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그림 1.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표토를 벗기고 난 후의 적석모습. 오른쪽의 점선이 있는 부분이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이 있던 곳이다.

 

러시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성아이의 무덤이다. 어린아이의 무덤은 2500년 전 스키타이문화의 한 종류인 파지릭문화의 무덤이다.

 

무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발굴을 하는데, 발굴과정은 만드는 과정을 반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덤 만들 때 가장 나중에 한 일은 무덤구덩이를 돌로 덮었다. 뒤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돌을 덮은 흙이 쌓여서 표토층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표토를 벗기고 나면, 무덤구덩이를 채운 돌이 드러난다. 그 돌은 ‘적석’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제 알았다. 그 적석은 대개 둥글게 쌓기 때문에 직경으로 크기를 알 수 있는데 11m이다(그림1) . 표토에 드러난 무덤의 높이는 40cm이다.

 

 

적석을 다 드러낸 후에 알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상층은 큰 자갈돌을 넣었고, 그 이하에는 작은 돌들로 충전되어 있고, 무덤방과 가까운 곳에는 돌과 흙을 함께 섞어서 넣었다. 적석의 가장 중심부가 큰돌로 채워졌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의 가장자리를 돌린 돌(호석)의 범위는 직경이 약 9.4m이다(그림2).

 

그런데 왜 무덤구덩이가 정확하게 중앙이 아닐까?

 

그것은 묘광을 판 흙을 한쪽에 모아두고 그 위에도 돌로 덮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 내부에 흙도 돌과 함께 섞어서 무덤구덩이 안을 채웠다.

 

재밌는? 혹은 철학적 현상이다.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인가도 싶다.

그리고 지난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분석한 결과 가발을 부친 물질에서 내장을 구성한 성분이 추출되었다고 알려드린 바 있다. 이집트 미라가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고도 했다.

똑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림2.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구덩이와 호석. 가운데 긴네모꼴이 무덤구덩이고 가장자리가 무덤을 두른 호석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알타이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에 한 곳인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무덤의 바로 옆 북쪽에 바짝 붙어서 무덤이 1기 있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으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아래의 포스팅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배치도를 볼 수 있다)

 

2020/0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eastsearoad.tistory.com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지역의 한 갈래인 파지릭문화에서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무덤은 모두 현재까지 5인만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무덤 부장품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말도 부장되었고, 허리띠와 버클도 착장했으며, 고깔모자도 썼고 고리트(활 및 화살통)도 부장되었고, 이미 소개된 동검도 부장되었다. 아이의 크기에 맞게 축소시켜서 부장되었다.

주인공은 시베리아의 남자아이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복원도

 

 

아크 알라하 1유적에 묻힌 사람들과는 친족관계로 생각되며, 1호분 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무덤은 만들어졌다.

 

적석(돌을 쌓은 둘레)의 직경은 11m이다. 앞에서 포스팅을 읽으신 분은 알겠지만 읽지 않은 분은 뭔소리인가 하실텐데.

스키타이 문화는 표토에 무덤의 가장 윗 부분이 약간씩 드러나 있다. 무덤의 구조 때문이다. '표토'라고 부르는 땅의 가장 윗부분을 벗기면, 무덤을 만들었던 흔적이 나온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무덤 구덩이를 파고 관을 넣고 돌을 쌓아서 마무리 하기 때문에 표토를 벗기면 돌의 범위가 드러난다. 고고학에서는 돌이 빼곡하게 쌓이면 ‘적석(積石)’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발굴을 하기 위해서 땅의 제일 상부에 해당하는 표토를 벗기면 적석은 금방드러난다. 그 직경이 이 무덤에는 11m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가까운 곳에 아크 알라하 5유적이 있다. 그 곳의 2호분도 아이의 무덤인데, 드어난 적석의 직경이 6m이다. 거의 2배가 차이가 난다.

 

땅을 파고 무덤을 축조하는 것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현재도 아파트을 지을 때 가장 돈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과정이 지하를 팔때라고 한다. 우리나라 토목기술은 세계제일등이 아닌가? 그래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흩어져서 살았던 유목민들이 노동력을 모으는 것은 그것을 컨트롤하는 타워의 힘이다.

(그 당시 컨트롤타워를 지배하는 것은 정보, 재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무덤을 크게 만드는 문화일수록 무덤의 크기는 계급차이로 생각하기도 한다.(필자는 좀 다른 생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드러난 무덤의 크기는 같은 아동의 무덤이라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더 크고 부장품도 더 많고 성인과 가깝다.

같은 문화에서 비슷한 연령의 아이 무덤이라도 무덤크기와 부장품이 차이가 있다.

