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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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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에 해당되는 글 18

  1. 2020.08.30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2. 2020.08.27 말 탄 스키타이 무사2
  3. 2020.08.25 황금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남성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섞인 문화적 특징이 나타난다. 이 문화를 바탕으로 생긴 보스포러스 왕국은 437~438년에 스파르토키드(Spartocids) 왕조가 들어섰다. 이 왕조는 케르치 해협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합하고 케르치 지역 뿐만 아니라 쿠반지역(카프카스 산맥 북쪽)까지 통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이 왕조가 어떻게 들어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Spartok’이란 이름에서 추정해서 그리스에서 보낸 트리아스 용병의 지도자였고 일종의 쿠데타로 이 왕조가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를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된 쿨-오바와 같은 거대 고분에서 확인되는 그리스 건축양식이 가미된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고 보스포러스 왕국을 단순히 그리스화된 국가로 생각할 수 없다. 쿨-오바 유적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스파르토키드 왕조가 그리스 왕조였다면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유목민의 남성이 묘사된 황금 장식판과 황금항아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인들은 오랫동안 트라키아 인과 밀접한 관련을 유지했고, 스키타이 종족 중에는 부족 독립성을 유지한 트라키아 부족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더욱이 스키타이 이전에는 흑해를 지배했던 킴메리아 인이 곧 트라키아 인이고 갑자기 스키타이 인들이 들어와서, 그들 중 일부가 흑해 지역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 왕조는 그리스에서 보낸 트라키아 출신이 아니라 지역의 키메르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흑해에 스키타이인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8~7세기임으로 2~300년 동안 스키타이 문화에서 살았던 키메르 인은 스키타이 인과 구분할 수 없다.

 

흑해북쪽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5세기이지만, 서로의 문화가 교차되는 현상이 보이는 것은 기원전 4~3세기에 집중된다.

쿨 오바 유적은 기원전 8~7세기의 켈레르메스, 멜구노프 유적과 달리 돌로 무덤방을 만들었다.

 

특히 무덤방의 천장은 들여쌓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계단식’ 천장이다. 그 아래에는 나무로 된 목관이 설치되었다. 이곳에서는 앞서 설명한 황금항아리, 말탄 무사가 표현된 황금장식판, 스키타이 여신 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리스 유물과 스키타이 유물이 함께 확인된다.(아래포스팅참고)

 

2020/08/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말 탄 스키타이 무사

 

말 탄 스키타이 무사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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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적이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 있는데 사슴이 표현된 황금장식판이다. 고리트(스키타이 인의 전통적인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의 장식판이다. 이 유물은 유적이 발굴되는 과정에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들이 취득한 것을 도로 뺏은 것이다. 무덤방의 입구인 북서쪽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5~4세기, 길이 31.5cm, 에르미타주 소장

 

 

어디선가 비슷한 유물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요?

 

기원전 6세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장식판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전체적인 사슴의 모양과 제작방법은 같다. 특히 사슴의 뿔이 앞쪽으로는 2가닥, 뒤쪽으로는 S자가 연속되는 점, 몸통에 타출기법으로 근육을 표현한 점, 다리를 배쪽으로 집어 넣은 점, 굽의 세세한 표현, 둥근 눈, 입의 표현 등 은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이다. (사슴뿔이 앞으로 2가닥 표현되는 것은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다) 단지 쿨-오바 유적에는 사슴 안에 5마리의 동물이 더 표현되어 있다. 몸통에는 그리핀, 토끼, 사자, 목 아래에는 개?, 뿔의 가장 마지막에는 산양 혹은 산염소가 표현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유물을 근거로 쿨-오바 유적이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출토되는 그리스 유물 때문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그래서 유적을 기원전 4세기 후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2020/08/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 -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공격용무기인 전투용 도끼, 단검(아키나케스) 등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있었고,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청동 화살(그림 1)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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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모양 황금패식은 쿨-오바 유적의 정체성이 오히려 흑해 스키타이 문화를 더 따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가 흑해 북쪽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지, 완전히 그리스 스타일은 아니라는 여러 근거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왕조는 ‘비그리스적’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컬렉션,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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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황금항아리도 이 시기의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4세기 무덤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이 왕국은 흑해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던 여러 부족 중에서 그리스와 중계무역을 하던 국가 혹은 부족으로 알려졌다.

