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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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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유적은 파지릭문화라는 지역명칭이 있다. 파지릭문화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를 소개한 바 있다. 시신을 미라 처리했다는 점에서 두 유적은 늘 비교된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살아생전에 샤먼이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스키타이 문화의 왕족이었다고 들 한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흔히들 거울은 샤먼의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당시에는 샤먼과 왕족의 구분이 애매했 던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거울이 일상생활용품은 아니기에 위세품, prestige 라는 말로 설명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거울이 2점 출토된다. 청동제 거울(그림1)과 은제 거울(그림2,3)이다.

청동제 거울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손잡이 달린 목제 틀에 네모난 청동판을 한쪽에 끼워넣은 것이다. 파지릭 2호분 청동제 거울은 원형의 청동제 거울에 한쪽에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거울의 단면은 한쪽은 편평하고 한쪽은 볼록하다. 손잡이는 긴 가죽으로 싼 것이다(그림1-4). 청동거울은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와 함께 확인되었다(그림1-5).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청동제 거울과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

 

 

그림 2. 파지릭 2호분출토 은제 거울

 

 

그림 3. 파지릭 2호분 출토 은제 거울 , X선 촬영

 

은제 거울은 가죽주머니 안에서 화장품과 함께 확인되었기 때문에 여성용이다. 원형(직경 15cm)의 거울 아래에 사다리꼴 모양의 자루(길이 11.5cm)가 아래에 붙어 있다. 거울의 한면은 완전히 매끄럽고 반대쪽은 문양이 있다. 중앙에는 원뿔모양의 원형 꼭지가 있고 그 주변을 원형 테두리가 둘러 싸져 있다(그림 2,3). 그 테두리 주변에는 12개의 동심원 문양이 있고, 그 간격에는 수직 및 대각선으로 음각되어 있다(그림 2). 은제 거울 끝에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자루가 붙어 있고, 이 자루는 뿔로 된 손잡이에 삽입되어 제작된 것이 X선 촬영 결과 알 수 있었다(그림 3). 손잡이의 단면은 팔각형이다.

은제 거울이 여성용이었기 때문에 청동제 거울은 남성의 것이라고 루덴코는 설명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목제+청동 거울은 나무틀의 뒷면에 사슴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담는 주머니는 펠트로 된 것이었다. 파지릭 2호분의 출토품은 청동제 거울은 손잡이 까지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표범모피로 된 가죽주머니 안에서 보관되었다. 은제 거울 역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표범모피주머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거울도 동물과 관련을 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경우의 수가 너무 적지만.)

 

필자가 하나씩 설명할수록 놀라운 점은 문화의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방향성은 공통적이지만, 거기에 표현된 것은 각기 개성이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같은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유물이 출토된 시간성에 차이가 있다면 동시대의 것이 아니라면 다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논할 근거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이고, 가까운 장소에서 같은 문화에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는 점은 매우 다양하고 개성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큰 테두리의 질서는 유지되지만 그 안에서의 개성은 존중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알타이 산에는 파지릭 계곡에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언젠가 발견되었고, 연구자가 학술적 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1947년에 루덴코가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소개한 파지릭 2호분은 도굴당했으나, 문신이 남아 있는 남성미라와 여성미라의 존재는 알타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유적에서 대형고분에 속하는 무덤은 1~5호분으로 이 발굴로 인해서, 스키타이 문화(권)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는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알타이에는 아직 소개하지 않은 비슷한 시기의 무덤이 많지만, 앞서 살펴본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를 많이 한다. 이 무덤에서는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직업은 샤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미라가 온전한 채 확인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무덤은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적의 비교대상이 될 만큼 풍부한 유물을 간직했다.

 

특히 앞서 살펴본 남성의 모자? 혹은 코로나(크라운)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그리핀 조각이 붙어 있는 장식을 보았다. 목이 길고 갈귀가 있는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남성전사가 확인된 유적이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의 모자와는 달리 고깔모자의 끝에 새머리가 달린 비교적 단순한 모자를 착용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의 여성미라 모자 2점 모두 요란한 모자이다. 한 점은 나무로 된 모자의 정수리 끝에 머리카락을 땋아서 붙은 형태이고, 다른 한 점은 가죽과 모피로 얼굴 앞면을 제외하고 ‘커튼’처름 만든 것인데, 정수리에 새 장식이 부착되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새가 장식된 모자는 아니지만, 아주 높은 가발을 착용했고, 새를 장식했다. 폴로스막은 이를 유라시아 스텝의 유목민이 숭배하는 세계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세계수(世界樹)는 유라시아 스텝 유목민을 포함하는 고대민족의 사상을 표현 것인데, 하늘, 사람이 사는 땅, 지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세계관을 세계수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이는 나무가 위치한 곳이 땅밑에서 자라서 땅위에서 나무기둥이 자라며, 하늘에서 잎을 뻗기 때문이다. 세계수라는 명칭은 고대 유목민들이 그들이 살았던 세계의 모습이 나무로 추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파지릭 유적 2호분은 파지릭문화에서 가장 상위 계급이라고 러시아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도 더 높다고 한다. 가장 큰 근거가 모자 혹은 코로나 라고 부를 수 있는 장식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물론 파지릭 유적 2호분이 무덤의 크기도 크고, 없는 유물도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파지릭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및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는 상대적으로 많다.

