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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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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에 해당되는 글 301

  1. 2023.01.19 시베리아의 기원전 4세기 청동솥7
  2. 2023.01.14 유라시아 유목민족의 고대 가마솥6
  3. 2023.01.09 다리 세 개 달린 고대 청동솥2
  4. 2022.12.31 청동솥에 담아서...
  5. 2022.12.18 고대 알타이 무덤 속의 우유잔4

 

스키타이 문화권의 청동솥은 대체로 나팔 모양의 다리가 붙고, 손잡이가 솥의 입구에 붙어 있다. 둥근 고리 모양의 손잡이는 수직으로 붙어 있는데, 그 중에서 버섯 모양의 돌기가 붙은 솥(그림 1)이 주로 예니세이강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청동솥, 기원전 4세기

 

그런데 예니세이 강의 상류에 키질-카이야(그림 2) 라고 불리는 암각화에서 거의 같은 모양의 청동솥으로 요리하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이 암각화는 사벤코프(1910)가 20세기 초에 발견해서 그림을 남겼는데, 보르스카야 암각화 보다 훨씬 더 요리하는 장면이 잘 묘사되었다. 이 암각화에는 돌기가 있는 둥근 모양의 손잡이가 붙은 청동솥과 그냥 둥근 고리모양의 손잡이가 붙은 청동솥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림 2. 키질-카이야 암각화, 예니세이 강 상류

 

 

그림 3.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청동솥2, 기원전 4세기

 

그렇다면 이 두 모양의 청동솥은 동 시기에 이 동네(미누신스크 분지)에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암각화가 20세기 초부터 발견되었기 때문에 청동솥이 의례용 뿐만 아니라 음식조리용으로 사용된 것을 알았다. 특히 가장 처음에 나오는 장면은 동물의 젖을 짜서 조리하는 장면(유제품)으로 보여지게 되면서 유목민족의 생활 상을 알 수 있게 한 자료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유적은 현재는 잘 남아 있지 않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с новым годом с новым счастье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청동솥은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 몽골까지 전 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발견된다. 다리라고 부를 수 있는 바닥은 나팔모양인데, 간혹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가운데 세 다리가 붙은 청동솥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이다.

 

흑해지역에서는 대체로 동체부가 무문양이고, 나팔모양의 다리가 붙은 청동솥이 기원전 5~4세기에 나온다(그림1).

 

그림 1.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

 

그런데 흑해주변의 유적 가운데서 라스코파나 모길라 유적(그림 2)에서는 아주 장식이 많은 청동솥도 출토되었다. 청동솥에 붙은 황소머리는 그리스장식의 요소이다. 황소머리 장식 사이에는 동심원문양도 함께 시문되어 있다. 중간에는 팔메트 문양, 하단에는 지그재그 문양이다.

 

그래도 이 유물은 스키타이 사람들이 만든 청동솥이다. 주로 점토로 주조되었다. 다리는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손잡이는 대부분 아치형이지만, 일부는 동물모양으로 장식된 것들이 있다.

 

 

그림 2. 라스코파나 모길라 고분

 

 

그림 3. 손잡이가 동물장식인 청동솥

 

청동솥은 유목민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었더라고 해도 의식적인 의미도 포함한다. 가족이나 부족들은 청동솥 주위에 모여서, 종교 의식을 위한 제물을 바치는 동물들의 고기를 요리했다.

또 시베리아의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높이 10cm 남짓의 청동솥은 일종의 향로로 사용되었다(그림 4).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청동솥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 인의 거대한 청동솥은 수많은 화살촉을 녹여 만든 것인데, 4500갤런 정도 되는 용량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출토되거나 발견된 청동솥 중에 저렇게 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장한 3명의 소년이 옮겨야 할 정도로 큰 청동솥이 볼가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

 

아무리 황소머리 문양이 있었다고 해도 청동솥은 스키타이 사람들의 일상용, 의식용 용기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고대 유라시아의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청동솥은 거의 대부분이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청동솥은 기본적으로 나팔 모양의 다리가 붙어 있고, 손잡이가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손잡이와 솥의 몸통에 동물문양이 붙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다. 대체로 시베리아와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 유적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실제로 청동솥이 나오기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청동솥을 모델링 해서 만든 작은 금제품을 긴 체인에 달아서 허리에 달았던 것도 확인되었다.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작은 금제품의 솥 모양 장식품(그림1)은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안 콜렉션에서 발견된 잔 모양의 금제품과 비교된다. 실제의 그릇을 모형화해서 장신구처럼 달아서 사용했던 것을 아르잔-2호에서 실제로 확인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1. 아르잔-2호의 금제 모형 솥.

