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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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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가까운 유적은 ‘타샨타’라는 명칭을 썼다.

 

추야강의 다른 지류인 유스티드 강 유역에서 발견된 투구처럼 생긴 모자장식은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데, 동물문양장식이 없는 것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울란디르크 강의 5개 각 유적에서 무덤의 개수는 차이가 있지만, 여러 기의 무덤이 열을 이루어 만들어진 것은 같다. 열을 이루는 각 무덤의 주인공은 살아생전에 가족 구성원이었다고 본다.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들 유적에서 가장 이른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 중에 하나는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이다. 근거는 유적에서 출토된 마구 중에 하나인 재갈멈치와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이다.

 

울란디르크 I~V유적에서는 유스티드 XII, 유스티드 I 유적과 비슷하게 재갈은 잘 남아 있지만 재갈멈치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스티드 XII유적에 둥근 구형의 장식이 붙은 재갈멈치가 남아 있는 무덤이 있었다.

그런데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에는 재갈멈치의 끝에 동물문양장식이 붙은 것이다. 이는 기원전 5세기 파지릭 유적에서 발견된 것(포스팅참고)과 비슷한 재갈멈치(그림 2-9)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유물(포스팅 참고)과 비슷한 굴레장식(그림 2-1,2,3) 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리핀이다.

 

2020/04/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그리핀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맹수몸통에 독수리 날개를 붙인 것이 표현된 황금유물을 살펴 본 바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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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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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에 그리핀을 단 경우는 없었다. 그리핀이라고 할 수 없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청동거울에 새겨졌고, 맹수자세를 한 그리핀 1점은 유스티드 XII유적의 19호에서 발견되었는데, 출토위치로 보아서 머리장식 혹은 모자장식일 가능성이 있다. 즉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되어 출토되었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 1~6: 굴레장식, 7~9: 재갈멈치, 10,11-멧돼지 송곳니 모형(목제), 12-목제 채찍 손잡이, 13-뿔제 장식판, 14-안장의 부속품, 15-목제, 벨트 조이개, 16-뿔제 장식판, 목제 그릇에 부착되었던 것, 17, 18-토제 항아리, 19-목제 머리이마장식, 20,21-청동제 귀걸이, 22-목제 머리장식, 23-무릎을 꿇고 있는 목걸이의 끝장식 목제, 24-머리 혹은 모자장식의 일부, 25-머리장식, 26-목제 산양장식, 뿔은 가죽과 뿔로 조각, 금박으로 장식, 27~29-산양장식, 30,31-말 장식, 32-청동제 동물문양장식, 33-새모양 장식, 34-사슴장식으로 하단에 펜던트가 부착되었음, 머리장식, 35-목제의 다양한 펜던트, 36-목제 검집, 37-목제 멧돼지 송곳니 모형, 38-목제 장식판, 39-뿔과 나무로 만든 화살촉, 40-목제 활 대, 41-목제 원형 장식판, 42-목제 고리트 장식, 43-목제 송곳? 44-거울을 담는 주머니를 장식한 가죽 아플리케, 45, 46-청동거울, 47-목제 장식판, 48-목제 허리띠 장식, 49-목제 전투용 도끼, 50-목제 방패, 51-목제 쟁반, 52,53-손잡이 있는 목제 잔

 

그림 2.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3.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4.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5.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49번 이후의 유물은 이곳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발견되면 보여드리겠음)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 살펴본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3 유적, 아크 알라하-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파지릭계곡의 그리핀은 주로 말을 장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기원전 4세기) 그리고 지역이 바뀌면서 그리핀의 존재자체가 희미해지는 듯 해 보인다. 그러나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은 앞 세기의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무덤으로 생각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탄소연대와 함께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는 마구와 화살촉이다(쿠바레프 2007, 추구노프 2000). 기술발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Чугунов, К. В. “Бронзовые наконечники стрел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Тувы.” Мировоззрение. Археология. Ритуал. Культура. Сборник статей к 60-летию М. Л. Подольского. СПб, 2000. С. 213-238.(추구노프 2000, 투바의 스키타이시대의 청동 화살촉에 대한 고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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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에도 이 강을 따라서 알타이를 이동하는 주요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P-256)를 따라서 몽골의 서부로 연결된다. 반대편으로 이 도로를 따라서 가면 카프카스 산맥까지 연결되는 대상도로이다. 협곡사이로 꼬불꼬불하게 연결되는 매우 아름다운 도로이다.

