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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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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고고학에 대해서 글을 여러번 올렸다.

철기시대에 대한 마무리가 올해 끝나면 마저올리겠다.

몇 개의 문화에 대해서 정리할 것이 있는데,,,,이번 방학에는 손이 안가지만. 그래도 올해 마무리하고,,,,연해주고고학개론서를 끝내고 싶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연해주를 벗어난 지역을 강의하고 있다.

유라시아 중에서 시베리아중심이다.

생각해 보면 연해주연구한 것도 시베리아와 한국의 연결고리라고 어렴풋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기회가 생겨서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지역도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동아시아를 벗어나니,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또 동아시아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은 무척 재밌는 지역이다. 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한데...

결국 몇 개의 주제를 필자가 선택하겠지만,, 머릿속에 뱅뱅 돌고 있는 무수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할지 나도 내가 궁금하다.

 

신석기시대...지금까지 해 온 시대구분으로는 두 번째 시대이다.

그런데,,,,지금까지 해온 세계적인 연구자들의 연구가 점점 희미해진다.

흔히들 알던 신석기시대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이 여기서는 너무 확연하게 들어난다.

작년에 발표한 내용도 그런 주제였다.

 

결국, 인간은 아마 구석기시대에 만들 수 있는 건 이미 다 만들었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라고 생각했던 것, 토기, 마제석기, 무기 등.

올해부터는 유라시아고고학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강의를 하다가 생긴 궁금증 혹은 의심을 풀기 위한 연구이다.

그래서 유라시아고고학 중에 일부 지역인 시베리아에 대한 강의를 포스팅할 계획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2. 28. 17:3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19세기 말에 처음 확인되었고, 19681970, 1978년도에 오클라드니코프가 조사했다. 암각화는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의 강가에 세레미체보 마을 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한 절벽에 원래 살던 주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3개의 지점으로 나누어져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데, 각 지점은 6, 20, 7개의 표현이 그려져 있다. 표현물은 0.3~1cm가량 깊이로 쪼기 기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몇 개는 음각한 것도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사진1. 우수리강의 세레미체보 유적(위치는 https://eastsearoad.tistory.com/273의 지도 참고)


세레미체보 유적의 1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세레미체보 유적의 2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세레미체보 유적의 3지점(오클라드니코프 1971)


대부분은 사람과 동물과 관련된 주제이다. 가장 많은 것은 얼굴만 표현된 것인데, 단독으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고, 쌍을 이루는 것은 1개소(그림 4-5,6) 확인된다.

 

그림 4.  사카치알리안(1~3, 7~9,11,12,14,17~23)과 세레미체보 유적(4~6, 10, 13, 15, 16)의 동심원문눈 얼굴모양


타원형, 달갈형, 하트형, 상단은 타원형, 하단은 사각형이니 것, 원숭이 혹은 거북이 모양의 것도 있다. 눈은 둥글거나 끝이 뾰족한 째진 눈을 표현한 것(그림 5-4,7,8)이 있다


사진2. 세레미체보 유적의 째진 눈 얼굴모양마스크


그림 5. 사카치알리안과 세레미체보 유적의 째진 눈얼굴모양마스크(1~3, 5,6,9~13: 사카치알리안, 4,7,8-세레미체보 유적)


얼굴내부를 충진했는데, 이마의 주름, 눈 등은 사카치알리안과 유사하다. 일부 표현에서는 얼굴의 외곽선에 방사선의 모양으로 그려놓아서 을 형상화 하였지만(그림 4-4,5), 사카치알리안과 달리 머리 위쪽으로만 표현되었다. 목이 길고 발가락이 세 개 인 것은 백조 혹은 거위인데, 이는 사카치알리안과 다른 시기의 것이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사카치 알리안과 마찬가지로 얼굴형 암각화 중 동심원문(그림 4-4~6, 10, 13, 15,16)을 기반으로 한 것은 6000~5000년 전으로 보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1. 10. 20:4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것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한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 그려진 것이다.

암각화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그려졌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유적에서 바위그림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극적인 예가 확인되었다.

절대연대측정치도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해 볼까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얼굴모양을 그린 모티브가 원이라는 것이다


원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겹치고 있다.

이것에서 시작한다....



그림 1.2. 상단의 그림과 하단의 그림은 다른 유적이다.

그런데 유사하지 않은가.. 중앙의 동심원문을 축으로 눈을 그리고 있다.

사카치 알리안은 이런 그림이 많이 확인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가겠다.

한반도와도 관련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6. 동하국(1217~1234)


여진이 무너질 당시 그 국가의 경계에는 많은 지방 정치체가 나타나게 되었다(이블리예프 1993). 산지성 가운데서 성벽이 전부 둘러지지 않은 개방형은 동하국 시기에 축조된 것이다.. 연해주에서 동하국의 성곽은 모두 24크라스노야르프스코예(Краснояровское, Krasnoyarovskoye), 스몰린스코예(Смоляниновское, Smolyaninovskoe), 스칼리스토예(Скалистое, Skalistoye), 샤이긴스코예(Шайгинское,Shayginskoye). 라조프스코예(Лазовское, Lazovskoe), 노보네진스코예(Новонежинское, Novonezhinskoye), 예카테린노프스코예(Екатериновское, Yekaterinovskoye), 유르코프스코예(Юрковское, Yurkovskoye), 콕샤로프크코예-고르노예(Кокшаровское-горное, Koksharovskoye-gornoye), 플라호트뉴킨스코예, 노보고르예프스코예(Новогордеевское, Novogordeyevskoye), 노보파크로프스코예(Новопокровское,Novopokrovskoye), 스토고프스코예(Стоговское,Stogovskoe), 아나니예프스코예(Ананьевское, Anan'yevskoye), 이지베스토프스코예(Известковое, Izvestkovoye), 스클랴예프스코예(Шкляевское, Shklyayevskoye), 고르노후토르스코예(Горнохуторское, Gornokhutorskoye), 두보바야 소프카(Дубовая Сопка,Dubobaya Sopka), 세르바코프스코예(Щербаковское, Shcherbakovskoye), 키시네프스코예(Кишиневское, Kishinevskoye), 스테클뉴하(Стеклянуха, Steklyanukha)-3, 시바이고우, 쿠날레이스코예, 소프카 류브비 이다(그림 138).

