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역서가 나왔습니다.
원전의 내용이 100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제가 셀렉했다면 좀 더 낳은 걸 골랐을 수도 있겠죠.
암튼 처음이라서 애뜻한 마음입니다.
옮긴이의 글
본서는 러시아극동의 선사시대 고고자료에 관한 논문집이다. 연해주부터 아무르강 하류 및 사할린, 추코트카 반도까지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우리에겐 극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러시아에서 극동은 러시아 영역의 가장 동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2013년 11월에 개최된 학술대회의 자료를 논문집으로 2015년에 정식출판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그 사이에 하바로프스 시의 셰프코무드 박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2015년 6월 15일에 바실리예바 안드레예바 박사가 작고하셨다.
안드레예바 박사님은 자이사노프카-1 유적을 발굴한 안드레예프 박사의 아내이다. 그리고 기념학술대회와 이 책을 주도적으로 집성한 클류예프 박사의 선생님이고, 역자의 박사논문에도 여러 조언을 하였고, 평가서를 써 준 인연이 있다.
안드레예프와 안드레예바 선생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각 각 1954년과 1955년부터 연해주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하였다. 안드레예프 박사는 1970년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안드레예바 박사는 1987년 까지 계속 연해주를 조사하였고 국가박사까지 취득하였다. 많은 저작물을 남겼는데, 지역학계 연구자들에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자이사노프카-1 유적이 많이 알려져서 안드레예프 박사 이름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지만 실상 안드레예바 박사가 오랫동안 연구했고 제작들을 많이 두었기 때문에 학계에서 미치는 영향은 아주 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진 대부분의 학자들은 모두 안드레예바 박사의 제자이다.
여담이지만, 두 분의 성이 비슷한 이유는 러시아에서도 결혼을 하면 남편을 따라서 여자는 성을 바꾸게 되는데, 러시아어의 어법에 따라서 여자는 ‘a’를 부치게 된다. 최근에는 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특히 연구자들은 결혼 전부터 써온 논문과 헷갈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많이 하지 않는 다고도 한다.
본서는 자신이 실제 발굴한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것이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발굴이 학술발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조사가 자신의 연구분야와 관련된 학술조사이며, 연구비로 이는 충당되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분야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 연구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유적의 전면발굴은 많지 않다. 더욱이 손으로 발굴을 한다는 점은 더 그러하다. 물론 최근에는 여러 가지 국가경제개발정책으로 송유관이나 가스관 사업으로 생기는 용역발굴도 있다. 본고의 야스노예-8 유적도 그런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다.
학술발굴은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유적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데 지표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형적인 성격을 고려해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을 찾는데 강과 해안의 단구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수목이 아직 울창해 지기 전에 유구나 유물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봄과 가을에 중점적으로 이루어진다.
지표조사에서 고려되는 것은 유적의 입지로서 가능한가 여부와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되는 지를 살핀다. 두 요소가 모두 충족이 되 던가 그렇지 않고 한 가지만이라도 충족이 되면 1×1m로 시굴괭을 파고 문화층의 여부를 조사한다.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되면 유적범위도 추정하게 되고 수혈의 개수도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낯 선 개념인 ‘육안으로 수혈이 관찰된다’는 것은 수혈이 폐기된 후에 흙으로 채워진 면이 현재의 지표면과 높이 차이를 보이면서, 수혈의 흔적이 발굴하지 않고도 눈으로 관찰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연해주, 아무르강 하류, 삼강평원, 사할린, 홋카이도에도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홋카이도는 직접 역자가 관찰하지 못했으나 다른 지역은 직접 지표조사나 답사를 통해서 보았다.
이런 점이 가능한 이유는 부식토층이 얇다는 물리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러시아가 광대한 영토를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만큼 문화재를 손대지 않은 채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역자는 본고를 번역하면서 가장 주안에 둔 점은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저자들의 러시아식 표현들도 그대로 손대지 않은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지그재그 문양 같은 것인데,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이미 역자가 자신의 논문에서는 어골문으로 논지를 전개하였지만 본고에서는 역자의 소임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였다. 진주알 문양토기, 우아한 토기 등등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역자의 주로 보충설명도 달아두었다.
또한 러시아논문에는 학위논문이 아니면 대부분의 논문에는 장과 절을 구분하지 않는다. 본고에서도 최대한 그대로 번역하였는데, 일부 글은 도저히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역자가 약간 장과 절을 구분한 부분도 있다.
러시아어는 문체가 연구자 마다 다르다. 유려한 미사여구를 활용하는 사람, 딱딱한 용어를 선호 하는 사람, 문장의 순서를 뒤집어서 역설적인 표현을 즐기는 사람, 비꼬는 말을 우습게 쓰는 사람들 자칫 하면 뜻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는 초창기에는 오히려 신문처럼 일반화 되고 표준적으로 쓰는 글들이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논문은 필자들 마다 문체가 다르다. 본고도 논문이 15개인 만큼 각양각색이었고 논문도 차이 있다.
역자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린샤의 논문인데, 극동 고고학자 대부분을 비판한 내용이지만, 아주 열혈 고고학자라는 것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몇 몇 글은 도면이 부족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또 추코트카 같은 곳에도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중국에 비해 비교적 이른 철기시대는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일수록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서 글은 아주 간단하지만 도면이 많은 논문은 시도렌코의 논문이다. 아주 많고 오랫동안 연구된 내용을 축약해서 적어서 약간 안타까움도 있지만 도면이 많아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야 할 부분도 분명이 있었다.
러시아에도 ‘융합’이라는 주제가 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논문도 있는데, 사실 이는 소베에트 시절인 1960년대부터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고고학에 많이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세르게이 세묘노프인데, 현미경을 이용해서 석기의 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사용흔적의 대상물을 찾아내는 것으로 미세사용흔적분석이라고 하며(세묘노프 1968), 미국에서 더 발전시켰다(T. 더글라스 프라이스, 2013).
그리고 현재 역자가 가장 쓰고 싶은 내용과 관련된 것은 바타르세프의 공동논문이다. 역자가 학위과정 중에도 마르가리토프카 문화는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했으나 박사학위 주제에는 넣지 않았다. 2013년에 흥성 유적의 토기를 관찰한 적이 있는데, 그 때부터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와 비교해서 적색마연토기와 돌대문토기에 관한 논문을 적고 싶었으나 아직까지 미진하다.
역자는 본고가 한국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생경한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유롭게 독자의 몫으로 돌려두고 한다. 마지막으로 역자에게는 첫 번째로 나오게 될 역서인데, 이를 권유하고 지원해주신 한강문화재연구원 신숙정 원장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묘노프 1968, С. А. Семенов,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 НАУКА Ленинградскре отделение, Ленинград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이희준 옮김), 2013,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 역사고고민속학 연구소 편(김재윤 역) 2017, 러시아 연해주와 극동의 선사시대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