그것이 발굴로 알게 된 사실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여성무덤으로 미라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에서는 말 6섯마리가 함께 부장되었다. 재갈과 굴레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그러나 말은 매우 좁은 공간에 ‘우겨서’넣은 느낌으로 밀어넣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 9마리가 부장되었는데, 1차무덤방 안에서 확인되었고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말이 부장되어서, 이 공간을 ‘말무덤’으로 이야기 할 정도이다.

 

말 9마리 중에 7마리의 말 꾸미개가 출토되었는데, 5섯 벌은 말에 착장된 상태였고, 2벌은 말 옆에 둔 채로 확인되었다. 말 꾸미개는 1벌을 제외하고는 이미 소개했다.

말 안장의 앞에는 ‘메달’이라고 불리는 장식판이 붙었는데, 펠트(양모를 압축해서 만드는 소재, 이미 설명되었음)로 그리핀을 아플리케 조각으로 붙인 것이다. 안장의 옆에는 물고기 모양장식판이 있다.

 

아직 설명하지 못한 말 안장덮개는 늑대(그림2) 4마리를 양쪽에 각각 배치했다. 머리를 밑으로 향하게 둔 것이다. 길이가 85cm, 너비가 25cm이다. 늑대의 가장자리를 오려내고,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이다. 이빨을 드러낸 입, 발톱을 내고, 꼬리를 내린 채 앉아있는 맹수는 갈기와 몸통의 근육도 표현되었다(그림 1, 그림 2).

 늑대라고 발굴자는 이야기 하지만, 사실 표범이나 호랑이 일 수도 있다. 두 동물은 서식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구분될 것이다. 호랑이와 같은 고양이과의 동물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곳에 산다.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늑대를 장식한 안장덮개 복원도

 

이런 안장덮개와 화려한 말을 꾸며서 한 장례식은 무슨 의미일까? 그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의식이라도 있었나?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덮개 중 늑대장식

 

화려한 말은 어제 소개한 전사와 함께 부장되었다.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아래 그림에 다 표기했다.

기원전 5~3세기 사이의 출토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그림에는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창에 매단 적의 머릿가죽은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족을 묘사했던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3.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한 고원인 우코크 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인 남성전사 무덤을 살펴보았다. 한명은 15~16세의 소년이고, 또 다른 한명은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이다. 두명은 앞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에 비해서 그들의 직업에 대한 논란은 없다. 간단하게 전직 무사들이다.

 

 

알타이 산맥의 곳 곳에서 확인되는 스키타이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는 고고학적 연구 뿐만 아니라 인류학적인 연구도 있다. 두 연구가 일치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DNA연구가 점차 도입된다면 좀 더 선명해 지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 2인은 DNA방법을 도입해서 분석한 결과, 소년은 발굴당시에는 소녀라고 인류학적으로 판단했으나, 소녀라는 점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나온 사람들이 유로포이드라고 해서 2500년 전 알타이의 스키타이문화가 유로포이드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알타이 산에서 가장 최상급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앞으로 소개될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인골은 몽골로이드 때문이다. 바르코바와 고흐만(2001)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파지릭문화의 최상계층 사람들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계속 거주한 몽골로이드로 밝혀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유로포이드의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인접한 알타이, 투바, 서부 몽골의 일반 무사급과 비교했을 때 몽골로이드의 비율이 아주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은 비슷하며, 최상위 남성들에서만 확인되었다. 그 예외인 유적이 치키셰바는 일명 얼음공주라고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가 출토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을 꼽았다. 이 여성에서 고시베리아 몽골로이드의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치키셰바가 말하는 몽골계통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 중에 하나인 오쿠네보 문화 시기에 형성된 형질인류학적인 요소이다(1997).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는데, 둘 다 몽골로이드로 알려졌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고분의 크기로 보아서 파지릭 유적의 2호가 상위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를 제외하고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이 착용한 옷, 목걸이. 마구장식 등은 서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얼음공주는 알타이 원주민들이 박물관과 분쟁중이어서, 몽골로이드라는 것도 숨기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 2호분 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좀 더 조명을 받는 이유는 오롯이 혼자 묻힌 몽골로이드 여성무덤이기 때문이다.

 

 

 

2인의 여성을 제외하고 최상위남성들만 몽골로이드라고 주장하는 문제도 확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여성 무덤 수 보다 남성 무덤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총 22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성인은 남성 15명, 여성 6명, 유아~청소년기의 아이 5인이 발견되었다. 여성의 수는 적고, 평균수명(29.6세)은 남성(38.5세)에 비해서 낮기 때문에 상위계급의 남성들에서만 몽골로이드가 발견된다고 확정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던 파지릭문화에는 몽골로이드, 유로포이드 계통 사람들이 모두 발견되지만, 몽골로이드 계통의 남성들이 좀 더 큰 무덤에서 많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남성들은 유로포이드 남성전사들이었다.

