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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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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코카서스 북쪽과 흑해 북안에는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다. 오늘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로 소속이 다르지만 그건 얼마되지 않은 일이고, 역사적으로 흑해지역을 둘러싼 문화적 특징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도 같은 문화지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가 드러서면서부터 이웃한 지역의 문화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가속화된다. 특히기원전 4세기 코카서스 북쪽과 흑해 북안에는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다. 오늘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로 소속이 다르지만 그건 얼마되지 않은 일이고, 역사적으로 흑해지역을 둘러싼 문화적 특징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도 같은 문화지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가 드러서면서부터 이웃한 지역의 문화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가속화된다. 특히 그리스 문화가 많이 발견되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그리스 제품을 많이 수입해서 썼다. 식기, 장신구 등 정해진 것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 문화 이외에도 다른 문화의 요소도 나타나는데,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에서 볼 수 있다. 이 무덤에는 여성과 남성이 매장되었다. 무덤의 내부 석실방은 스키타이 문화 혹은 그리스 문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고대 트라키아와 유사하다고 한다(바흐티나 2021).

 

바흐티나는 이 무덤에서 가장 확실하게 재지의 문화와 트리키아 문화, 그리스 문화가 복합되는 근거로 남성무덤방에서 나온 고리투스 장식판을 예로 들고 있다.(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장식판과 비교되는데, 1894년의 출판물에는 소개되어 있지만, 실제로 유물은 제2차 대전때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위)과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아래)의 고리투스 장식판(Lappo-Danilevskij A.S., Malmberg V.K. 1894)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고리투스 장식판

 

*고리투스: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활통을 일컫는 용어

 

참고문헌

Marina Yu. Vakhtina, The Female Burial at Karagodeuashkh, Environment and Habitation around the Ancient Black Sea, De Gruyter, 2021

Lappo-Danilevskij A.S., Malmberg V.K. 1894. Drevnosti Južnoj Rossii. Kurgan Karagodeuašch (Materialy po archeologii Rossii 13). St. Petersburg.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코카서스 북쪽에는 매우 특이한 구조의 무덤이 존재했다. 카라고데우야쉬흐 라고 불리는데, 외관은 당시 스키타이 사람들의 무덤과 비슷했지만 그 내부는 달랐다. 높은 봉분안에 무덤의 서쪽에서부터 일렬로 4개의 석실방이 있는 것이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무덤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발견되었는데, 여성이 서쪽에 남성은 여성의 동쪽 방에 매장되었고, 세 번째 방에는 토기만 남아있었고, 벽에는 뿔이 있는 사슴 그림이 그려졌다. 가장 끝의 동쪽방에는 말과 마구가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무덤구조는 흑해 북안의 그리스 계통의 무덤이나 스키타이 무덤에도 없었다. 다만 외관만 그 지역의 무덤과 닮았다.

 

그림 1.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무덤

 

무덤 안의 여성은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똑바로 누운자세로 매장되었다. 두개골 주변에서 삼각형 모양의 관 장식판과 금제 귀걸이, 새 모양의 장식판 16개와 고르곤의 얼굴이 있는 원판이 발견되었는데, 베일의 장식이었다. 또 스키타이 스타일 목걸이(그림 2)와 그리스 스타일의 목걸이와 팔찌(그림 3), 반지 등 여성이 평소에 착용하던 유물도 있었다.

 

이 여성의 무덤방에는 말뼈와 마구, 전차 관련 유물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오른쪽에는 그릇류가 놓여 있었는데 암포라, 은제 그릇, 청동 거울과 무덤방을 밝혔던 램프로 추정되는 물건도 있었다.

 

그림 2. 카라고데우야쉬희 유적의 여성 유물

 

그림 3.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여성 목걸이와 팔찌

 

무덤외관과 유물 중 일부분은 스키타이 유물 중 일부분은 그리스, 무덤 구조는 트라키아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 여성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쓰고 있었던 관(冠)일 것이다.

 

참고문헌

 

Marina Yu. Vakhtina, The Female Burial at Karagodeuashkh, Environment and Habitation around the Ancient Black Sea, De Gruyter, 202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는 수 많은 유물 가운데 쿠반형 헬멧(투구)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이 투구는 기원전 7세기부터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며, 몽골과 중국동북지역까지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흑해 지역에서 초기 스키타이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반면에 그리스 스타일헬멧도 발견된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말탄 스키타이 전사와 보병 전사가 싸우는 장면에도 등장하고, 솔로하 유적에서 발견된 빗 상단에 그리스 병사가 쓰고 있는 헬멧도 쿠반형과는 다르다.

 

2020/12/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흑해의 스키타이 전사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astsearoad.tistory.com

 

 

흑해 북쪽에서 발견되는 그리스식 헬멧은 두 가지가 있는데, 코린트(그림 1-5,6)와 아틱(attic) 스타일이다. 코린트 스타일은 완전히 머리를 덮는데, 눈만 내 놓은 것이다. 두개골 부위와 얼굴부위가 따로 제작되어 붙인 것으로 하단의 얼굴보호대는 목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코린트식 투구가 발견된 2곳인데 한 곳은 로메이코프카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을 발굴했던 베셀로프스키가 1913년에 발굴했다고 알려졌으나 유적에 대해서는 거의 남겨진 정보가 없다. 로메이코프카 고분에서 발견된 것은 턱부분이 파손된 것이다. 다른 한 점(그림 1-6)은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되었다고만 알려지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완전한 유물이 한 점 더 전해진다. 파손된 부분 없다. 로레이코프카 유적에서 나온 투구에 비해서 정수리 부분이 매우 높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1.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투구, 코린트 스타일 투구(5,6), 트라키아 스타일 투구(2~4), 아틱 스타일(1)

 

아틱 스타일(그림 2, 그림 1-1)은 역시 두개골을 보호할 수 있는 부분과 얼굴 보호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하단은 코린트 스타일과는 달리 볼을 가릴 수 있는 형태이다. 파스트르스코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림 2. 흑해 북안에서 출토된 아틱 스타일의 투구와 정수리 보호대, 화살촉

 

트라키아 스타일의 투구(그림 1-2~4)는 역시 두개골 보호부분(상단)과 얼굴보호부분(하단)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단의 형태가 뒤로 젖힐 수 있는 모자형태차럼 만들어진 것이다. 하단에는 아틱 스타일처럼 볼 가리개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흑해 북안에서 발견된 외국(코린트식, 아틱, 트라키아)의 투구는 대체로 연대가 기원전 5세기 이후의 것이다. 매우 오래전에 발굴 혹은 도굴되면서 정확한 유적의 정보가 없다.

 

흑해 북안에서 발견된 외국의 투구는 모두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투구는 상단과 하단이 따로 만들어지고 땜질해서 연결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하단은 매우 작은 못으로 고정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된다. 유적에서는 발견될 때는 하단은 결실된 채 많이 발견된다. 결국 가장 실용적인 스키타이 스타일의 쿠반형태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쿠반형 헬멧은 현대에서도 볼 수 있다..ㅋ

 

 

 

그림 3.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다양한 스타일의 투구변화

 

 

 

그림 4. 쿠반형 투구,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말탄병사와 보병의 병사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된 장식판의 투구는 코린트스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의 말탄전사는 어떤 스타일의 투구일까요?

 

사실 코린트 스타일 투구는 다스베이더의 투구와 매우 닮았다고 우기고 싶다. 영화잡지에서는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를 모티브 했다고 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의 갑옷)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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