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도네츠 강은 돈 강의 지류로 세베르스키도네츠 강이 공식적인 명칭이다. [세베르스키는 북쪽이라는 러시아어가 뒤에 도네츠 라는 명사가 오면서 형용사로 바뀐 것이다.]

도네츠 강 유역에는 현존하는 스키타이 성곽 중에 가장 오래된 루보틴 성곽이 있다. 성의 평면형태를 특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부정형에 가까운) 사면이 있고, 서와 남쪽에 문이 있으며, 성벽은 목재와 점토로 만들어졌고, 성벽 앞에는 환호(해자)시설이 있는 구조이다. 유적에는 목조 구조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성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안을 점토로 채워서 만들었다.

 

유적에는 문으로부터 뻗어나온 도로가 있었다는 것을 발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 내의 공간분할은 일정정도 규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은 땅을 파지 않은 것과 땅을 파서 지하 공간을 만든 집이 있다. 집 자체는 둘 다 지상위에 있기 때문에 구덩이를 파고 벽을 지하에 세우는 구조와는 다르다.

루보틴 유적이 기원전 7세기 말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 유적에서 발견된 집은 그 시대의 스키타이 집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보면 같은 시대여도 무덤 구조가 다른 특징이 있는데, 집의 건축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장담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남아 있는 유적이 루보틴 성곽 밖에 없음으로 그 외는 좀 상상하기 힘들다.

 

스키타이 집의 모습을 시대로 국한 하지 않고 전 시기를 통틀어서 살펴본다면 다양한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원전 7세기 말 루보틴 성곽 유적 외에도 기원전 4세기 카멘스코예 성곽에도 남아 있었다. 유적에는 집 자리의 평면과 점토내에 짚을 섞은 건축자제가 유적에서 발견되어서 점토벽을 세운 모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브릴류크(1989)가 뒤에 복원한 모습이 있다(그림 1-4).

 

두 유적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사야 고라 유적에서는 집에 구덩이를 파고 2칸이 붙은 도 있다(그림 1-3).

 

이 외에도 바이슈테인 유적에서는 집의 모형이 달린 마차모양의 모형(그림 1-1,2)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집의 구조는 유라시아 초원 지역에 기원전 7~5세기 사이에 아주 널리 퍼져 있던 집의 모양이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다양한 집 모습, 1,2-바인슈테인 유적 출토, 3-리사야 고라 유적, 4~6: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4: 복원도, 5,6-집의 평면도)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집 없이 마차를 집을 삼아서 초원을 누비고 다녔다고 했다.

그가 기록을 남길 때 모든 사실을 보고 직접확인한 것은 아니었지 않을까?

아마 그는 집을 실고 다니는 마차 일종의 캠핑카는 보았으나, 스키타이 사람들의 성곽과 집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참고문헌

Гаврилюк Н.А. 1989, Домашнее производство и быт степных скифо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89. — 112 с (가브릴류크 1989, 초원 스키타이 사람들의 가내공업과 관습)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호) 및 2륜의 마차(아무다리야 퇴장지)로 견인 막대가 2개 있는 형태였다.

파지릭5호분의 4륜마차는 멍에가 2개였기 때문에 2마리 말이 끌었을 것이다.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나온 전차모형에서는 견인대는 2개 였으나, 각 견인대에 멍에가 2개씩 달리면서 4마리 말이 끄는 형태의 마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흑해 지역에서 전차가 나오는 유물은 없을까?

 

기원전 4세기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판에 쌍두마차가 발견되었다. 장식판은 세 부분으로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눠지지만, 각 칸 아래에 다른 문양대가 들어간다. 가장 윗부분은 여신상이 위치하고 가운데 부분에 쌍두마차를 끌고 있는 전사가 발견된다. 두 마리 말 사이를 연결하는 막대가 발견되었고, 전사는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아닌 전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발 밑에는 그리핀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아르타모노프는 그를 스키타이 신 가운데 태양의 신인 고이토스르라고 생각했다.

