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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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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에 해당되는 글 21

  1. 2020.11.22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그릇장식과 흑해의 마면장식
  2. 2020.11.21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물고기 문양
  3. 2020.11.20 말 탄 스키타이 전사2
  4. 2020.11.19 우랄 남부 스키타 유적의 호랑이와 그리핀 머리
  5. 2020.11.18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사르마트 문화)인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목제 그릇에 동물이 새겨진 장식판이 부착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동으로 된 굴레장식도 납작한 동물이 음각되어 표현되었다.

 목제 그릇에 부착된 장식판은 동물모양으로 잘라낸 후 그 안을 나선문양이나 동심원문양으로 채우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굴레 장식의 장식 중에 평면형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납작한 장식판에 동물문양이 새겨지는 예는 흑해 지역의 굴레 장식에서 관찰된다. 기원전 4세기의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는 마면장식(그림 1-5,6, 그림 2-7,8)으로 발견되었다.

 

그림 1.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 2호분

 

그림 2.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 1호분

 

그림 3.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 청동판

 

그림 4. 마구 착장의 예

 

청동장식판은 대부분 크기가 6~7cm가량이다. 가장 상단에 새 모양(그림 2-7,8)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위와 아래에 둥근 못이 박혀 있는데 뒷 판에는 납작한 판으로 막혔다(그림 3–1,2의 단면 참고).

 

페레보드치코바는 새모양청동장식판이 굽동물의 뒷다리만 표현된 마구 장식(그림 5-1~5)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았다(그림 5). 기원전 4세기의 유물이지만 그리스적인 요소가 전혀 섞이지 않은 마면장식으로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림 5. 뒷다리가 표현된 마구(페레보드치코바 1994)

 

즉 이 시기에는 앞선 시기에 유행했던 동물장식에 볼륨감을 주는 부조기법(예 켈레르메스 유적의 황금 화살통 장식의 동물문양기법)은 사라지고 음각으로 납작한 유물로 동물장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흑해 뿐만 아니라 그 제작 기술이 우랄지역까지 확인된다고 볼 수 있다. 우랄남부에서 목제 그릇의 장식판으로 사용된 납작한 동물문양장식판은 흑해지역에서는 마면장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흑해에서 제작되어 소비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지역에서 제작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톨스타야 마길라 외에도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그림 5-8,9) 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고리트 장식판에 그리스 아킬레스 설화가 묘사되어 그곳에 세간의 관심은 쏠리지만 사실 그 유물은 껍데기 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담았던 것은 나무 혹은 가죽으로 된 스키타이 고리트수(화살통)였다는 점이다.

 

기원전 4세기에 스키타이 문화가 자신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도 너무 많은 그리스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곳곳에 스키타이 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 안타까운 점은 현대의 기술로 발굴해 볼 만한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곳의 유적은 평지에 너무 높은 봉분의 무덤이 만들어져서 눈에 잘 뛰어서 제대로 된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스 문화적인 요소 보다는 스키타이 적인 요소를 좀 더 찾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점이다.

 

 

참고문헌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문화(시베리아와 흑해)의 특징이 약간은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사브로마트 문화-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을 엮는 요소 중에 하나인 동물문양장식은 이 지역에서도 말의 굴레장식과 목제 그릇을 장식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그리핀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1호에서는 금제품이 출토되었지만 3호에서는 청동제품이 출토되었다. 금제품과 청동제품은 만드는 방법도 다른데, 전자는 입체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평면적으로 만들어진 제품도 있지만 청동제품은 대부분 평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금제품 그리핀이 출토된 1호 무덤에서는 목제 잔 장식에 그리핀 장식이 붙은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핀 머리인데, 눈과 맹금의 부리가 매우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그리핀의 내부에는 나선형 문양으로 채워졌다(그림 1~3). 물론 유물 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다.

나선형 문양은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에서 출토된 목제 그릇의 동물문양장식판을 모두 채우고 있다.