 

헤로도투스의 기록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맞는 부분들도 많다. 그가 ’스키타이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허리띠에 그릇을 메고 다닌다‘고 한 말이 이 장식용 그릇을 말한 것인지, 실제 그릇을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암튼 최소한 장식용 그릇은 허리에 메고 다닌 것 같다.

 

그런데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세미레치예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솥은 이상하게 생긴 것이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우연하게 발견된 유물‘은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대체로 비정상적인 경로(도굴 등)로 발견된 것이다(그림 2). 다리 세 개 달린 청동솥은 시베리아가 아닌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림 2.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기원전 5세기 가량)의 청동솥.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다리 세 개가 붙은 청동으로 된 그릇은 중국의 상나라 초기에도 알려져 있지만, 이란 북부의 청동기시대의 유물 가운데도 다리 세 개 붙은 토기가 이 유물(그림2)의 기원이라고 하는 연구(보코벤코 1981)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다. 더욱이 청동솥에 붙은 양 머리는 고대 이란 사람들에게 신의 행운(xvarna)을 상징한다. 그래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숫양 머리 달린 이미지는 의식적인 용도로써 고대 이란과의 관련성을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다리 세 개 붙은 유물은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주류를 이루지는 못했다. 기원전 4세기 이후 흉노와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여전히 나팔모양의 다리가 붙은 청동솥이 나오기 때문이다. 혹은 다리가 없는 유물들도 있고, 그 모양은 지역과 시간에 따라서 더 다양해진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의 물질문화 중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는 유물 중에 하나는 청동솥(동복)이다. 스키타이가 망한 이후 흉노와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사용되며, 유럽의 헝가리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도 뚜렷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1세기 이후(길림성 유적인 유수노하심의 연대문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중국 감숙성에는 더 이른 시기에 나오는 유물도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아뭏튼 유라시아 초원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경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청동솥은 크기부터 모양까지 매우 다양하며 실제로 요리에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역과 연대마다 청동솥의 형태는 다르지만 지속적으로 사용되는데, 복잡하고 힘들지만 재밌는 주제이다.

 

 

 

그림 1.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청동솥, 기원전 7~4세기로 추정.

 

 

그림 2. 러시아의 오렌부르크 지역. A.D.4-5세기

 

 

 

올해 하반기에는 블로그에 글 적는 일이 줄어들어서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신경쓸 일이 많았고, 또 생각할 부분도 많아서입니다. 새해에는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지속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청동솥에 복이 담겨 있습니다^^

 

 

김재윤 드림

 

 

 

posted by 김재윤23

고대 알타이(기원전 5세기)의 무덤 속에서 나오는 그릇은 토기 외에도 목제로 된 용기가 존재한다. 손잡이가 한쪽으로만 붙은 것인데, 아르잔-2호에서 발견되면서 기원전 7세기 이후부터 이미 시베리아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목제 용기는 알타이의 무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전통적인 그릇이며, 역시 쿠미즈를 담기 위한 그릇이다.

 

주로 알타이에서만 출토되지만 서쪽에도 사용되었다.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목제 그릇에 달아서 장식했던 동물장식이 발견되었다. 모로드비노프카 유적의 목제 그릇은 아마도 유일하게 알타이를 벗어나서 목제 그릇의 존재가 확인된 예일 것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나온 금판 장식들과 유사한 유물들이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흑해지역에서도 드문드문 발견되기 때문에 목제그릇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의 5호분 출토 목제 잔

 

그림 2. 알타이의 뿔로 된 항아리, 아크 알라하-3 유적

 

나무잔 혹은 나무용기가 우유 혹은 유제품을 담는 용기를 사용하는 장면을 헤로도투스는 설명했다.

 

‘속이 깊은 나무 용기에 노예들이 주위에 서서 우유를 흔들도록 만든다. 표면에 생긴 것을 끌어내는데, 이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바닥에 있는 것은 덜 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라는 구절이다. 우유의 상층만 걷어내서 뭔가를 만드는 장면이다.

 

아뭏튼 나무잔과 토기는 모두 유제품과 관련된 그릇이라는 것은 이미 다 밝혀진 바이다.

 

그런데 알타이의 무덤에는 액체를 담기 위한 그릇이 한 종류 더 있는데 뿔로 만든 항아리 혹은 잔이다. 사실 스키타이 서쪽에서는 뿔로 된 항아리는 나오지 않는다. 각배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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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