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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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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에 해당되는 글 301

  1. 2022.02.16 고대 알타이에서 발견된 오리엔트 여성들
  2. 2021.10.28 기원전 4세기 알타이 눈이 큰 남성의 무덤
  3. 2021.10.27 누구일까?
  4. 2021.10.26 알타이의 특이한 무덤1
  5. 2021.10.25 해발 2500m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무덤

기원전 5세기경 알타이에는 독특한 파지리크 문화가 존재했다. 이 문화는 필자의 생각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문화 중에 한 곳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주로 사용되었던 동물문양은 파지리크 문화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알타이의 파자리크 유적에는 지역문화만 발견되지 않고 꽤 멀리 있는 지역의 유물도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페르시아 지역에서 보이는 것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 하나가 카페트나 패브릭 종류인데 알타이에서 페르시아 문양을 차용해서 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페르시아로부터 가져왔을 것이라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는 유물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연구자인데, 5호에서 출토된 패브릭의 문양(그림 1) 중에서 앗시리아의 향로를 발견했다.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궁전(현대의 이라크 Kuyunjik)과 사르곤 II세(현대 Khorsabad)의 궁전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패브릭

 

그림 2. 아슈르바니팔(a)과 사르곤 II세(b)의 궁전

 

아슈나팔 궁전에 그려진 부조에는 제단에 불꽃이 타오르고 옆에 향로 속에 신성한 횃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옆에는 두 명의 사제 혹은 숭배자가 손을 들고 있어서 신을 향해서 기도하는 장면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르곤 II세의 궁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돋을 새김으로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향로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해 보인다.

 

가장 비슷한 향로는 클레르크가 수집한 실린더 모양의 도장에 새겨진 것이다. 아나히트를 묘사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의 유물로 알려졌다(그림 3).

 

그림 3. 클레르크 수집품. 실린더 모양의 도장중에 일부.

 

 

필자는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발견된 양모천은 앗시리아의 궁전벽화보다는 흑해지역의 켈르레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과 더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내에서 흑해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철제 검의 검집을 주목하고 있다. 이 유물은 우라르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라루투 신(칼디 신)이 그려진 채 발견되었다. 중앙에 생명의 수를 향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 집 중에 일부

 

2021.1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에 발견된 칼디 신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천에 그려진 여성들도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어떤 물체를 들고 있으며 아래를 향한다. 이 모습은 칼디 신이 그려진 우라르투의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서 발견된 것과 더 흡사하다(포스팅 참고).

중앙에 숭배의 대상을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도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우라르투 제작의 검에서 보는 것이 더 흡사하다. 하지만 향로나 여성의 복장은 아나히트와 비교된다. 그런데 이 여신은 아케메니드 왕조 뿐만 아니라 우라르투가 있던 아르메니아에서도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양모천의 그림은 어느 것과도 완전히 일치 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원전 7세기경에 우라르투로 부터 전해진 문양과 아나히트 문양을 적절하게 다시 재해석 했을 수도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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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해발 2000m가량의 이중목곽묘 안에 통나무관이 있고 무덤을 덮은 돌의 범위가 25m가량인 쿠투르군타스 무덤은 특히 알타이에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시설이 있었다. 알타이에서는 처음 발견된 예이다. 말의 굴레장식에 달았던 사람얼굴의 목제품도 몽골로이드의 얼굴이 아니다.

 

쿠투르군타스 무덤에는 예상대로 30~40세 남성이 매장되었다. 도굴꾼은 뚜껑도 열지 않고 부수고 유물들을 꺼내갔다. 남아 있는 유물은 목이 긴 토기(쿱신이라고 불림)(그림 2-10), 뼈로 된 화살촉, 수탉 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1), 목제 산양머리 장식(그림 1), 활통에 달았던 일종의 단추(그림 2-14), 그리핀 형태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3), 가죽으로 된 산양뿔 장식(그림 2-12) 등이 조각이 나서 남아 있었다. 남성은 모피코트(그림 2-7)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산양머리

 

또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매듭끈(그림 2-9)도 발견되었다. 활과화살통에 달았던 것이었는데, 이 유적에서도 같은 용도였을 것이다.

 

가죽아플리케가 붙은 모피조각(그림 2-7)도 발견되었는데, 주머니로 보고되었으나, 비슷한 문양은 알타이에서 발견된 여러 옷 조각에서 볼 수 있었다.

 

마구의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그림2-1~6). 그런데 눈에 띄는 유물은 말의 머리를 조각한 것이다(그림 2-3). 금박을 입힌 채 남아 있었는데, 모두 4점이 발견되었다.

 

 

그림 2.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출토유물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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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쿠투르군타스의 무덤구덩이 내부에는 직경 7~8cm가량 통나무를 쌓아올린 4.2×2.2m 크기의 나무방이 설치되었다. 나무방을 덮은 통나무는 11개가 조밀하게 붙어 있고, 북쪽 부분 말이 매장된 곳으로 도굴로 깨진 상태였다. 나무방의 덮개는 도굴로 인해서 구멍이 있었고 그 속에 무덤위를 덮었던 돌이 들어간 상태였다(그림 1-1). 안쪽의 덮개는 나무방 크기에 맞게 만들어 진 것으로 는 것으로 6개의 나무판자로 덮었다(그림 1-2).

