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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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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의 기원전 6~3세기 유적에는 무기류가 발견되는데 주로 철제검과 철제칼 뿐만,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등이 있으며, 이미 여러번 언급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유적이 아니지만 철제검을 착용한 방법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이 출토된다. 코르-케추 유적(그림 1), 테르베독 유적(그림 4-4, 그림 5) 등이다. 철제검 뿐만 아니라 철제검을 신체에 부착할 수 있도록 가죽집에 달린 끈 까지 발견되었다.

 

림 1. 알타이의 코르-케추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검

 

이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검은 대부분 길이가 짧아서, 단순히 허리에만 착용할 수 없다. 허리끈에 보조끈을 달아서 우측 허벅지 위에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11).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에서는 검은 대부분 오른쪽에 착용한다. 하지만 간혹 왼쪽에 착용한 것도 발견된다. 짧은 검이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사이에 고정해서 착장하기 위해서는 검집에 특수한 부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화에 그려진 그림의 검은 검집 한쪽이 날개처럼 달린 부분에 허리와 연결시킨 흔적(그림 2-13~16)이 남아 있다. 실제로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 등에서는 같은 스타일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그림 3).

 

 

 

그림 2. 단검의 착용 방법

 

 

그림 3. 멜구노프 유적 출토 의례용 철검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장식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짧고, 일주식(거푸집에서 검의 손잡이부터 날까지 한 번에 주조)이고 검날멈추개(손잡이와 날의 경계부분)가 나비 형태 혹은 그 변형인 점은 흑해지역과 유사하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이 아닌 일반적인 견해이다.) 알타이의 청동검은 가죽집이나 목제검집에 넣어서 사용되었는데, 검집의 한쪽 끝을 날개처럼 만들어서 허리띠와 연결시키지 않고, 검집에 가죽으로 된 일종의 단추를 만들어서 끈을 끼워서 사용했다(그림 1).

 

그러나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도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청동이라는 물질 자체가 철보다는 무른 소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얇아서(그림 4-4)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림 4. 테르베독 유적 출토

 

 

그림 5. 테르베독 유적 출토 청동검과 가죽제 검집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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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남부 시베리아의 해발 2000m 알타이에 위치한 알라-가일- 3유적은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서 있다. 그 중에서 5호는 가장 먼저 생긴 무덤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재갈과 재갈멈치의 형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11기의 무덤이 동시에 생겼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1호는 돌널무덤인데, 무덤에서 발견된 허리띠의 버클 장식(그림 1-6,7)과 끈을 끼워서 고정하는 판(그림 1-5)는 기원전 4세기의 것이다(267).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에 가까운 버클의 앞판 장식(그림 1-20)은 추야강과 우르술 강 일대에는 보이지 않던 유물이다. 그 이전(기원전 6~4세기)에는 허리띠 방형의 장식판만(그림 1-11, 13) 달았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장식성이 강한 장식판을 달았다. 동물문양(그림 1-1), 기하학적 문양(그림 1-3), 꽃 문양(그림 1-5) 등이다.

울란드리크 I 유적의 5호에서는 가죽 끝의 끝에 청동고리가 연결(그림 1-8)된 채 발견되었다. 가죽끈은 청동칼과 연결되었던 유물이다.

 

그림 1. 추야강과 우루술 강 유역의 띠(허리띠 및 기타)의 여러 부속품, 20,21-알라가일-3 유적 1호분.

 

알라-가일-3유적의 1호는 5호묘와 달리 돌널무덤이다. 1호에서는 보기 드문 유물도 발견되었는데, 불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그림 2-9,10)이다. 어떤 유물을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조각(그림 2-11, 12)이 발견되었는데, 두텁고, 꿰맨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나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1호분, 1: 알라-가일-3 유적의 무덤배치, 2: 무덤의 덮개와 단면도, 3: 무덤 내부의 모습, 4-뿔제 사슴, 5-7: 뿔제 연결고리와 버클 장식판, 8-꼬인 가죽, 9,10-불을 피우는 목제품, 11, 12-두꺼운 가죽, 꿰맨 흔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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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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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무덤이 일렬로 열을 이루는 현상이 확인된다. 그런데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해발 2000m이상의 기원전 5세기 이후인 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이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가량의 발르익-소오크 (1, 2) 유적, 보르탈 (1,2) 유적 등에서는 아직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해발 1000m가량에 위치한다.