알타이에서 한 계곡에 묻힌 일련의 무덤은 한 가족 혹은 친족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파지릭 2호분 뿐만 아니라 다른 무덤(1, 3, 4, 5호분)의 부장양상도 파지릭 계곡의 무덤이 우코크 고원 보다는 높은 계급일 것이라는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높은 머리장식은 이러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 무덤의 크기가 작은 것은 혼자서 묻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에서 찾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얼음공주는 왼쪽 가슴조차도 미라처리를 위해서 그 안에 풀과 흙을 채워넣었다. 미라처리를 그렇게 공들여서 했는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녀의 권력 혹은 그녀의 그 무엇인가를 이어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학자들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많이 연결 혹은 비교하는 이유는 파지릭 2분 남성미라 몸에 새겨진 동물모양의 문신과 얼음공주 몸의 문신은 같은 사람이 새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지릭 2호분 여성미라의 몸에는 문신이 없었다.

문신은 일종의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과 글자는 몸속의 DNA처럼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새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ISBN 5-02-017744-Х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개론 혹은 초보적 연구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큰 상위에 첩 첩으로 반찬을 깔아 놓고, 아무것도 차린 것 없습니다’라고 하는 상황...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에는 그리핀이 무덤에서 확인된다.

그리핀은 상상의 동물이니 그 동물뼈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물건 여기저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필자가 처음 시작한 게임은 테트릭스(학생들은 모를 수도 있다.)인데, 지금도 비슷한 종류의 매우 단순한 게임 몇 가지 빼고는 요즘 학생들이 하는 컴퓨터 게임은 전혀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그리핀이 컴퓨터 게임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생각해 보면 요즘도 하드웨어의 발달로 그를 뒷받침 하는 소프트웨어 및 컨텐츠가 더욱더 중요해지는데, 그리핀도 그런 그 옛날의 컨테츠였던 같기도 하다. 온 세상 천지에 비슷비슷한 동물이고, 심심한데, 몇 개 동물을 합성시켜서 이야기도 만들고 했을 것 같다. 컨텐츠는 늘 사실에 기반하지만 재창조된다.

 

오늘은 그리핀(그림 1,2-3,3)이 새겨진 물건인데, 그림 1과 2-3는 가죽제 용기다. 앞서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연기흡입을 위한 동복(청동솥)과 텐트 세트와 함께 확인된 유물이다.

 

2020/03/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러시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문화권에서도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은 8세 소년의 무덤이다. 고깔모자, 토기, 금제 귀걸이, 청동 목걸이, 투부(전투용도끼), 모피, 칼..

eastsearoad.tistory.com

 

동복에는 돌이 담겨 있었고 태다 남은 대마씨가 담긴 채 확인되었고, 이 유물에는 대마씨가 담긴 채 확인되었다. 가죽주머니라기 보다는 가죽제용기라고 루덴코는 표현했다. 둥근 앞판과 뒷판 및 길다란 옆판을 말총으로 꿰매어서, 납작하지 않고, 일정한 두께가 있기 때문이다. 가죽입구는 동체에 비해서 좁으며, 조일 수 있는 끈이 달려서 둥글게 말려 있다.

 

가죽용기의 앞 면에는 모양이 다른 새 두 마리가 아플리케 장식을 붙인 것이다. 위에서 공격하는 새는 머리부터 목까지 갈기가 있어서 그리핀으로 생각되고, 아래에 공격당하고 있는 새는 그리핀 보다 갈기가 없으며 목이 길어서 그리핀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핀은 두 날개를 펴고 있고, 아래의 새는 날개를 접고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대마씨가 담긴 가죽제용기, 전체 길이 16.5cm, 너비 14cm

 

그림 2. 1,3번그림1과 같은 유물

 

 

그리핀이 다른 종류의 새와 함께 표현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나무와 가죽으로 된 것인데, 목제의 그리핀 입속에서 사슴머리가 물려 있고, 가죽으로 된 사슴의 뿔 끝에 목이 긴 수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핀은 정수리에 갈기가 붙어 있고, 귀도 표현되었으며, 턱 아래에는 날개가 붙어 있는데 가죽이다.

