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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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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렀다. 그 중에서 2기가 발굴되었다.

 

아르잔-1호는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로 기원전 9세기 가량으로 생각되는 유적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파지릭 고원(파지릭 유적)과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유적과는 이 유적의 무덤 구조가 많이 달라서 가장 가까운 강이름을 따서 ‘우육문화’ 혹은 ‘투바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일종의 지역(투바) 명칭인 것이다. 무덤의 구덩이를 파지 않고 무덤을 만들었으나, 사람무덤인지, 말 무덤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 많이 묻혔다. 사람은 총 15인이고, 말은 대략 160마리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잘 남아 있지 않은 서쪽 부위의 말을 포함한 것이다.

 

말은 어떤 말일까? 기승용 말이며, 12~15세의 늙은 말이고, 수컷이다. 당연히 자연스럽지 않고 골라서 넣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말 무덤이 아닐까 하는,,,필자의 우스게 소리이다.

 

무덤의 동쪽 부위에 있는 그나마 네모 반듯한 방에는 말만 매장된 무덤방 3개가 있다. 무슨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덤방 2와 무덤방 3 사이에도 말 3마리가 확인되었고, 청동재갈이 (그림 5-2,4,6)출토되었다. 그랴즈노프도 이곳에는 무덤방 번호를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덤방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2번과 3번 방 사이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동쪽편

 

그림 2.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무덤방 2번은 9.5×8m이고 높이는 0.9m가량이다. 말 30마리를 접어서 넣었다. 그림 2의 번호는 말의 번호이다. 말의 두개골이 무덤 중심부를 향하고, 다리를 접고 하늘을 쳐다보도록 묻혔다. 이 곳에서 유명한 청동제 원형 호랑이 장식이 출토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특히 아르잔-1 유적의 재갈과 재갈멈치에 관심이 많다. 2번 무덤방도 이미 당연히? 중심 무덤방과 함께 도굴당해서, 출토된 마구들은 이미 말에서 벗겨진 상태였다. 몇 번 말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이 거의 비슷하니깐 참고하시면 된다.

 

특히 재갈멈치에 구멍이 3개이고, 재갈멈치를 끼우기 위한 재갈의 끝에 달린 고리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사다리꼴(그림 3-2)에 가까운 점에 주목한다. 재갈멈치에 구멍이 세 개인 것은 중간의 것은 재갈과 연결시키고, 위 아래의 구멍은 굴레와 고삐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재갈과 재갈멈치는 청동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에 대한 이해는 그림 7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3-3은 굴레에 달았던 장식품이다.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되었는데, 189개가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가운데 구부러진 것 외에도 둥근 원판에 네모구멍이 있는 뼈로 만든 장식(그림 3-6의 오른쪽)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출토 마구

 

 

 

무덤방 3번(12.5×7.5m)은 무덤방 2번의 동쪽에 인접했고, 2번 방 보다 2배 이상 높다(2.2m). 가로 2개, 세로 3개로 쌓아서 올린 것이다. 북쪽 반이 말의 뼈 였는데, 머리뼈가 30개 출토되었는데, 무덤방 2번 보다 더 밀도 있다. 이곳에서도 최소한 6벌의 마구 세트가 출토되었다.

 

무덤방 5번(10×6.5m)은 무덤방 2번의 북벽에 위치하고, 높이는 2.4m로 3번 무덤방과 비슷한 높이이다. 15마리의 말뼈가 출토되었고 머리는 중심 무덤방을 중심으로 한다. 역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5-1,3,5)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4.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

 

 

그림 5.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1,3,5)와 무덤방 2~3호 사이에서 출토된 마구(2,4,6)

 

아르잔-1호의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은 우코크 고원 및 파지릭 계곡에서 출토된 재갈과 차이가 있다. 아르잔 1호의 무덤 재갈은 기능에 좀 더 충실했다면, 300년~400년 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재갈멈치에 구멍도 없고, 고삐 구멍이 따로 만들어졌다(그림 6).

 

 

그림 6.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

 

 

그림 7.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말, 재갈이 입에 물린 채 그대로 출토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를 이해하시라고 인용한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말이 매장되어서 말과 인간은 혹은 동물과 인간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드린 벽걸이의 오른쪽 모퉁이 하단에 그려진 남성 때문이다. 남성이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쓴 사슴뿔 모양이 달린 모자는 말 머리에 올라가는 것과 흡사했다.

 

말은 스키타이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재물이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키타이 말은 치장되었다. 주로 동물문양장식으로 치장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물도 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는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드렸는데, 그 중에서 동물문양이 아닌 원형 모티브의 장식이 붙은 굴레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와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유물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이 문화에서 말이 풀 착장된 것은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물론 필자가 지금껏 계속 소개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이....

필자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가운데서 큰 나무 아래에 3인이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유물을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 유물에는 말 2마리가 거의 반을 차지 할 정도로 크게 표현되어 있다. 말은 쌍둥이처럼 똑깥이 표현되었는데, 재갈이 물려져 있고, 굴레를 착용하고 있으며, 안장과 안장덮개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말은 측면으로 표현되었는데, 말의 굴레는 얼굴 길이방향 대로 향하는 끈과 얼굴을 가로지르는 방향의 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방향의 굴레는 귀 아래의 이마와 코 사이를 지나가면서 중간에 장식이 붙어서 이마와 콧잔등을 장식한다(그림 1).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황금유물은 크기가 가로 16.1cm, 길이가 12.3cm밖에 지나지 않지만 매우 대단히 정교하게 말이 표현되어 있고, 말의 굴레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파지릭 고분에서 출토되는 말의 굴레와 거의 유사하다. 굴레에 붙은 장식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사실은 용도가 있다. 이 부분은 가로와 세로 끈이 교차되어서 묶음이 생기는 부위이다. 황금유물의 굴레 마디에는 구멍이 3개(한마리 기준) 있는데, 다른 보석류 들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파지릭에서 출토된 유물은 굴레장식은 대부분 목제로 제작되었고 그 위를 금박해서 입힌 기법이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 말의 가슴장식과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유물에 표현된 말과 파지릭 5호분의 벽걸이 일부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그림 1의 유물을 착장한 말을 앞에서 보면 이마, 콧잔등에 장식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파지릭 문화에서는 가슴에도 장식이 붙어 있었다. 왜?

그렇다. 굴레장식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장식+기능이 있다.

말의 안장을 고정하기 위해서 말의 가슴과 안장을 연결하는데, 그 부위에 장식물을 부착했다(그림 2). 5호분에서는 열매처럼 생긴 장식물과 반원형의 목제장식이 확인되지만, 많은 말에서 동물송곳니 모양의 장식물을 부착한다. 그리고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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