바이니 성곽의 창고, 노란색-알곡저장소, 녹색-양조장 및 맥주 보관소, 하늘색-참기름 제작 및 보관소, 자주색-와인저장고 , 1. 중앙문, 2. 서문, 3. 내성, 4. 지배자의 거주지, 5- 쐐기문자점토판이 발견된 곳 (그리드는 50m간격)

그림 3. 테이시바이니 성곽의 석주


과수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은 포도씨이고 포도주 저장공간이 가장 많이 발견되어서 포도주 제작이 주요한 생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포도주를 저장한 토기는 카라스 라고 부르는데 400개가 발견되었다. 카라스 한 개는 800~1200리터이다. 포도주를 따르는데는 쿱신(그림 4)(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유제품을 보관하거나 마시는 잔을 쿱신이라고 부른다)을 사용하는데, 문양이 새겨져 있다. 테이시바이니 유적외에는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쿱신은 1036개가 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4. 테이시바이니 성곽의 포도주 저장고(28번)

그림 5. 포도주 저장고 28번에서 나온 쿱신

 

 

 

그림 6. 25번과  28번 포도주 저장고의 바닥 평면도


아라르트 분지에서는 0.5~1톤의 알곡이 1헥타르에서 생산된다. 1500톤의 알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000~3000헥타르의 경작지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테이시바이니 창고에 저장된 정도의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00헥타르의 땅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전체 농경의 면적은 4000~5000헥타르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위치한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현재에도 포도주생산으로 유명하다. 소비에트 때도 꼬냑과 와인 생산을 담당했던 곳이다. 필자는 와인 맛을 잘 모르지만 이곳 와인을 좋아했다. 자주 마셨는데, 와인도 뒤끝이 있다. 나도....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에 위치한 우라르트의 도시로 잘 알려진 곳은 예레부니와 테이시바이니 유적이 있다. 모두 성곽 유적으로 특히 테이시바이니(Тейшебаини) 성곽에서는 코카서스 산맥의 북쪽 스키타이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청동화살촉과 같은 모습의 화살촉이 발견되었다(그림 1).

그림 1.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청동화살촉


테이시바이니 유적은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 혹은 기원전 7세기까지 존재했던 도시이다. 유적은 1936년에 발견되었고 카르미르-부루르 언덕 위에 만들어졌는데, 유적의 면적은 4헥타르가 넘는다고 한다.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부터 발굴을 했으나 전쟁으로 발굴은 중단되었고 1958년부터 다시 피오트로프스키가 발굴을 했다. 이 때 우라르트(철기시대) 이전인 순동시대 및 청동기시대(기원전 13~기원전 8세기 어느시점)에도 문화층이 있던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우라르트 문화층을 발견했다.

도시의 명칭은 역시 우연하게 발견된 쐐기 문자에서 발견되었다. 우라르트의 왕인 루스이 II세가 세운 것인데 그는 아르기쉬치 II세의 아들로 기원전 685~639년에 통치했다. 우라르트 왕국의 쇠퇴기에 세워진 도시로 알려졌다. 기원전 714년 아시리아 사람들은 무사시르에 위치한 우라르트 신 칼디의 주요 종교 건물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스이 II세는 우라르트 신의 숭배를 강화해서 이를 군사력 강화로 이으려고 애쓴 왕으로 알려졌다. 종교를 미끼로 대중을 겁박했을 것이다. 루스이 II세 통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반 호수 북쪽에 위치한 칼디 신을 숭배하는 도시를 건설하고, 전쟁의 신(神) 테이세바의 이름을 따서 테이세바이니 라고 하는 성을 건설한 것이다. 테이시바이니의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적힌 쐐기문자가 적힌 점토판이 남아 있다.

그림 2. 지질학자가 발견한 점토판


이 유적에는 1950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이 남아 있다(그림3). 고대 성곽의 도로와 성벽 및 거주구역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림 3. 1950년 촬영, 불가코바가 찍은 항공촬영, 테이시바이니 고고유적발굴조사장면

 

그림 4. 1950년 촬영, 테이시바이니 성내에서 발견된 포도주 보관소(28번), 저장고 중에 한 곳으로 땅을 파고 큰 도가니를 묻은 방법으로 보관했다. 가장 상단에는 포도주의 종류와 보관 날짜를 표시했다.



