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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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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 통나무관은 1기가 확인되었고 다른 아이는 6호, 12호, 14호 석관묘에 매장되었다. 특히 6호의 아이는 두향이 남향을 하고 있다. (앞에서 14호를 나무무덤방으로 잘못 표기했음. 14호는 석관묘(돌널 무덤임)이다)

 

이제 기억이 안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에도 나무무덤방에 아이가 매장되었다. 이 아이는 함께 부장된 유물이 거의 어른과 동일하다. 소형무기(활과 화살, 투부, 검) 및 목걸이, 고깔모자, 귀걸이 등을 착용한 상태였다.

 

2020/02/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남자아이 무덤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남자아이 무덤

러시아 알타이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에 한 곳인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무덤의 바로 옆 북쪽에 바짝 붙어서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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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 1호(위)와 2호(아래)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 6호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 유적 12호

 

그림 4. 바르부르가지 I유적 14호

 

 그러나 이 유적의 어린아이 무덤에는 거의 유물이 없었다. 1호가 속한 그룹은 기원전 5세기, 14호는 기원전 4~3세기이다. 12호는 14호와 같은 그룹이지만 13호와 함께 만들어져서 14호보다 더 빠를 수 있다. 그래도 100년 정도이다. 기원전 아크 알라하–1유적의 2호가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 유적이기 때문에 유물이 많지 않은 어린아이의 무덤은 시간 차이로 설명할 수 없다. 통나무관 자체가 유물 부장을 많이 할 수 있는 무덤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석관묘 속의 아이는 아크 알라하-1유적 2호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

아크 알라하-1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I유적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조차 유물의 차이가 확인되는 것은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 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를 비교한 이유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조차 유물차이가 나는 것은 부(富)를 가지고 있는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의 차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크 알라하-1유적 2호분과 같이 어린아이가 많은 유물을 부장할 수 있는 이유는 어른이 물려주었을 기 때문이다.

 

유스티드 XII유적,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 확인되는 통나무관의 어린아이 무덤에는 유물이 많지 않다.

 

특히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나무무덤방도 아니고 석관묘에 아이를 매장했다.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에서 통나무관에 묻은 어린아이는 부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통나무관도 아니고 나무무덤방도 아닌 석관묘에 묻힌 아이는 그런 부활의 의미 조차 부여 받을 수 없는 존재였을까?

 

 

 

무덤호수

성별

그룹

무덤시설

말 매장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통나무관

0

 

5세기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아이(남향

2그룹

나무무덤방

0

 

 

7

남녀

나무무덤방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0

 

 

9

여성

3그룹

석관묘

0

 

 

10

여성

나무무덤방

1

 

 

11

남성

나무무덤방

0

 

 

12

아이

석관묘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1

 

4~3세기

14

아이

석관묘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1

 

 

16

여성

 

석관묘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석관묘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0

 

 

19

 

투르크

 

 

 

20

 

투르크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0

 

 

22

남성

나무무덤방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2

 

 

24

 

무덤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1

 

5세기

26

남성

5그룹

나무무덤방

2

 

 

27

여성

나무무덤방

0

 

 

28

여성

나무무덤방

0

 

 

29

여성

나무무덤방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의 유스티드 XII유적 8호 소년의 머리에는 나무로 된 투구모양의 모자(길이 8~9cm, 두께 0.5~0.6cm)가 발견되었다. 귀부분은 따로 끼울 수 있게 제작되어서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되었고, 머리꼭대기에는 말 장식이 부착되었다.

 

이러한 유물은 이 유적의 7호분과 인접한 울란드릭크 II유적 8호와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에서만 출토된다.

7호 역시 무덤방 크기(100×79cm)가 매우 작은 무덤방으로 보아서 아이의 무덤이고 비슷한 모자를 쓰고 묻혔던 8호 남자아이와 무덤 부장품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남성아이는 전투용 칼, 목제 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었으나, 7호에는 없다. 여성아이이다.

 

2020/10/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고분 XII] -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여성 1인 무덤(19호, 10호),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매장된 무덤(20호), 여자아이 2명(11호), 여자아이 1명(6호)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매장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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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 무덤방 평면도, 1-목제 쟁반 편, 2-목제 잔의 고리모양 손잡이, 3-목제 잔의 동체부 편으로 청동클립이 끼워져 있음. 4-자작나무 껍질, 5-말 모양의 조각이 붙은 목제 모자, 6, 7-산양화된 사슴조각, 8-항아리편, 9-철제 칼 칼, 10-나무상자형의 목제관, 11-목침, 12~14: 금박 편, 목제(1,2,5,6,7,10,11), 목제+청동(3), 자작나무껍질(4), 토제(8), 철제(9)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의 유물, 그림1과 번호일치

 