 

그림 138. 동하국의 성곽 분포도 (1. 크라스노야르, 2. 스몰린노프카, 3. 스칼리스토예, 4. 샤이가, 5. 라조. 6.노보네진카, 7. 예카테리노프카., 8. 유르코프카, 9. 콕샤로프카-고르느이, 10. 프라호튜킨스코예. 11. 시바이고우. 12. 아누치노. 13. 노보포크로프카. 14. 스토고프키이. 15. 아나나예프카. 16. 이즈베스토프카. 17. 시클라예보, 18. 고르노후토르스키이. 19. 두보마야 소프카 20. 세르바코프키이. 21. 콘스타티노프카 22. 노보고르디예프카. 23. 쿠날레이카-고르느이. 24. 소프카 류브비.



그중에 3-시바이고우, 쿠날레이스코예, 소프카 류브비는 앞에서 이미 소개했던 성곽으로 연해주의 동북지역에 위치하며 동하국의 국경에 있던 성곽이다. 동하국은 매우 짧은 기간(17년간) 존재했던 국가로 항시 전시상황이었는데, 이러한 점은 성곽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여진은 원주민의 특징적인 성을 그대로 두지 않고 중국, 거란과 또 다른 전통 등을 혼합한 새로운 성곽을 축조하였다. 여진의 국가인 동하국은 주민들의 물건과 재산 등으로 보아서 문화적으로는 아주 다양하지만, 너무나 짧은 존속 기간 탓에 정치 민족적 교류와 전통 확립은 어려웠다(댜코바 1993).

연구자들은 크라스노야르스노예, 샤이긴스코예, 아나니예프스코예 성곽에서만 몽골족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곳곳에 화재 난 흔적과 성벽이 파손되고, 버릴 수가 없는 많은 양의 장신구 등이 전쟁의 흔적으로 남겨졌다. 아마도 이곳은 전쟁이나 군사상 요지로써 몽골인들은 이곳을 유린했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연해주의 동북지역 중부 타이가에 위치한 산지성이 존재했던 장소와 시간은 동북아시아에서 그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고, 고아시아족과 통구스-만주족 사이의 운명과 같은 장소였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5. 발해의 교통로


 발해시기에 축조된 성곽은 그 형태가 아주 다양한데, 이 지역에 복잡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발해는 698년에 건국되어서 퉁구스-만주족인 말갈족을 영입하고 연해주의 일부와 북한, 중국 동북지방까지 넓은 영토를 거느린 국가이다(발해국가와 러시아 극동의 종족1994).

발해를 구성하는 민족은 고구려인, 말갈인, 중국인 등이다. 발해의 마지막 시기에 평지성이 축조되었으며 연해주 동북지역에서 연질의 말갈토기와 함께 녹로를 돌렸고 인화문이 찍힌 회색조의 발해토기가 함께 출토된따. 인화문은 발해토기의 특징이자 아무르 여진 문화(브로실로프스코예 성지, 사도비이 클류치, 드지기토프스코예 성곽)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그림 137). 대략 9~10세기 정도이다(댜코바 1993). 아마도 발해가 존재했던 시기 가운데서도 가장 성한 시기로 생각된다


현재 연구된 바로는 발해영토에서 가장 뚜렷한 것은 경제활동은 농업이다. 아주 평화로웠을 것인데, 처음 성곽을 축조하면서 원주민들은 직업군인들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또한 연해주 동북지역 해안가에 위치한 중국식 성곽과 함께 고구려식 석성도 함께 이용되었다. 고구려식 석성은 항구로 들어오는 문이나 강의 하류 등에 위치해서 감시와 방어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석성에서도 말갈토기가 함께 출토된다.


발해의 마지막 시기에는 평화롭지 못하였는데,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 국가와 민족 간의 치열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가 연해주와 아무르 지역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종족이 뒤섞이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발해 멸망 이후인 10세기 이후에 평지성의 특징인 평면형태가 방형인 성이 곶 위(모노마호프스코예, 우스티-일모 성지)에 설치되는 현상도 이때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방어하기가 용이한 성곽은 10~12세기에 나타난 다각형 성곽이다.

그런데 이 기간은 현재까지도 연해주 동북지역 뿐만 아니라 전체 연해주에서영토 등 잘 연구되지 않은 역사이다. 현재 고고학자들은 여진의 유적이 연해주 북동지역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고, 그 국가의 경계도 이곳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정도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림 137. 연해주 동북지역의 발해 성 분포도(1-브루실로프카, 3-데르수 자연방어시설, 4~6-고르노레첸스코예 1~3, 8-사도비이 클류치 성곽, 14-달네고르스키 성자연절벽 성곽, 15-모노마호보, 16-에스톤카, 17-바시코프스코예, 25-드지기토프카, 27-크라스노예 오제로, 28-클류치 성곽, 29-자볼레체나야, 31-스미르코프 클류치, 34-말라야 케마, 35-우스티 일모, 37-켐스코예-돌리노예, 38-켐스코예-모르스코예, 40-야수, 48-세셀로프스코예, 49-소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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