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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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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25. 08:10 고깔모자와 코트

 

트럼펫을 불고 있는 스키타이 궁수가 그려진 아테나 토기. black figure. 사이악스(Psiax)가 그림. 기원전 520-550년 작품. 직경 19.1cm, 이 접시도 어제 소개한 바와 같이 1837년에 이태리 Vulci 뮤지엄에서 구입해서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나팔을 불고 있는 스키타이 궁수이다. 분명히 어제 보여드린 에피테토스가 그린 스키타이 사람과는 다르다. 모자와 의복도 약간 차이가 있고, 얼굴표현(특히 코)도 다르다. 특히 모자가 차이가 크다. 에피테토스가 그린 스키타이 궁수의 모자는 정수리에 힘이 없어서 말리는 고깔모자이고, 사이악스의 그림처럼 빳빳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이악스가 그린 고깔모자는 중앙부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형태로, 그냥 이등변삼각형 모양(베히스툰 비문)의 고깔모자와도 다르다. 그리고 귀를 덮는 부분이 귀가 보이도록 2갈래로 갈라져 있다.

필자가 처음 알아 낸건 아니고, 이미 야센코가 이를 추출했다.

 

 

고대 아테나의 화가들은 토기에 그림을 그렸는데, 많은 주제 가운데 사람들이 있었고, 이민족의 모습도 있었다. 스키타이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만 간혹 발견된다. 기원전 525~505년경에 활동했던 사이악스(Psiax)도 북방 민족을 그렸다. black figure가 red figure로 전환되는 시기의 작가여서, 두 종류 그림이 모두 있다.( 채색된 그리스 토기들은 만들어진 공방, 화가의 작품에 따라서 세세하게 나눠진다.) 사이악스는 작은 꽃병에 그림을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했다. 스키타이 사람을 그린 것은 접시에 그렸다.

 

 

그리스 토기는 ArchaiOptix라는 분의 위키미디어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ArchaiOptix/Athenian_red_figure_vase_painters_I_From_the_earliest_pot_painters_to_the_Pioneer_Group#Athenian_red_figure_vase_painters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London 2005) (edited by John Curtis and Nigel Tallis)

К.С. Горбунова. Чернофигурные аттические вазы в Эрмитаже. Каталог. Л.: «Искусство». 1983(고르부노바, 1983,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black figure 토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24. 08:10 고깔모자와 코트

 

그리스 화가 에피테토스가 그린 red figure 접시, 지름 19.5cm, 기원전 520-550년, 중부 이태리  Vulci에서 발견. 카니노와 무시냐노의 5대 왕자 나폴레옹 샤를 보나파르트의 수집품에서 1937년에 구입.

 

 

사진은 그리스 토기이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달리면서 활을 쏘고 있는 여성(남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음)을 그린 것이다. 필자는 그리스 토기는 전혀 모르지만, 스키타이 사람들의 모자 때문에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찾아 볼 수? 밖에 없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흑해지역 자료에 엄청나게 널려 있던 그리스 토기들이 아른거린다.)너무 이질감이 느껴지는 토기들이다. 사진 속의 유물은 브리티시 뮤지엄에 소장된 것으로 기원전 520~55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발견된 장소는 이태리 중부의 Vulci 라는 곳이다.

 

그리스 토기는 대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전문화가가 그린다고 한다. 토기를 만드는 사람과 토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대부분인데 이 접시에 그림을 그린 사람은 Epiktetos라는 화가이다. 스키타이 여성궁수 왼쪽과 오른쪽에 서명이 있다. 그는 매우 유명한 화가인데, 기원전 520~490년에 활동했다. 토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자신이 애호하는 토기의 기형이 따로 있다고 한다. 화병에만 그리는 사람, 접시에만 그리는 사람 등등...그리스 토기는 기형에 따라서 이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꿔 부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기형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는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그림 속의 스키타이 사람 때문에 주마간산처럼 그리스 토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혹시 나중에 한 백년 지나면 우리나라 학생들도 전공하지 않을까?재밌을 꺼 같다).

