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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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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페세르나야 강과 페르바야 우툐스나야 강 유역

케마 강에서부터 이 강의 하류까지 북쪽으로 13~15km 떨어져 있다. 청동기시대 교통로에는 우툐스노예 토성과 미스 알렉산드라 2중벽이 남아있다. 발해시기의 유적은 야수 성곽이다. 이 지역 교통로를 처음 연구한 사람은 아르세네프다. 고대의 교통로가 있는데, 강을 넘을 수 있는 여울 근처에 성곽을 지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성곽은 주로 교통로의 바로 옆이나 그곳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당연히 이곳에는 육로와 해안가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있었을 것인데, 성곽이 도로가 있던 시기의 것인지 아니면 도로가 다른 성곽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암구 강의 하류까지는 70~80km 떨어졌는데, 이 도로는 해안가와 거의 붙어 있고 편평하다. 지금까지도 해안가 언덕은 매우 습한 흙으로 전부 풀로 뒤덮여 있는데, 힘들 길이다. 이곳으로 지나는 바다길은 20세기 말까지 이용되었다.


각 강유역의 좀 더 정확한 성의 위치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의 성곽 1

 http://암구강 유역의 성곽 1



9) 암구 강 유역

암구 강 유역은 다른 강 유역과는 달리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과 연결되지 않고, 서쪽으로 가는 고개도 없다. 마시모프카 강 상류에서 끝난다. 암구 강의 지형적 특징에 따라서 언덕을 넘어서 해안가를 따라서 올라가는 교통로가 있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이 도로에 있던 유적이 소프카 류브비(리도프카 문화층),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미스 테플리이(리도프카 문화층)가 있고, 중세시대에는 소프카 류브비(여진 층), 미스 테플리이(말갈 층), 말라야 카르마, 카라민스키 흐레베트 유적 등이 있다. 이 길은 지보피스나야 강 하류까지 가장 짧은 길인데, 9km를 넘지 않는데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아르세네프는 여행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암구 강에서 쿠수누Кусуну 강까지 길에서 절벽이 바다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대의 도로가 있다. 수혈이 있는데 그 크기가 큰 걸음으로 300걸음 정도 되고 깊이는 약 4.3m 정도 된다. 또 다른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확실히 고대의 도로는 소욘(지보피스나야 강)강으로 이어진다. 성곽이 있는 곳은 교통로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케마 강 하류에서 암구 강 까지의 청동기시대부터 발해시기 교통로는 바다를 따라서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바다와 인접한 강의 하류에 성곽이 축조되었다. 성곽 간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은데, 바다로 들어가는 강의 하류에 입지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성지 사이의 거리가 9~15km도 있고, 휠 씬 더 벌어진 것도 있다. 산지성은 먼 곳을 감시하거나 관찰하는 방어시설용이고, 해안가 평지성은 항구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암구 강 유역에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고 교통로는 해안가 길뿐이다



 

10)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

세셀레프카 강, 세바스노프카(Севастьяновкa, Sevast'yanovka) 강과 지보피스나야 강을 포함하는데, 시호테 알린 산맥과는 관계되지 않는다. 암구 강과 마시모프카 강은 서로 연결된다. 아르세네프는 현대의 지보피스나야 강의 하구는 고대 항구로 그곳에 소욘스코예, 세셀레프스코예, 지보피스노예 성곽이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암구 강에서부터 시작된 해안가 교통로는 이 강 유역까지는 청동기시대부터 발해 및 여진시대까지 모두 이용되었다. 이 성곽은 강의 하류를 통제하면서 보호-방어하는 역할이고, 바다로 들어가는 문지역할이다. 해안가 길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마시모프카 강와 소볼레프카 강 까지 이어진다.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에는 동해안을 따라서 올라가는 교통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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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요시나야 강 유역


아르세네프는 이 곳에 고대의 길이 있다고 했다. 벨렘베 강 하류에서 대략 11km떨어진 곳에 지류인 자비타야(Забытaя, zabytay) 강이 있고, 그곳에는 18세기의 도로가 지나는데, 바닷가인 유즈노-우수리스키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길은 탸요시나야 강을 따라서 키예프(Киев, Kiev)고개까지 이어지고 콜룸베 강의 상류로 나간다. 이 강의 중류역타요시카(Таежкa, Taejka) 1~5과 하류우스티-벨림베 유적이 있는데 기원전 10세기의 리도프카 문화(댜코프 2000)의 것으로, 유적이 존재하는 것은 강을 따라서 교통로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따라서 타요시나야 강 유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서와 영동을 연결해서 바다까지 이르는 교통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키예프 고개에서부터 동해 바다로 향한다.

