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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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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는 여성이 표현된다. 신화 속의 인물로 생각되며 아르김파사, 키벨레 등으로 해석된다.

남성도 있는데, 여성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된다. 흑해의 여신이 표현된 은제 거울이 나온 ‘차르’급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없다.(이 말은 오해하시면 안된다. 기원전 7세기에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있다)

 

소형 유물에 남성이 표현되는 것은 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흑해의 케르치 지역에 있는 쿨 오바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항아리에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리를 만지는 장면(그림 1-1), 치아를 뽑는? 장면(그림 3), 활에 시위를 거는 장면(그림 1-2), 서로 도와 끈을 매는 장면(그림 2)이다.

 

 

그림 1. 흑해의 쿨-오바 출토, 1830년 발굴, 높이 13cm(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2. 그림 1의 왼쪽 남성 옆(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3. 그림 1-1의 반대편(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4. 그림 1의 바닥(Алексеев А.Ю. 2012 )

 

헤어스타일, 복장, 스키타이 무기 등으로 스키타이 남성으로 여겨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떠 올린다. 하지만 스키타이 인의 일상생활을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쿨 오바 유적은 1830년 9월 19일에 군인들이 돌을 채석하다가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는데, 1875년에 루첸코가 발굴하기 전에, 1830년 당시 주지사였던 스템코프스키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에서 이주한 Paul Du Brux가 책임자로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으며, 기록이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무덤의 구조와 유물 목록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짧은 복도와 지붕이 계단식으로 된 돌로 된 무덤방이었으며, 그 안에는 채색된 나무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로 된 무덤방을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무관 안의 사자는 거대한 금색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고, 무기세트를 옆에 놓아둔 채였다. 나무 관 옆에 나무거치대가 있었고 그 위에 여성인골이 확인되었다. 황금 항아리는 그녀의 발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무덤은 발굴하는 과정에서도 도둑을 맞았다.

황금 항아리는 주조로 만들고, 항아리 안쪽은 두드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바닥(그림 4)에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항아리 제작 시에 적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새겨 넣은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그리스 토기인 ‘암포라’가 출토된다. 하지만 이 황금 항아리에 표현된 남성은 스키타이인으로 스키타이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에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쉽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유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쿨-오바에서 나온 장식판에 새겨진 여신은 분명히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으나 양 손을 펴고, 날 개를 표현하는 점은 기원전 7세기에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신과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혹시 이 황금장식판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황금항아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흑해지역의 유적은 1859년에 러시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 위원회 중심으로 흑해의 쿠르간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의 유물도 처음에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함께 쿤스트카메라에 보관되었다가, 나중에 함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1715년~1718년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농민으로부터 수집해서 보낸 것이다. 표트르 1세에게 처음에는 10점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200여 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러시아의 첫 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현재도 있음.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까움, 네바 강 건너)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 해발 1500m가량 되는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에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있다. 크고 작은 무덤이 있는데, 지상에 무덤을 덮은 돌이 남겨져서 쉽게 눈에 띈다.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을 봉분이라고 하는데, 봉분이 있는 무덤을 러시아에서는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파지릭계곡에는 5개의 대형 쿠르간이 있고, 소형 쿠르간도 존재한다. 1호 무덤은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2~5호는 루덴코가 1947~1949년까지 발굴했다.

 

특히 파지릭 5호분은 남녀미라와 함께 4륜의 바퀴가 있는 마차가 확인되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무덤구덩이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무덤방이 2중으로 설치되었고 통나무관이 1개 존재했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묻었다. 파지릭 2호는 도굴이 심해서 남녀 미라가 관 밖에서 확인되었지만, 관은 1개만 확인되어서 같은 방법으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 묻힌 남녀는 55~60세 가량의 남성과 40대의 여성으로 몽골로이드이다. 남녀모두 미라처리된 것이다. 미라 처리는 뼈와 피부만 남기고 인간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치고 피부에 일종의 송진과 기름을 발라서 보존처리했다. 5호의 미라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지 않다. 2호에서는 남성에게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남성은 키가 175~176cm가량이었다.

