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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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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여성 1인 무덤(19호, 10호),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매장된 무덤(20호), 여자아이 2명(11호), 여자아이 1명(6호)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매장된 경우 중에 여성과 아이가 매장된 4호와 8호가 있다.

 

4호 무덤인데, 나무로 된 무덤방은 1기이지만, 함께 나란히 매장되었다. 네모꼴 무덤구덩이(264×317cm)안에 나무무덤방(208×125cm)안에 나무껍질을 바닥에 깔고 함께 두 피장자가 매장되었다.

 

그림 1. 유스티드 XII 유적 4호무덤방, 1-재갈과 끊어진 재갈멈치, 2,3-굴레장식, 4,5-거울, 6-나무장식, 7,8-동물문양장식, 9-모자에 달았던 장식, 10-모자장식, 11-이빨모양의 장식판, 12, 13-고리모양의 귀걸이, 꽃 장식이 달렸음. 14-2개의 토기편, 15-목제쟁반, 16-철제 칼, 17-양의 엉덩이뼈, 18-목제 잔, 19-검은색 물감의 흔적, 20-낙엽수 껍질

 

그림 2. 유스티드 XII 유적 4호 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8호에서도 역시 여성과 아이가 매장되었는데, 무덤방의 구조가 약간 차이가 있다. 8호에서는 무덤방 바닥에 바닥시설을 각각 따로 해서 깔았다. 무덤방의 크기(222×105cm)는 비슷하다.

 

 

그림 3.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 1-재갈, 2-굴레장식, 3-토기, 4, 5-칼, 6,7-다양한 장식판, 8-동물의 머리모양장식, 9-이빨모양장식판, 10-체칸(전투용도끼), 11-장식판, 12, 13, 16,17-허리띠 장식판, 14-체칸(전투용도끼)에 달았던 송곳니형태의 장식판, 멧돼지 송곳니의 이미테이션, 목제, 15-원판형 단추모양, 16, 17-장방형장식판, 18-화살촉, 19-22: 활대의 끝부분, 23, 24-활대의 중간, 25-검손잡이, 26-검, 27-체칸에 연결하는 벨트의 부분, 28-체칸의 잘, 29-머리띠, 30-목걸이의 걸이부분(안은 비었음),31-산양화된 사슴장식, 32-말장식, 33-새 장식, 34- 모자장식(aigrette)의 일부분, 35-모자장식의 일부분으로 양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모양, 36-투구형 모자장식의 끝장식으로 말 모양, 37-투구형 모자, 38, 39-토제그릇 2점, 40-다리 4개 붙은 쟁반, 41-검은색 물감 흔적, 42-낙엽수의 껍질, 철제(1,4,5), 목제(2,3,11-17, 19-26, 29, 31-37),금박(6-9), 가죽(10, 27), 뿔(18), 청동+나무(28), 청동(30)

 

그림 4.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의 출토유물, 번호는 그림 3과 일치

 

 

그림 5.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의 출토유물 번호는 그림 3과 일치

 

 

그런데 이 아이도 소형화된 도끼와 칼을 가지고 있었다. 소형화 된 도끼와 칼은 3호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성인여성이었다. 체칸이라고 불리는 도끼 자루의 끝장식, 도끼에 달았던 멧돼지 송곳니 모형, 화살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자아이의 것과 비슷하다. 목제칼, 고리트까지 소년의 몸집에 맞게 소형화되어서 무덤에 부장되었다. 그렇다면 8호의 여성과 함께 묻힌 아이는 남자아이일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녀 혹은 모자 지간이겠지만 어떤 이유로 함께 매장되었을까? 아이가 죽어서 일까? 엄마가 죽어서일까? 아니면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혹시 요즘처럼 역병이 돌아서 그랬던 건 아닐까? ‘역병’이라는 존재를 알았다면 화장을 했을텐데..당시에 왜 사람이 갑자기 죽는 지 이유를 몰랐을까?(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다. 일년 전에 이런 무덤을 보았다면 아마 코웃음을 쳤겠지.) 일렬로 서 있는 26기의 무덤은 몇 년 사이에 만들어졌을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가운데 유스티드 XII유적에는 26기의 무덤이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줄을 서서 만들어졌다. 이 계곡의 무덤은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무덤을 만드는 특징이 있는데, 그 수는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서 있는 무덤은 대부분 강의 흐름과는 직교한다. 유스티드 강은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 유적에서 인간과 말의 두향은 모두 동쪽을 향한다.