추야강은 그 언제가부터 계속 이용된 자연교통로이다. 그 강의 지류에는 수 많은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유스티드 강은 추야 강에서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강이고, 강의 중류에 무덤이 위치한다. 무덤은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만들어졌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스티드 강과 반대편으로 뻗은 강은 울란드리크 강이 있다. 이곳에도 유적이 있는데, 모두 8개로(유스티드 I~V, 타샨타 I~III유적)이다. 타샨타는 이곳의 마을명을 그대로 유적이름으로 붙여서 발견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발견된 투구모양의 머리장식을 소개하면서 인접한 지역의 유적으로 울란디르크 유적을 잠시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이 없으면서 이 유물의 출토위치가 인골부근이 아닌 그릇 두는 곳(그림 1-14, 그림 2-14)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유적에는 8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 유적의 무덤에 대한 정보가 유스티드 계곡보다는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무덤상부를 덮은 직경, 깊이, 구덩이 크기와 같은 것이다. 울란디르크 유적 1호분의 지름(무덤 위를 덮은 돌의 지름)은 10m이고 높이는 50~60cm이다. 구덩이 크기는 300×240cm이다. 길이 160~170cm의 통나무 4개(무덤 한쪽벽 기준)를 이용해서 양 가장자리에 15~20cm를 남기고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의 구덩이 남쪽과 동쪽 및 서쪽에 돌을 채웠다.

 

 

그림 1.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목제품, 3-목제 재갈멈치 편, 4-가죽조각과 목제 사슴머리장식 편, 5-목제 버클 장식판, 6-허리띠 장식판, 7-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8-청동검, 9-목제 검집, 10-목제 단추, 11-청동거울, 12~13-목제장식판, 15-목제 화살통 지지대편, 16-뿔로 만든 화살촉과 화살대 편, 17-목제쟁반과 철제 칼, 18-토제 항아리, 19-목제 칼, 20-검은색 물감의 범위

 

 

그림 2.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의 출토유물, 그림1과 일치

 

이 유적에서는 재자리가 아닌 모자장식 뿐만 아니라 울란드리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동물장식이 부착된 청동검(그림 2-8)과 전투용 투부(그림 2-7)가 출토되었다. 알타이 추야강변에서 출토되는 파지릭 문화의 청동검은 대부분 손잡이가 T자형이며, 손잡이와 날의 경계에 나비모양으로 벌어진 칼날멈추개가 형성되어 있다(그림 3).

 

그림 3. 알타이 추야강과 우르슬라강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파지릭문화의 검

 

그런데 청동검은 손잡이 끝 장식과 칼날멈추개에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것이다. 추야강 일대의 유적에서도 몇 점 출토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청동제 전투용도끼의 끝 장식도 맹수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 검 손잡이에 동물장식을 붙이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무덤은 아르잔-2호의 5호무덤었다. 물론 이 보다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검으로 금으로 상감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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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에서는 출토된 여성의 이마를 장식하던 모자장식으로 두 동물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중앙에 돌출된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은 유스티드 XII유적(21호, 8호, 19호)에서만 출토된다.

2020/10/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 유적에서 26기의 무덤 가운데 아이의 무덤이 10기이다. 어른과 함께 매장된 경우(4호, 8호)를 제외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이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21호를 소개하고자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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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XII유적을 제외하고 10기의 무덤이 발견되고 대부분이 발굴된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이와 같은 유물은 없다. 이 유적 전체에서 목제 모자장식은 3호의 아이 머리 위에서만 출토되었다(그림 4). 2호에서는 가죽으로 된 모자장식이 출토되었다(그림 3-17). 그 외는 3호 여성(그림 3)과 6호 남성무덤의 2인(그림 8), 10호 남성 2인의 머리 상단에서 금박장식(그림 11)이 출토되었다는 표식만 있다.

