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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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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6. 12:52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확인되는 인간형상물은 입체상도 있지만 평면상도 있다. 평면상은 원판형 안에 얼굴만 표현되었다. 그 가운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얼굴의 주변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그림). 이 얼굴은 이집트의 신 ‘Bes’라고 여겨진다. 그는 신화 속에서 난로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다(아래의 위키페디아 참고). 뒷면에는 4개의 구멍이 있다. 이 사람의 얼굴 주변으로는 둘레장식이 돌아가는데, 꼬임문양이 표현되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원판, 직경 4.35cm

 

 

원판형 장식물 가운데 가장자리에 문양이 있는 유물 가운데는 독수리 상도 발견되는데, 원의 가장자리로 주름? 꽃잎장식이 돌아가는 형식(그림 2)(직경 4.8cm)과 그렇지 않은 형식(그림 3)(직경 2.25cm)이 있다. 독수리는 다리와 날개를 벌리고 있으며 머리에는 원형이 장식되어 있다. 독수리 날개에는 깃털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같은 스타일의 독수리가 있는 원판이 있는데, 그림 2에 비해서 크기가 1/2가량 작고 뒷면에는 고리가 2개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원판, 직경 4.8cm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원판, 직경 2.25cm

 

 

원판형 독수리 장식물 중에는 독수리를 주변으로 복잡하게 문양이 표현된 유물도 존재한다. 직경이 9.8cm로 가장 크다. 독수리를 둘러 싸고 있는 문양은 둥근 원형의 점열문 사이에 연꽃문양을 새긴 것이다.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원판, 금, 직경 9.8cm

 

독수리상은 페르세폴리스의 32번 Columns에서 발견된 타일의 문양과 같다.

이 타일에는 발톱에 원판을 들고 있다. 타일에는 ‘이집션 블루 Egyptian blue’라고 알려진 안료로 색칠되어 있다.

 

그림 5. 페르세폴리스 32번 Columns 출토

 

X. Lushei는 독수리 상이 이집트 모티브와 같으며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차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로 차용된 것은 아니고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을 것인데, 정학하지는 않다. 독수리를 둘러 싸고 있는 문양(그림 4)은 아케메니드 왕조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1세기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매우 넓은 연대폭이다. 비슷한 구성의 유물이 이 유적과 가까운 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그래서 독수리문양+연꽃 문양은 독수리만 있는 원판 보다는 늦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정도이다.

 

 

몸은 독수리이며, 얼굴은 인간이 표현된 원판형 장식물도 발견되었다. 수염기른 남성으로 머리에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궁전벽화에서 확인되는 티아라를 쓰고 있다. 달턴은 조로아스터교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로 해석했다.

 

그림 6.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원판형 장식물

 

위에서 소개한 원판물들은 대부분 의복에 달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독수리상이 이집트에서 기원해서 페르시아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사용되었고, 누군가의 옷에 달려서 아무다리야 강까지 왔을까?

누구였을까?

 

참고문헌

 

https://ru.wikipedia.org/wiki/%D0%91%D0%B5%D1%81_(%D0%B5%D0%B3%D0%B8%D0%BF%D0%B5%D1%82%D1%81%D0%BA%D0%B0%D1%8F_%D0%BC%D0%B8%D1%84%D0%BE%D0%BB%D0%BE%D0%B3%D0%B8%D1%8F)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5. 12:59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금제품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이다. 그 가운데 제작기법은 스키타이 기법이지만 문양은 전통적인 문양이 아닌 유물이 있다. 한점은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Gorgon)으로 추정되는 유물이고, 다른 한 점은 사자의 얼굴이다.

 

도깨비?와 비슷해 보이는 인간형상의 얼굴이 있는데, 달턴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지역의 서부지역에서 출토되는 고르곤(Gorgon)과 비교했다.