가장 아랫 부분에는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신이 앉아 있다. 이 여신이 입고 있는 의상은 스키타이 스타일인데, 머리에 고깔모양의 관모를 쓰고 있다. 그녀의 왼쪽(목이 긴 항아리)과 오른쪽(각배)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그릇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녀의 발 아래에도 얼굴형상만 남아 있다.

 

더보기

스키타이 신화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가 자신의 저서에 기록을 남겨놓아서 각 신의 명칭 및 역할을 알 수 있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숭배하고 스키타이 왕족 또한 포세이돈에게 희생물을 바친다. 스키타이에서 헤스티아는 타피티(Табити, Tabiti), 제우스는 파파이(Папай, Papai), 땅은 아피(Апи, Api), 아폴론은 고이토시르(Гойтосир, Goytosir),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아르김파사(Артимпаса, Artimpasa 혹은 Argimpasa) , 포세이돈은 파기마사다(Фагимасада, Fagimasada) 라고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은 여성이라고 생각되지만 얼굴이 불분명하고 가장 하단에 있는 아르김파사와는 다른 복장이다. 그리스 복장이라고 한다.

 

 

그림 1. 카라고데우야쉬흐 무덤 출토, 길이 21cm

 

 

그림 2. 그림 1의 착용 예

 

 

이 유물의 용도는 장식판의 가장자리를 돌아서 뚫린 구멍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는데, 아르김파사가 쓰고 있는 관모장식과 유사하다(그림 2). 게레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말탄 전사와 전투장면이 표현된 장식판),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된 고리트의 장식판에서 관찰되는 스키타이 스타일의 제작방법이다. 그러나 그리스 복장을 한 여성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 그리스 스타일이 가미된 것이다. 유적이 위치한 흑해의 쿠반 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석실묘로 네 벽에 벽화가 남아 있는 무덤으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석벽은 회반죽으로 덮여 있었다. 바닥은 불분명한데, 바닥에 나무를 깔고 돌을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구는 서쪽이고, 입구는 긴 복도로 이어지는데, 상부에는 장식으로 덮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3.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무덤방 평면도. 1888년 발굴

 

그리스 여성 혹은 여신과 스키타이 재지의 신인 고이토시르와 아르김파사가 함께 표현되었을 수 있는 이유는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랄해 사이)에 있던 보스포로스 국가가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세력을 넓히면서 쿠반 지역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한다(아르타모노프 1966).

 

 

기원전 4세기경에 흑해에서는 쌍두마차가 끄는 전차가 있었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리스 복장의 여성은 왜 얼굴이 뚜렷하지 않을까? 하단 두 칸의 인물들은 얼굴이 매우 뚜렷하며 심지어 손에 쥔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는 점까지 표현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20. 13:0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는 전차모형이 1점 더 발견되었다. 어제 보여드린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뒤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시다시피 말과 바퀴가 보존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깔모자 쓴 라이더는 운전대에 앉아 있으며, 얼굴에는 눈코입이 없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머리가 없는 한명이 더 있는데 오른손은 구부려서 창을 쥐고 있고있다. 이 유물 역시 속이 비어 있다. 마차에는 양쪽에 바퀴달 렸던 흔적이 남아 있어 이륜의 전차였을 것이다.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2인이 타고 있는 전차에서 라이더는 정면을 바라보고 말을 몰고 있지만, 앉아서 전차를 모는 이의 좌석은 전면을 바라보도록 고안된게 아니라 전차의 측면을 보도록 되어 있다. 제이말과 달턴 등 아무다리야 유적의 유물을 연구한 사람들은 앉아서 전차를 모는 사람들이 사람이 더 놓은 계급일 것으로 보았다.

