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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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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16. 11:15 스키타이 무기

스키타이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활과 화살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번 포스팅한 바 있다.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에 강력한 국가였던 우라루투도 결국 스키타이 사람들에 의해서 망했다. 테이시바이니 성벽에서는 무수히 많은 스키타이 화살이 발견되었다. 앗시리아 및 페르시아에서도 스키타이 고리투스(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복합궁)는 궁전 벽을 장식하는 주요한 주제였다.

 

스키타이 인의 시조인 타르기타우스의 전설에 대해서 헤로도투스가 상기시켰다. 어떤 활이라도 구부릴 수 있고 스스로 띠를 맬 수 있으며, 허리띠를 찰 수 있는 자를 이 땅에 살게 하라는 것이다.

 

페르시아 궁전벽에 남아 있는 스키타이 ‘고리투스’는 헤로도투스가 명명한 용어이지만, 실제로 발견되는 예는 시베리아이다.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무덤인 5호묘에서 남성 주인공이 화려하게 장식된 활과 화살을 고리투스와 함께 가졌던 것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시베리아 투바 아르잔-2호의 고리투스, 기원전 7세기

 

흑해지역에서는 실제로 발견된 고리투스는 없고, 기원전 4세기 유적인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확인된 고리투스를 감쌌던 껍데기만 남아 있다. 이 유적의 암포라 속에 스키타이 남성도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는 장면이 있어 대체적인 모습만 가늠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남성들이 고리투스를 찬 장면은 금으로 된 유물 속에서 자주 목격된다. 물론 기원전 7세기경 돌로 된 스키타이 전사들도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림 2. 기원전 4세기 체르토므리크 유적 출토 암포라 속 스키타이 남성

 

스키타이 화살촉은 날개가 두 개(양익형) 혹은 세 개(삼익형) 있는 소켓형 화살촉이다.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안쪽으로 있어서 소켓용이라고 한다. 이러한 화살촉은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전 지역에서 나타난다.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로부터 흑해지역, 코카서스지역, 그리고 몽골과 더 동쪽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연구자들에 의하면 스키타이의 화살촉은 그 모양과 크기에 따라서 전투 유형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거대한 화살촉은 기병이 사용했다고 보았다. 무거운 화살은 천천히 날라가는데, 말에 타서 쏘게 되면, 화살의 속도를 증가시키고 상대를 더 공격하기 쉽게 된다는 것이다. 또 스키타이 화살촉 가운데는 아름답게 장식된 것들도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와 파지리크 유적등에서 발견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10.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스키타이 사람들의 복장 가운데 실물자료는 동부지역인 대부분 알타이에서 발견되었고, 서부지역에서는 간접적인 자료들(장식판이나 유물에 남아 있는 그림)로 알 수 있다. 남성들이 매우 편해 보이는 바지를 입는 것은 당연하다. 말을 타기 위해서는 튼튼한 바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바지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알타이의 남성들은 긴 바지를 입은 채 매장되었지만, 여성들은 긴 치마를 입고 발견되었다. 그럼 여성들은 말을 타지 않았는가?

하지만 형질 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른바 '라이더 콤플렉스' 라고 하는 현상이 주로 35세 이상의 남성 골격의 40%, 여성골격의 10%에서 확인된다고 한다. 주로 승마로 인해서 하퇴골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알타이의 스키타이 인골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스테파노바 2015).

  그렇다면 알타이의 여성들도 말을 탔고, 당연히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또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스키타이 여성들은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직접전투에 참가했다.(Herodotus 4.114)  헤로도투스가 살았던 흑해 주변의 유적에서는 그리스 토기나 황금모자에 스키타이 여성이 종종묘사된다. 그들은 짧은 상의를 입고, 바지를 입고 칼과 활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출토된 칼라프(모자)의 세부

 

 

그림 2. 그리스 토기의 스키타이 궁수(여성이라고 함)

 

아크 알라하-3 유적과 같은 치마가 발견된 중국 신강성의 수바쉬-3 유적에서는 모직으로 된 긴 바지를 여성미라들이 입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아마도 여성들은 TPO에 맞추어서 옷을 입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에서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여성의 모피코트가 있었다(그림 3). 또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도 금박지로 장식된 매우 화려한 코트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성미라 주변에 떨어져 있는 금박지가 썩어서 없어진 유기질제 코트의 장식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여성의 모피코트와 고깔모자

 

파지리크 유적의 2호 모피코트는 이란식 칸디스와 비교된다. 어깨가 매우 좁고 좁은 소매인데, 망토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는 스타일이다. 화려한 모피코트와 긴 치마는 아마도 생전에 의식용(의례, 축제)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Е.В. Степанова. 2015, Скифские сёдла и последствия верховой езды для лошади и всадника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сборник. 40,(스테파노바, 2015. 스키타이 시대 말과 기수를 위한 안장과 그 결과)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9.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외투 종류 가운데 모피가 아닌 펠트로 제작된 코트가 파지리크 유적의 3호에서 발견되었다. 3호는 기원전 5세기의 1호, 2호, 5호와는 달리 기원전 3세기로 이미 스키타이 문화는 없어지고, 흉노 시절에 해당하는 무덤이다.