 

초원 유목민이 흑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레치 반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역에 살던 부족은 자신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보스퍼러스 국의 수도는 파니카페움(Panicapaeum)으로 이 곳에는 공방이 있었고, 스키타이 귀족의 유물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올리비아는 이미 쇠퇴하고 그 역할을 이 도시가 물려받았다. 올리비아, 파나카페움 등에 있던 공방에서 그리스-스키타이 양식의 유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도. 쿨-오바 유적의 위치, 올리비아(노란색)

 

지역민과 함께 그리스인도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무덤이 쿨-오바 무덤이다. 무덤의 외부형태는 스키타이인의 무덤이지만, 그 내부의 무덤방은 그리스의 건축물인 판테온 스타일이고, 그 중앙에 놓인 관은 스키타이 관인 나무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

 

이 무덤의 벽을 장식하던 프리즈(frieze)로 사용된 장식판에는 말을 탄 남성무사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금판의 반대면을 눌러서 표면을 솟아나게 만든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긴 머리와 턱수염, 콧 수염, 벨트 자켓, 통이 넓은 바지, 부드러운 신발(moccasin)등은 스키타이 무사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이 가죽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로방향의 침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신발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데, 원래는 가장자리 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장식판에는 바늘구멍이 확인되는데, 무덤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하다가 무덤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4세기, 금, 너비 5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단면(상)과 무덤 바닥면(하)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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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는 여성이 표현된다. 신화 속의 인물로 생각되며 아르김파사, 키벨레 등으로 해석된다.

남성도 있는데, 여성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된다. 흑해의 여신이 표현된 은제 거울이 나온 ‘차르’급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없다.(이 말은 오해하시면 안된다. 기원전 7세기에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있다)

 

소형 유물에 남성이 표현되는 것은 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흑해의 케르치 지역에 있는 쿨 오바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항아리에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리를 만지는 장면(그림 1-1), 치아를 뽑는? 장면(그림 3), 활에 시위를 거는 장면(그림 1-2), 서로 도와 끈을 매는 장면(그림 2)이다.

 

 

그림 1. 흑해의 쿨-오바 출토, 1830년 발굴, 높이 13cm(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2. 그림 1의 왼쪽 남성 옆(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3. 그림 1-1의 반대편(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4. 그림 1의 바닥(Алексеев А.Ю. 2012 )

 

헤어스타일, 복장, 스키타이 무기 등으로 스키타이 남성으로 여겨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떠 올린다. 하지만 스키타이 인의 일상생활을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쿨 오바 유적은 1830년 9월 19일에 군인들이 돌을 채석하다가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는데, 1875년에 루첸코가 발굴하기 전에, 1830년 당시 주지사였던 스템코프스키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에서 이주한 Paul Du Brux가 책임자로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으며, 기록이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무덤의 구조와 유물 목록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짧은 복도와 지붕이 계단식으로 된 돌로 된 무덤방이었으며, 그 안에는 채색된 나무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로 된 무덤방을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무관 안의 사자는 거대한 금색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고, 무기세트를 옆에 놓아둔 채였다. 나무 관 옆에 나무거치대가 있었고 그 위에 여성인골이 확인되었다. 황금 항아리는 그녀의 발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무덤은 발굴하는 과정에서도 도둑을 맞았다.

황금 항아리는 주조로 만들고, 항아리 안쪽은 두드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바닥(그림 4)에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항아리 제작 시에 적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새겨 넣은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그리스 토기인 ‘암포라’가 출토된다. 하지만 이 황금 항아리에 표현된 남성은 스키타이인으로 스키타이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에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쉽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유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쿨-오바에서 나온 장식판에 새겨진 여신은 분명히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으나 양 손을 펴고, 날 개를 표현하는 점은 기원전 7세기에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신과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혹시 이 황금장식판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황금항아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흑해지역의 유적은 1859년에 러시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 위원회 중심으로 흑해의 쿠르간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의 유물도 처음에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함께 쿤스트카메라에 보관되었다가, 나중에 함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1715년~1718년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농민으로부터 수집해서 보낸 것이다. 표트르 1세에게 처음에는 10점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200여 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러시아의 첫 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현재도 있음.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까움, 네바 강 건너)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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