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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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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2. 13:3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강은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지역에 위치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랄해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는 전후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리스인, 스키타이인, 페르시아 인들이 서로 만난 흔적이 남아 있다. 유적을 발견한 사람들은 아마도 상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도굴되어서, 정확하게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온 유물들은 페르시아 아파다나 궁전의 벽 조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은데, 그리핀이 달려 있는 오메가 모양의 개방형 팔찌도 그 중 한 유물이다. 이 유물을 들고 있는 대표단은 시리아(Schmidt E. 1953) 혹은 리디아Barnett R. 1968 대표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팔찌 앞에 들고 가는 사람은 손잡이가 없는 그릇을 나르고 있다. 손잡이 없는 그릇으로 흔히들 bowl이라고 하는 기형이다. 아무다리야 유적에서는 3점이 발견되었는데, 금제품 2점과 은제품 1점이다.

금제품 중 1점은 매우 낮은 기형인데, 크기가 12.1cm밖에 되지 않는다. 바닥에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가장 중앙에는 원형 그 가장자리로는 6개의 물방울? 혹은 아몬드 모양으로 도드라지도록 눌러서 표현했다. 원형과 6개의 아몬드는 태양을 닮았다. 그 가장자리에는 좀 더 큰 아몬드 6개가 방향을 달리해서 양각되었고 그 사이에는 12개의 반인반수가 표현되었다. 뒷다리 2개로 서 있는데, 앞다리 중 오른쪽 앞발은 위로, 왼쪽은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2마리는 꼬리를 맞대고 있다. 얼굴은 인간인데, 몸통은 사자와 날개가 달려 있다.

반인반수는 앗시리아부터 전해진 문양으로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의 유물이다(달턴 1905).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금제 그릇의 바닥

 

은제 볼도 페르시아의 제품으로 생각된다. 바닥의 중앙에는 로제트 장식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가장자리로도 꽃 잎장식이 49개가 채워져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은제 그릇의 바닥, 직경 14.5cm

이 유물은 아무다리야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5세기라고 생각한다.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그릇문양이다. 이 문양이 표현된 그릇은 벽화 속의 그림과 같이 동체부가 한번 꺽어져서 구연부가 벌어지는 기형이다.그래서 그림 2의 그릇도 벽화와 같은 모양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의 금제 볼은 아무 장식이 없는 그릇이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가장 앞의 금제 그릇,  직경 9.9cm

 

그런데 반인반수가 있는 금제 그릇(그림 1)과 꽃 잎이 표현된 은제 그릇(그림 2)은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그릇과 비슷한 문양이다. 두 그릇은 금제 그릇이었는데, 아몬드 문양과 비슷한 문양이 그릇의 표면이 양각으로 표현된 유물 1점과 그릇의 바닥에 꽃 문양이 음각된 그릇이다. 이 두 그릇은 앗시리아에서 제작되어 스키타이 유적에 남게 된 것이다.

 

2020/08/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

eastsearoad.tistory.com

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은 바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형(그릇의 형태)은 그림1, 그림2와 비슷하다. 그림 3의 기형은 구연부(입술)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로, 벽화에 묘사된 그릇과는 형태가 달라서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과는 다르다. 그림1과 그림2를 벽화 속의 그릇으로 생각해 본다면 페르시아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그릇을 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페르시아 왕에게 선물 주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외국 왕에게 주는 선물을 그 나라의 물건으로 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결국 로제트 문양의 실버 그릇, 반인반수와 아몬드 문양의 금제 그릇 모두 이미 소속감이 불명확해진다.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삼성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안다. K-POP을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혹은 영국 음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앗시리아 유물은 수입품이었지만 이미 기원전 5~4세기에 스키타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는 문양을 페르시아 문양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Schmidt E. 193, Persepolis. Vol. 1.1: Structures, Reliefs, Inscriptions, Chicago vol.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는 경계석 안에 무덤 26기가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주인공은 무덤방 5호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무덤의 크기, 나무로 된 무덤방과 출토된 유물 때문이다. 나무로 된 무덤방은 5호 외에도 2호가 있었고, 통나무관이 설치된 유아묘인 11호도 해당된다.

 

무덤방 2호에는 나무바닥 아래에 안장으로 추정되는 목제품과 새머리 모양의 금판제품이 확인되었다. 새머리는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목제용기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토제, 청동제, 석제였다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제용기는 주인공 무덤방 5호인 여성의 머리맡에서 있었다.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가 한 개만 달린 목제그릇(입구경: 12cm, 높이: 5.7cm)이다. 손잡이는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손잡이에는 금박((길이 10.9 cm, 구멍 2.7 cm; 무게 57.21 g)으로 입혀져 있는데 동물다리의 모습이다. 목제 손잡이에 비늘모양으로 새겨져서 손잡이를 덮은 금박에 찍혀서 비늘 모양이 표현되었다. 금판 안쪽에 두 개의 구멍이 있어 핀으로 나무에 고정되었다. 이음새 부분은 바닥쪽으로 향했다. 손잡이 끝 부분은 타원형 판으로 마감되었고, 금판에는 붉은색 안료로 칠한 자국이 남아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그림1과 동일)

 

목제용기가 출토된 지점과 멀지 않은 곳으로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서는 향나무제 뚜껑2점도 확인되었다. 뚜껑 중 큰 유물(그림 3-5)(직경 4.8cm, 높이 2cm)은 목제용기 부근에서 유기물질 흔적이 남아 있는데, 뚜껑의 용기로 사용된 그릇이다. 가죽이나 양모로 제작된 직조물로 된 용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자리로 9개의 구멍에 목제못이 삽입된 채 확인되었는데, 아래 용기의 입구와 크기를 맞추기 위한 것(그림 4-4)이다. 목제뚜껑(직경 2.9cm, 높이 2.1cm)(그림 3-4)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1-청동제 그릇, 2- 나무 조각, 4,5-목제뚜껑, 3: 금박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목제뚜껑(3,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는 목제용기 외에도 미니어쳐 청동제(그림 3-1, 그림 5-4), 석제 그릇(그림 5-5,6)이 확인된다. 이미 청동으로 된 솥이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되었으나, 청동으로 된 그릇이 한 점 더 있다. 무덤의 북동쪽 구역에는 주로 그릇이 확인된다.

