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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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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보여드린 스키타이 여신인 거울을 들고 있는 여신인 티파티가 표현된 네모꼴의 장식판은 여성의 베일에 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몸을 돌리고 있는 여성이 있는 긴네모꼴의 장식판은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착장했을까?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장식판은 긴 베일에 장식된 것으로 모두 58기가 출토되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매장자는 여성인데, 그녀는 장식판에 표현된 모습과 흡사하게 치장되어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나온 장식판

 

그림 2. 무덤에서 나온 장식판, a- 크라스느이 페레콜 22호 쿠르간 2호묘, b-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 여성피장자와 출토유물(부분 복원), c-노보셀라흐 쿠르간 4호(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고, 베일을 쓰고 있으며 관자놀이에 둥근 장식을 달았고,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착장했고 거울도 발견되었다. 베일에 붙은 장식판에 자신과 닮은 여성이 표현된 있었다(그림 1). 앞머리와 베일 사이에는 삼각형 장식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아래포스팅 참고).

 

그림 3.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복원

 

그림 3에서 이용된 머리장식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 카라고데야쉬흐 무덤에서 출토된 장식판 자체가 삼각형이기도 했고, 거기에 표현된 여성도 같은 형식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포스팅(쌍두마차, 1224)

 

그럼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긴 네모꼴의 장식판(그림 8)은 어떻게 착용한 것일까?

 

미로시나는 이 납작한 장식판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미 우리가 본 적이 있는데 아르김파사 가운데 가장 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 여성은 마치 머리를 붕대를 감은 모습처럼 하고 있었다(그림 4). 그리고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또 다른 장식판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있는데, 이 여성의 머리스타일(그림 5)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여성과 거의 비슷하게 끝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남녀가 등장하는 카펫속에서 여성의 머리장식 모습이 머리끝은 편평하지만 삼각형 장식이 있는 모습이었다(그림 6).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머리장식(기원전 4세기)

 

 

그림 5.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5호(기원전 5세기)의 카페트

 

그림 7. 동유럽 스키타이 머리장식 티아라 

 

그림 8. 사흐노프스키 쿠르간(기원전 4세기)

 

그래서 머리끝이 편평하며 모자같이 생긴 장식이 있고 그 아래 이마를 가로질러 띠처럼 두르도록 하는 장식이 필요한데 이때에 사용된 장식판(그림 8) 일 수 있다.

 

그런데 머리끝이 뾰족한 여성모자는 흑해지역에서는 기원전 5~4세기대에 나오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의 여성에게서 이미 확인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Мирошина 1981 — Мирошина Т.В. Некоторые типы скифских женских головных уборов IV-III веков // СА. №4.(미로시나 1981, 기원전 4~3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의 유스티드 XII유적 8호 소년의 머리에는 나무로 된 투구모양의 모자(길이 8~9cm, 두께 0.5~0.6cm)가 발견되었다. 귀부분은 따로 끼울 수 있게 제작되어서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되었고, 머리꼭대기에는 말 장식이 부착되었다.

 

이러한 유물은 이 유적의 7호분과 인접한 울란드릭크 II유적 8호와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에서만 출토된다.

7호 역시 무덤방 크기(100×79cm)가 매우 작은 무덤방으로 보아서 아이의 무덤이고 비슷한 모자를 쓰고 묻혔던 8호 남자아이와 무덤 부장품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남성아이는 전투용 칼, 목제 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었으나, 7호에는 없다. 여성아이이다.