뿔이 달리고,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특히 귀가 과장되었으나, 사람얼굴을 변형시킨 것이다. 아래쪽 테두리와 귀의 바깥쪽 가장자리 및 뿔 주변에는 점열문양이 각인되어 표시되었다. 이 유물은 주로 앞면에 체이싱하고 뒤에서 펀칭해서 눈과 귀와 같은 얼굴 특징의 윤곽을 잡아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 뒷면에는 고리가 납땜질로 부착되었다. 특히 눈과 어금니 주변에는 끌로 깍아 낸 흔적(chasing)이 뚜렷하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도깨비 얼굴, 직경 4.1cm

 

사자얼굴(그림 2)이 남아 있는 원판유물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스키타이 황금 제작 기술인 chasing, punching, repousse이 모두 확인된다. 사자라고 알 수 있는 것은 갈기가 있기 때문인데, 갈기의 윗부분과 작은 뿔, 귀가 있다. 테두리에는 대각선으로 눈김이 새겨져 있다. 그림 2 하단의 사진에서 눈과 눈썹 등 사이에서 체이싱 기법이 그대로 잘 보인다.

 

그런데 이 사자는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보이는 포효하는 모습의 사자와는 다르다. 유물속의 포효하는 아케메니드 사자는 주로 갈기로 표현되며 이를 위해서 profile을 그린다(포스팅 참고). 그러나 이 유물은 사자의 정면이다.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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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사자, 직경 4.1cm

 

그림 1 유물이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이라는 해석(달턴)도 그리스 신화속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신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반인반수’는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분에서 나온 캐노피에 등장한 바 있다. 이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속에서도 등장한다. 고르곤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반인반수의 한 형식으로 이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림 2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나온 사자문양은 모두 페르시아와 관련시켰으나,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과 같이 아케미니드 왕조의 사자와는 다른 형상도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문양이 있는 카페트도 처음 발굴되었을 때 페르시아에서 수입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양은 페르시아의 것이며 유물자체는 알타이에서 제작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도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니 문양 자체도 이미 스키타이에서 있었을 수 있다. .

 

 

참고문헌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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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4. 12:5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동물장식이 달린 팔찌 외에도 반지도 여러 점 출토된다. 단순한 링모양이 아니라 반지의 윗 부분(실드)에 타원형 장식이 달려 있다. 타원형판은 음각으로 표현된 것과 양각으로 표현된 것이 있다. 대부분 음각표현에는 동물과 인간이 새겨져 있고, 양각표현에는 기하학적 문양이다. 타원형 원판은 일종의 ‘도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타원형 원판의 크기가 대부분 1.6~1.7cm로 매우 작은데 세밀하게 조각되었다.

 

타원형 원판(직경 2.4cm)에 십자형으로 배열된 4개의 정사각형은 ‘십자가’형태이다.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 문화 연구가인 쿠즈미나(1977)는 이 모티브가 현재 아파카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까지 퍼져 있던 안드로노보 문화의 문양에서 온 것으로 생각했다. 이 지역의 안드로노문화의 토기문양과 반지의 문양이 유사했기 때문이다(그림1).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안드로노보 문양의 십자가 반지, 금제품

 

 

반지의 실드가 음각으로 처리되며 동물장식이 표현된 유물은 그리핀, 황소, 사슴 등이 있고 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으로 생각된다(그림 2). 특히 관을 쓰고 수염을 기른 사람의 얼굴이 달린 그리핀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그림 3의 왼쪽). 반지의 고리 부분이 매끈하지 않고 체인형인 유물도 (그림 2의 오른쪽)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반지 가운데 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반지.

 

그런데 동물이 표현된 반지 가운데 실드부분(직경 3.6cm)은 대부분 음각으로 표현되지만 양각으로 표현된 유물이 1점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반지에 비해서 매우 크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으로 날개가 달려 있다. 스키타이 황금 유물을 제작한 방법으로 제작되었다고 앞서 포스팅했다. 이 유물 역시 일종의 도장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림 3).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반지 가운데 스키타이 양식의 문양이 있는 반지

 

위에서 소개한 유물들은 그림 1의 안드로노보 문양 십자가 반지는 기원전 5세기, 다른 유물들은 기원전 4~3세기 유물로 생각된다(제이말 1979)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는 기원전 5세기 경에 도장이 달린 반지모양의 고리들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원통형의 대롱모양의 돌에 인간과 동물을 음각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점토판에 굴리면 음각된 표현이 점토판에는 양각으로 나타나서 도장의 역할을 한다.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확인되는 유물이 링 모양의 귀걸이, 반지, 목걸이다. 그러나 알타이의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반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흑해지역에서는 도장역할을 하는 반지가 있는데, 양 지역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장은 결국 어떤것의 상징이다. 이런 도장이 있다면 상징은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상징물은 결국 동물문양장식이니 그 제작방법이나 담긴 생각등이 다를 수 있다.

