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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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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드네프르 강 유역의 카멘스코예 성곽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에서는 청동과 철을 생산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도가니(그림 1), 화덕자리 및 그 과정에서 사용된 철 생산하던 끌과 망치(그림 2)와 같은 역할을 도구도 발견되었다.

 

그림 1. 카멘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기원전 4세기 도가니편

 

그림 2. 카멘스코예 성곽, 철 끌과 망치

 

유물 가운데는 선철을 가공해서 1차로 만든 철 소재가 발견되었다(그림 3-1~4). 뿐만 아니라 청동 화살촉(그림 3-5)과 청동 솥의 용범(거푸집)(그림 3-6)도 발견되었다. 유적에서는 당연히 청동과 철로 된 화살촉(그림 4)이 있다.

 

 

그림 3. 카멘스코예 성곽, 1~4: 1차 철 소재, 5-청동화살의 거푸집(편), 6-청동솥의 거푸집(편)

 

그림 4. 카멘스코예 성곽, 화살촉, 1-12: 청동, 13~15: 철제품.

 

청동으로 된 화살촉은 1점을 제외하고는 청동화살촉의 형태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단면이 삼각형이며,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그림 4-2~7, 9, 12)과 약간 바깥으로 돌출한 화살촉이다(그림 4-8, 10). [물론 이외에도 화살촉 신부(몸체)에는 홈이 있지만 이는 부차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화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루와 결합되는 부분이다]

자루 끼우는 부분이 외부로 길게 튀어나온 청동화살촉 1점(그림 4-1)은 가지가 붙었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있었던 형태이다.

 

철제 화살촉(그림 4-13~15)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청동에 비해서 길다. 아마 소재에 의한 차이로 인해서 생겼을 것 같다.

 

카멘스코예 유적에서도 동물장식은 발견되는데 독수리 머리(그림 5-2), 사자머리(그림 5-3) 등이 발견되었다. 사자머리는 청동팔찌의 끝에 붙은 것이고, 독수리 머리는 정확하게 어디를 장식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은제품이다. 재갈멈치를 장식했던 발톱(그림 5-1)도 순동제 유물도 발견되었다. 사자다리 모양의 청동도장(그림 5-5)도 발견되었는데, 금제 장식판을 만들 때 사용된 것이다.독수리 눈모양이 달린 철제 장식품(그림 5-6)도 있다.

 

그림 5. 카멘스코예 성곽의 동물장식

 

카멘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유물은 철기와 청동을 가공하기 위한 유물 외에는 동시기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화려한 동물장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철과 청동을 실제로 생산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청동생산 가운데 화살촉을 제외하고는 다른 청동무기 제작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장신구와 솥 등을 생산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이전과 청동을 사용하는 범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직접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Граков Б. Н. 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непре //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археологии СССР. М., 1954. № 36(그라코프 954, 드네프르 강의 카멘스코예 성곽)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표트르 1세의 수집품으로 알려진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세 번에 걸쳐서 차르에게 무덤에서 캐낸 유물을 보냈는데, 2번째 소포에 가장 많은 유물이 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작은 소형 유물도 포함되었는데, 토기(그림 1-11, 53,54,55)와 목기(그림 1-21)를 모방한 금속제 이미테이션이다. 소형 유물들은 대부분 장신구류인데, 그릇을 모방한 금속제품도 어딘가에 달아서 사용되었을 수 있다. 이 외에는 대부분 반지, 귀걸이 혹은 꽃을 모방한 장신구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에서

 

그 중에서 좀 이상한 유물이 있다. 사람 이를 금으로 만든 포켓 속에 넣고 체인을 달아서 만든 귀걸이다(그림 1-56,57). 시베리아 황금 유물이 금과 돌(보석류, 주로 터키석)을 함께 이용하는 경우 금제품에 포켓을 만들어 넣는 상감기법을 쓰고 있는데, 이 유물은 터키석을 대신해서 사람의 어금니를 끼워 넣은 것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에서, 귀걸이 한 쌍

 

 

비트겐이 수집한 유물에도 사람이를 사용한 귀걸이가 발견되었다(그림 3에서). 사람이를 사용한 장신구는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비트겐의 수집품에도 있는 점으로 보아서  그림 2의 유물이 완전 유니크 한 유물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3. 비트겐(1785)이 수집한 유물

 

사실 현재 발굴되는 자료나 그 뒤의 자료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귀걸이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 보석이나 돌이 끼워진 채 발견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비트겐은 1664년에 러시아에서 일하고, 그 뒤에 시베리아에서 유물을 수집해서, 이미 17세기 중후반부터 시베리아에는 도굴이 만연한 상태였고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웬만한 무덤은 거의 도굴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소형의 유물들이 제대로 보존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스키타이 무덤에 들어가는 뿔그릇은 동물을 대신해서 그 동물의 뿔로 제작되었다는 의견(폴로스막 2001)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의 주인공에 대한 기억? 혹은 그를 기리기 위해서 혹은 어떤 징표 등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 영화에서 사이즈가 큰 반지를 줄에 끼워 목걸이로 간직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당시의 사회상 및 풍습, 혹은 개인적인 것과도 관련이 있을 듯 한데, 정보가 부족하다.