  


6) 말라야 케마 강 유역


지형학적 특징으로 시호테 알린 산맥이 영서지역과 연결되는 곳이 없다. 이 곳에는 타요시나야 강 하류에서 말라야 케마 강 하류까지 해안을 따라서 있는 교통로가 있다는 것을 성곽이 증명한다. 발해의 성곽으로 보호감시 뿐만 아니라 항구의 역할도 한다. 이 길은 현재까지도 이용되지만, 고대의 교통로가 현대의 도로보다도 더 짧고 빠르다.

말라야 케마 성지로 난 길은 끊어지지 않고 이 강의 북쪽에 위치한 케마 강 하류와 시토르모바야 항구까지 이어져서 북쪽으로 계속된다.


 

7) 케마 강 유역


지형학적 특징으로 인해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지역에서 고립된 곳이다. 서쪽으로는 접근하는 길이 없으며, 케마 강의 상류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아르세네프는 紅鬍子과 싸울 때 그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수계 중에서 우데기 족이 이용하던 케마 강의 서쪽을 통해서 아르무 강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케마 강의 수계에서는 시호테 알린 산맥을 넘어가면 말라야 스베트로보드나야(Малая Светловодая, Malaya Svetlovodaya)강으로 연결되고, 거기서 비킨 강 상류로 이어진다. 발해시기에 케마 강의 지류인 탈니코바야 강에서 방어역할을 하는 곳이 우스티-일모 성곽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길은 스토르모바야(Штормовая, Shtormovaya) 항구가 있는 바다까지 이어진다. 항구에서는 해변을 따라서 북쪽으로 갈 수 있는 해안로가 있다. 항구와 해안가에는 켐스코예-돌리노예 성곽과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이 2기가 있다. 매해 강을 건널 수 있는 장소가 바뀌기 때문에 케마 강을 건너는 것은 힘들다. 이곳은 강의 가장 하류 보다 약간 위쪽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나 말이 필요한데, 발해인과 여진족은 배로 운반하는 것에 아주 능했다.

따라서 케마 강 유역에는 2개의 길을 설정할 수 있다. 하나는 시호테 알린 산맥을 넘어서 아르무 강과 비킨 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안길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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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드나야 강 유역


루드나야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지역인데, 이 강 유역의 서쪽은 볼샤야 우수르카 강의 지류와 맞닿은 곳이다. 강 상류 지점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지만 산이 높고 험준하기 때문에 이곳에는 고고학적 유적이 없다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모나스트르카-1~4, 루드나야 프린스탄(Рудная Пристань, Rudnaya Pristan'), 므라모르나야(Мраморная, Mramornaya), 미스 브린네라(Мыс Бриннера,Mys Brinnera), 루체이 페르보마이스키(Ручей Первомайский, Ruchey Pervomayskiy), 달네고르스크-투르바자(Дальнегорск-турбаза, Dal'negorsk-turbaza), 보엔느이 고로독(Военный городок, Voyennyy gorodok), 도조르나야(Дозорная, Dozornaya), 프리모르스카야(Приморская, Primorskaya)-1, 2, 보도라즈젤나야(Водораздельная, Vodorazdel'naya)유적)은 이 강의 중류와 하류 역에 위치한다


루드나야 강 유역. 왼쪽 지도와 비교하면 대략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루드나야강 유역의 성곽 유적은 다음을 참고하면 된다. 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접근하기가 쉬운 곳은 남쪽에서 오는 곳이다. 테튜힌 고개를 통해서 이 곳으로 들어오면 모나스트르카 강으로 갈 수 있는데, 바다로 가는 아주 적합한 길이다.

루드나야 강의 하류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높지 않은 리도프카 고개가 있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리도프카 강의 하류가 있고, 그 곳에 청동기시대 유적인 리도프카-1 유적과 두브로빈스코예 토성이 있다. 이 시기의 교통로는 리도프카 문화의 마을 유적인 카멘카 유적이 있는 리포보이(Рифовой, Rifovoy) 곶 까지 이어지고, 오프리츠닌카(Опричнинка, Oprichninka)강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방어기능을 하는 토성이 있는데 이를 증명한다.


