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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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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지대 북쪽의 타이가 지역(산림)의 초기철기시대 문화인 아나닌스카야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가장 큰 논쟁인 것 같다. 동물장식으로 보면 유사한 점이 매우 많기 때문에 넣고 싶은 연구자가 있다. 그러나 이 문화에서 발견되는 성채 등의 마을 유적을 보면 스키타이 문화권(흑해나 알타이나 거주지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음)내에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것으로 ‘아니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렇다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봉분(쿠르간)’없는 무덤이 가장 특징이다. 가장 대규모 유적은 아흐미로보 Ахмылово, Akhmylovo 유적이다. 초기철기시대 이전인 청동기시대부터 유적은 만들어졌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이른 시기인 기원전 6~5세기 유적에서는 무덤 주변에 석주를 돌려서 묘역을 구분한 유적이 발견되었다. 무덤시설에는 나무로 구조물을 만든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부분 단인장이었으나 2인장이나 집단매장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뼈만 추려서 넣은 2차장 유적들도 많이 발견된다. 인골이 남아 있는 무덤에서 확인된 바로는 팔다리를 쭉 뻗은 자세(앙와신전)로 사자를 매장했다. 무덤 내에는 토기에 고기를 넣어두는데, 남성은 말고기, 여성은 소고기로 구분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무덤 안에 나무시설은 나무방(목곽)이나 나무관(목관)이었겠지만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무덤, 아흐밀로보 유적의 다인묘

 

그림 2.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무덤, 아흐밀로보 유적의 무덤시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이 지역과 가장 가까운 문화는 볼가 하류의 사르마트 문화인데, 그곳의 무덤은 흑해지역(물론 흑해에서 그리스 영향을 많이 받은 유적은 약간 다르다)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봉분(쿠르간)이 있고, 지하에 여러 무덤방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나닌스캬아 문화에서는 무덤을 덮고 그 위를 덮은 흙 또는 돌로 만든 상부구조인 봉분이 없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무덤을 쿠르간이라고 부르는데 봉분무덤을 일컫는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봉분이 없기 떄문에 무덤의 종류로 ‘쿠르간’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사자를 매장하는 자세도 차이가 있다.

이들 나름대로의 장례문화가 있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참고문헌

В.С. Патрушев, МОГИЛЬНИКИ ВОЛГО-КАМЬЯ РАННЕАНАНЬИНСКОГО ВРЕМЕНИ, 2011(파트루세프 2011, 볼가-카마강 유역의 초기 아나닌스캬아 문화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이 1호무 덤이다. 높이는 7.11m이고 직경은 동서120m, 남북 103m이다(그림1). 무덤은 역 사다리꼴 모양으로 최상부는 편평하다(그림 2).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평면도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외관

 

 

무덤 내부에는 직경 22~25m의 목제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일종의 텐트 모양이다(그림 3).

 

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평면도

 

그림 3에서 무덤 구덩이 바깥에 방사상으로 놓인 것이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위에 설치된 목제 구조물의 흔적이다. 불탄 목제 구조물 위에는 덤불로 덮혀 있었다. 그 가장자리를 점토로 덮어서(1~3cm) 둥글게 돌렸다. 무덤의 입구는 남쪽에서 계단모양으로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이다. 무덤의 남쪽에 점토 범위 바깥에서 말뼈가 여러 조각 나서 확인되었다.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목제 구조물과 점토를 걷어 낸 후의 모습

바닥의 유물: 1-철제품, 2-인골의 흔적, 3-철제품의 흔적, 4-청동솥, 5-마구와 안장부속품, 6-청동재갈, 7-금제장식판, 8-목제잔의 흔적, 9-황금 장식, 10-철제 검, 11-금제 장식판, 12-황금 사슴의 귀, 13-석고? 판, 14-황금구슬, 15-황금 비드, 16-황금 사슴, 17-청동판, 18-철제 검, 19-청동검, 20-황금 나사, 21- 황금 귀걸이, 22-석제품, 23-황금 구슬, 24-황금 장식판, 25-깨진 토기, 26-황금 펜던트, 27-청동 솥, 28-청동 화살촉

매장 III 유물(네모칸 아래의 번호): 1-토기조각. 2-토기의 손잡이, 3-토기편, 4-말 머리 장식, 5-황금구슬, 6-붉은색 구슬

 

무덤방에는 3곳에서 매장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인골이 매장된 곳의 시설이 따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 무덤과 유사한 구조의 다른 무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구덩이를 파고 인골을 매장한 상태이다. 특히 1호분은 인골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성별은 알 수 없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유물을 걷어내고 난 후의 모습

 

유물을 걷어내고 난 후의 모습(그림 5)에는 무덤의 좌측에 감실이 드러났다.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무덤의 입구에는 좌우에 구덩이가 있다. 왼쪽에는 황금 사슴 5마리, 오른쪽에는 마구와 안장 부속품이 들어 있었다. 1호와 2호 감실에는 각각 사슴 8마리와 다양한 그릇이 가득 들어 있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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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표토를 벗기고 난 후의 적석모습. 오른쪽의 점선이 있는 부분이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이 있던 곳이다.

 

러시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성아이의 무덤이다. 어린아이의 무덤은 2500년 전 스키타이문화의 한 종류인 파지릭문화의 무덤이다.

 

무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발굴을 하는데, 발굴과정은 만드는 과정을 반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덤 만들 때 가장 나중에 한 일은 무덤구덩이를 돌로 덮었다. 뒤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돌을 덮은 흙이 쌓여서 표토층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표토를 벗기고 나면, 무덤구덩이를 채운 돌이 드러난다. 그 돌은 ‘적석’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제 알았다. 그 적석은 대개 둥글게 쌓기 때문에 직경으로 크기를 알 수 있는데 11m이다(그림1) . 표토에 드러난 무덤의 높이는 40cm이다.

 

 

적석을 다 드러낸 후에 알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상층은 큰 자갈돌을 넣었고, 그 이하에는 작은 돌들로 충전되어 있고, 무덤방과 가까운 곳에는 돌과 흙을 함께 섞어서 넣었다. 적석의 가장 중심부가 큰돌로 채워졌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의 가장자리를 돌린 돌(호석)의 범위는 직경이 약 9.4m이다(그림2).

 

그런데 왜 무덤구덩이가 정확하게 중앙이 아닐까?

 

그것은 묘광을 판 흙을 한쪽에 모아두고 그 위에도 돌로 덮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 내부에 흙도 돌과 함께 섞어서 무덤구덩이 안을 채웠다.

 

재밌는? 혹은 철학적 현상이다.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인가도 싶다.

그리고 지난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분석한 결과 가발을 부친 물질에서 내장을 구성한 성분이 추출되었다고 알려드린 바 있다. 이집트 미라가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고도 했다.

똑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림2.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구덩이와 호석. 가운데 긴네모꼴이 무덤구덩이고 가장자리가 무덤을 두른 호석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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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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