 

유스티드 계곡의 19호 무덤은 여성의 무덤이었다.

 

그럼 남성의 무덤은 어떨까? 19호와 가깝고 남성의 무덤이면서 혼자 묻히고, 나무방이 설치된 무덤은 18호 및 13호, 15호이다. 14호와 16호는 부장된 인간의 수가 다르고, 17호는 무덤방의 설치재료가 다르다.

 

18호는 무덤구덩이(260×196cm)아래에 말 1필과 인간이 매장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166×94cm(통나무의 가장자리 길이 제외)이다. 그런데 바닥에 깔린 나무판 4개의 길이는 125cm로 인데 이 곳에 사람이 매장되었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 XII의 18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 2와 일치 1-항아리(토), 2-재갈(철), 3,4(금박)-산염소 혹은 사슴 모양의 뿔장식, 5-8(금박):각기 다른 모자장식, 9-12(목제+금박)-원뿔모양장식, 13(목제)-목걸이의 끝장식, 14(청동과 펠트)-펠트 주머니속에 든 거울, 15(청동)-귀걸이, 16번 나무껍질, 17-검은색 물감의 범위, 18,19-금박.

 

 

그림 2. 유스티드 XII의 18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1과 일치

 

 

 

13호는 나무무덤방(120×188cm)이 설치되긴 했으나, 바닥에 나무바닥을 깔지 않았고, 사람의 뼈도 흩틀어진채 확인되었다. 말 2필이 구덩이의 북쪽에 매장되었다. 13호는 출토유물도 원래 위치가 아니어서 도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한 두기의 무덤에 스키타이 무덤 위에 뻐꾸기처럼 후대에 무덤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13호에서는 그런 양상은 아니지만, 다른 무덤에서 후대에 무덤이 열린 점을 감안 한다면 13호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무덤방의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는 점은 18호와 다르다.

 

그림 3. 유스티드 XII의 13호 무덤, 1-철제 재갈, 2,3-골제 버클 장식, 4-청동제 거울, 5-청동제 빗조각

 

15호는 무덤구덩이(223×205cm)에 비해서 무덤방의 크기는 92×66cm 로 매우 작다. 나무 길이는 145cm, 118cm(최대)이지만 무덤방의 양 단에 홈을 내어서 상하를 결구하는 방법 때문에 무덤방은 나무 크기 보다 작다. 무덤구덩이는 돌로 채워졌고,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말이 부장되지 않고, 구덩이에 돌로 채워진 점은 앞서 설명한 무덤과 차이가 있다. 그런데 구덩이를 채운 돌 사이에서 숯이 발견되었다.

 

 

그림 4. 유스티드 XII의 무덤 15호, A-돌, B-숯, C-금박(무덤구덩이 아래에 러시아알파벳 순서로 적힌것)

1~4: 허리띠 장식(목제), 5-원뿔형 장식(목제), 6-목걸이(목제), 7-말장식(목제), 8-철제 칼, 9-항아리, 10-목제 쟁반, 11-나무 빗

 

15호와 18호는 나무방의 크기가 매우 작다. 18호는 나무방 자체는 크지만 바닥에 나무 깐 범위에 시신이 안치되었는데 길이가 125cm가량이다. 그렇다면 15호와 18호도 남성이자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있다. 15호에는 말이 부장되지 않았다.