 

그런데 해발 2000m이상에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알라-가일-3 유적(그림 3)에서는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발견된다. 무덤이 일렬로 서 있는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 이후로 바르부르가지 I 유적,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무덤이 일렬로 서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기원전 6~5세기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거대 고분은 해발 1500m 가량의 높이에서만 발견되며, 무덤을 열로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 보다 높은 해발 2500m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3 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이제까지 유적을 종합한 결과로 쿠바레프, 폴로스막, 루덴코, 그라즈노프 등(위 유적의 저자)은 언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라-가일-3 유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재갈멈치이다.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화살촉,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등으로 유적의 늦고 빠름을 판단했다. 알라-가일-3유적의 5호(그림 1)와 알라-가일 유적의 11호묘 출토의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2)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빠른 형식으로 보았다.

알라-가일 유적 11호 재갈을 연결하는 구멍(그림 1-1)은 크기가 다른 2개로 큰 구멍의 형태는 원형이라기보다는 약간 네모꼴에 가까운 것과 다른 쪽은 원형이다. 구멍이 2개인 재갈멈치, 양쪽 구멍의 형태가 다른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른 재갈멈치(그림 1-4)의 단면은 원형이고,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와 다르다.

 

 

그림 1. 알라-가일 유적 11호, 1- 무덤 평면도, 2-청동제 재갈과 부착된 가죽, 3-청동과 철로 만든 검의 손잡이, 손잡이의 프레임은 청동, 안쪽 줄기는 철제로 제작됨. 4, 철제 칼, 5-가죽 옷 조각, 6,7-목제 재갈멈치, 8-유적 6호 무덤의 평면도와 단면도

 

 

알라-가일-3유적 5호묘의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하는 부위의 구멍(그림 2-2)좌우가 다르며, 재갈멈치 역시 장식성이 가미된 것이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5호, 1-청동재갈멈치, 2,3-뿔제 끈 연결고리, 4-뿔제 재갈멈치, 5-두께운 금판, 찍은 문양, 6-8: 청동제품, 9-황금 장식판, 10~12: 홍옥제 구슬 

 

 

그림 3. 알라-가일-3 유적 무덤 배치

 

쿠바레프는 이러한 정황을 들어서 알라-가일 유적 11호와 알라-가일-3 유적 5호가 알타이에서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라-가일’ 유적은 이 명칭이 붙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인데, 유적명 뒤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알라-가일-1 유적이다. 모두 7기의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1호를 포함한 4기가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명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행정구역명칭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알라-가일-3 유적과 같은 해발고도에 위치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Мартынов А.И. (ред.). Южная Сибирь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ую эпоху, 1985 (마르티노프 외 1985,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시베리아 남부)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 위치한 곳에서는 일명 태양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울루그-호루움’ 이라는 명칭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직경 66m에 달하는 돌로 만든 둥근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제사유적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매장주체부가 없다.

그라치는 이 유구가 태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2021.06.06 - [시베리아 투바와 몽골의 유적/투바의 유적] -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사글리 바쥐 VI유적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유구가 발견되었다. 무덤과 함께 발견되었지만 유적을 발굴한 그라치는 ‘울루그-호르움’이라고 따로 명명했다. 모두 5

eastsearoad.tistory.com

포스팅

 

그런데 알타이에서도 평면형태가 비슷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I유적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는데, 쿠바레프는 무덤 유적과 함께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의례복합체를 구성하는 제사유구에는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발견된다. 중앙에 원형은 돌로 채우고 그 외곽을 2열로 돌을 돌렸고, 가장 중앙의 원형 유구와 2번째 고리 사이를 직선의 돌로 열을 만든 것이다(그림 1-1~5, 6). 울루그-호루움과 원형의 모티브를 사용했고, 방사선으로 원형 사이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직경 66m의 투바 울루그-호루움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은 크기(직경 1.2~1.3m)이다.

