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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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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부에 위치한 황금인간의 무덤이 있는 유적은 ‘이식’이라고 불리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소년의 무덤은 기원전 4~3세기로 사카 문화(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의 지역문화)에서는 늦은 시기이다.

 

무덤의 바닥(그림 1)에서는 소년의 복장을 제외하고 토제로 만든 그릇(그림 2), 나무로 만든 그릇(그림 3), 은으로 만든 그릇(그림 4)과 숟가락(그림 5)이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토제 항아리를 1~2점 부장했지만 이식 유적에서는 16점이나 묻었다. 물론 토기의 기형에도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보고된 사진(그림 2)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어서 꼼꼼하게 살피기에는 부족하다. 알타이 토제항아리는 ‘쿱신’이라고 불리며 유제품을 담았던 것으로 1~2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 인간 쿠르간 무덤바닥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토기

 

 

나무로 만든 그릇은 쟁반과 국자(그림 3)가 발견되었는데, 쟁반의 개수도 역시 이곳이 많다. 이곳에 고기를 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면(그림 1의 좌측면의 네모모양이 목제쟁반을 의미한다) 매장당시에 소년의 무덤은 생고기의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3 유적에서 목제로 만든 잔에는 손잡이가 한쪽으로 붙은 것(포스팅)이 나오는데, 그에 비하면 이식 유적의 유물은 ‘국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앞 부분은 작고 손잡이가 길다(그림 3).

 

2020.0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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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서 통나무관 1개가 확인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파서 만들었는데, 뚜껑까지 잘 제작된 것이었다. 무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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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나무 쟁반과 국자

 

은제 그릇(그림 4)은 2점이 나왔는데, 소년의 머리맡에서 나온 것이다. 그릇의 형태가 다른 2개인데, 그 중에 한 점은 바닥에 글자 혹은 기호가 적혀 있다(그림 4-2). 숟가락은 손잡이 끝이 구부러지고 끝에 날카로운 새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5).

 

그림 4.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그릇

 

그림 5.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숟가락

 

사카 문화의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그릇류는 개수가 알타이에서 나온 것 보다 훨씬 많다. 뿔로 만든 항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뿔로 만든 항아리를 무덤속에 넣는 의미를 가장 중요한 동물을 상징한다고 보았다(폴로스막 2001).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의미를 담는 그릇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소년이 입고 있던 복장에 더 관심이 많다. 황금으로 장식된 붉은 옷과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자주 애용된 새 문양 장식은 두 날개를 핀 형태부터 다양하게 있었다. 흑해 유적에서는 얼굴을 측면으로 돌린 형태이다. 다른 문양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독수리 혹은 맹금류일 가능성이 크다.

 

실릭티 유적과 비교적 가깝지만 높은 산지에 위치한 투엑타 유적에서도 날개를 편 새 장식이 나오지만 이는 다른 동물과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동물장식으로 그리핀이다.

 

실릭티 유적에서는 새 장식이지만 머리를 몸통으로 돌리고 있다. 특히 평면 전체를 금속판 혹은 목판으로 표현하지 않고 새 몸통의 아웃라인만 둘렀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실릭티 유적의 5호분에서 출토된 새 장식은 무덤방 바닥의 인골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실릭티 유적에서 남겨진 동물문양장식 뿐만 아니라 무덤의 구조도 차이가 있다.

 

1965년 발굴된 실릭티 유적의 5호분은 무덤구덩이로 연결되는 복도시설(연도)가 깔려 있는 구조이다. 알타이에서는 볼 수 없고, 흑해지역에서 연도가 있는 유적(톨스타야 마길라 등)이 있지만 구조는 차이가 크다. 실릭티 유적은 매우 얕게 무덤을 파서 대부분의 무덤구조물은 지상으로 올라오도록 지어졌다(그림 1). 통나무를 가로 새로 방향으로 쌓고 그 사이를 돌로 채웠으며 그 위를 다시 돌로 덮고 마지막에 봉분을 씌운 것이다.

 

물론 나무구조물 위를 돌로 덮은 후 봉분은 점토(그림 1-4)-->자갈돌(그림 1-2)-->자갈돌+흙(그림 1-3)의 순서로 만들었다.

 

그림 1.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무덤 단면도

 

그림 2.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매장주체부 평면도와 단면도

 

그림 3.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무덤구조물(1)과 그 상부를 덮은 돌(2)

 

실릭티 유적의 주변의 다른 무덤도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실릭티 82호분은 2003년 카자흐스탄에서 발굴했는데, 이미 알려진 실릭티 유적의 무덤구조와 거의 유사하다.

 

그림 4. 실릭티 유적 82호분 무덤의 단면도

 

실릭티 유적은 알타이 산과 천산산맥 사이에 있는 평지에 있는 유적이다. 같은 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위치한 유적이라도 베렐 유적의 무덤구조가 전혀 다르다. 알타이의 산 아래에 위치한 유적으로 어느 정도 알타이의 높은 곳에 있는 유적과 무덤구조 및 출토유물이 유사한 면이 있고, 실릭티 유적과는 많이 다르다.

 

알타이의 유물은 대부분 나무를 깍고 그 위를 금박으로 입히지만, 실릭티 유적에서 나온 동물문양장식은 금판으로 제작된 유물로 알타이 및 베렐 유적과도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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