 

(쿠바레프는 3~12호, 20~22호, 26~27호는 여성과 어린아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어린아이는 여자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듯 하다. 좀 더 뜯어보면 알겠지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우코크 고원 속에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을 살펴보았다. 이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 대해서는 설명했는데, 2구의 남성이 확인되었다. 1명은 45~50세 정도의 남성이었고, 다른 한명은 15세 정도의 소년으로 2호분의 8세 소년 보다는 나이가 많은 남성의 무덤이었다.

 

지금 설명하고 있는 2호분이 먼저 설명한 1호분 좀 더 늦은 시기에 축조되었다. 어디서 그럴 정황이 드러날까? 그냥 2호분 소년의 나이가 어려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요구된다.

 

앞에서 2호분 적석(돌을 쌓은 모습)이 처음 드러난 모습을 공개한 적이 있다. (앞선 포스팅에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ㅋㅋ)

거기에 힌트가 있다.

포스팅을 보시면 오른쪽 아래에 1호분의 무덤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적석이 놓인 모양이 2호분이 1호분을 덮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설명하는 2호분이 더 나중에 생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은 1호분과 친족관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비교적 높은 계급의 소년이었을 것이다.

8세 소년이었지만, 어른 무덤에 부장되는 것은 대부분 있었다. 말은 1마리만 부장되었으나 어찌되었던 있었고, 동검, 투부, 화살촉 등 소년의 크기로 축소 시켜서 부장한 점도 이를 반증한다. 1호분의 남성무덤과의 관련성은 비슷하게 생긴 고깔모자, 목걸이, 귀걸이 뿐만 아니라 동물문양버클장식도 이를 대변한다. 동물문양버클장식은 부서져서 반만 남아 있지만 꼬리가 긴 동물이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4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에 매달던 호랑이 장식품(4,5,6), 1,7-말의 재갈멈치, 2,3-말머리 장식(당호). 목제품.

 

 

그림 2. 에르미타주 소장, 시베리아 콜렉션, 표범. 펜던트의 버클, 금제품

 

 

 

그림 3. 영국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제 버클, 그리핀(우)과 호랑이(좌)의 싸우는 장면.

 

 

현재 설명하고 있는 유적의 유물은 아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형상화 된 꼬리가 긴 동물은 호랑이(그림1) 혹은 표범(그림 2), 그리핀이 있다. 꼬리가 긴 그리핀(그림 3)은 몸이 새가 아닌 육식동물의 몸통에 새 날개가 부착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소년의 허리띠 버클 장식도 그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2호분은 8살 소년의 무덤이다.

8세이지만, 어른과 거의 같은 복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래 포스팅에는 소년을 복원한 그림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고깔모자, 바지 뿐만 아니라 허리띠도 착장 했다.)

 

2020/02/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러시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가량의 우코크 고원에는 아크 알라하라고 불리는 강 줄기를 따라서 대략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들이 묻혀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아크 알라하’ 유적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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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청동칼, 투부, 화살 등 무기류도 함께 부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화살이 담기었던 고리트는 없어지고, 화살촉만 소년의 발끝에서 8점 확인되었다.

화살촉은 뼈로 만들어졌고 화살꼬리와 활은 이미 없어졌다.

화살은 크기가 3cm 가량이고, 단면은 삼각형이다.

 

그런데 이 화살촉은 소년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어른무덤에서 출토된 화살촉과 어떻게 다른지?

 

앞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아래 포스팅에서 볼 수 있다.

 

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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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 거의 유사하고, 단면도 삼각형이다.

그런데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길이가 6.5cm이다. 부장된 촉의 개수도 차이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의 화살촉은 성인용에 비해서 1/2크기인데, 체격에 맞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이 실제로 활과 화살촉을 들고 사용했는지는 모르겠고, 또 부장용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점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2호분 화살촉은 모두 뼈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과 소재가 같은 화살촉 외에도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과 2호분의 공통점은 귀걸이 한쪽이다. 1호분에는 15~16세 남성과 45~50세 남성, 2호분은 8세의 남성인데 모두 귀걸이를 한쪽 씩만 착용했으며 오른쪽 이다.