그리핀 입속의 사슴뿔은 두 줄이 붙어서 가장 꼭대기에는 합쳐지는 모습으로 가죽으로 표현되었다. 사슴뿔은 가지의 끝에 수탉머리가 표현된 것인데, 양쪽에 각각 7개씩의 가지가 있고 가장 끝에는 두 줄이 합쳐져서 2개의 수탉머리로 마감된다. 수탉머리는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가장 하단의 수탉은 두 마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그 이후에 머리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 유물은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파지릭 5호분에서 말의 머리장식으로 사슴뿔이 높이 표현된 유물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남성미라의 머리모자에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그리핀이 표현었는데, 그 유물과도 관련성을 염두해 둘 수 있다. 그림 1~3은 한국에도 온 적이 있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길이 23cm, 너비 16.5cm

 

2020/03/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한편, 가죽용기와 관련있는 유물로 파지릭 2호분에서는 무덤방의 가장 바닥에서는 연기흡입할 때 사용했던 청동용기가 2개 확인된다. 한 점은 청동으로 된 둥근 솥(위의 포스팅)과 사각형의 용기( 그림 5)가 출토되었다.

동체부가 동근 청동솥은 무덤방에서도 관에서 떨어진 곳(그림 4-6)으로 무덤방의 중앙에서 약간 비껴난 곳에서 출토되었고, 동체부가 사각형인 청동솥은 무덤방에서 관에서도 다리 밑의 좁은 공간(그림 4-3)에서 있었다. 각각 긴 막대 및 가죽조각이 확인되어서, 텐트를 설치한 후 그 안에서 청동용기를 두고 연기를 피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무덤방의 바닥

 

 

그림 5.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사각형 청동용기, 다리 4개 및 손잡이가 달려 있다. 높이: 8cm, 길이: 11.6, 너비: 12.3cm, 손잡이 길이: 8,3cm

 

그런데 용기의 크기가 너무 작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 황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도굴당했지만 상당히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1940년대 후반에 발굴된 이 유적의 무덤은 1990년대 발굴된 아크 알라하 3유적 및 아크 알라하 1유적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유적도 알타이 산에 위치하는데, 파지릭 유적보다 남쪽에 위치한다. 유적의 위치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그리핀이 달려 있는 목걸이다(그림1,2). 

 

파지릭 유적 2호에서는 그리핀 6마리가 달려 있는 목제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아시다시피 무덤은 이미 도굴당한 상태여서 관 밖에서 출토되었다. 남성의 시신일부와 가까운 곳에서 출토되었으나, 비슷한 유물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가 착용한 채 확인되어서, 이 유물은 여성의 목걸이다.

 

물론 파지릭 문화에서는 남자도 목걸이를 착용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전사가 착용한 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유물처럼 그리핀이 목의 앞을 다 둘러싸도록 장식된 것이 아니라 앞쪽에 두 마리가 배치된 유물이다.

 

그리핀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유물처럼 소재가 그리핀 6마리를 착장한다는 점, 목의 앞부분을 다 감싸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은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핀의 모양이 다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그리핀은 몸통은 평면으로 제작되었고, 목만 들고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그리핀은 맹수(호랑이 혹은 표범)의 몸통에 날개를 달고 있으며, 그리핀의 머리에는 뿔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출토 그리핀은 뿔이 2개 달려 있으며, 얼굴은 호랑이, 표범이라기 보다는 루덴코는 사자와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동물문양 한 개씩이 모두 개개로 분리되지만 목걸이에 착장하면 그리핀의 전면이 볼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출토품은 목걸이를 착장할 때 전면에서 보면 목 위의 얼굴이 보이도록 디지인 된 것이다.

 

파지릭 유적에는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전사무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사자머리의 그리핀이 확인된다. 이미 소개한 파지릭 5호의 말 앞가슴 띠에도 사자형 그리핀이 새겨져 있다.  페르시아에서 확인되는 그리핀 종류일 가능성이 많다고 루덴코, 폴로스막 등이 이미 이야기 했다. 사자는 알타이에는 살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리핀에도 알타이 계통과 페르시야 계통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핀의 기원은 스키타이문화의 기원과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초창기 스키타이문화 연구자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흑해 북안의 유적들이 원류라고 생각했으나, 시베리아에서는 스키타이문화 보다 이전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있었고, 그리핀도 출토되고 있어서 생각의 축이 바뀌었다.