유스티드 계곡과는 멀지는 않지만 다른 강인 울란드리크 계곡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10~12cm(두께 0.6~0.9cm)이다. 1점은 머리상부에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다른 한 점은 없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모두 남성(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과 소년의 무덤(울란드리크 II유적 8호)에서 출토된 것으로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을 먼저 발굴했기 때문에 아마 유스티드 XII유적을 발굴하기 전에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울란드리크 III유적과 울란드리크 II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처음에 ‘빗모양 모자장식’이라고 불렸다(그림3). 사실 이 유물은 모자와 같이 입체적이지 않고 납작하다(유스티드 XII포함). 그래서 가죽이나 펠트 같은 곳에 덧대어 모자를 장식했던 유물로 생각되었다. 더욱이 두 유적에서는 머리의 위치에서 발견되지 않고, 동물모양이 붙은 것(그림 3-왼쪽)은 피장자의 가슴부위, 붙지 않은 것은 피장자와 떨어져서 목제쟁반에 놓인 곳 위에 출토되었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위에서 확인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3. 울란드리크 III유적(좌)과 울란드리크 II유적(우) 출토 모자장식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그림 2-7)유물은 확실히 ‘빗(comb)’보다는 투구모양에 가깝다.

쿠바레프는 머리의 모자장식에 목제 동물문양을 부착하는 것은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 모자장식을 떠올렸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모자 중에서 모자부분은 펠트로 만들어지고, 상부는 화려한 상상의 동물인 그리핀이 사슴을 물고 있는 모자장식의 평면모습이 유스티드 XII유적 및 울란드리크 III과 울란드리크 I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비교할 수 없이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은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비슷한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파지릭 2호분이 이들 유적보다 이르다고 생각해서이다.

 

2020/03/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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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들 유물의 공통점은 10cm내외의 소형이며, 납작하다.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울란디크리 III유적 1호분만 성인남성이다. 출토위치도 피장자의 주변이 아니고 그릇 두는 공간에서 출토되었다. 또 모자장식에 동물문양장식도 없다. 혹히 이 남성이 아이일 때 쓰던 물건인데 그냥 나중에 발견해서 넣은 것일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알타이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에 한 곳인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무덤의 바로 옆 북쪽에 바짝 붙어서 무덤이 1기 있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으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아래의 포스팅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배치도를 볼 수 있다)

 

2020/0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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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지역의 한 갈래인 파지릭문화에서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무덤은 모두 현재까지 5인만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무덤 부장품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말도 부장되었고, 허리띠와 버클도 착장했으며, 고깔모자도 썼고 고리트(활 및 화살통)도 부장되었고, 이미 소개된 동검도 부장되었다. 아이의 크기에 맞게 축소시켜서 부장되었다.

주인공은 시베리아의 남자아이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복원도

 

 

아크 알라하 1유적에 묻힌 사람들과는 친족관계로 생각되며, 1호분 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무덤은 만들어졌다.

 

적석(돌을 쌓은 둘레)의 직경은 11m이다. 앞에서 포스팅을 읽으신 분은 알겠지만 읽지 않은 분은 뭔소리인가 하실텐데.

스키타이 문화는 표토에 무덤의 가장 윗 부분이 약간씩 드러나 있다. 무덤의 구조 때문이다. '표토'라고 부르는 땅의 가장 윗부분을 벗기면, 무덤을 만들었던 흔적이 나온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무덤 구덩이를 파고 관을 넣고 돌을 쌓아서 마무리 하기 때문에 표토를 벗기면 돌의 범위가 드러난다. 고고학에서는 돌이 빼곡하게 쌓이면 ‘적석(積石)’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발굴을 하기 위해서 땅의 제일 상부에 해당하는 표토를 벗기면 적석은 금방드러난다. 그 직경이 이 무덤에는 11m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가까운 곳에 아크 알라하 5유적이 있다. 그 곳의 2호분도 아이의 무덤인데, 드어난 적석의 직경이 6m이다. 거의 2배가 차이가 난다.

 

땅을 파고 무덤을 축조하는 것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현재도 아파트을 지을 때 가장 돈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과정이 지하를 팔때라고 한다. 우리나라 토목기술은 세계제일등이 아닌가? 그래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흩어져서 살았던 유목민들이 노동력을 모으는 것은 그것을 컨트롤하는 타워의 힘이다.

(그 당시 컨트롤타워를 지배하는 것은 정보, 재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무덤을 크게 만드는 문화일수록 무덤의 크기는 계급차이로 생각하기도 한다.(필자는 좀 다른 생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드러난 무덤의 크기는 같은 아동의 무덤이라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더 크고 부장품도 더 많고 성인과 가깝다.

같은 문화에서 비슷한 연령의 아이 무덤이라도 무덤크기와 부장품이 차이가 있다.

그것이 발굴로 알게 된 사실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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