 

 

그림1.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 기원전 5~3세기대 유적 출토품을 바탕으로 한 복원. 

 

 

참고문헌

치키세바 1997 Чикишева Т.А. К вопросу об 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ом сходстве населения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 сакской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общности // Новейшие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открытия в Сибири: Материалы V годовой итоговой сессии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СО РАН. Новосибирск: Изд-во ИАЭт, СО РАН, 1997. С. 314-320. (치키세바 1997, 파지릭문화와 사카문화 공동체 사람들의 인류학적 공통점에 대한 고찰)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유적의 무덤에서 나온 미라에 대해서 한 번 더)..제목은 그대로 번역해서, 재미를 느껴보시라고..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전사의 왼쪽 옆에는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고리투스)까지 확인되었다. 화살은 스스로 날아가지 못한다. 날려보낼 장치인 활이 필요하다. 소년관에서는 동물장식이 조각된 고리투스(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의 장식이 출토되었다. 그들의 활은 그리스인의 눈에도 매우 독특했던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7권의 64장에 박트리아인과 비교해서 스키타이인을 묘사했다.

‘박트리아인은 메디아 인과 아주 비슷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행군했으나 갈대로 만든 박트리안 산 활과 단창을 들었다. 스퀴타이(스키타이)족인 사카이(사카)족은 끝이 뾰족하고 빳빳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고유의 활과 단검 말고도 사가레이스라고 불리는 투부(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스키타이족을 사카이(사카)족이라고 부른다.

 

7권은 페르시아전쟁을 묘사했기 때문에 참가한 각 민족을 묘사해 놓은 것인데, 스키타이인에 대한 묘사는 고깔모자, 활, 단검, 전투용도끼로 박트리아인과 구분했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의 북쪽 면에는 스키타이인이 조각되어 있는데, 단검을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왼쪽), 왼쪽 허리에 활집을 차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중앙), 그 뒤에는 활집을 허리에 차고 전투용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오른쪽)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그림1.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 북쪽면

 

스키타이 인들의 활은 비교적 짧은데 75~100cm가량이고, 활은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나무와 심이 들어 있는 복합적인 구조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스키타이 활이라고 부른다. 나무 한 겹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활 보다는 훨씬 더 튼튼했다(G Rausing 1967).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 200년이나 앞선 아르잔-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이 유적은 투바라고 지역인데, 알타이 산 보다 북쪽이며, 상대적으로 바이칼 호수와 가깝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데, 초기 스키타이문화를 이야기 하게 되면 반드시 이야기 될 유적이다.

 

가장 유명한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는 통(고리투스) 장식은 그림 2의 유물이다. 흑해 북쪽의 켈레르메스 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길이 40.5cm, 폭은 22.2cm로 384.08g가량이다.

 원래는 원통형이었겠지만 1904년에 발굴되어서 당시에 그냥 핀 채로 보관되어서 여러분이 현재 보시면 그냥 장방형의 금제품이다.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겠지만....그래서 이 유물을 그냥 휙 보면 활집의 '밖'을 장식하는 유물인지 모르실 것이다.

 

 

그림 2.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흑해 북쪽, 켈레르메스 4호, 기원전 5세기, 이 유물은 원래는 활집이었기 때문에 둥글게 말렸다.

 

겉은 화려한 황금으로 꾸미고 그 안에는 가죽 혹은 나무 또는 나무껍데기로 만들었다. 사슴은 무릎을 꿇고 있고 사슴뒤에는 표범이 표현되었다. 이 유물의 원래 모습을 생각한다면 표범장식은 두 줄이 되고, 사슴문양은 3줄이 투조된 모습으로 설계한 것이 된다.

 

만드는 사람은 어디에 포인트를 둔 것일까?

표범일까? 사슴일까? 아니면 금딱지 보다는 안의 내용물에 더 신경을 썼을까? 하는..

보이는 것은 사슴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실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에 더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사슴만 그리면 끝날 텐데 구지 금박을 접어서 연결하는 부위의 작은 공간에 2줄의 표범을 촘촘히 새긴 것이다.

 

그리고 원래 중요한 것은 숨기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금딱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헤로도투스도 적어 놓았다. 아무도 별로 아직까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헛소리로만 여겼을 수도 있다....그리고 너무 머리가 아프다..어떻게 하지?.....

 

 

참고문헌

G Rausing, The Bow, Some notes Its Origin and Development.Acta Archaeological Lundesia 6. 1967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