 

2020/10/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고분 XII] -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여성 1인 무덤(19호, 10호),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매장된 무덤(20호), 여자아이 2명(11호), 여자아이 1명(6호)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매장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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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 무덤방 평면도, 1-목제 쟁반 편, 2-목제 잔의 고리모양 손잡이, 3-목제 잔의 동체부 편으로 청동클립이 끼워져 있음. 4-자작나무 껍질, 5-말 모양의 조각이 붙은 목제 모자, 6, 7-산양화된 사슴조각, 8-항아리편, 9-철제 칼 칼, 10-나무상자형의 목제관, 11-목침, 12~14: 금박 편, 목제(1,2,5,6,7,10,11), 목제+청동(3), 자작나무껍질(4), 토제(8), 철제(9)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의 유물, 그림1과 번호일치

 

유스티드 계곡과는 멀지는 않지만 다른 강인 울란드리크 계곡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10~12cm(두께 0.6~0.9cm)이다. 1점은 머리상부에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다른 한 점은 없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모두 남성(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과 소년의 무덤(울란드리크 II유적 8호)에서 출토된 것으로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을 먼저 발굴했기 때문에 아마 유스티드 XII유적을 발굴하기 전에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울란드리크 III유적과 울란드리크 II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처음에 ‘빗모양 모자장식’이라고 불렸다(그림3). 사실 이 유물은 모자와 같이 입체적이지 않고 납작하다(유스티드 XII포함). 그래서 가죽이나 펠트 같은 곳에 덧대어 모자를 장식했던 유물로 생각되었다. 더욱이 두 유적에서는 머리의 위치에서 발견되지 않고, 동물모양이 붙은 것(그림 3-왼쪽)은 피장자의 가슴부위, 붙지 않은 것은 피장자와 떨어져서 목제쟁반에 놓인 곳 위에 출토되었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위에서 확인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3. 울란드리크 III유적(좌)과 울란드리크 II유적(우) 출토 모자장식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그림 2-7)유물은 확실히 ‘빗(comb)’보다는 투구모양에 가깝다.

쿠바레프는 머리의 모자장식에 목제 동물문양을 부착하는 것은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 모자장식을 떠올렸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모자 중에서 모자부분은 펠트로 만들어지고, 상부는 화려한 상상의 동물인 그리핀이 사슴을 물고 있는 모자장식의 평면모습이 유스티드 XII유적 및 울란드리크 III과 울란드리크 I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비교할 수 없이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은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비슷한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파지릭 2호분이 이들 유적보다 이르다고 생각해서이다.

 

2020/03/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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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들 유물의 공통점은 10cm내외의 소형이며, 납작하다.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울란디크리 III유적 1호분만 성인남성이다. 출토위치도 피장자의 주변이 아니고 그릇 두는 공간에서 출토되었다. 또 모자장식에 동물문양장식도 없다. 혹히 이 남성이 아이일 때 쓰던 물건인데 그냥 나중에 발견해서 넣은 것일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위약금이 줄어들었다. 필자는 아직 제주도를 경계로 그 보다 밑으로 가본적이 없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다.ㅋ

 

어제 잠시 알릴레오를 시청했는데, 신종바이러스의 이름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처음에 언론에서 창궐하는 병의 이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이야기 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나 했다. 어제 의사선생님 말씀이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는데, 코로나 라는 말이 영어 크라운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척을 쫌 하면 맞는 말씀이다. 코로나는 러시아어다. 영어로 하면 crown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맥주 이름 중에도 ‘시베르스카야 코로나(сибирская корона)’ 라고 맥주가 있는데, 시베리아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어디서든 파는 맥주다.

 

 

어제는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나온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있는 여성미라가 쓴 고깔모자를 보았다. 높은 고깔에 챙이 붙은 것인데,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도 출토되어서 그런 스타일은 여성이 썼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고깔모자 속에 화려한 머리장식을 넣고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그럼 남성은?

현재 우리가 살피고 있는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주인공이 여성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남성무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앞서서 이 여성의 문신을 설명할 때 같은 기술자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남성미라를 설명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어깨에 문신이 그려진 남성미라가 나온 베르흐-칼쥔 2유적에서도 변종의 고깔모자가 출토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고깔모자도 양모펠트로 제작되었지만,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과 1호분에서도 남성용모자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문신이 새겨진 채 확인된 남성무사의 미라가 나온 3호분에서 나온 고깔모자 2점이 확인되었다. 한 점은 펠트로 제작된 것인데, 고깔 정수리에 새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그림1). 다른 한 점은 목제로 된 새머리와 산양 조각들만 남아 있다. 역시 펠트제 고깔모자의 장식품으로 생각된다(그림2).