 

8세 소년의 귀걸이는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

 

소년의 귀걸이와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15세 소년의 귀걸이가 거의 유사하다.

 

2020/02/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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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링에 그 아래에 작은 링이 붙어 있고, 불꽃 모양을 거꾸로 한 듯한 모양의 펜던트가 붙어 있다. 펜던트의 중간은 소용돌이를 도려내었다. 금제품이다.

 

친자관계는 DNA 분석을 한다면 알 수 있겠지만, 자료를 찾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면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들만 귀걸이를 착용했을까?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남성들이 귀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다.

스키타이 문화 이전인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문화, 카라숙문화에서는 청동유물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유물중에 하나가 청동으로 만들어진 귀걸이다. 단순하게 둥근 링만 있는 것, 그 아래에 펜던트가 달린 것 등 다양하다.

 

요즘 남성들은 자신을 꾸미는 도구가 시계, 넥타이 정도이고 커퍼스 단추, 팔찌, 목걸이 등도 착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귀걸이 하는 남성을 욕하는 경우가 있었던 시기도 있는데, 생각보다 한쪽 귀걸이를 착장하는 습관?은 오래되었다.

 

금속제라는 소재로 한정하면 귀걸이 보다 더 오래된 금속제 장신구는 반지이다. 순동시대부터 있었다. 물론 남성 혹은 여성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시베리아의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는 아주 작은 소형의 순동유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장식없는 둥근반지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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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가량의 우코크 고원에는 아크 알라하라고 불리는 강 줄기를 따라서 대략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들이 묻혀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아크 알라하’ 유적 시리즈를 발굴했는데, 얼음공주 무덤으로 유명한 아크 알라하 3유적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을 먼저 발굴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은 1990년, 소년의 무덤인 2호분은 1992년에 발굴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바로 옆에 붙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무덤바닥에 네모상자모양의 나무관은 있었다. 나무관 북쪽 옆에는 따로 단을 지게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말뼈를 매장했다. 말은 발을 굽히고 배 위에 놓인 상태로 매장되었고 입에는 철제 재갈이 채워졌다. 두개골에는 투부로 찍은 흔적이 남아 있다. 2차 무덤뚜껑은 말까지 덮은 것이다.

 

피장자는 8살 아이인데, 두개골 위편에서 머리장식과 금박이 발견되었다. 소년 고깔모자 끝에 장식된 것은 소(야크 일 가능성)와 아주 유사하다. 머리장식에는 두 마리 그리핀(그림 2)이 부착되기도 했다. 두개골 오른쪽에는 황금 귀걸이(그림 3-4), 목에는 청동제 목걸이를 착용했다. 손과 무릎 사이에는 모피가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동물패턴이 남아 있는 허리띠 버클 잔편이 확인되었다. 버클에 새겨진 동물은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머리부분은 없다(그림 3-1).

모피가죽 아래에 오른쪽 허리 부근에는 청동제 칼이 목제 칼집에 들어가서 있었고, 그 옆에는 청동제 투부(그림 1-9, 그림 5)도 확인되었다. 고리트(활,화살통)은 남아 있지 않지만 8개의 화살촉(그림 1-10, 그림 3-3)이 소년의 발톱부근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 무덤관 내부

 

두개골 주변에는 항아리 모양의 토기(그림 1-3, 그림 4)가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 보다 약간 아래에는 양의 엉치뼈(그림 1-7)가 확인되었는데, 다른 유적의 사례로 보아서 목제 쟁반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제 쟁반도 보이지는 않지만 있었을 것이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관 고깔모자 장식의 일부. 그리핀으로 추정된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무덤 부장품. 1: 버클장식일부, 2: 청동제 고리편, 3: 화살촉, 4: 금제 귀걸이, 그 외 번호가 없는 유물은 유물설명도 없었음.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의 무덤부장품. 토기.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의 무덤 부장품. 투부(전투용 도끼)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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