 발해시기 및 그 이후가 되면 이곳의 교통로는 좀 더 복잡해진다. 모나스트르카야 도로는 발해시대와 발해 후 시기의 4에스톤카, 모노마호프스코예, 바시코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성곽성곽이 표식으로 남아 있다


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강유역: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http://2 장. 루드나야 강 유역의 발해성곽 특징


이 도로망의 길이는 60km를 넘지 않는다. 모든 성지는 각기 지점마다의 성격이 있다. 바시코프스코예 성지는 루드나야 하류와 루드나야 항구를 통제하고 지킨다. 프리스탄스코예 성지는 강의 좌안에서 하류부근과 항구를 지킨다. 이 곳에는 여진족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루드나야 강 유역은 북쪽지류인 모나스트르카 강의 교통로를 통해서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으로 통한다. 길은 고르부샤 강을 따라서 나지막한 고루부샤 고개를 넘어서 체레무호바야 강(드지기토프카 강의 오른쪽 지류)의 수원까지 갈 수 있다. 체레무호바야 길은 체렘샤니 발해 성지까지 내려갈 수 있다. 아르세네프에 의하면 루드나야 강 유역과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을 모두 방어하는 고르부샤 고개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성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는 대략 64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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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안로

앞 서 설명한 고고학 유적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역에서 강을 따라서 움직이는 육로와 바다로 가는 해로 즉 2개의 교통로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가능하다. 육로를 복원할 수 있는 강은 모두 20개로 남쪽의 제르칼나야 강에서부터 700~800km 떨어진 가장 북쪽의 사마르가 강이다. 필자는 지난 35년간 이 지역을 선사시대에서 고대 교통로와 관련된 유적을 연구했다



 

1) 제르칼나야 강 유역


 지형학적 특징으로 인해서  연해주에서 아무르 강 유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고개를 통하는 것이 편했는데, 이 강은 바다의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바다와는 직선거리로 약 80km가량이다. 베뉴코바 고개는 청동기시대 남서쪽과 서쪽을 동쪽과 연결하는 길목이었지만 이 시기의 성곽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발해시기에 축조된다. 고개는 아무르 강 유역으로부터 들어오는 길로서 우수리 강과 지류인 파블로프카(Павловкa, Pavlovka) 강도 이곳과 통한다. 서쪽에서부터 들어오는 도로는 우수리 강 유역의 절벽성인 미스-우보르카(Мыс-Уборка, Mys-Uborka), 시부차르(Сибучар, Sibuchar), 벨쵸프스코예(Бельцовское, Bel'tsovskoye)성곽 등으로 알 수 있다. 이곳은 아무르 강에서 바다로 가는 길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한다.

베뉴코프가 이곳을 잘 이용했다. 그는 길 원주민이 지나다니는 길 뿐만 아니라 중국 사냥꾼 등이 이용하는 길도 잘 알았다. 제르칼나야 강 유역에서 고개에서부터 바다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마을 유적인 오를노예 그네즈도(Орлиное гнездо, Orlinoye gnezdo) 제르칼나야-카리에르(Зеркальная-Карьер, Zerkal'naya-Kar'yer), 우스티노프카(Устиновка, Ustinovka)-4, 수보로보(Суворово, Suvorovo)-3, 4, 6, 8, 퍄느이 클류치(Пьяный Ключ, P'yanyy Klyuch), 우스티-제르칼노예(Усть-Зеркальное, Ust'-Zerkal'noye)-4, 우스티-제르칼노예 성곽(댜코프 1989) 등으로 보아서 선사시대부터 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지도.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제르칼나야 강 유역.(4~6: 고르노레첸스코예 1-3성곽, 7, 시바이고우 성곽, 8, 사도브이 클류치, 9-보고폴예, 10제르칼나야 토성, 11 우스티 제르칼나야 , 12-파디 시로카야 성곽)

 좀 더 자세한 지도는 http://2장.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성곽 을 참고. 각 성에 대한 설명도 앞선 포스팅 참고