 

초창기 연구에서 2인이 타고 있는 전차와 함께 이 전차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전차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동전 및 여러 기념물에 유사한 전차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Boardman 1970, 제이말 1979). 전차가 앗시리아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것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전차의 기원은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2000년 경 안드로노보 문화에서 기원했고, 주변 국가(앗시리아 포함)로 영향을 미쳤다는 쿠즈미나의 연구(1994)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와 관련한 후속연구(데이비드 앤서니 2015, 쿠즈미나 외 2014)가 잇따르고 있다. 시베리아 안드로노보 문화의 전차가 중국동북지방의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에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최근의 연구(강인욱 2020)도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많다. 필자가 최근에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을 다시 살펴보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한 점 발견했는데, 연꽃모양으로 자른 가죽으로 된 조각 이다. 물론 파지리크 유적에서 캐노피 장식으로 연꽃이 표현된 펠트 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 아플리케 장식은 아무다리야 퇴장지 속의 평판속 남성들이 들고 있던 꽃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연꽃 모양 가죽 아플리케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도 연꽃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들어온 문양이라고 생각했다. 시베리아와 페르시아가 관련은 파지리크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9세기의 아르잔-1호 속에서 주인공 무덤 속에서 나온 실크 조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주인공 무덤은 통으로 도굴당해서 조각만 남아 있었다.

 

시베리아의 문화는 이웃한 지역으로도 전해졌을 것이고, 페르시아 문화도 시베리아로 전해졌을 것이지만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Кузьмина Е.Е. 1994 : Откуда пришли индоари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племён андроновской общности и происхождение индоиранцев.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464 с.(쿠즈미나 1994, 인도아리아인은 어디서 왔는가?)

Е. Е. Кузьмина, В. А. Новоженов, А. В. Епимахов,, К. Алтынбеко, А. Р. Хазбулатов, К. М. Линдафф, И. Н. Швец, Э. Р. Усманова , И. В. Чечушков, А. Б. Ипполитова). Таинство этнической истории древнейших номадов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 Алматы: Остров Крым, 2014.  454c.(쿠즈미나 외 2014, 유라시아 초원의 고대 유목민 역사의 비밀)

https://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digital-collection/25.+archaeological+artifacts/3510475

강인욱 2020, 전차의 확산으로 본 청동기시대 고대 북방 유라시아와 동북아시아의 네트워크와 그 영향, 동양학연구원 제50회 국제학술회의, 단국대학교

데이비드 W. 앤서니(저), 2015, 󰡔말, 바퀴, 언어: 유라시아 초원의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 에코리브르

 

쿠즈미나에 대한 설명.

ru.wikipedia.org/wiki/%D0%9A%D1%83%D0%B7%D1%8C%D0%BC%D0%B8%D0%BD%D0%B0,_%D0%95%D0%BB%D0%B5%D0%BD%D0%B0_%D0%95%D1%84%D0%B8%D0%BC%D0%BE%D0%B2%D0%BD%D0%B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9. 13:1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당시에 타고 다니던 전차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그림 1). 4마리 말이 끌고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입체상이다. 전차는 뒤가 개방된 형태이고, 두 바퀴의 바깥쪽에 스파이크가 붙은 형태이다. 바퀴에는 9개의 축이 있다. 오른쪽 바퀴의 살은 보존되지 못했다. 전차의 전면에는 삼각형으로 채워진 두 개의 직사각형이 ‘X’형을 이루고 있고 그 교차점에 ‘Bes’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이 부착되었다. 베스는 이 유적에서 원판형 장식판에서 확인된 적이 있다.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높이 7.9cm, 길이 18.8cm(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고삐를 쥔 라이더는 고깔모자를 썼고, 목걸이를 차고 있다. 라이더는 허리끈을 차고 있다. 다른 이는 앞으로 넓은 옷자락이 있고 끈으로 묶은 튜닉?을 입고 있다. 라이더와 같은 매우 두터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그림2).

남성이 매우 무거운 목걸이를 착용한 예는 아르잔-2호의 5호묘 남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 남성의 목걸이는 1kg이 넘는 목걸이였다.

두 사람은 마차의 바닥에 구멍을 통과해서 와이어를 구부려서 고정시켰다. 마차는 전차를 관통해서 연결되어 있다(그림 3).

 

그림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높이 7.9cm, 길이 18.8cm

 

 

그림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전차, 엑스레이 사진(아래 인스타그램에서 참고)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전차, 엑스레이 사진(아래 인스타그램에서 참고)

 

4마리 말은 재갈과 재갈멈치 등을 착장한 상태였으며, 가슴걸이도 있다. 말은 다리가 다 보존되지 못했고 모두 9개 뿐이다.