3호에서는 목제사슴장식과 청동으로 된 그리핀(그림 4-4, 5,6)이 있다. 금박을 씌운 것이다. 그 중 1점은 청동거울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지만 거울과는 떨어져서 출토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토기편, 1-문양이 남아 있는 목제편, 2-골제 덮개편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c- 돌

1,2-토기편, 3-복합궁, 4-활의 끝편, 5-산양화된 사슴, 환상의 동물, 6,7-목걸이, 8-검집, 9-알 수 없는 유물, 목제품, 10,11-거울, 12-골제 귀걸이 편, 13-멧돼지 송곳니 이미테이션, 14, 펜던트, 15-자작나무껍질, 16-나무 막대기, 17-모자장식의 상단부, 1,2-토제품, 3-9,13,16-목제품, 10-12: 청동, 14-뼈, 15-자작나무껍질, 17-뼈

 

 

그림 3.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2의 번호와 일치, 유스티드 I유적에서도 유스트디 XII유적에 없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말려 있는 자작나무 껍질과 막대기이다(그림 3-15, 16).

 

 

그림 4.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1,2-토기, 3-목제 사슴의 상부편, 4~6-그리핀이 표현된 납작한 판, 7-거울편, 8-모형화 된 검, 9-검집, 10-거울, 11-검을 달기 위한 가죽끈 조각, 12-단추, 13- 칼, 1,2: 토제, 3,9,12-목제, 4~6: 청동과 금박, 7,8,10-청동, 11-가죽, 13-철제품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3과 번호 일치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출토유물, 그림 4와 번호 일치

 

 

그림 6. 유스티드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단면도, a-돌, b-무덤구덩이를 파고 다시 덮은 흙, c-무덤구덩이를 채운 흙, d-무덤구덩의 범위와 내부의 무덤방 위치, e-생토(인간이 손대지 않은 층)

 

그림7.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1,2-토기, 3-청동거울, 4-청동제버클장식, 5-목걸이(管모양)의 연결장치, 청동편, 6-철제 검의 부분, 7-골제 칼, 8-철제 검

 

그림 8.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c-숯 조각, 1-토기, 2-칼, 3, 9,10-검, 4,8-거울, 5~7:전투용 도끼, 11, 12-돌 베개, 1-토기, 2-철제품, 3~10: 청동제품

 

그림 9.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출토유물, 그림 7과 번호 일치

 

그림 10. 유스티드 I유적의 7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숯, 1-목제 쟁반, 2-토제 항아리, 3-목제 칼(철제품의 이미테이션), 4,5-구슬, 6-청동단추, 7-펜던트

 

그림 11.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1-재갈, 2-버클장식, 3,4-원판형 장식, 5-전투용 도끼와 자루, 6-원판형 장식, 7-검, 8-칼, 9,10-칼, 11,12-항아리, 13-금박, 14-검은색 물감의 범위, 철제품(1,9), 뿔제품(2~4), 청동+목제(5), 목제(6), 청동(7,10), 토제품(11,12)

 

그림 12.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0과 번호 일치

 

유스티드 I유적과 유스티드 XII유적을 비교해보면 동물문양장식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모자에 달던 동물문양장식으로 산양화된 사슴, 말, 사슴장식등이 남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모자에 달던 목제 동물문양장식은 3호의 아이에게서만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활이 존재한 무덤도 2호 뿐이다.  무엇보다 이 유적에는 말이 있는 무덤은 10호 뿐이다. 대부분 말 없이 매장한 유적이다.

 

그 외에 유스티드 I유적에서만 출토된 유물도 있다. 2호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데기와 막대기, 6호에서 출토된 돌 베개(그림 8-11, 12), 7호의 목제 칼(그림 9-3)과 상감된 구슬(그림 9-4,5)이다.