 

이 접시 속의 스키타이 모자를 보면 분명히 높은 모자인데, 정수리 부분이 말려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페르시아 인장이나 베히스툰 비문(아래 포스팅 참고)에는 분명히 고깔모자의 정수리가 높이 서 있다. 아마도 고깔모자의 재질이거나, 아니면 안쪽에 높이 세울 수 있는 장치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유라시아 고대 민족들의 의복을 연구한 야센코는 빳빳한 재질로 만들면 높이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은 아테나의 화가들이 스키타이 사람들을 그릴 때 많이 그렸다고 한다. 커티스에 따르면 복장 자체는 Medes의 복장이다. 화살은 스키타이 활통인 '고리투스'이다. 커티스는 이 그림은 스키타이 사람의 정체성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커티스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에 스키타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흑해 북쪽에서 그리스 문화가 정신없이 등장하면서 스키타이 문화가 점점 옅어지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 이후이다. 아마도 토기에 그림을 그린 그리스 화가들이 스키타이 사람들을 잘 모르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곳까지 가 본적이 없다면....

베히스툰 비문-->

2022.10.17 - [고깔모자와 코트] - 다리우스 1세와 스키타이 왕

 

다리우스 1세와 스키타이 왕

유라시아 초원 서부지역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인접한 지역과 교류한 흔적이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우라루투, 앗시리아,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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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London 2005) (edited by John Curtis and Nigel Tallis)

К.С. Горбунова. Чернофигурные аттические вазы в Эрмитаже. Каталог. Л.: «Искусство». 1983(고르부노바,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black figure 토기)

 

김재윤의 고고학 광자

 

 

 

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18. 12:04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서부지역에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했으며, 현재의 이란에는 앗시리아부터 페르시아 제국이 존재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와 고대 이란 국가는 서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양 지역 모두 동물문양장식을 이용한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다르고 그곳에 살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문양에도 차이가 있다.

 

기원전 7세기 코카서스 북쪽의 쿠반강에는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20세기 초에 발굴했는데, 이미 많은 유물이 유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가 얼마나 인접한 국가와 영향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코카서스 남쪽의 아나톨리 지역의 우라르투, 앗시리아, 그리스의 유물과 스키타이 문화 유물까지 그나마 남아 있다.

특히 앗시리아의 유물은 금으로 된 잔과 투부, 의자 장식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수입품이라고 단순하게 알려져 있지만, 외교품일 가능성이 크다.

 

철로 된 투부는 전투용 도끼를 의미하는데 자루 부분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동물문양으로 뒤덥혀 있다(그림 2). 특히 동물문양은 북방의 스키타이 문화와는 다르다. 가장 쉽게는 동물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구분하는 선을 2줄로 넣는 방법(그림 1의 우측)은 북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페레보드치코바).

 

그런데 필자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투부에 스키타이 사람이 표현되어 있었다. 고깔모자를 쓰고 투부를 아래로 들고 있는 사람(남성)이다(그림 1의 좌). 같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금잔은 틀림없이 이란의 전통이지만, 투부는 스키타이 왕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제작했을 것도 같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투부 중 세부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기원전 7세기에도 앗시리아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고깔모자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또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순도 100%의 앗시리아의 금잔과는 달리, 이 투부를 만들때 선물 할 대상을 매우 신경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한 수입품이라기 보다는 외교품일 가능성도 크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17. 10:45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초원 서부지역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인접한 지역과 교류한 흔적이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우라루투, 앗시리아,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 나왔다. 그리고 기원전 6~5세기 이후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유적과 유물에 스키타이 사람들이 나타난다.