발굴결과로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멸망은 여름이었다. 소가 고지대 목초지에 있었고 아직 포도가 익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리고 한밤에 공격이 시작되어 서둘러 도시주민들이 거주구역을 떠나 요새내부로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발견된 화살촉의 방향이 적군은 언덕 경사면에서 공격했다. 거주구역에서는 여성와 아이들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적에게 벗어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성곽 안쪽의 내성에 임시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투결과 화재가 발생해서 요새 지붕이나 천장등이 파괴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시바이니가 마지막에 불타면서 붉게 변한 벽돌로 인해서 이 유적이 위치한 곳의 이름이 카미르-브루르(붉은 언덕)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격으로 멸망한 이유는 요새로 통하는 물 공급시스템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이 곳에서 생계를 이을 수 없었다고 알려졌다. 이 유적에서는 포도를 재배하는 과수원도 발견되었는데, 물 공급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연구되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Yk1k5FjnYe1OSn-yRxnY5IuDo9w9PMt&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복사본 복사본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 Б. Город бога Тейшебы // 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1959. — № 2.(피오트로프스키 1959, 테이세바 신의 도시)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Пиотровский Б. Б. Урартская крепость Тейшебаини (Кармир-Блур) (к 25-летию раскопок) // Краткие сообщения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 1965. — Вып. 100. — С. 72—78.(피오트로프스키 1965, 우라르트 테이시바이니 요새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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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세계의 가장 이른 유적인 켈레르메스는 코카서스 산맥의 북쪽에 위치한다.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은 자카프카스라고 부르는데 우라르트 라고 부르는 국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소비에트 시절, 가장 오래된 철제품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이 오리엔트 지역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9세기부터 이곳에는 우라르트가 들어섰는데, 기원전 8세기가 최대 절정기로 알려졌다.

기원전 8세기 초에 도시 에레부니를 세웠졌다고 알려졌는데 그 위치는 돌블록이 발견되기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린 베르드 언덕의 발굴에서 돌블록에서 새겨진 글자를 통해서 그곳이 에레부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이 위치한 곳이다.

그림1. 에레부니 도시의 사원지 입구에서 발견된 비문

아바쉬사를 위해 메누아의 아들 수시 아르기쉬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에레부니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황량했고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위대한 업적을 그곳에서 수행했다. 하테와 추바니나라의 6600명 병사들을 나는 그곳에서 살도록 했다.: 러시아어를 번역함.
.

그림 2. 에레부니 도시, 연두색 부분이 사원지이다.


예레부니에서 발견된 돌 비석은 아르기쉬치왕이 통치하기 시작한 5번째 해(기원전 782년)에 새겨졌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예레부니 도시는 기원전 782년 보다 이른 시기에 세워젔을 것이다. 성곽 유적이 하나 더 발견되었는데, 테이시바이니 성곽으로 이곳에서는 스키타이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에레부니가 위치한 곳은 높은 언덕 위로, 아라라트 분지와 요새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아라라트는 성경에 나오는 그곳으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정착했다고 하는 그곳이다. 믿거나 말거나.

지도상에서는 아라라트 산은 에레부니와 근접한 곳에 위치한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아르메니아 꼬냑이 매우 유명하고,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그렇지만, 진짜가 잘 없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꼬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라라트 인데, 프랑스 보다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마신 아라라트도 가짜 였을까? 꼬냑은 뒤탈이 심한 술이다.
에레부니 옆에 있는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는 와인제작소도 확인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이르다고 한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Yk1k5FjnYe1OSn-yRxnY5IuDo9w9PMt&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복사본 복사본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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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Б.Б. Пиотровский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М.: 1959. 260 с.(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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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스키 고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보이는 표범문양 장식과 거의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옷에 달았던 유물이다. 표범장식과 마찬가지로 스키타이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유물은 사슴장식이다.