 

뿐만 아니라 원형의 제사 유구 사이에는 방형으로 돌을 돌린 그룹의 알 수 없는 유구도 발견되었다(그림 1-1). 원래는 키가 높은 석주(돌기둥, 높이:100cm)는 세워져 있었으나,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쓰러진 상태였다. 세워진 상태의 석주도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의 의례복합체, 1: 방형제사유구, 2의 부분. 2: 유스티디 I유적의 의례복합체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방형제사유구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10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열을 이루는 무덤은 4기였고, 나무무덤방을 사용했지만, 말은 없는 무덤이었다.

 

투바의 태양을 상징하는 울루그-호루움 유적(기원전 5세기)와 비교하면 시간상으로는 알타이 유스티드 I유적(기원전 4세기)이 약간 늦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원형과 방형의 의례복합체를 만든 시기를 유스티드 I유적으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알타이에서 늦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투바에서 거대 유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저지대의 평원이고, 알타이에는 계곡마다 유적이 만들어지는 지형적 특징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더보기

왜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태양, 금 등 반짝이는 것에 집착했을까?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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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용역 발굴이 있다. 러시아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사고’발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계획에 없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유적이 발견되고 급하게 유적을 발굴해야 하는 경우이다. [대개는 도로나 건물을 지을 때 생기는 경우인데, 알타이에서도 이런 발굴이 1984년에 있었다. 러시아학계에서 주장하는 러시아의 문화재보호법은 표트르 1세 이후로 생겼다. 표트르 1세의 칙령으로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황금유물들을 그냥 녹이지 못하게 하고 가져오면 상금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다.]

 

엘로-2 유적(엘로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km, 우르술 강의 좌안 단구대)은 출토된 유물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무덤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돌널무덤이긴 한데, 장방형으로 반듯하지 않고 평면형태가 사다리꼴로 넓은 쪽이 머리쪽(78cm)이다(그림 1-4). 무덤구덩이는 장방형(2.3×1.4m)이다. 관은 납작한 돌 3개와 덩어리돌 6개로 덮었으며 북쪽벽은 작은 돌로 채워진 상태이다(그림 1-3). 하지만 덮개 돌 1개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도굴의 흔적이다.

 

그림 1. 엘로-2 유적의 무덤과 출토유물, 5-7: 청동검과 청동허리띠, 8-목제칼, 9-멧돼지 송곳니, 10-곰뼈로 만든 펜덴트, 11-철제품, 12-토기

 

무덤내부의 상태는 매우 심하게 인골이 흩어진 상태였고, 관 밖에도 유물이 떨어진 상태였다.

돌널무덤의 형태(평면형태 사다리꼴)는 스키타이시대 인가 의심스럽지만, 출토된 유물 중에 청동검(그림 1-4)은 스키타이 시대 남성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무덤 상부를 덮은 돌은 3중으로 큰 돌을 돌린 후 그 안을 작은 돌로 채워서 마무리했다. 가장 중심의 직경은 3.5m, 그 다음은 6m, 가장 마지막 원의 직경은 8m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의 상부 적석은 가장 마지막 호석(직경 8m)이고, 그 중앙에 위치한 2열의 호석은 후대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 내부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되고, 양뼈, 심지어는 사람의 두개골과 뼈, 청동칼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알타이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덮개 바로 위에 후대의 무덤을 썼는데, 엘로-2 유적에서는 좀 다른 양상이다. 출토된 유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 무덤인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원래의 무덤에 덮개가 열리면서 흘러 들어간 흙 위에 후대의 무덤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도굴한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꽤나 귀찮은 후손들이었나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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