 

 

그림1. 필리포프카 유적 1호 김실 1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판, 그리핀 머리

 

 

그림2. 필리포프카 유적 1호 김실 1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판, 그리핀 머리

 

 

그림3. 필리포프카 유적 1호 김실 1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판, 그리핀 머리

 

그런데 그 장식판 중에는 물고기 문양이 표현된 유물이 있다. 실제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두 점 모두 입을 약간씩 변형시키고 나선형문양을 삽입했다.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 감실 1호 출토, 목제 그릇면에 부착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김실 1호 출토, 목제 그릇의 입술에 부착

 

물고기 문양은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3유적의 안장덮개 장식으로 사용된 바 있다. 흑해 지역에서도 기원전 4세기의 갑옷 가슴 장식으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보다 이전에는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검의 검집 장식에 반인반수의 어깨에 이빨을 드러낸 물고기가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나온 목제 그릇의 장식판은 동물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납작한 금판을 자르고 음각해서 표현해서 장식판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유물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참고문헌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베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우랄 남부의 지역 문화인 사브로마트 –사르마트 문화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긴 칼을 찬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가 발견된 3호 유적이다.

 

남성은 말 위의 안장에 앉아 있고, 우측에는 발 끝까지 오는 긴 검을 차고 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았으며, 목에는 스키타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그림 1). 왼쪽에는 고리투스를 차고 있다(그림 2). 고리투스, 목걸이 등은 시베리아에서부터 흑해까지 발견되는 스키타이 복장과 관련된 것이다. 발굴한 사람은 이 남성의 얼굴이 아시아 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떨어져 버렸으나 잔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3호분 출토, 높이 9cm, 뼈제품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3호분 출토, 높이 9cm, 뼈제품의 다른면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3호분 출토, 철제 검과 청동거울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3호분 출토, 청동 거울

 

실제로 이 무덤에서는 길이 60cm의 철제 검이 발견되었다(그림 3).  실제 검은 손잡이 끝장식이 ‘약간 휜 형태이고, 검날 멈추개도 ’V’자형이다. 뼈로 만든 전사의 검은 멈추개가 둥글게 처리되어 차이가 있다(그림 1). 그런데 이 남성의 왼쪽 팔꿈치 아래(그림2)에 튀어나온 막대기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것은 청동거울의 손잡이라고 생각된다. 청동거울(그림 5-2) 옆에는 화살(그림 5-1)이 출토되었고 인골 옆에 놓여 있다. 실제 거울의 손잡이와도 비슷하다(그림 4) 말탄 무사가 청동거울을 소매안에 넣고 있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3호분의 무덤 내부

 

그리고 이 전사에게서는 중요한 점이 발견되었다.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자를 쓰지 않은 고리투스(스키타이 화살통)을 찬 말탄 전사라니....

 

 

참고문헌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베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중요시 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마구이다. 이제까지 보았던 시베리아와 흑해의 유적에서는 화려한 마구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호랑이 동물문양장식도 주로 굴레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1호에서 재갈이 1점 발견되었으나 말을 꾸미는 굴레장식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말의 흔적은 무덤방 안에 없었고 무덤의 외곽 남쪽 공간에 말뼈 조각이 확인되었는데, 의례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말의 흔적(말뼈 혹은 마구, 굴레장식)이 있는 무덤은 3호가 있는데, 역시 1호와 마찬가지로 무덤방 안에서 확인된 것이 아니라 무덤의 봉분 외곽에서 확인되었다. 말 뼈와 함께 굴레장식이 함께 출토되었다. 하지만 3호에서는 무덤방 안에서는 말 혹은 마구는 일체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으로 제작된 것인데, 기하학적인 문양(그림 1), 그리핀의 머리(그림 2), 사슴의 머리(그림 3), 산양머리와 사슴머리(그림 4), 그리핀 머리(그림 5), 호랑이 머리(그림 6)를 형상화 한 것이다. 이 중에서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장식판 앞을 음각선으로 표현한 유물은 이들 유물은 흑해의 쿠반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4세기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굴레장식(그림 7, 8)과 유사하다. ‘L’자로 굽은 모양 뿐만 아니라 굴레에 착장하는 부위에 구멍이 2개 있는 점들도 제작방법이 같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그리핀 머리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사슴머리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산양머리와 사슴머리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그리핀 머리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 출토 굴레장식, 호랑이 머리

 

 

 

그림 7. 흑해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출토 굴레장식

 

 

 

그림 8. 흑해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출토 굴레장식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무덤방 안에는 말을 묻지 않았을까?