 왜냐하면 알타이의 다른 유적(그림 3)에서 출토된 고깔모자 중에서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고깔모자의 목제장식과 거의 유사한 목제장식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새머리고깔모자(그림2)에는 말이 아니라 화려한 뿔이 달린 산양이 붙어져 있다. 그럼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는 목제와 펠트로만 만들었을까?

그림1. 베르흐 칼쥔 2유적 3호분 고깔모자

 

 

그림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머리는 금색이지 않은가? 모든 목제 장식은 아주 얇은 금박으로 덧입혀졌지만, 잘 남아 있지 않다. 발굴과정에서 얼음이 녹으면서 금박은 쉽게 떨어졌다고 한다.

 

새머리 고깔모자만 있을까?

베르흐 칼쥔-2 유적의 1호분에서는 고깔모자가 아닌 펠트제 모자가 출토되었다.

펠트 2장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를 ‘투구’형이라고 부른다.

아무장식 없이 귀만 덮게 되어 있고 정수리는 높지 않고, 머리에 딱 맞게 제작되었다(그림 4).

 

그림 4. 베르흐 칼쥔-2 유적 1호분 출토 투구형 모자

 

 

투구형?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흑해 북안에서 출토되는 청동제 투구가 있다. 이 투구는 원래 흑해북안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그 곳의 지명 중에 하나인 ‘쿠반’형 투구라고 한다.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정도의 유적으로 생각된다(그림 5).

너무 비약이 심한거 아니냐고? 흑해 북쪽이면 지금 우크라이나인데, 시베리아 알타이와 너무 멀지 않냐고?

 

그런데 여러분은 그림 6과7의 유물을 보셔야 된다(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어디서 출토되었을까? 이 유물은 중국의 요서지역(영금하 주변) 청동기시대 가운데서도 하가점상층문화에 속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7세기 가량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그림5. 켈레르메스 2호분, 에르미타쥬 소장, 190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Scythians 2017)

그림 6. 서삼가촌(西三家村) 출토(동북아역사재단 2007)

 

그림 7. 북산취(北山嘴) 유적 7501호(동북아역사재단 2007)

 

 

이 정도 되면 스키타이 문화의 역동성의 한 부분이라도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투구형 모자는 장식이 없는 것만 있을 까? 그것도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또 다른 고분인 파지릭 유적에서는 ‘코로나’라고 불리는 투구형 모자가 확인되었다(그림8).

투구형이지만, 정수리에 사슴 뿔과 같은 아플리케 장식을4개를  붙였다. 역시 2장의 펠트를 이어 붙은 것으로 올리브 색이었다. 귀 옆에는 붉은색으로 동물장식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반짝이는 옻 칠 장식을 붙였다. 동물의 종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림8. 파지릭 유적 출토 모자, 에르미타쥬 소장(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중에서도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 뿐만 아니라 투구형 모자는 여성모자와는 달리 귀를 덮고 있다. 여성은 화려한 가발을 쓰고 단순한 고깔모자를 썼으며, 남성은 대체로 화려한 모자를 썼다. 파지릭 유적의 모자()나 금박을 입힌 목제장식을 모자에 달고 다닌 행위는 코로나, 크라운의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코로나, 크라운의 의미는 단순히 머리장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순동시대에 머리장식을 하는 관습이 무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코로나, 크라운은 국가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보다 더 빠른 코로나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의 유물이 있는지 앞으로 살펴봐야 겠다.  그리고 스키타이문화의 더 화려한 모자를 앞으로 소개할 날을 기대한다.

 

*2500년 전은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이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 아크 알라하-3유적 얼음공주가 죽었던 시기가 그때 쯤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돌려말하면, 2500년 전과 코로나의 기원연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림 9.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위치(Scythians 2017), 어제 언급했던 쿨 오바 유적, 오늘 소개된 헬멧이 출토된 켈레르메스 유적 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동북아역사재단 2007, 『하가점상층문화의 청동기』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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