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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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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암각화 속의 전차는 대부분 청동기시대 카라숙문화(기원전 14~10세기)의 시기 것으로 스키타이 시대보다 이른 시기이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전차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인접한 파지리크 유적의 5호분에서는 통째로 들어간 적이 있긴 하지만 드문경우이다. 울란곰 유적의 북쪽에 위치한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전차그림이 있는 돌이 유적 내에서 발견되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아래포스팅참고)는 전차를 몰던 말의 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2020.06.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2700년 전 무덤 속에서 발견된 마차

 

시베리아 2700년 전 무덤 속에서 발견된 마차

시베리아 투바에는 2700년 전 무덤(혹은 의례복합체)인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초기 스키타이문화로 생각된다. 아르잔-1호는 기원전 9세기 정도의 유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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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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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키타이 시대에는 전차를 제작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청동과 철기로 매우 많은 장신구와 의례구, 무기를 만들었고 무덤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기는 공격할 수 있는 검과 칼, 투부 등 찌르는 도구와 화살촉과 같이 멀리서 관통하는 종류가 있다. 스키타이 활이야 매우 유명하지만, '단검'은 청동제가 많이 발견되어서 공격성이 의심되지만, 33호에서는 철제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전차보다 앞서서 만들어졌던 수레는 바퀴가 살 없이 나무원판으로 된 것이다. 바퀴를 세심하게 다듬고, 수레의 여러 부속을 만들기 위해서는 석기로는 불가능했고 금속기가 매우 필수적이다. 그래서 순동시대 가장 마지막 시기에 동유럽과 우랄 지역에서는 실물수레가 무덤속에서 발견된다. 전차가 등장하게 된 것은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인 안드로노보문화이다.)

 

울란곰 유적의 33호에는 9인이 매장되었는데, 성인 8인과 아이 2명(I호, VII호)이다. 성인 중에 XI호만 여성이다. 사지뼈가 있는 경우는 모두 오른쪽을 향해서 무릎을 굽힌 채로 누워 있다. 두개골만 들어가 있는 사람은 VI호와 IX호 여성이다. 특히 VI호에는 두개골에 인위적으로 뚫은 구멍이 선맹하다. 정수리와 관자놀이 뼈에 난 것으로 투부(전투용 도끼)에 의한 것이다. 여성 두개골에 난 흔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V호 남성도 두개골에 인위적으로 뚫린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림 1. 울란곰 33호 무덤의 무덤방 덮개와 내부

 

2~3달 된 I호 유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나 종류와 양은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철제 단검을 지니고 있던 사람은 III호와 IV호 남성(그림 2-11)이다. III호 남성은 매우 많은 부장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IV호는 철제단검, 화살촉, 채색된 용도미상의 물건, 청동단추와 철제버클 정도이다. 바로 인접한 V호 남성은 철제단검은 없었고 청동칼만 무릎 아래의 정강이(그림 2-10)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울란곰 33호 무덤 출토품 1. 청동솥, 2~6. 토제 항아리, 7. 목제 잔, 8. 골제판 9. 목제 염소상, 10, 11-칼과 검의 출토부위

 

무덤 내에서 다른 인골과는 다른 배치인 것이 IX호 여성과 IV호 남성이다.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가지런하게 매장되는 것이 특징인데,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이 무덤에서는 무덤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양뼈가 발견되어서 무덤내에서 제사를 지냈을 수 있다. III호 남성의 발 아래에서는 청동솥(그림 2-1)이 발견되었고 그 내부에는 양뼈가 들어 있었다(그림 1-14).

 

나무방은 통나무를 3단으로 올린 것이고, 크기는 2.4×2.5m이다. 나무방의 덮개는 20~35cm통나무로 덮었고 곽의 외측은 돌로 고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가 스키타이 단검에 다시 끼워 맞춰진 것이다. 검자루의 끝에 달린 두 마리 동물은 소인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소를 문양으로 쓰지 않는다. 손잡이에는 연꽃 문양대를 중심으로 사냥장면이 서로 대칭이 되도록 표현되어 있다. 페르시아 옷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이 활을 들고 영양에게 화살을 쏘는 장면이다. 소머리 장식, 소머리의 목에 단 목걸이 장식, 사냥장면은 순수하게 기원전 5세기 아케메니드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검코(혹은 검날 멈추개)는 하트 모양인데,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검과 같은 모양이다.

검의 손잡이는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었으나 검날 멈추개는 스키타이 스타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 출토 검자루와 검

 

그림 2. 그림 1의 손잡이 디테일

 

이 유물의 검집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남성 11명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인이 이방인과 전투중인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부조로 처리되어 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남성은 코린트식 갑옷과 투구, 칼, 창,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리스 지휘관이다(그림 3). 그 바로 옆에는 옷으로 보아 페르시아 남성(그림 4의 가장 첫번째 남성)으로 오른손에 수건을 들고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는 말에서 떨어져 죽은 페르시아 병사가 고삐에 매달린 채 말에 끌려 다니고 있다(그림 5).

 

그림 3. 그림1의 검집, 길이 54.4cm

 

그림 4. 검집 디테일

 

그림 5 . 검집 디테일

 

이 장면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의견이 있다. 그리스인이 마라톤에서 페르시아인과 싸우는 장면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른 의견은 인물들 가운데 투부를 들고 있는 인물(그림 6)이 여성적인 얼굴로 여성전사였던 아마존사람(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전사 종족)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6. 그림 3의 디테일

 

검집을 허리띠에 걸기 위한 구멍이 있는 부분에는 독수리 머리와 사자의 몸통인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찢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7).

그림 7. 그림 3의 디테일

 

두 유물(그림 1, 그림 3)은 드레프르강 하류의 스키타이 무덤인 체르토믈리크에서 함께 출토되었으나  유물의 제작연대는 다르다. 검집은 검 보다 늦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이 유물이 스키타이 왕묘에 부장되기 전에 검의 주인은 여러 명이었고, 그 중 한명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3세)도 포함된다. 그가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때 개인적으로 스키타이와 접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용으로 검집이 제작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집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에 페르시아 검에서 검자루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에 끼우고, 그리스에서 제작된 검집에 이 검을 보관된 채 드네프르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단검 자루에서 손잡이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으로 끼운 사람은 누구일까? 검집에 묘사된 전사는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이지만, 이 유물을 마지막에 허리춤에 찬 사람은 그리고 이 유물이 마지막으로 부장된 곳은 스키타이 사람이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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