 

이 유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브리티시 뮤지엄에서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금 제작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 유물을 엑스레이 촬영한 결과(그림 3, 그림 4) 전차는 손으로 만든 작은 조각의 금판과 단선이 함께 연결되었고 사람과 말의 내부는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물로 만드는 방법(거푸집 이용)방법보다 적은 금을 사용했고, 유물은 가벼웠다. 그리고 거푸집을 이용하는 방법 보다는 섬세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어디를 갔을까요? 그리고 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 전차는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https://www.instagram.com/p/CIf_xUAIOS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이다.

그랴즈노프는 이 유물이 말의 가슴을 했던 장식판으로 보았다(그림 1-67).

 그런데 이 유물의 용도를 달리 생각하는 연구(스미로노프 2012)를 찾았다.

 

아르잔-1호 원형맹수장식(그림 2-9)의 뒷면에는 꼭지가 2개 달려 있는데, 구멍의 방향은 위 아래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 1-67)의 말 가슴장식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지의 방향이 옆으로 향하게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원형맹수장식의 꼭지대로 끈을 끼우면 그림 1-67처럼 착장할 수 없고, 마구가 완전히 흩틀어지게 된다. 가슴장식일 수 없다.

 

 

 

 

 

 

 

그림1. 아르잔-1호의 출토품(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그래서 스미로노프(2012)는 골제 멍에(그림 2-8)가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보고 아르잔-1호의 주인공은 전차를 타고 다닌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무덤방(2호)에서 출토된 원형 맹수장식도 전차를 끌던 말의 장신구인데, 가슴이 아닌 말의 옆에 달았던 것으로 생각했다. 꼭지의 방향대로 끈을 끼우면 끈의 방향은 위아래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시리아 궁전벽화에서전차를 끄는 말을 장식했던 원형장식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했다.

멍에(그림 2-8)는 말의 어깨에 씌워서 뒤의 운반대를 끌게 하는 부분으로 전차부속품 가운데 바퀴만큼 중요한 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미로노프는 알타이 유적에는 안장과 안장을 조이는 벨트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슐가(2008)의 연구를 참고로 했다. 거의 비슷한 마구세트 구성인 아르잔-1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안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림 2. 아르잔-1호의 전차 관련 유물(1~9)과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II세(10, 10a)의 궁전벽 및 사르곤 II세의 궁전벽(11, 11a) (스미르노프 2012)

 

사실 원형의 맹수장식은 끈을 위아래로 끼우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말의 가슴장식이 아닐 수는 있지만 반드시 앗시리아궁전벽화처럼 사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멍에는 이 유적의 주인공이 전차를 소유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럼 타가르 문화의 원형의 맹수장식이 모두 전차를 몰던 말을 장식한 것일까?

아니다. 아르잔-1호의 유물은 직경 25cm으로 알려진 고리모양 맹수장식 가운데 가장 크다. 하지만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은 10cm미만이다.

사실 앞에서 타가르 문화의 맹수장식이 맹수로서 불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매우 작기 때문이다.

또한 어제 몸을 말고 있는 형태 때문에 고양이과 맹수장식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동물장식의 주둥이가 너무 길다. 

1점이 아니라 대부분 그런 스타일이어서 디자인의 의도는 주둥이를 길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늑대와 가깝다. 

 

소형 원형의 맹수장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스키타이-사르마트 시대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소비에크 고고학 시리즈 1992)

СМИРНОВ Н. Ю. На чем ездил аржанский «царь»?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Материалы международной науч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посвящённой 110-летию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выдающегося российского археолога М. П. Грязнова. – СПб., 2012. – Т. 2. – С. 424-431(스미르노프, 2012, 아르잔의 차르는 무엇을 타고 다녔나?)

ШУЛЬГА П. И. Снаряжение верховой лошади и воинские пояса на Алтае. – Ч I. Раннескифское время. –Барнаул, 2008. – 276 с.(슐가 2008, 알타이의 군사용과 승마용말의 마구연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