양 지역의 차이점은 인접한 지역과 관련성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흑해지역에서는 그리스, 페르시아 문화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зьмина E.E. Семантика изображения на серебряном диске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нтерпретации Амударьинского клада. — В кн.: Искусство Востока и античности. М., 1977, с. 16-25(쿠즈미나, 1977, 아무다리아 퇴장지에서 출토된 은제 원판모양에 새겨진 상징에 대한 해석)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3. 13:20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현재 타지기스탄 국경으로 추정되는 아무다리야 퇴장지의 유물 중에 한 그룹은 인간형상물이다. 평면형과 입체형으로 구분되고, 거의 남성이다. 각 유물에 표현된 남성의 의상과 모자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민족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페르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은제 입상(높이 14.8cm)(그림 1)이 있다. 이 남성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데, 정수리가 낮은 스타일이다. 끈으로 뒤쪽으로 묶은 것으로 원통형 모자로 계단형으로 만들어서 티아라로 만들었던 생각된다. 특히 입상의 뒷면은 머리카락을 뒤로 말아서 접은 형태이다. 머리카락은 타래모양으로 말려 있다. 윗 옷은 긴 주름, 매우 넓고 느슨한 소매로 보아서 페르시아 복장이다. 발등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출토 은제 입상

 

B. Goldman(1974)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불균형적으로 큰 머리, 짧은 팔, 긴 다리, 납작하고 단단한 입체상 등으로 보아서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귀족으로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귀족 복장이라는 점은 달턴도 지적했다.

 

그런데 달턴(1905, 1964)은 모자 상부에 고리가 돌아가면서 계단처럼 생기는 모양으로 보아 Achaemenid 왕조의 왕 중에 한명( Cyrus II)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르네트는 달턴이 이 입상이 시러스II세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거쉬만도 이 입상을 페르시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 있는 물체가 신성함을 의미하는 나뭇가지 한 다발이 아니라 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제이말도 거쉬만을 지지했다.

 

 

원통형 모자를 쓴 은제 입상은 얼굴생김새도 평면판에 등장하는 스키타이 인과 다르다. 큰 눈과 코 끝이 화살표처럼 생긴 모습도 그러하고, 수염 스타일도 스키타이 인이 턱 전체를 덮는 것과는 달리 턱 아래만 길게 길렀다.

실제로 페르시아 왕(남성)의 입상으로 추정하는 석상에는 뒷머리 스타일이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다. 라피스라줄리(청금석)에 조각되었는데(그림 2) 아파다나 궁전 벽에 새겨진 왕(그림 3) 들의 티아라는 원통형 끝에 이빨처럼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3의 페르시아 남성들의 모자 혹은 티아라는 가장 상단이 이빨처럼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그 표면도 굴곡이 있다. 그림 2의 티아라가 표면이 매끈 한 것과는 다르다. 그림 3에 나오는 모자는 금속이 아닌 두터운 직물로 제작되었다면 가능하지만 금속으로 저런 표현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있다면 구부러지는 것이 쉬운 물질일텐데...

뿐만 아니라 그림 2의 입상이 남성인지도 의심스럽다. 유물 속의 페르시아 남성들은 수염을 기른 상태인데, 라피스 라줄리의 입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 2. 페르세폴리스 32번 방 출토, 높이 6.6cm, 너비 6cm

 

그림 3. 아파다나 궁전벽에 새겨진 페르시아 남성들

 

그래서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의 은제 입상은 모자 끝이 납작하고, 머리를 뒤로 말고 있는 스타일, 타래모양의 머리카락, 의복 등을 보아서 페르시아 인 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히 모자의 표현은 아파다나 궁전에 나오는 형상과는 차이가 있어서, 왕으로 추정하기는 힘들다. 