 

특히 페르시아와 관련해서는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이나 다리우스 1세의 Behistun 비문 등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채색토기 안에 스키타이 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외국인에 비친 스키타이 사람들로 자신들의 스타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베히스툰 비문은 다리우스 1세의 조상 및 그의 업적을 적은 것이다. 업적은 주로 자신이 통치한 영토를 적은 것인데 23개의 국가 명칭이 적혀 있다. 거기에는 스키타이도 해당된다. 아케메스 왕조가 최대 영토를 이루었을 때, 카스피해 우측의 스키타이 땅 일부를 삼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기원전 500 페르시아 제국, William R. Shepherd, 1923.

https://maps.lib.utexas.edu/maps/historical/history_asia.html

 

그리고 비문의 뒷부분에서는 키루스 II세와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의 죽음으로 초래된 반랍을 진압하기 위해서 1년동안 싸운 전투에서 끌려온 포로를 새겼다. 9명의 포로를 목에 줄을 메어서 끌고 오는 장면인데,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왕이 가장 마지막에 있다(그림 2).

각 포로의 상단에는 누구인지가 적혀 있는데, 가장 마지막 인물의 상단에는 Skunkha는 뾰족한 모자를 쓴 사카(스키타이)의 왕이다고 씌여 있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310112440/https://www.livius.org/sources/content/behistun-persian-text/behistun-minor-inscriptions/

 

 

그림 2. 기원전 6세기경 베히스툰 비문의 일부

 

 

그림 3. 기원전 6세기 말 베히스툰 비문을 그린 것. 작가는 알 수 없음. Всемирная история (в четырёх томах) Древний мир., «Специальная литература»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1997.

 

어느 왕이나 그 치적은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각 나라 왕들의 목에 줄을 메고 가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아파다나 궁전에는 여러 국가의 대표단들이 그려져 있는데, 다들 다양한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베히스툰 비문에서는 스키타이 왕에게만 고깔모자를 그려놓았다. 아마도 스키타이 왕을 잡은 것이 가장 큰 업적이었던 모양이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유라시아 서부에서 언제부터 고깔모자를 썼는가 하는 것이다. 이 비문을 보아 기원전 6세기 말에도 이들은 고깔모자를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Всемирная история (в четырёх томах) Древний мир., «Специальная литература»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1997.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4세기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여성들은 대체로 원통형 혹은 역 사다리꼴 모양의 모자를 착용하는 예가 많았다. 모자라기 보다는 유기질제 모자틀에 금제 장식판을 붙이기 때문에 일종의 관(冠)으로 본다. 하지만 모노드비노프 쿠르간(그림 1),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 포스팅), 보그다노프카 유적 등 몇 몇 유적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여성들이 발견되었다.

 

그림 1. 모노드비노프 쿠르간의 여성 관 장식

 

2020.1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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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노드비노프 쿠르간에서 발견된 관의 정수리에는 새머리 장식이 발견되었다. 고깔모자는 흑해지역에서도 사용되었지만 새머리가 장식된 것은 좀 다른 의미 일 수 있다. 이와 닮은 모자는 주로 시베리아 알타이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특히 남성 모자의 끝에 새 머리 장식을 달았다(포스팅). 물론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도 높은 가채를 썼는데, 새가 장식된 것이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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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알타이의 얼음공주는 삭발하고 가발썼어요~

 

알타이의 얼음공주는 삭발하고 가발썼어요~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삭발이 크게 회자 되기도 했는데, 머리카락의 의미는 어떤 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결기가 아니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인간의 욕망 혹은 자신의 결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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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노드비노프 유적에서는 나무로 된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손잡이가 달리고 동체부가 매우 둥글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그릇과는 매우 다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의 2호에서 나온 소형의 청동솥(그림 2)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청동솥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동양인 얼굴을 한 여성과 서양인 남성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카페트가 발견되었다. 실제로 유적에서 발견된 여성과 남성은 서로 인종이 다른 남녀가 하나의 통나무에서 매장되었다.

 

모노드비노프 유적에서 보이는 새 장식 고깔모자, 나무그릇 등은 알타이의 유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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