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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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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시베리아의 해발 2000m 알타이에 위치한 알라-가일- 3유적은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서 있다. 그 중에서 5호는 가장 먼저 생긴 무덤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재갈과 재갈멈치의 형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11기의 무덤이 동시에 생겼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1호는 돌널무덤인데, 무덤에서 발견된 허리띠의 버클 장식(그림 1-6,7)과 끈을 끼워서 고정하는 판(그림 1-5)는 기원전 4세기의 것이다(267).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에 가까운 버클의 앞판 장식(그림 1-20)은 추야강과 우르술 강 일대에는 보이지 않던 유물이다. 그 이전(기원전 6~4세기)에는 허리띠 방형의 장식판만(그림 1-11, 13) 달았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장식성이 강한 장식판을 달았다. 동물문양(그림 1-1), 기하학적 문양(그림 1-3), 꽃 문양(그림 1-5) 등이다.

울란드리크 I 유적의 5호에서는 가죽 끝의 끝에 청동고리가 연결(그림 1-8)된 채 발견되었다. 가죽끈은 청동칼과 연결되었던 유물이다.

 

그림 1. 추야강과 우루술 강 유역의 띠(허리띠 및 기타)의 여러 부속품, 20,21-알라가일-3 유적 1호분.

 

알라-가일-3유적의 1호는 5호묘와 달리 돌널무덤이다. 1호에서는 보기 드문 유물도 발견되었는데, 불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그림 2-9,10)이다. 어떤 유물을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조각(그림 2-11, 12)이 발견되었는데, 두텁고, 꿰맨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나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1호분, 1: 알라-가일-3 유적의 무덤배치, 2: 무덤의 덮개와 단면도, 3: 무덤 내부의 모습, 4-뿔제 사슴, 5-7: 뿔제 연결고리와 버클 장식판, 8-꼬인 가죽, 9,10-불을 피우는 목제품, 11, 12-두꺼운 가죽, 꿰맨 흔적이 있음

 

*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무덤이 일렬로 열을 이루는 현상이 확인된다. 그런데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해발 2000m이상의 기원전 5세기 이후인 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이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가량의 발르익-소오크 (1, 2) 유적, 보르탈 (1,2) 유적 등에서는 아직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해발 1000m가량에 위치한다.

 

그런데 해발 2000m이상에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알라-가일-3 유적(그림 3)에서는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발견된다. 무덤이 일렬로 서 있는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 이후로 바르부르가지 I 유적,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무덤이 일렬로 서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기원전 6~5세기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거대 고분은 해발 1500m 가량의 높이에서만 발견되며, 무덤을 열로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 보다 높은 해발 2500m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3 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이제까지 유적을 종합한 결과로 쿠바레프, 폴로스막, 루덴코, 그라즈노프 등(위 유적의 저자)은 언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라-가일-3 유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재갈멈치이다.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화살촉,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등으로 유적의 늦고 빠름을 판단했다. 알라-가일-3유적의 5호(그림 1)와 알라-가일 유적의 11호묘 출토의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2)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빠른 형식으로 보았다.

알라-가일 유적 11호 재갈을 연결하는 구멍(그림 1-1)은 크기가 다른 2개로 큰 구멍의 형태는 원형이라기보다는 약간 네모꼴에 가까운 것과 다른 쪽은 원형이다. 구멍이 2개인 재갈멈치, 양쪽 구멍의 형태가 다른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른 재갈멈치(그림 1-4)의 단면은 원형이고,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와 다르다.

 

 

그림 1. 알라-가일 유적 11호, 1- 무덤 평면도, 2-청동제 재갈과 부착된 가죽, 3-청동과 철로 만든 검의 손잡이, 손잡이의 프레임은 청동, 안쪽 줄기는 철제로 제작됨. 4, 철제 칼, 5-가죽 옷 조각, 6,7-목제 재갈멈치, 8-유적 6호 무덤의 평면도와 단면도

 

 

알라-가일-3유적 5호묘의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하는 부위의 구멍(그림 2-2)좌우가 다르며, 재갈멈치 역시 장식성이 가미된 것이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5호, 1-청동재갈멈치, 2,3-뿔제 끈 연결고리, 4-뿔제 재갈멈치, 5-두께운 금판, 찍은 문양, 6-8: 청동제품, 9-황금 장식판, 10~12: 홍옥제 구슬 

 

 

그림 3. 알라-가일-3 유적 무덤 배치

 

쿠바레프는 이러한 정황을 들어서 알라-가일 유적 11호와 알라-가일-3 유적 5호가 알타이에서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라-가일’ 유적은 이 명칭이 붙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인데, 유적명 뒤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알라-가일-1 유적이다. 모두 7기의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1호를 포함한 4기가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명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행정구역명칭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알라-가일-3 유적과 같은 해발고도에 위치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Мартынов А.И. (ред.). Южная Сибирь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ую эпоху, 1985 (마르티노프 외 1985,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시베리아 남부)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고고학이란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역사학과는 달리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연구한다.

고고학에서는 00문화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에 대해서 앞서 포스팅 한 바 있는데,, 환단고기 비판과 같이 묶여서 여기서 다시 설명한다.)

고고문화를 최초로 정의한 것은 소련이다. 고고문화는 동일시대로, 같은 지구에 분포하며, 공동의 특징을 가지는 유적과 유물의 복합체를 가르킨다(몬가이트 1955). 중국고고학은 고든차일드와 소련고고학의 고고문화 개념을 받아들였다(崔種圭 2008, 大貫靜夫 2008).
  
 예를 들면 가라는 유적에서 A, B, C라고 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와 가장 유사한 조합의 유적이 모이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유형이 모이면 문화가 될 수 있다.
즉 유형은 유사한 유적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이야기 하면 그러하다.

그림을 잘 보면 왼쪽과 오른쪽에서 출토된 동그라미가 완전하게 같지는 않다. 하지만 유적은 모두 ABC문화이다. 둘을 같은 문화로 보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묶을 것인가 하는 것이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다.


 유형은 고고문화로 가기 이전의 소극적인 개념이다. 어떤 지역에 비슷한 유형이 모이면 지역적 유형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시간대에 비슷한 유형이 모이면 시간적인 유형이 될 수도 있다. 유형이 집합되면 비로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는 유형을 곧바로 문화로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이야기 해보면, 남아 있는 고고학은 물증사실을 통해서 옛 날 일을 추론하는 것이다. 논리정연하게.

필자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X, Y축을 놓고 빠진 곳의 상태를 고려해서 어디에다가 가장 정확하게 그 유물과 유적을 가져다 놓는가 하는 것과 함께 이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빠진 곳이란 현재 모든 유적이 발굴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날라 가 버린 것도 상당할 것이다. X축은 지역이고 Y축은 시간이다.
그래서 모든 설에는 A가 있으면 그를 반대하는 B 의견이 있다. 인문학이니 다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단, 논리적이라면.(2012년환단고기는 X,Y축에 대한 개념없음).

늘 생각한다. 모든 논거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다 같이 가보는 것.
왜 같이 가서 봐야 하는가? 안봐서 모르겠다고 할 수 있으니 반드시 반대 의견자와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가서도 싸울 것이다. 이건 단순히 이 순간만을 보아서 그렇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설에 대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답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인문학인가 싶다. 고고학은.


그런데 만들어질까 타임머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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