 

참고문헌

Goldman B. Origin of the Persian Robe. — «Iranica Antiqua», Leiden, 1974, vol. 4, fasc. 2, p. 133-152.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Examples of Early Oriental Metal-work. 2nd edition. London, 1926; 3rd edition. London, 1964.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2. 13:3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강은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지역에 위치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랄해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는 전후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리스인, 스키타이인, 페르시아 인들이 서로 만난 흔적이 남아 있다. 유적을 발견한 사람들은 아마도 상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도굴되어서, 정확하게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온 유물들은 페르시아 아파다나 궁전의 벽 조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은데, 그리핀이 달려 있는 오메가 모양의 개방형 팔찌도 그 중 한 유물이다. 이 유물을 들고 있는 대표단은 시리아(Schmidt E. 1953) 혹은 리디아Barnett R. 1968 대표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팔찌 앞에 들고 가는 사람은 손잡이가 없는 그릇을 나르고 있다. 손잡이 없는 그릇으로 흔히들 bowl이라고 하는 기형이다. 아무다리야 유적에서는 3점이 발견되었는데, 금제품 2점과 은제품 1점이다.

금제품 중 1점은 매우 낮은 기형인데, 크기가 12.1cm밖에 되지 않는다. 바닥에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가장 중앙에는 원형 그 가장자리로는 6개의 물방울? 혹은 아몬드 모양으로 도드라지도록 눌러서 표현했다. 원형과 6개의 아몬드는 태양을 닮았다. 그 가장자리에는 좀 더 큰 아몬드 6개가 방향을 달리해서 양각되었고 그 사이에는 12개의 반인반수가 표현되었다. 뒷다리 2개로 서 있는데, 앞다리 중 오른쪽 앞발은 위로, 왼쪽은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2마리는 꼬리를 맞대고 있다. 얼굴은 인간인데, 몸통은 사자와 날개가 달려 있다.

반인반수는 앗시리아부터 전해진 문양으로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의 유물이다(달턴 1905).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금제 그릇의 바닥

 

은제 볼도 페르시아의 제품으로 생각된다. 바닥의 중앙에는 로제트 장식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가장자리로도 꽃 잎장식이 49개가 채워져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은제 그릇의 바닥, 직경 14.5cm

이 유물은 아무다리야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5세기라고 생각한다.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그릇문양이다. 이 문양이 표현된 그릇은 벽화 속의 그림과 같이 동체부가 한번 꺽어져서 구연부가 벌어지는 기형이다.그래서 그림 2의 그릇도 벽화와 같은 모양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의 금제 볼은 아무 장식이 없는 그릇이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가장 앞의 금제 그릇,  직경 9.9cm

 

그런데 반인반수가 있는 금제 그릇(그림 1)과 꽃 잎이 표현된 은제 그릇(그림 2)은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그릇과 비슷한 문양이다. 두 그릇은 금제 그릇이었는데, 아몬드 문양과 비슷한 문양이 그릇의 표면이 양각으로 표현된 유물 1점과 그릇의 바닥에 꽃 문양이 음각된 그릇이다. 이 두 그릇은 앗시리아에서 제작되어 스키타이 유적에 남게 된 것이다.

 

2020/08/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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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은 바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형(그릇의 형태)은 그림1, 그림2와 비슷하다. 그림 3의 기형은 구연부(입술)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로, 벽화에 묘사된 그릇과는 형태가 달라서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과는 다르다. 그림1과 그림2를 벽화 속의 그릇으로 생각해 본다면 페르시아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그릇을 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페르시아 왕에게 선물 주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외국 왕에게 주는 선물을 그 나라의 물건으로 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결국 로제트 문양의 실버 그릇, 반인반수와 아몬드 문양의 금제 그릇 모두 이미 소속감이 불명확해진다.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삼성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안다. K-POP을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혹은 영국 음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앗시리아 유물은 수입품이었지만 이미 기원전 5~4세기에 스키타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는 문양을 페르시아 문양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Schmidt E. 193, Persepolis. Vol. 1.1: Structures, Reliefs, Inscriptions, Chicago vol.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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