 

말뼈의 흔적은 없지만 6호 무덤안에서는 재갈과 재갈멈치가 무덤방 안에서 출토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가 무더기(그림 11-14)로 발견되어 재갈과 재갈멈치를 채운 말을 직접부장했다고 볼 수 없다. 재갈멈치와 재갈은 대부분 철제이다. 재갈멈치 가운데서 끝 부분을 청동으로 마감한 것(그림 10)과 철제를 둥글게 고리모양으로 달아서 처리한 유물(그림 9)도 확인되었다. 재갈은 끝의 고리를 말아서 처리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다(그림 12-7, 10).

 

 

 

그림 9. 필리포프카 유적 6호의 재갈과 재갈멈치, 철제품

 

 

 

그림 10. 필리포프카 유적 6호의 재갈멈치, 철제+청동

 

 

 

그림 11. 필리포프카 유적 6호의 평면도, 14번이 재갈과 재갈멈치가 출토된 곳이다.

 

 

 

그림 12. 흑해의 마구장식 기원전 4~3세기

 

이 유적에서 나타난 굴레장식과 재갈과 재갈멈치는 흑해지역과 유사한 특징이 있다.

드레프르강 하류(흑해)의 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말은 주인공 무덤방과 다른 공간에 마련되기는 했지만 같은 봉분 아래에 매장되었다. 그러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6호 무덤에서는 무덤 내부에서 재갈과 재갈멈치가 발견되었고, 3호에서는 무덤 안에 말 뼈가 매장된 경우가 발견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색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베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이다. 1호에서는 페르시아 그릇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이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은 아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중에서도 청동솥 4점이 발견되었다. 4점의 청동솥 가운데 3점은 손잡이가 청동솥의 입구에 아치모양으로 붙은 것이고 나머지 1점은 가로 방향으로 붙은 것이었다. 전자는 흑해 지역에서도 가장 이른 유적 중에 하나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는 스타일과 같다.

 

손잡이가 붙은 청동솥이 출토되는 무덤은 3호, 7호와 10호이다. 7호는 유적에서 가장 인골이 많이 출토된 유적 중에 한 곳으로 인골 5번 발 아래에서 출토되었는데, 청동솥(높이 17cm)은 손잡이가 2개만 아치모양으로 붙은 것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7호 청동솥, 높이 17cm

 

10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솥은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형태(그림 3), 무덤의 입구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10호는 무덤구조가 7호와 다른 원형이고 남쪽에 입구가 달린 형태이다. 10호 무덤입구는 현관처럼 나무기둥을 세우고 목제 구조물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1호의 무덤구조와 가깝다. 이를 참고로 하면 1호 무덤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 손잡이가 아치모양처럼 위로 붙은 것은 흑해 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오는 형태이다. 그런데 흑해에서는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고 우랄 남부에서는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청동솥이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온다(그림 4-3, 24).  필리포프카 유적은 기원전 5~4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손잡이의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청동솥이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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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는 두 가지 형태의 청동솥이 사용되다가 점차 손잡이가 아치모양으로 붙은 유물만 남았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손잡이 뿐만 아니라 동체부와 바닥의 모습은 지역성이나 시간성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0호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0호 청동솥, 높이 44cm, 구경 50cm

 

그림 4.  우랄 남부사브로마트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솥과 생활용구(상단 기원전 4~2세기, 하단 기원전 7~5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의 10호(44cm, 구경 50cm)와 1호의 솥(구경 70cm, 높이 55cm)은 매우 큰 유물이다(그림 5). 그러나 7호의 유물은 높이 17cm로  크기가 작다. 같은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지만, 용도가 달랐을 수 있다.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은 높이 13.8cm로 그 내부에 달군 돌과 대마씨가 발견되었다(아래포스팅참고). 일종의 향로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작은 크기의 7호 청동솥도 일상용기가 아닌 일종의 제기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20/03/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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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청동솥 옮기는 장면

 

일상용기로서의 대형 청동솥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베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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