청동제 그릇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달린 것인데 입구의 직경이 5.5cm, 높이가 2.2cm로 매우 소형이다. 무덤에서 확인되는 소형의 그릇을 명기(冥器)라고 부르는데, 미니어쳐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청동제 그릇(4)과 석제 그릇(5,6), 3번은 본 포스팅과는 관련없으나, 주인공 여성의 구슬이다.

 

무덤의 북서쪽 벽에서 석제그릇(그림 5-5) 2점이 출토되었다. 회색빛을 띄는 사암제(구경: 입지름: 11.2cm, 너비 8.7cm, 높이 1.cm)로 편평한 모양이다. 석제 그릇에는 식물이 담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석제그릇의 모양은 전체평면형태가 ‘S’자에 가까운데, 남성 칼집에 붙어 있던 금장식이라던지 곡선형태의 문양은 무덤에서 대유행 했던 문양이다. 석제그릇은 일종의 향로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평면형태가 둥근 석제 그릇 1점(그림 5-6)(입지름 12.5cm, 높이 3cm)도 사암제로 만들어진 것인다. 바닥은 둥글다. 한쪽벽면에 붉은색 직조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석제그릇을 포장한 붉은색 주머니였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방 5호 외에도 이미 소개한 무덤방 20호에서도 목제용기의 손잡이로 추측되는 뿔 손잡이가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25호에서도 목제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 용기는 무덤방 5호와 20호와 같이 손잡이를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처음부터 깍아서 만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용기가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기원전 5세기대의 유적인 얼음공주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크 알라하-3유적 및 파지릭 유적등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지역문화)의 유적과 아르잔-2호는 같은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구 및 굴레장식, 동물문양장식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그릇은 파지릭 2호분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한다(필자가 파지릭 유적을 소개하면서는 보지 못했는데 다른 곳에서 발표되었다). 손잡이가 동물다리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 보다 훨씬 늦은 울란드릭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도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목제그릇이 출토된다.

손잡이의 모습은 다르지만 앞서 소개한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호랑이 2마리가 표현된 목제그릇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지하로 판 무덤이 많다. 아르잔-2호 가운데서 주인공 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묻혔고, 이중으로 된 나무 무덤방 속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과 같은 시대의 무덤방은 26개로 둥글게 돌아가는 무덤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호석이 무덤방을 호위하고 있다.

 

그 중에서 5호 무덤의 주인공은 무덤의 시설과 부장된 유물로 보아서 VIP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소개하지 못한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 이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 청동으로 된 솥(동복)(그림 2-95,96; 3,4)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깥의 2차무덤방과 안의 1차 무덤방 사이에서는 나무로 된 접시(그림 2-97, 그림 5)가 출토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의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벽 사이, 그림 2의 95,96이 청동솥이 출토된 곳이다.

 

 

그림 2. 아르잔-1호 출토 무덤방 5호 내부

 

청동솥은 손잡이가 부착되었고, 밑에 받침이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생김새는 다르다. 그림 3의 유물(입구지름: 20~22.7cm, 높이 29.7 cm, 바닥지름: 13.2cm)은 손잡이가 직사각형이고, 솥의 상단에 매듭이 있는 꼬인형태의 끈 모양이 달려 있다. 그림 4(입구지름: 32.8~31.5cm, 높이 45.6cm, 바닥지름: 13.4cm)의 유물은 손잡이가 8자를 옆으로 뉘운 모양이고, 입구와 가까운 부분에 3개의 돌대가 달려 있다. 동체부에 손잡이가 2개 더 달려 있다.

왜 그럴까?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5 위치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6 위치

 

그림 4의 유물을 보면 입구부위에 불룩 튀어 나온 3개의 줄이 돌아가는데, 손잡이 아래 부분을 보면 솥을 거푸집에 넣고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3개의 줄 아래에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녹색 화살)이 길게 튀어나와 있다. 이 부분은 이 선을 경계로 위와 아래가 따로 제작되어서 붙인 흔적이다. 땜질한 흔적이다. 이 솥에는 이외에도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청동솥은 스키타이 문화 만큼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유물이다.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가장 넓게 유행하던 유물 중 한 가지이다. 중국동북지역 즉 만주라고 불리는 지역과 황하상류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이 유물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는 점도 유물을 부장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용 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 –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 접시, 그림 2-97 위치

 

나무로 된 그릇은 1차와 2차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된다. 높이가 6cm, 직경은 40~43.4cm이다. 나무그릇은 한쪽이 완전치 못한데, 사용하던 그릇을 넣었다. 접시의 상면에는 사용한 흔적이 많이 남았는데, 날카로운 칼로 찌른 흔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3유적이나 파지릭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사뭇 다르다.

이 유적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말이 없다. 뿐만 아니라 무덤방은 2개 만들어졌지만, 통나무관 없이 안의 무덤방을 관처럼 사용한 것이다. 통나무관이 있는 유적에서는 무덤방과 통나무 사이의 빈 공간에 그릇을 배치했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통나무관이 없어지고, 무덤방이 관을 대신하면서, 그릇은 2차 무덤방(내부)의 바깥에 껴묻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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