파지릭 5호분의 미라처리에 사용된 송진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채취된 것이었다. 미라는 온몸에 절개면이 아주 많았는데,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미라처리에서 가장 관건은 근육과 지방은 제거하면서 관절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절이 유지되어야 골격이 흐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는 말도 9마리나 확인된다. 무덤방의 바깥공간에 차례대로 부장되었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을 제외하고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외에도 굴레, 안장 등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가장 옵션이 좋은 말이었는데, 머리장식까지 있었다. 마차의 선두를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아무것도 착장되지 않았다.

 

말의 머리장식은 같은 시점에 만들어진 알타이에서도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말의 옵션이다.

 

말을 부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재갈과 재갈멈치는 고삐로 연결된다. 그러나 기능적인 것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지만 말의 얼굴에는 굴레가 씌워지는데, 대부분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말의 이마와 콧잔등 뿐만 아니라 귀 아래와 귀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사슴, 맹수 등이 전신, 두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맹수는 독수리와 합체 되어서 이 세상에는 없는 동물이다. 그리핀이라고 부른다.

파지릭 5호분에는 굴레장식 뿐만 아니라 안장 및 안장덮개가 출토된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머리장식이 있던 1호 말은 안장덮개로 중국산 실크가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펠트로 제작된 대형 벽걸이 캐노피가 확인되는데, 남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남녀의 얼굴형태가 다르고, 남성은 알타이에서 확인되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말과 관련된 도구와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담는 통)는 알타이 식이다.

마차는 4개의 바퀴가 있는데, 살이 있는 바퀴이다. 마차에는 차양덮개가 있었으며 꼭대기에는 새모양의 펠트로 만든 인형 4마리가 붙어있었다. 백조의 모습이지만, 날개는 독수리이다.

특히 화려한 1호말, 마차, 대형 벽걸이 캐노피에서 확인되는 외래적인 요소(페르시아적인 요소)들 덕분에 파지릭 고분은 특히 5호분은 러시아학계에서는 당대의 가장 높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생각한다.

 

페르시아적인 요소는 안장의 덮개 중 일부인 고들개에 표현된 그리핀이 사자머리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적 요소와 그리스적인 요소는 흑해북안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자주 확인되는 특징인데, 이곳 알타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인간과 말이 상주하는 무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이름해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유래되었다. 파지릭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의 일원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북쪽부터 시베리아 남부지역까지 동물문양을 상징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좀 더 넓게는 중국의 황하상류 지역인 오르도스 및 만주의 일부인 요서지역까지 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유적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그쪽에서 수입한 것이든, 이미테이션 했던 어쨌든 접촉이 있었다.

 

이제까지 저의 블로그를 계속 읽으신 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직업에서 오는 노파심에서 정리해보았다(선생님들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 아직도 파지릭 유적에는 더 소개해야 할 무덤이 남아 있고(파지릭 1호분), 파지릭 유적 보다 백여년 빠른 바샤다르 유적과 약 삼백 년 정도 더 빠른 아르잔 1유적도 소개해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도 많이 빽빽거렸던 했던 흑해 북쪽의 유적도 소개하고 싶은데,,.

 

앞으로는 좀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다(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중 파지릭 유적과 흑해북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컬렉션 등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구경하실 수 있다. 꼭 가보시기 바란다. 워낙 크고 화려한 박물관이라서 그림만 보다 오실수 있으나 고고학방은 지하에 있다. 고고학 유물이 싫으면 다빈치 그림 부터 근현대 화가의 그림까지 그리스, 이집트 등등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비행기 값만 빼면 루블값이 거의 바닥을 기고 있어서 크게 비싸지 않다. 운하에서 배를 탈 수 있는 여름이 좋다..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음으로 유럽의 휴가철이 끝나는 8말이 더 좋을 듯도 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미라는 고르노-알타이 시 박물관에 있는데, 진열을 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워낙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서..)

