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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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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 번째 답사를 다녀오고, 두 번째 답사를 준비하면서, 일주일도 안된 기억이 가물해진다.

첫 번째 답사는 주로 중국의 몽골지역인 내몽골지역이었다. 꼭 보고 싶은 유적의 유물이 오늘 소개할 곳이다.

왜냐하면, 이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와 조합식석인검은 시베리아의 특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유적은 혹자는 홍산문화의 유적이라고 하고, 혹자는 홍산문화와는 다른 문화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후자 쪽이고, 후자 가운데서도 중국사람들과는 생각이 좀 다르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시간은 없다....

 

통요시(그림 1)에서 대략 60km 떨어진 곳에 합민망합(哈民忙哈)유적(그림 2)이라는 곳이다.

 

통요시의 위치
그림 2. 합민망합 유적의 위치

통요시는 내몽골에서도 작은 도시이지만, 중국 고속철의 경유지(그림 3)이기도 하다.

그런 작은 도시에서도 생전 누가 찾을 까 싶은 곳에 박물관(그림4~6) 이 있다.

유적을 그대로 남겨둔 유적박물관과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3. 통요역. 고속철의 경유지
그림 4. 유적지의 입구.
그림 5. 유적 박물관

 

그림 6. 유물전시관 입구

 

 

이곳은 2011년 전국십대고고발굴로 뽑히기도 했고, 중국 학계에서 엄청나게 소개된 유적이다.

 

그림 7. 유적 박물관 내부. 발굴된 집터. 목채는 집의 구조물이다. 화재난 집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유적에서 이러한 집터가 여러 채 있고, 특히 세간의 관심을 받은 집터는 40호이다. 집을 무덤으로 사용했는데, 집 안에 인골이 98기가 접혀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40호 집은 이 사진의 앞에서 두 번째 위치한 곳이다. 이 집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 집에 대해서는 이미 출간된 책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소개해 드리겠다. 

 

그림 8. 나는 참 싫어하는 유리로 만든 바닥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집터 위에 설치해서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한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바닥이 너무 싫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서 사진도 흔들렸다. 중국박물관에는 이런 곳이 많다. 유리바닥으로 된 전시관.

 

앞서서 이곳을 홍산문화 유적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옥기 때문이다. 이 유적의 집 내부에서 우하량유적에서 출토된 옥기와 비슷한 것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기와 석기 등은 홍산문화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히 홍산문화 유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림 9.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

 

그림 10.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 2

 

이 토기의 문양을 중국에서는 ‘망점문’이라고 하던데, 일종의 타날문이다.

타날문은 앞서 시베리아 신석기문화를 소개하면서 설명한 바 있다.

방형의 나무판에 노끈을 감아서 만든 도구를 박자라고 하는데, 이 박자를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앞서, 홍산문화의 토기를 설명한 바 있는데, 홍산문화의 토기 특징은 압인之문양으로, 도구를 눌러서 之문양으로 찍은 것이다(그림 11). 

 

그림 11. 적봉박물관에서 소개한 지자문양새기는방법

 

그림 9,10에 소개한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와 아래 홍산문화의 토기(우하량 유적)와는 매우 차이가 있다.

 

 

그림 12. 우하량 유적에서 출토된 압인지자문양토기

 

필자는 이 유적의 토기를 직접 보고 싶었고, 조합식석인검(그림 13,14)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이 유적의 출토품은 보지 못했고, 대신 이 이전부터 매우 오랫동안 이 조합식석인검이 이 지역에서 확인된다는 것을 여러 보고서를 통해서 알았으나, 눈으로 확인했다. 기뻤다. 

 

그림 13. 7000년 전 조조합식석인검
그림 14. 그림 13의 유물을 다른 각도에서 찍음.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오늘 기사를 잠시 보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호미와 관련된 내용인데, 아마존에서 대박났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보자마자 완전 어이없었다.(기사의 수준이나 기사를 낸 신문사나....)


https://news.v.daum.net/v/20190217134610706

 

왜냐하면......

호미는 우리나라서는 밭을 갈지만,,,,,,,

고고학 유적 발굴할 때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중국은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발굴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발굴도 여러 과정이 있지만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벗길 때 주로 사용된다.