 그리고 제르칼나야 도로의 표식이 되는 곳은 절벽산 성인 스칼라 데르수 성곽이다. 이 곳은 청동기시대 부터 마을이 있어왔던 것이고 주변 지역을 감시하고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적인 입지 탓에 성벽은 따로 설치되지 않았다. 제르칼나야 강의 하류는 지류로 인해서 북쪽, 동쪽, 남동쪽으로 나눠진다. 동쪽은 제르칼나야 강의 본류로 동해로 흘러가는데 우스티-제르칼노예 성곽이 문지 역할을 한다. 남동쪽은 사도비 클류치 강과 브루실로프카 강의 상류와 맞닿아 있다. 아르자마소프카(Арзамасовка, Arzamasovka)강은 동해의 올가(Ольга, Ol'ga) 만으로 흘러간다. 북쪽의 지류는 제르칼나야 강에서 테튜힌(Тетюхин, Tetyukhin)고개로 남아가가서 루드나야 강의 지류인 모나스트르카 강 계곡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도 이용되었던 것인데 지역주민들은 Богопольская тропа(역자 주. 신의 풀밭길)’이라고 명명하였다. 현재는 걸어 다니거나, 수레 , 스키 혹은 말을 타고 갈 수 있을 정도이다.

말갈인들의 길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발해와 여진은 역사적 기록을 남겨 놓았다. ‘수서에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7세기 후반의 흑수말갈족에게는 李謹行 이라는 군인이 있었다. 그의 아들과 함께 중국과의 물자교류를 위해서 석도(石道)를 만들었는데, 시기는 발해건국이전이라고 되어 있다(보로비요프 1975, 샤프쿠노프 1968). 퉁구스-만주 국가인 발해는 지방 행정구역을 포함해서 자신의 전체 영역에 육로를 만드는 것에 아주 능하였다. 길은 세금을 걷고, 각 지방 간의 상업활동, 국민과 국가의 경계를 통제하는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필요한데 즉 외교적 활동, 정치적 활동, 가까운 국가나 먼 국가 간의 상업 교류나 군사적 목적 등에도 필요하다.

발해의 영역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동쪽에서 서쪽까지 2500km로 거의 방형이다. 발해의 북동쪽은 바다, 남동쪽은 통일신라, 서쪽은 거란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역사서에는 발해의 육상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신라도, 거란도, 영주도, 일본도가 있다고 한다(샤프쿠노프 1968). 


발해~동하국의 제르칼나야 도로는 베뉴코프스코예, 고르노레첸스코예-1~3, 시바이고우, 보고폴, 사도비 클류치, 브루실로프스코예, 제르칼느이 성벽, 파디 시로카야 성벽 등이 관련되었고, 전체가 하나의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다른 지역과 고립되지 않았다. 서쪽과 남서쪽은 우수리 강과 그 지류인 볼샤야 우수르카 강, 파블로프카 강, 쥬라블레프카(Журавлевка, Zhuravlevka)강이 연결되어 베뉴코보 고개를 통과하면 커다란 교통로와 연결된다. 그곳에는 콕샤로프크코예(Кокшаровское, Koksharovskoye)-1~3, 사라토프스코예(Саратовское, Saratovskoye)-1,2, 우보르카-돌린나야(Уборка-долинная, Uborka-dolinnaya), 주라블레프스코예(Журавлевское, Zhuravlevskoye) 오크라인카(Окраинка,Okrainka), 플라호트뉴킨스코예-돌린노예(Плахотнюкинское-Долинное, Plakhotnyukinskoye-Dolinnoye), 플라호트뉴킨스코예-고르노예(Плахотнюкинское-Горное, Plakhotnyukinskoye-Gornoye)성곽 등이 자리 잡아서 대규모 교통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발해 및 동하국과 관련되어 있다.