 

 

김재윤의 고고학광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 (2010년 신문)

 

그림 2.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2(2010년 신문)

 

그림 3. 2500년 전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아즈벨레프 2019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해발 1500m 파지릭 5호에서 무덤구조를 보았다. 저의 포스팅을 계속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필자가 이미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이 무덤에는 마차가 출토된다. 마차를 통으로 넣기는 했는데, 완벽한 모습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분해해서 넣었다. 무덤에서 무덤방과 남쪽 벽 사이에서 마차의 난간이 확인되는데, 이는 처음부터 분해된채 들어갔을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무덤속에 분해한채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야기 드린다. 마차가 통으로 들어간 무덤이 나오는 지역은 시베리아 보다 서쪽에 위치한 곳이고,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료를 공개하도록 하겠다.

 

2500년 전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사륜마차 혹은 전차는 관심의 대상이다. 나무줄기에서 잘라낸 원시적인 고체바퀴가 아니라, 바퀴는 회전축과 다용도 바퀴살(34점), 바퀴둘레가 있는 마차이다. 바퀴의 둘레는 한판이 아니라 여러 개를 이어붙였다(그림 4-1).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는데,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차축으로 구성되었다. 여섯 개의 수평판자, 몸체, 캐노피, 멍에와 고삐를 달리 위한 고리로 연결되었다.

 

마차의 하부구조는 직경이 1.5m인 바퀴 4개가 고정축에 장착되었으며, 6개의 스프링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고정축의 끝에는 일종의 차축이 별도로 제작되어 부착되었고, 앞 바퀴와 뒷바퀴 사이에는 막대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그림1, 3). 차축은 원통형모양이다.

마차의 하부 구조위에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앞에는 운전자를 위한 좌석이 얇은 나무판자로 제작되었고, 등받이 부분에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조각된 플랫폼이 배치되었다. 등받이 부분의 플랫폼은 현대의 난간 모양인데, 마차 운전석 뒷면 사방에 둘러져 있다(그림1, 3). 운전석 뒷부분 난간 뒤에는 높은 기둥을 올리고 마차의 뚜껑을 덮는 구조로 구성되었다. 뚜껑은 얇은 판자를 묶어서 덮었으며, 운전사 뒷자석과 가까운 낮은 곳에도 유연하게 묶은 나무막대기를 묶어서 돌렸다. 마차의 부속품들은 아주 단단하게 묶은 것은 아니지만,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차는 앞에 포크처럼 달린 길이 3.2m의 두 개의 막대기로 말 두 마리가 끌 수 있다. 두 개의 막대기는 길이 1.6m의 막대기로 고정되어 있다(그림 2의 오른쪽).

 

 

그림4. 1952년 파지릭 5호분의 복원하는 모습 바퀴(1)와 마차의 상부지지프레임(2) (국, 니콜라예프, 2012)

 

 

마차 바퀴는 분해된 채 발견되었다(그림 4-1). 마차가 분해된 채 무덤속에 넣어진 것은 무덤에서 확인되는 배치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었는데 말이나 황소가 산길을 따라서 끌었을 것이다. 마차는 부피가 컸기 때문에 산이라도 길이 있는 비교적 편평한 곳에서 운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차의 전체 길이는 3.05m, 바퀴는 1.95m, 높이는 2.65m이다(그랴즈노프 1955).

 

그런데 마차의 바퀴 끝에 끼운 원통형 모양의 축은 길이가 대략 35~40cm인데, 마차가 확인된 5호 무덤 외에도 1~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실제 마차는 5호에서만 확인되었다.

 

2500년 전 마차도 대단해 보이지만,  시베리아에서 마차의 존재는 이보다 더 오래된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 문화 바위그림에서 확인되고, 카라숙문화에서는 마차의 부속품 등이 출토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Грязнов М.П. 1955,  Колесница ранних кочевников Алтая // СГЭ. 1955. Т. VII. С. 30-32.(그랴즈노프 1955, 알타이의 초기 유목민의 마차)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2012, Повозк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Книга 2. CПб: ИИМК РАН, «Периферия». 2012. С. 454-457(국, 니콜라예프, 2012, 파지릭 유적 5호분의 마차)

Азбелев П.П. 2019,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 С. 279-286. (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의 백조)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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