 

호미는 어떻게 사용하나?

그렇다. 호미는 주로 쪼그려 앉아서 사용한다.

?

자루가 짧기 때문이다. 자루에 붙은 앞부분이 작아서 밭고랑과 같이 좁은 사이를 팔 때 요긴하게 쓰이지만, 자루를 길게 만들려면 앞이 커져야 하는데 그럼 호미와는 완전히 다른 도구다.

 

그런데 호미는 나에게 러시아발굴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학당시에 한러 공동발굴에 종종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미를 대거 들고 가서 발굴에 참여했다.

러시아사람들은 놀랬다


너무 편리하고,,,,빨리 일이 되고, 문화층도 반듯하게 닦여서...

그냥 그네들이 보기에는 발굴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호미라는 존재가 없었고, 발굴할 때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종종 중국인들이 밭에서 사용하는 건 봤다고 한다.


없을 까?

그들은 쪼그려 앉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서양인들 대부분이 그렇다.

왜냐하면 호미는 다른 도구에 비해서 자루가 짧기 때문에 조그려 앉아서만 사용할 수 있다.

쪼그려 앉는 것이 불편한 러시아사람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물론 쪼그려 앉는 것이 되는 사람도 있다. 서양사람들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매우 힘들어했다. )


러시아에는 중국산 호미가 팔지만 몇 번 쓰면 분리가 잘되어서

매번 한국에서 호미를 들고 오기를 희망했다.ㅋㅋ

 나이드신 러시아학자들은 사용하기 힘들어했지만 주로 어린학생들에게 쥐어주며 문화층을 닦도록 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도 대부분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무릎이 아프다는 것이다.


다시 기사로 돌아가서,,, 아마존에서 대박났다고 하는 기사를 믿을 수가 없다.

아마존에서 호미가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서양인들의 신체구조상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호미와 같은 땅을 가는 도구는 사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싸게 판 것=구매양 으로 증명할 수 없다.(이것을 지적한 기사의 댓글도 있었다)


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영주대장간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도 대장간이 운영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좀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그리고 질좋은 국산호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산 호미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민족적인 자긍심을 아마존에서 찾으려 한 것 같은데....

한계이겠지만..

 

*카테고리 만들기도 싫어서 그냥 비판많이 한 카테고리에 걸어둡니다.


그리고 환단고기 문제도 계속포스팅할 예정입니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요즘이 아마도 입시철? 준비기간이다보니 고고학 전공 관련학과 문의가 많다.


그래서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전국에 고고학 관련학과 혹은 사학과내에서 고고학 전공이 있는 교수가 있는 곳을 직접 일일이 적어두겠다.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은 이제 아니실 듯.....)


https://eastsearoad.tistory.com/138?category=725433


이미 말씀드린대로 대부분 거점 국립대학교이며, 사립대학교에도 있다.

단 현재시점에서 몇 몇 대학교 사학과에서 고고학전공 교수가 1명이며, 그 분의 정년이 1~2년 안에 끝 인 경우와 1명의 결원이 생긴 몇몇 곳은 생략했다. 만약 새로운 교원이 생기면 고고학 관련 강의가 생길테니 다시 공지하겠다. 또한 고고학과 고대사를 드나드는 교수님이 계신 학과도 생략했다. 그리고 또 잘 찾아보면 고고학전공교수가 없더라도 강의는 개설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 경우도 제외했다.(대부분 이 경우는 울며겨자먹기로 강의가 개설되는 경우여서 자라는 꿈나무에게는 .....)

 

<부산경남권>

경북대학교 인류학과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계명대학교 사학과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동양대학교 문화재발굴보존학과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인제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부

 

<서울경기강원권>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강원대학교 사학과

경희대학교 사학과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연세대학교 사학과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숭실대학교 사학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호서호남권>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공주대학교 사학과

목포대학교 고고학과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위의 순서는 권역으로 묶은 후 지역, 학교 모두 가나다순이다.

 

단순히 사료를 공부하는 역사학과 혹은 사학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수의 교원이다.