 

표트르 1세에게 유물을 보낸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은 무덤의 위치를 엄청난 비밀로 여겼다는 점에서도 무덤의 위치를 그린 지도는 그야 말로 ‘보물지도’였을 것이다. 지도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풍습?은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필자가 유학했을 당시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처음에는 답사를 다니거나 하면 학자들은 군대에서 입수한 지도라며 쓱 보여주고 엄청난 비밀인 것처럼 했던 기억이 난다..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코메디인데.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Федоровна K.E. 2006, Золото кочевников. О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НАУКА из первых рук(표드로브나 2006, 유목민의 황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 대해서)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336 с.(폴로스막 2001, 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석기제작방법은 크게 때려서(타제) 만드는 방법과 갈아서(마제) 만드는 방법으로 나눠진다.

 

석기를 가는 데 필요한 것은 숫돌(砥石)이다. 숫돌로는 잘 갈리게 하기 위해서 입자가 고운 사암, 이암계통의 돌을 많이 이용한다.

 

찰절은 그림과 같이 돌로 돌을 갈아서 만드는 방법이다.


주로 석기에 홈을 낼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결상이식과 같은 장신구 제작에도 부분적으로 사용했다.

결상이식 외에도, 돌에서 돌을 잘라낼 때 주로 사용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석제 낚시바늘에 홈을 내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보이스만 문화는 처음에 보이스만-2 유적이 해안에 인접한 곳에서 확인되었고, 물고기잡이 도구가 많이 출토되면서 해양성문화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보이스만 문화의 토기가 연해주 내륙에서 유적이 확인되기도 해서 해양에만 관련된 문화로 보기는 힘들다.

 

보이스만 문화에서는 토기 이외에 뼈로 제작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낚시, 작살, 바늘, 치레걸이 등이 있고, 조개로 만든 조개팔찌도 있다.

바늘은 바늘과 바늘통(그림 2)도 있는데, 두만강 하류의 서포항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연해주에서 바늘이 출토된 최초의 예이다. 이 보다 이른 시기인 앞서 포스팅 한 바 있는 루드나야 문화의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는 편직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가죽 이외에도 옷감을 짠 편직물과 기우는 바늘이 확인되는데,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예이다. 

 

그림1. 보이스만-2유적 출토 굽은 낚시바늘

그림 2. 보이스만-2유적 출토 작살(회전식)

그림 3. 보이스만-2유적 출토 바늘과 바늘통

그림 4. 보이스만-2유적 출토 석창(왼쪽 흑요석)

그림 5. 보이스만-2유적 출토 장신구


또한 옥으로 만든 옥 귀걸이(그림 5)도 있다.

대형작살(그림 3)은 회전식 작살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괭이 같은 땅을 파는 도구(그림 6-7), 나무 가공용 도끼(그림 6-1~7), 화살촉(그림 7-1~20) 등도 확인되었다.

앞선 문화와는 달리 흑요석제품(그림 4 왼쪽, 그림 7-26)도 출토되었는데, 창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자갈돌을 이용한 어망추(그림 7-21,22)는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다.

 

그림 6. 보이스만 문화의 석기 

그림 7. 보이스만 문화의 석기 

보이스만-2 유적이 패총인 덕택에 유기물질로 제작된 유물이 상당히 남았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루드나야 문화의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의 장신구, 완벽한 옥기는 아닌 옥석, 사진외에도 장신구는 여러 점 출토되었음)

지난 포스팅에서 루드나야 문화의 박편석기 중 끝이 뾰족한 도구가 장신구(그림1)의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뚫었을까?


러시아에서 60년대부터 소비에트 시절부터 고고학에 자연과학의 방법을 많이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세르게이 세묘노프이다. 그 가 연구한 것은 현미경을 이용해서 석기의 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사용흔적을 찾아내고, 그 대상물을 찾는 것이다. 미세사용흔적분석이라고 한다(세묘노프 1968). 이 방법은 미국에서 더 발전된 듯 보인다((T. 더글라스 프라이스, 2013).


 그 사람은 바이칼 유역의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에서 출토된 부채꼴 모양으로 구부러진 골각기의 1/3지점에 세석인을 끼워 넣은 유물에 주목하였다(그림2). 이것이 일종의 콤파스로 보았고 옥에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았다(세묘노프 1968, 그림2). 이 세석인은 끝이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유적에서는 함께 둥근 옥제품이 출토되었다. 옥제품은 완벽하게  둥글게 잘려진 것이 아니라 조잡해 보인다.

(그림 2. 1~3: 베르흐냐 부레티 출토, 4~5: 시묘노프 제시(시묘노프 1968)

그림 3. 1·5: 글라스코보,2·3: 렌코바 1호, 4: 포노마레보, 6~8: 남보력고토 유적출토


 루드나야 문화의 장신구에 뚫려진 구멍도 완벽하게 둥글지는 않다(그림1). 특히 옥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둥근 디스크 모양의 옥기는 옥귀걸이보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다. 원판으로 잘라내고 가운데만 동그랗게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의 장신구는 완벽한 옥은 아님,)
 완벽하게 둥글게 잘라낸 옥기는 홍산문화에서 확인되는 옥제품으로 제작방법이 전혀 다르다.


필자는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기는 석촉이 아니라 장신구 제작도구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석촉은 이미 타제 및 마제석촉이 유적에서도 확인됨으로 구지 세석인을 석촉으로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루드나야 문화의 유적인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는 화재난 주거지여서 골각기가 많이 확인되지만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과 같이 골제 콤파스가 출토되지는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런데,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인 용도를 밝히는 것은 어떤 역사적 해석인가?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세묘노프 1968, С. А. Семенов,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 НАУКА Ленинградскре отделение, Ленинград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이희준 옮김), 2013,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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