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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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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쳐'에 해당되는 글 2

  1. 2020.10.24 알타이의 미라와 부활3
  2. 2020.07.03 시베리아에서 나온 2500년 전 뿔 잔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교통로로 사용되어 온 추야강의 지류인 유스티드 강과 울란디르크 강 유역의 유적을 살펴보았다. 추야강의 또 다른 지류인 바르부루가지 강에서도 흥미로운 유적이 발견되었다.

 

바르부르가지I유적에서는 모두 30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확인된다. 남쪽에는 1~18호, 북쪽에는 21~30호가 있다. 두 그룹 사이로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수로가 지나가는데, 붕괴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이제까지 본 무덤과는 약간 다른 구조의 무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 25호 무덤에는 남성미라 1구가 발견되었다. 미라로 처리한 부위는 두개골, 손, 발로 피부상태가 좋았다. 그 외의 부위는 거의 잘 남아 있지 않다. 무덤은 돌판을 무덤으로 쓴 돌널무덤(석관묘)이다. 석관묘의 바닥에는 4개의 나무판을 깔았고 석판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덮었다. 무덤 구덩이는 보통 단을 만들지 않지만 말을 부장하는 구덩이의 북쪽에 단을 만들고 말을 넣어서 석관묘의 높이와 맞추었다. 무덤의 깊이는 120cm, 크기는 290×240×205cm이다. 이 무덤 상부의 돌을 덮은 범위는 (적석) 6m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의 평면도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상부와 단면도

 

 

앞에서 유스티드 XII유적과 울란디르크 I유적에서도 돌널무덤이 있었으나, 무덤바닥에 나무를 깔고 여러 겹으로 덮는 것, 무덤구덩이에 단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미라의 머리 아래에는 돌침(돌베개)가 사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유적은 지난 겨울~봄에 살펴본 아크 알라하-3유적, 바샤다르 유적 2호분, 파지릭 유적 2호, 5호 등이다. 2600~2500년 전 유적으로 기원전 6~5세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는 2600~2500년 전  미라 처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부장된 유물이나 무덤 등도  차이가 있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은 기원전 5세기 경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만들어진 곳으로, 미라가 나온 25호는 기원전 4세기경의 무덤으로 생각된다(쿠바레프 1992).

  우코크 고원이나 파지릭 계곡에서 발견된 미라는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라로 전신의 관절을 끊지 않았고, 그 내부를 풀과 동물의 털로 채워넣었다. 반면에 바르부르가지I유적의 25호 미라는 사실 흉내만 낸 미라이다. 머리, 팔, 다리만 미라가 되도록 했고 몸통은 거의 잘 남아 있지 않다.

알타이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전성기인 2600~2500년 전 이후의 미라의 존재와 그 상태 등이 늘 궁금했는데,,약간은 해결된 듯 하다.

 

 통나무관에 어린아이를 묻는 장법이나 미라를 만드는 장법 등은 모두 어쩌면 ‘부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른다. 2400년 전 작은 무덤에 묻힌 사람에게도 그런 것을 누군가의 염원을 담았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는 미라를 대신해서 사람을 닮은 인형을 무덤 속에 묻어 두었다. 청동기시대(오쿠네보 문화), 순동시대(글라스코보 문화), 신석기시대(키토이문화, 세로보문화),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모두 발견된다. 물론 시대별로 생김새와 재질은 차이가 있다. 

 죽은 자와 함께 넣은 미니어쳐 혹은 미라는 살아 있는 사람의 염원이 담긴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그리며 넣은 ‘재생’, ‘부활’에 가까울 것 같다. 설마 노잣돈의 의미로 넣은 것은 아닐테니...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나 파지릭계곡의 유적과 같이 화려한 무덤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를 담아서 무덤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해발 2500m 우코크고원의 기마전사는 칼쥔 강의 상류에 묻혔다. 꼬리달린 모피코트, 바지, 스타킹은 살아생전에 착용하던 것이었고, 새머리 고깔모자와 호랑이 모양의 목걸이는 부장용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필자는 약간 생각이 다른데, 어떤 의식이나 행사용으로 사용하다가 무덤에 그대로 넣어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생전에 사용하던 물건 중에 하나가 그릇이다. 나무쟁반과 나무잔도 사용하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무덤에는 나무로 된 그릇 외에도 뿔과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들어갔다.