발해는 대무예(719-737)와 대인수(818-830)가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고 그 곳에 솔빈부를 세웠다. 그런데 각기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이주 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통제해야만 한다. 다른 어떤 장소 보다도 베뉴코보 고개를 통해서 산으로 들어가는 문지 역할을 하는 곳을 통제해야만 했다. 산의 고개마루를 지키기 위해서 여러 성곽이이 들어서게 되었고, 군사적 목적 등 때문에 여러 장소에 성곽 뿐 만 아니라 사원도 축조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아르세네프는 이곳에 사원이 있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발해시기와 발해 멸망 후 시기에 이 지역에 고르노레첸스코예-1~3, 보고폴예, 사도브이 클류치 성지와 시네고르(Синегорье, Sinegor'ye)-1,2 유적, 우스티노프카 폴랴(Устиновка поля, Ustinovka polya)유적 등 대규모 취락 유적이 존재했다. 보고폴예 성곽에서 출발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북쪽으로 테튜힌 고개로 넘어간다. 이 고개를 지나면 루드나야 강 유역의 모나스트르카 강 쪽으로 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동쪽 방향으로 바다쪽 제르칼나야 항구로 가는 길이다. 바다로 가는 길에는 경계벽이 있어서, 이 길을 보호하고 있다.

이 지역이 동하국에 편입되었을 때, 시호테 알린 산맥에서 가장 큰 성지 중에 하나인 시바이고우 성지를 축조되었다. 여진족이 베뉴코보 고개를 넘어서 이곳까지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여진족은 길을 만드는데 매우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일종의 아스팔트를 도로에 깔아서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쿠날레이스코예 성곽에서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나 바 있다. 이 곳을 여러 해 동안 발굴했는데, 그 곳에서 궁정지 같은 큰 건물과 성벽 사이에 2~3cm 두께로 매우 단단하게 다진 흙을 자갈돌 위에 깐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여진족은 중국과의 전쟁 이후에 북쪽으로 통하는 육로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진족은 다른 퉁구-만주족(말갈, 만주족, 우데기족, 나나이족)과 마찬가지로 육로를 더 선호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강을 따라서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도 아주 능했다. 예를 들면 우데기족은 1950년대 까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발해인들은 육로와 수로 모두를 이용 하였다. 여진족은 여름에는 배를 타고 이동하고, 겨울에는 얼어 붙은 강위를 걸어서 이동하였다. 여진족에게는 두 수로 사이를 마차를 이용해서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이 잘 알려 져 있다. 강 상류에서는 말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힘든 곳에서는 소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고고학적 유물로 남아 있는데 마차 바퀴의 뚜껑 등이 그러하다. 수레 이용에 대한 흔적은 퉁구-만주족의 언어에도 남아 있는데, 몽골어와 여진어의 마차는 거의 유사하다. 두 수로를 이동하는 것은 큰 수레를 이용할 수 있고, 강을 빨리 건널 수 있다. 중국에서는 도로에 25km 사이마다 역참을 둔다. 하지만 동하국의 여진족은 새로운 영역에서 성곽 축조를 서둘러야 해서 이런 중국의 방법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곽 안의 큰 건물에서는 문에 이르기 까지 대로는 반드시 건설했다. 물론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서 문의 위치는 바뀔 수 있는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교통로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다 통하고 있다. 서쪽에서는 베뉴코바 고개를 통해서 우수리강 유역과 통하는 길이고, 북쪽에서는 테튜힌 고개를 통한 길, 남쪽은 브루실로프카 강의 상류를 통하는 것이다. 동쪽은 제르칼나야 항구를 통해서 바다로 가는 곳과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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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호테 알린 산맥의 지형학적 특징.

 

시호테 알린 산맥은 해안가를 따라서 북--동 방향으로 1200km 가량 뻗고, 8개의 연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너비는 300km에 달한다. 가운데 높이는 800~1000m이고, 가장 높은 부분(2078m)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역으로 토르도키-야니 산이다. 연해주의 중부지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으로 영동과 영서로 나뉠 수 있다. 아르세네프는 시호테 알린 산맥에 22개의 고개가 있다고 했지만, 현재 지도에서는 15개만 확인된다. 산맥의 서쪽 방향으로 흐르는 강(우수리, 이만, 비킨, 호르)은 길고 강류 량이 많은데, 산맥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무르 강으로 흘러간다. 산맥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제르칼나야, 루드나야, 드지기토프카, 세레브랸카, 타요지나야, 케마, 암구, 에딘카, 사마르가, 코피 강)은 짧고 유속이 빠른데 동해와 타타르 해협으로 흘러간다. 시호테 알린 산맥에는 작은 언덕은 없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은 아무르 강과 관련이 있고, 동쪽은 태평양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지형학적 특징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산과 통하는 주요 교통로의 방향설정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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