 

그림 1.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장식과 표범장식

 

뿐만 아니라 말머리 모양 장식판도 나왔는데, 길이가 10cm가량으로 실제로 말머리를 장식했는지는 의문이다. 장식판의 눈부분에는 감입부가 있어서 그 안에 다른 색의 돌을 끼워 넣었을 수 있다. 콧 구멍자리에 토끼 2마리가 표현되었다.

 

그림 2. 울스키 유적 말머리장식

 

유적에서는 산염소 모양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동물장식(단독)도 발견되었는데, 같은 동물장식이 청동으로 된 간두령 속에도 표현되었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은 굽동물의 경우 대개 다리를 배 쪽으로 접어 넣은 모양이지만 이 유물은 머리를 뒤로 돌린 형태이다. 머리를 뒤로 돌린 야생염소 형태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대 오리엔트 전통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림 3.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야생염소

 

그림 4.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간두령장식

 

고대 오리엔트 전통의 특징은 토끼 장식도 해당된다. 쿨-오바 유적에서 발견된 토끼 장식은 다리우스 왕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08.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문화 속의 토끼

 

스키타이 문화 속의 토끼

흑해의 크림반도 끝에 위치한 케르치 반도의 쿨-오바 유적에서는 사슴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이 장식판은 흑해의 동물문양을 대표하는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장식판과 비슷하다. 그런데 쿨-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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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울스키 유적은 볼가 강 유역 기원전 5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의 무덤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울스키 유적의 연대가 이르고, 이미 기원전 7세기에 나무로 된 구조물을 봉분 속에서 넣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무덤구조는 흑해지역에서 발생해서 볼가 강 유역으로 번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울스키 유적에서 나오는 고대 오리엔트 특징의 동물장식은 기원전 7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앗시리아, 그리스의 수입품, 우라르트에서 제작된 유물 등이 나와서 무덤 속에 단순히 스키타이 유물만 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목을 돌린 산염소장식이 표현된 간두령은 간두령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간두령은 스키타이 재지의 유물로 그곳에 오리엔트 장식이 표현되었다고 해도 그 유물 자체는 스키타이 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 И. Иванчик, А. М. Лесков. Ульские курганы. Культово- погребальный комплекс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Северном Кавказе.//Corpus tumulorum scythicorum et sarmaticorum. Т. 2//Москва, Берлин, Бордо, 2015(이반치크, 레스코프 2015, 울스키 무덤, 카파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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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그 외는 기원전 5세기~4세기 이후의 유적이다. 그래서 알렉세예프는 기원전 6세기의 유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암흑의 시대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앞과 뒷 시기에 비해서 없다는 이야기로 기원전 6세기 유적으로 울스키 아울이 알려져 있다. 11기의 무덤이 있는데, 1898년 2기가 발굴되었고, 1908년에 3기가 다시 발굴되었다. 1898년 발굴된 유적에는 400여필의 말이 순장된 채 발견되었다. 대부분 도굴로 상당히 교란되었다. 1호는 나무로 된 구조물을 넣은 목실무덤으로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유사하다고 알려졌다.

 

그림 1. 1898년에 조사된 1호, 왼쪽: 베셀로프스키의 야장, 오른쪽: 1898년 1호의 단면도

 

1982년에 조사된 무덤에서는 좀 더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있다. 나무로 된 무덤방이 지상으로 된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2. 1982년 조사된 1호의 평면도(우), 1호의 복원도

 

2007년에도 무덤 1기가 조사되었는데, 역시 지상위에 나무 무덤방이 있는 구조이고, 말의 매장이 발견되었다.

 

그림 3. 2007년 조사된 1호 평면도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등은 나무로 된 무덤의 구조물이 지상으로 세운 것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6세기의 유적에서도 비슷한 구조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의 유적에서 구덩이를 파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나무로된 구조물만 지상으로 만든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지상식으로만 만들어진 무덤방이 확인된다.

이는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이나 탁사이 I유적의 무덤 구조와 비슷하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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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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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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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Ульские курганы. Культово- погребальный комплекс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Северном Кавказе.//Corpus tumulorum scythicorum et sarmaticorum. Т. 2//Москва, Берлин, Бордо, 2015(울스키 무덤, 카파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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