 

재밌는 점 중에 하나가 시베리아에는 토기가 주요한 유물이 아니다.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는 발견되지만 아주 드물다. 한반도와 그 인접한 지역에는 발굴하면 가장 많은 유물이 토기이지만 이 지역은 토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토기가 없어서 미개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토기가 없는 것은 먹는 음식이 달라서 토기가 필요 없는 음식문화였을 가능성이 있다 목제나 뿔로 만든 냄비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주종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제품 종류들. 실제로 루덴코(1952)가 발굴한 파지릭 유적에서는 목제 그릇에 유제품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사진이나 도면은 없음)

 

뿔로 만든 그릇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유물평면도 38)(그림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분(그림 2-2,3), 얼음공주(아크 알라하 3유적)(그림 2-1, 그림3)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출토(필자촬영)

 

그림 2. 우코크 고원에서 출토된 뿔 잔 1-아크 알라하 3유적(그림 3과 동일), 2,3,4-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분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뿔 잔 (필자촬영)

 

뿔제 잔은 몸통 부위와 바닥부분이 서로 나뉘져서 만들어진다. 재료도 다른데, 몸통은 야크(그림 2-1에 동물그림)의 뿔을 이용했고, 잔의 바닥은 야생염소(그림 5의 동물) 뿔로 만들어졌다. 그림 4와 그림 5에서 만드는 제작방법을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그림 4. 파지릭 문화의 뿔제 잔 만드는 방법 1, 몸통부위

 

 

그림 5. 파지릭 문화의 뿔제 바닥 만드는 방법 2, 바닥부위

 

몸통 재료인 야크 뿔도 야생야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폴로시막은 파지릭 사람들이 지금처럼 야크 떼를 키우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크가 발견 된 예는 뿔제 잔과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5호분 미라가 확인된 무덤에서 나온 야크 가죽이다.

 

흥미로운 유물이 한 점 더 있는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발견된 미니어쳐이다(그림 6-21). 금으로 제작된 것인데, 귀걸이나 치레걸이의 일부로 사용된 것이다. 그림 6-21의 미니어쳐는 그림 1과 매우 유사하다. 바닥이 편평하고, 몸통과 바닥부위가 연결되는 부분에 각이 져 있으며, 몸통의 중앙에 안으로 들어가도록 표현되어 있다. 손잡이도 한쪽에만 붙어 있다.

 

이미 아르잔-2호 에서도 미니어쳐로 된 금제 잔이 주인공 5호 무덤방에서 출토된 바 있다. 남성의 검집옆에서 출토되었다.

이를 참고로 하면, 이 미니어쳐 잔도 비슷하게 체인에 달려서 어딘가에 부적이나 혹은 정표 혹은 알수 없는 표식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일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아르잔-2호(아래 포스팅 참고)에서도 출토된 위치가 매우 애매해서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 애매하다고 했다. 아르잔-2에서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그런 의미였을 수도 있다.

 

 

그림 6.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 21번 유물이 뿔제 잔과 비슷한 형태이다.

 

2020/06/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스키타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보통 허벅지에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전사도 목검이 있었는데, 허리가 아닌 바지주변, 허벅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전사�

eastsearoad.tistory.com

 

 

의식에서 사용되는 동물은 그 당시 사회에서 인간 삶에 비중을 높이 차지하는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뿔이 잔으로 만들어져서 무덤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 자체가 특정 야생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고 폴로시막(얼음공주 무덤 발굴자)는 생각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야크를 대신해서 야크 뿔로 만든 잔을 넣었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А.П. Бородовский, 2000,Технология изготовления предметов из полого рога,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320 c.(보르도프스키이, 뿔로 만든 유물 제작 기법/ 알타이 미라 현상)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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