그래서 각 학과의 교과과정(교과목)을 살펴보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고고학 관련 수업의 개수를 대략 알 수 있다.(물론 여러 변동사항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고고학 전공 교수가 적을수록 고고학 전공관련 수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고고학 전공 교수도 자신의 전공시대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된 수업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고고학전공교수가 많은 학과로 가는 것이 여러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로 인해서 고고학자로서 꿈을 키우는데 유리하다.



매화꽃 피는 것을 보니 이제 곧 새내기들로 교정이 꽉 찰 듯.......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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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고고학에 대해서 글을 여러번 올렸다.

철기시대에 대한 마무리가 올해 끝나면 마저올리겠다.

몇 개의 문화에 대해서 정리할 것이 있는데,,,,이번 방학에는 손이 안가지만. 그래도 올해 마무리하고,,,,연해주고고학개론서를 끝내고 싶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연해주를 벗어난 지역을 강의하고 있다.

유라시아 중에서 시베리아중심이다.

생각해 보면 연해주연구한 것도 시베리아와 한국의 연결고리라고 어렴풋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기회가 생겨서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지역도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동아시아를 벗어나니,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또 동아시아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은 무척 재밌는 지역이다. 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한데...

결국 몇 개의 주제를 필자가 선택하겠지만,, 머릿속에 뱅뱅 돌고 있는 무수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할지 나도 내가 궁금하다.

 

신석기시대...지금까지 해 온 시대구분으로는 두 번째 시대이다.

그런데,,,,지금까지 해온 세계적인 연구자들의 연구가 점점 희미해진다.

흔히들 알던 신석기시대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이 여기서는 너무 확연하게 들어난다.

작년에 발표한 내용도 그런 주제였다.

 

결국, 인간은 아마 구석기시대에 만들 수 있는 건 이미 다 만들었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라고 생각했던 것, 토기, 마제석기, 무기 등.

올해부터는 유라시아고고학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강의를 하다가 생긴 궁금증 혹은 의심을 풀기 위한 연구이다.

그래서 유라시아고고학 중에 일부 지역인 시베리아에 대한 강의를 포스팅할 계획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2. 28. 17:3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19세기 말에 처음 확인되었고, 19681970, 1978년도에 오클라드니코프가 조사했다. 암각화는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의 강가에 세레미체보 마을 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한 절벽에 원래 살던 주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3개의 지점으로 나누어져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데, 각 지점은 6, 20, 7개의 표현이 그려져 있다. 표현물은 0.3~1cm가량 깊이로 쪼기 기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몇 개는 음각한 것도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사진1. 우수리강의 세레미체보 유적(위치는 https://eastsearoad.tistory.com/273의 지도 참고)


세레미체보 유적의 1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세레미체보 유적의 2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세레미체보 유적의 3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대부분은 사람과 동물과 관련된 주제이다. 가장 많은 것은 얼굴만 표현된 것인데, 단독으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고, 쌍을 이루는 것은 1개소(그림 4-5,6) 확인된다.

 

그림 4.  사카치알리안(1~3, 7~9,11,12,14,17~23)과 세레미체보 유적(4~6, 10, 13, 15, 16)의 동심원문눈 얼굴모양


타원형, 달갈형, 하트형, 상단은 타원형, 하단은 사각형이니 것, 원숭이 혹은 거북이 모양의 것도 있다. 눈은 둥글거나 끝이 뾰족한 째진 눈을 표현한 것(그림 5-4,7,8)이 있다


사진2. 세레미체보 유적의 째진 눈 얼굴모양마스크


그림 5. 사카치알리안과 세레미체보 유적의 째진 눈얼굴모양마스크(1~3, 5,6,9~13: 사카치알리안, 4,7,8-세레미체보 유적)


얼굴내부를 충진했는데, 이마의 주름, 눈 등은 사카치알리안과 유사하다. 일부 표현에서는 얼굴의 외곽선에 방사선의 모양으로 그려놓아서 을 형상화 하였지만(그림 4-4,5), 사카치알리안과 달리 머리 위쪽으로만 표현되었다. 목이 길고 발가락이 세 개 인 것은 백조 혹은 거위인데, 이는 사카치알리안과 다른 시기의 것이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사카치 알리안과 마찬가지로 얼굴형 암각화 중 동심원문(그림 4-4~6, 10, 13, 15,16)을 기반으로 한 것은 6000~5000년 전으로 보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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