 

이중나무방 안에는 통나무관이 있었는데, 도굴꾼이 통나무덮개까지 구멍을 내고 시신을 꺼낸 상태였다(그림 1-3).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 바깥은 그릇위에 고기를 두는 공간이지만 발견된 것은 토기 1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무덤에서 발견된 목제쟁반과 철제 칼은 무덤의 바깥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쿠투루군타스 유적 1호

 

말은 모두 10마리가 부장되었는데, 10마리를 밀어 넣은 상태였다. 서로 납작하게 깔려 묻혀 있었고 철제 재갈을 물고 마구가 착장된 상태였다. 말이 흐틀어진 흔적이 없기 때문에 마구가 도굴당하지는 않았는데, 굴레장식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얼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모양의 굴레장식(그림 2)이 발견되어서 흥미롭다. 아시다시피 얼굴모양의 굴레장식이 발견된 예는 파지리크 유적 1호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그림 2. 얼굴모양 굴레장식

 

이 유적의 무덤에는 알타이에서 관찰되지 않던 무덤구조 가운데 연도가 발견되었고, 인면에 표현된 사람도 몽골로이드의 얼굴이 아니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연도가 있는 스키타이 무덤은 흑해지역의 특징이다). 하긴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과 5호분 여성도 유럽인종의 여성으로 판명되었기에 동양인종이 아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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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아크 알라하-3, 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5 유적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쿠투르군타스 유적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해발 약 2000m정도 되는 곳이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무덤은 매우 큰데 직경이 27.7m(동서방향)이며, 높이는 0.95m가량이다. 이 크기는 무덤을 덮은 돌의 범위인데, 중앙에는 돌이 없어진 지점이 있는데 도굴의 흔적이다.

 

무덤 구덩이의 주변을 2줄의 호석으로 둘렀는데, 그 사이에는 호석과 크기가 다른 돌이 채워진 상태였다. 이 무덤에서 가장 특이한 사항? 즉 인접한 아크 알라하 유적 군과 다른 점은 무덤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복도(연도, 그림 1-2)가 있다는 점이다.

 

연도가 있는 무덤은 주로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서부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연도가 있는 무덤 시설이 이 지역에서 일정하게 만들어졌다면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연도가 있는 무덤시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유적 외에는 아직까지 연도가 있는 무덤은 보고되지 않았다.

 

 

이 연도는 무덤구덩이 바닥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말과 사람을 매장하는데 용이하게 위해 만든 것이다. 특히 연도를 통해서 구덩이 안쪽으로 돌을 굴려 넣은 것이 발견되어서 주로 돌을 굴려 넣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구덩이 바닥은 3.3m 정도 되는데, 무덤구덩이 바닥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그 상부를 돌로 누르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그림 1.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무덤평면도와 단면도

 

아마도 무덤의 범위를 두른 호석 부분이 넓기 때문에 연도와 같은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흑해지역에서 연도가 있는 무덤은 높은 봉분이 있고, 봉분의 측면에 연도 입구가 설치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무덤과 같이 보수적인 구조에 실용성을 띠는 장치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뭔가 아크 알라하 유적군과는 달라 보인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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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5 유적은 해발 2500m 가장 높은 곳에서 발견된 일렬로 무덤이 있는 곳이다.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알타이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유적이다.

 

이 유적의 5호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직경은 8m정도이다. 무덤크기는 2.35×2.43 정도이고, 나무방의 크기는 1.6×1.1m가량이다. 나무방은 2열 통나무로 만들어졌으나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도굴꾼이 덮개를 잘라낸 흔적이 뚜렷하다.

 

남성의 위에는 큰 돌이 놓여 있었고, 남성은 오른쪽 상태로 누운 상태이다. 남성의 다리 사이에는 목제로 된 방패 같은 것이 있었고 북벽에는 토기편이 남아 있었다. 말은 한 마리가 부장되어 있는데, 재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5유적의 5호

 

아크 알라하 5유적에서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부장된 유물은 1호이다. 여성 무덤이지만 남벽에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허리띠 버클 장식, 칼집에 담긴 철검, 목제 사슴과 말 장식, 동경 등이 발견되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 여성은 시신의 일부가 미라화된 것이 발견되었지만 유적 아래에 동토층이 남아 있지 않아서 상태는 좋지 않았다. 특히 1호 유적에서 나온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의 말 장식과 유사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아크 알라하 5유적의 4호에서는 투부와 칼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발견되어서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유일하게 남녀가 합장된 무덤인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녀합장무덤이다.

 

그에 비해서 이 유적의 3호분은 무덤 자체는 크지만 2 남성은 모자도 쓰지 않았고, 무기도 변변하게 없었다. 유적을 보고한 폴로스막은 이 두 남성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5호묘 남성도 아무런 무기 없이 매장되었다.

 

여러모로 이 유적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가운데서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 속하기는 하지만 앞에서 보여드린 유적에서 보이는 무덤양상과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다르지 않은 것은 어린아이의 무덤인 2호 뿐인 듯 하다.

 

그래도 일렬로 선 공동묘지 속에 묻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대단히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고 무덤을 발굴한 폴로스막 박사는 생각한다.

 

또 흥미로운 것은 추야 강 계곡의 일렬로 선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꼭 1~2기씩 후대의 투르크 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는 그렇지 않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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