 

모자가 달린 매우 부피가 큰 펠트로 만들어진 것인데, 옷 위에 착용할 수 있고, 고리투스를 덮을 수 있다. 후드는 탈부착 가능하다. 인접한 투바지역의 민족지 자료가운데 비슷한 옷이 비옷으로 사용되었다. 이 펠트로 된 레인코트는 카자흐스탄의 말 목동과 몽골과 투바에서도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3호의 펠트코트

 

무기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복은 시베리아 남부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유목민들 사이에 매우 인기 있었다. 사냥이나 목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에도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다. ‘Strategikon’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Maurice(582~602년)가 남겨 놓은 군사매뉴얼인데, 이 코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스트라테기콘에 따르면 소매가 넓은 펠트로 된 외투 또는 후드가 달린 옷이 군사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한다. 갑옷과 활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서, 우천시 혹은 이슬로 축축해지면, 갑옷과 활을 덮어서 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언제라도 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갑옷은 펠트 코트로 가리면 그 빛이 적에게 멀리 보이지 않고, 또한 적의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에 필요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이 비옷이 나온 3호 보다 이른 시점의 무덤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이들 무덤에서는 알 수 없는 펠트조각들이 대량으로 나왔으나, 이미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코트 형태가 아니라도 어떤 모습으로든 비오는 날에 대한 대비는 있었을 것이다. 

스키타이 활이 다른 유목민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고, 이 활을 만든 사람들은 잘 사용하고 보관하는 방법도 알았을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8. 09:15 고깔모자와 코트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남성들의 복장이 실물로 남아 있는 지역은 알타이이다. 여밈이 없는 긴 셔츠와 바지 및 펠트로 된 스타킹이 발견되었다. 특히 펠트로 된 스타킹은 남녀노소가 모두 착용했다. 키의 여부에 관계 없이 무릎까지 오는 펠트 스타킹이다. 이 위에 부츠를 신었다. 대부분 무릎까지 오며, 가죽과 모피로 만들어졌다. 부츠의 종아리와 발가락을 따로 만들어 연결했다.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안 컬렉션 기마궁수(그림 3)도 펠트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여성 펠트스타킹, 파지리크 2호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부츠

 

 

 

그림 3.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안 콜렉션 기마궁수

 

반면에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남성들은 대신 가죽으로 된 부츠를 신고 있는데, 무릎까지 올라가지 않고 낮은 것이다. 장식판의 스키타이 남성들이 신고 있는데, 이들은 펠트로 된 스타킹은 신지 않았다.

 

그림 4.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남성

 

그림 5. 아파다나 궁전에서 스키타이 외교사절단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에서 스키타이 외교사절단이 조공하는 장면이 있는데, 긴 옷과 펠트로 된 스타킹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외교사절단이 들고 갈 만큼 펠트 스타킹은 중요한 특산품이다. 알타이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와 폴로스막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또 이들도 발목에 끈을 묶은 낮은 신발을 신고 있다. 궁전의 벽화에 있는 각 국의 사절단의 얼굴은 모두 서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얼굴의 형태는 참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 유물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남성들은 맨발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덜 정확하다. 아마도 그리스 사람들이 표현될 때 대부분 얇은 옷 혹은 벗은 몸, 맨 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5.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스키타이 사람들의 고깔모자를 찾아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간접적인 자료(궁전 벽화, 토기)를 살펴보았다. 대개 인접한 국가들의 사람들은 스키타이인을 표시할 때 고깔모자를 쓴 채로 표시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실물자료가 발견되는 알타이에는 고깔모자(물론 하위 유형은 여러 가지이다) 외에 그냥 둥글고 귀를 덮는 흔히들 투구형 모자라고 부르는 자료가 알타이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투구형 모자

 

가장 많이 인용되는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묘사할 때 머리장식, 허리띠와 그 장식은 황금이라고 간략하게 묘사한 것과는 달리 페르시아 문헌에서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사카하우마바르가(하오마(음료)를 마시는 사카), 사카티그락사우다(뾰족한 모자를 쓴 사카), 사카타이 파라드라야(바다 건너 사카족)이다. 그중에 헤로도투스가 언급한 아미르 스키타이는 사카하우마바르가와 같다(스테파노바, 판코바). 현재의 자료로 이들을 구분할 수는 없다.

 

특히 흑해지역의 자료는 유기물질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알타이에서만 실물자료가 남아 있다. 이전에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왕의 장례치르는 방법’에 나오는 미라도 알타이에서 발견된다.

 

알타이의 쿠르간에서는 외투가 발견된다. 모피로 만든 것인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도 모피를 입고 매장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남성은 바지와 모피코트 외에는 그 안에 상의는 입고 있지 않았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모피코트

 

그런데 흑해지역의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암포라는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인공의 여성 무덤방에서 발견되었다. 그릇의 모양와 문양은 전체적으로 그리스 수입품으로 보이는데, 중간에는 스키타이 남성들이 말을 다루고 있는 장면이 함께 표현되었다.

그 중에 한 남성은 맨발에 바지를 입고 벗은 가슴 위에 모피 자켓을 입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3).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은제 암포라 세부.

 

또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도 모피코트가 등장한다. 금으로된 가슴장식 혹은 목걸이에도 스키타이 남성들이 유목을 하는 장면이 가장 안쪽에 표시되었다. 그중에 가장 중앙에 있는 두 남성이 바지만 입고, 모피코트를 두고 서로 잡아 당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림 4. 톨스타야 유적의 가슴걸이(혹은 목걸이) 중 세부

 

알타이의 혹독한 기후를 생각한다면 모피코트는 당연하지만, 흑해지역의 자료는 좀 의외이다. 이제까지 살펴온 여러자료(특히 그리스 토기)에서 스키타이 남성들이 옷은 다 입었지만 종종 맨발로 표현되는데 맨발에 모피코트는 아이러니 하기 때문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암포라에 스키타이 남성도 맨발이다. 그렇다고 스키타이 남성들이 다 맨발로 다니는가? 그렇지 않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