돌 베개는 평면도의 그림과 쿠바레프의 설명으로 보아서 파지릭 2호분과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목침과 비슷한 형태이다. 목제의 이미테이션인가 싶기도 하다.

2020/03/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미라 처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굴당시에 루덴코가 본 것은 이미 산산히 조각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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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레프는 이러한 유적 간의 차이를 시간차이로 보았다. 유스티드 I유적은 유스티드 XII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3세기로 보았다. (그러나 약간 조정이 필요하다.)

말이 무덤 안에서 사라진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회적인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는 다시 무덤 속에서 말이 확인되기 때문에 이 유적만의 특수한 현상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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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에서 확인된 무덤은 7개 유적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가장 동쪽의 졸린 I(8기), 졸린 II(8기), 유스티드 I유적(10기), 유스티드 XXII (2기)이다(유적은 그림 1에서 표시된 7개 보다 훨신 많음.) 그 뒤에 유스티드 XII유적, XIII(9기)유적이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계곡에서 발견된 무덤은 5천기가 넘고 대략 2개의 큰 시기(기원전 4세기 가량의 스키타이 시대)와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로 나눌 수 있다. 쿠바레프는 이를 들어서 ‘죽음의 골짜기’라고도 표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무덤 수가 확인된 곳은 유스티드 XII 유적으로 29기(그 중에 26기가 스키타이 문화, 2기는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이고, 가장 작은 유적은 XXII유적으로 2기만 존재했다.  이 유적은 다른 무덤에 비해서 월등하게 무덤 수가 많다. 한 계곡에 일렬로 묻힌 사람들은 서로 무관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유스티드 XII유적에만 왜 이렇게 무덤이 많을까?

 

그림 1. 유스티드  I 유적

(  상단의 윗 네모 박스: 유스티드 계곡의 케렉수르(사슴돌이 있던 곳의) 및  유적의 대략적인 위치, 즉 사슴돌 제사복합유적의 위치를 가르켜 주고 있음, 하단의 네모 안의 표식 차례대로:  유적(а), 케렉수르(б), 발굴된 무덤(в), 고리형 돌 유구(г), 입석(д)

 

이 유적에서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그리핀으로 16호에서 청동거울에 새겨져서 확인되었다. 2인이 매장된 무덤으로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불분명하다(참고문헌의 책에서 캡션이 다른 점을 발견). 아직 그리핀을 다 모으지 못해서 정확하지 않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을 예로 들면 19호에서 맹수자세를 하고 있는 그리핀은 매우 돌출된 형태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에서 확인되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모두 26마리의 그리핀이 말의 굴레장식으로 사용된 점도 매우 다르다. 유스티드 XII유적을 볼 때 그리핀이 모든 무덤에서 출토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어떤 점에서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성급하다. 동시대라는 조건이 성립될 때 두 유적에서 나오는 그리핀의 모습이 다른 이유가 더 논리적일 수 밖에 없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22호를 제외하고 모두 철제 재갈이 출토되었다. 22호에서는 청동재갈이 출토되지만 실제로 22호와 21호 사이의 탄소연대 측정결과로는 큰 차이가 없고, 대부분의 무덤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어서 대체로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어깨 문신 남성미라)보다는 약 100년~200년 정도 늦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유적의 무덤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구조가 다른 무덤에 주목한다. 이 유적의 시작은 우코크 고원의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 보다 더 빨리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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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한 공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묻힌 곳은 성인 3인과 말 3마리가 있는 곳으로 21호와 22호가 연결된 23호이다.

 

남녀가 함께 매장된 20호(134×165cm)와 비교해 볼 때 그렇게 크지 않은 무덤방(131×193cm) 속에는 남성 2인과 여성 1명으로 꽉 차 있다.

다른 무덤과 비교해 보면, 죽은 사람이지만 공간이 부족해서, 이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면 아마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해서, 널찍하게 안묻어 주는가...이러면서..