 

 

그럼 이 유물은 어떻게 착용했을까?

 

이 유물은 목걸이의 고리를 뒤쪽에 고정할 수 있는 구리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전사 목걸이와 동일한 구조이다.

 

 

이 그리핀 역시 목제를 금박으로 싼 것인데, 발견당시에 금박조각만 붙어 있고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1940년대 발굴당시에는 금박으로 싼 동물문양장식은 금덩어리로 만들어진 것을 흉내내었다고 생각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목제 목걸이, 동물문양장식의 길이 16.5, 너비 12.5cm,  뒤쪽에 끼우는 구리의 길이 17.7, 5.2cm

 

 

그림 2. 그림 1과 같은 유물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미라 처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굴당시에 루덴코가 본 것은 이미 산산히 조각난 미라였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남성 미라는 공기 중에 노출되자 말자 빠르게 부패가 일어났기 때문에 문신이 새겨진 피부만 남겨두기로 하고 미라를 복원하지 못했다.

여성은 머리, 몸통, 다리와 종아리, 손 정도만이 잘려서 확인되었다. 여성과 남성미라 모두 관 밖에서 확인되었다(그림1). 여성 미라의 머리는 앞서 사진을 공개한 바 있는데,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아래는 여성미라의 시신이 확인된 무덤 속의 위치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유적의 유물 출토 위치. 회색네모: 여성 미라,  붉은색 네모: 목침과 베개 주머니, 혹은 베개를 덮은 가죽주머니.

 

그럼 관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느냐?

 

관 속에 남아 있는 유물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옷을 제외하고는 두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이 있는데, 꽃모양의 가죽장식이 붙은 목침(그림2)과 베개 역할을 했던 가죽주머니이다(그림 3). 두 유물 모두 꽃 잎 8개와 중앙에 자방을 표시한 원형까지 9개의 가죽 조각으로 꽃 모양을 붙였다. 그런데 한 점은 나무로 제작된 목침이고, 다른 한 점은 베개와 관련된 가죽주머니이다(그림 3). 베개의 측면 오른쪽에 꽃 잎 장식이 붙어 있고, 베개를 완전히 감싸기 위해서 가죽을 이어 붙였는데, 끈의 소재는 말총이다(그림2).

러시아학자들이 헤깔 려 하는 것이 베개를 넣은 가죽주머니 인지(그림3), 베개 위를 덮은 가죽인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베개 바로 옆에서 출토되었고, 같은 문양이 새겨져서 베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목침을 부장용으로 특별히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대형고분에 속하는 1~5호에서 모두 목침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두향은 동쪽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출토 목침, 그림 1의 27번 위치.길이 39.5cm, 너비 19.5cm, 높이 11.5cm. 에르미타주소장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목침을 넣은 주머니 혹은 위에 놓은 베개의 일부. 가죽. 그림 1의 28번 위치.

 

 

러시아에서는 필자가 유학당시에 썼던 베개는 거위 인지 백조인지 새의 깃털이 들어간 베개이다. 유학 간 2005년 당시에 한국에서는 잘 없던 베개였는데, 난 그 베개가 너무 좋아서 유학마치고 들고 들어왔다. 러시아 인의 문화에서 나무로 된 베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베개이다.

 

어린 학생들은 그걸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도 목침에 누웠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 계시던 할아버지 베개였는데....어려서 그런지 그걸 베고 낮잠을 곤히 주무시는 할아버지가 이해가 잘 안되었다. 밤에는 썻는지 모르겠다.아마 지금은 목침을 만들려고 해도 나무가 귀해서 많이 비쌀 것이다. 있다면.

 

다시 무덤방을 살펴보면, 분명 관속에는 여성용 옷(41)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바닥에 놓여 있다. 그리고 남성의 옷도 관 속(40)에서 확인되었다. 도굴꾼이 관 밖에 있던 유물을 일부러 안에 넣었을 리는 만무하다. 빨리 꺼내 가야는데, 안에서 밖으로 던져버렸을 가능성은 있어도, 밖의 것을 안으로 넣었을 리가 없다. 무덤방에는 공간이 많다. 그렇다면 관 속에는 남성과 여성을 함께 넣었을 것이다.

 

추정 가능한 것은 여성미라를 바닥에 깔고, 남성미라를 그 위에 얹은 것이다. 만약에 어딘가에서 물건을 급하게 꺼낸다면, 가장 위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바로 옆에 두고, 그 다음에 뭔가를 찾았을 것이다. 남성미라는 관의 다리쪽에서 대부분 확인되었고, 여성미라는 비교적 여기저기 흩어진 채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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