 

무덤 속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보이는 나무껍질이 바닥과 무덤의 서쪽벽 위에 놓여 있다. 무덤방을 자작너무 껍질로 덮었고, 그 흔적이 서쪽벽 위에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 나무껍질이 놓인 경우는 대부분 말의 다리 부근이었는데, 이 무덤에서만 유일하게 무덤방 바닥에도 깔고, 무덤방을 덮었다.

물론 무덤덮개는 다른 무덤에는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이 안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무덤바닥의 자작나무껍질은 다른 무덤방에는 깔지 않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지릭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는 자작나무 껍질은 가을에는 두터워지고 넓어지면서 벗겨지지 않고, 봄 여름에 벗길 수 있으며, 무덤(파지릭 2호)은 늦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했다(루덴코 1953).

이 유적의 무덤방의 바닥은 21호를 제외하고 모두 북쪽에는 나무를 깔지 않고 이 공간에는 토기를 둔다. 그런데 이 무덤에도 나무를 깔지 않은 곳에 남성 1인을 더 묻었다. 혹시 이 남성은 원래 이 무덤에 계획된 사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죽어서 그냥 함께 묻었을까?

 

그림1.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와 출토유물 1-철제 재갈, 2-목제 굴레장식, 3-뿔제 버클 장식, 4-6: 원판형 안장 장식, 7-9: 토제 그릇, 10-사슴모양 장식, 11-산양화된 사슴장식, 12-14: 말 장식, 15-사슴이 서로 맞댄 모양의 황금 이마장식, 16-18, 20-24: 각종 모자장식 19-목제 말 장식에 붙어 있던 산양 뿔 장식, 25,26-청동거울, 27-거울 주머니를 장식한 가죽 아플리케, 28-고리모양의 은제 귀걸이, 29:잣 껍질로 만든 구슬, 30-유르제 구슬, 31:말사슴의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 조각, 뿌리부분, 32:유리제 비드(구슬보다 작은 장식), 33,35:청동검, 34, 37:목제 검집, 36:검집 반대편에 붙인 가죽, 38:멧돼지 송곳니 이미테이션, 목제품, 39, 40-목제 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41-납작한 판의 막대기, 42.43-뿔제 화살대, 44-50:목제 장식판, 51-원판형 단추장식, 고리트 장식, 52, 53-목제 장식판, 54-양의 이빨 펜던트 55-58: 복합궁의 부속품, 59-활의 끝 부분, 60-목제 낚시 바늘, 61-철제 칼, 62-컵모양 토기

 

그림2.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 출토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그림3.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 출토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부장품은 세 명 모두 다르다. 중앙에 있는 여성은 성별 차이라고 해도 양쪽 가장자리의 남성은 각자의 소유물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오른쪽 남자는 전투용 도끼가 2자루이며, 화살통까지 들고 있지만 가장 왼쪽의 남성은 청동검(그림 1-35~37, 그림 2-33~37)만 가지고 있다. 다른 한 자루의 청동검은 여성의 검(그림 2-33, 34)이다.

 

21호, 22호, 23호는 무덤의 상부가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21호와 23호 구덩이를 먼저 파고 갑자기 22호 아이가 죽어서 21호 옆 혹은 22호 옆에 구덩이를 팠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22호 무덤을 먼저 만들고 그 옆에 21호와 23호가 들어섰을 수도 있다. 이미 포스팅한 이 무덤의 단면도를 자세히 보면 21호를 덮은 상부 흙과 돌, 22호와 23호를 덮은 상부 흙과 돌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필자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것이라면 21~23호는 한 가족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한 가족 구성원은 25~27호이다. 25호 남자 성인, 26호는 아이, 27호는 여자성인이다. 25호는 24호와 다른 무덤 보다 거리를 두어 축조해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성과 아이가 함께 묻힌 4호와 8호도 마찬가지이다.

 

26기의 무덤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뚜렷한 유물도 추출하기 쉽지 않고, 아이라는 변수 뿐만 아니라 무기와 거울도 제각각이다. 고구마 100개 먹은 느낌이다. 유스티드 계곡에 무덤이 5000기가 넘개 있었다는데, 속이 시원해지도록 발굴하면 좋겠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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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