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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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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7.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울산 대곡천변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배 그림은 아마도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했던 증거로 볼 수 있다.

다만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에서는 마스크형 그림과 함께 발견되고, 울산에서는 고래와 함께 그려진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 같은 강에 위치하지만 천전리 암각화에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선사시대만 국한되지 않고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글 까지 남아 있어서 제작연대도 차이가 있다. 왜 천전리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겼는지 모르겠다.

 

또 수수께끼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할 동물문양이나 사람도 아닌 동물도 아닌 반인반수의 표현등 괴기한 문양 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같은 주제이지만 반구대암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 1. 동일주제이지만 반구대 암각화와 다른 표현의 천전리 암각화

 

필자는 천전리 암각화 중에 몸통이 선처럼 표현된 동물문양과 손을 말고 있는 사람은 시베리아 카라숙문화의 사슴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시베리아 카라숙 문화는 기원전 14~10세기에 존재했던 문화로 그 문화의 청동 유물은 연해주에서 발견된다. 연해주의 그 문화(시니가이 문화)는 한반도에서 발견된다. 한반도에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카라숙문화의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오쿠네보 문화의 그림도 있지만(그림 2) 오쿠네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는 카라숙 문화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25~19세기로 이때 우리나라에는 신석기시대이다. 시대성을 떠나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오쿠네보 문화의 존재가 발견된 바 없다. 그래서 천전리 암각화에서 오쿠네보 문화의 그림은 어떻게 남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카라숙문화와의 직접적인 관련성도 좀 더 근거가 필요하다.

 

 

그림2. 천전리 암각화에서 발견된 시베리아 암각화의 요소

 

 

 

그럼 천전리의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일까?

 

천전리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은 대부분 영남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어떻게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그림이 천전리에 남아 있는지 아직은 확언하기 힘들다. 누군가 보고 와서 머릿속에 남은 기억으로 그린 것인지, 그 누군가가 시베리아에서 온 사람인지 아니면, 영남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이 보고 들은 바를 그린 것인지 불분명하다. 앞으로의 연구성과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필자는 울산 대곡천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는 같은 강변으로 근거리에 위치하지만 매우 성격이 다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와 천전리 암각화의 비교고찰-오쿠네보 문화와 카라숙문화 암각화를 중심으로」, 『고고학』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타가르 문화의 마구

 

타가르 문화에는 유라시아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여타 지역과 같이 수 많은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장식품)가 출토된다. 재갈멈치(그림 1-9~12)는 구멍이 3개 있는 뿔로 만든 제품이 기원전 7세기경에 청동제품(그림 1-11)으로 바뀐다. 그 후에 구멍의 수도 2개로 줄어들게 된다. 2공 재갈멈치 가운데 U자형(그림 1-10)은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 뿐만 아니라 흑해에서도 출토되는 유물이다.

 

재갈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보통 양 끝에 고리가 한 개씩 있지만 타가르 문화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재갈 멈치의 끝에는 구멍이 2개 만들어져 있다. 고리의 모양이 사다리꼴에 가까운(그림 1-1~4)가 기원전 7세기경의 것이다. 재갈멈치 고리의 모양이 삼각형(그림 1-6,7), 원형(그림 1-8)으로 변화하게 된다. 원형고리의 재갈멈치는 기원전 6~5세기 경이다.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3 유적과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 출토된 재갈도 둥근고리가 달린 것이었다.

 

그 외에도 굴레를 연결하는 이음 장식(절약)들이 출토된다. 원뿔모양의 이음장식(그림 1-29,30)은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 퇴장지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모습이다. 굴레를 장식했던 새머리 장식(그림 2-14, 15)도 있다. 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장식(그림 1-13, 18)은 알타이에서는 목제로 제작되었으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을 장식하는 도구 가운데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유물도 있는데 말의 뺨을 장식하는 도구(그림 1-16, 17)이다. 그런데 말의 뺨을 장식한다기 보다는 괴롭히는 도구처럼 보인다. 장식판 반대편에 끝이 뾰족한 침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타가르 문화의 마구, 재갈(1~8)과 재갈멈치(9~12), 장식(13~30), 1~30 청동, (츨레노바 1992)

 

타가르 문화의 재갈과 재갈멈치, 굴레장식 뿐만 아니라 말을 꾸미는 유물은 모두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알타이에서는 청동, 철제, 목제, 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나 미누신스키 분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 지역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소재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타가르 문화의 청동제품은 특히 잘 만들어졌는데, 주조업이 매우 발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조하여 만든 도구들은 석제, 토제, 청동제 거푸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그리신, 티호노프 1960)

크라스노야르 주의 남부지역에서는 구리, 주석, 금 등을 지표에서 채집할 수 있는 수많은 광산 유적들이 발견되었다(순추가세프 1975). 처음에는 비소가 섞인 청동으로 제품을 만들다고 기원전 7세기경에 주석 청동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주석의 시대라고 하는 기사를 여러 건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주석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참고문헌

 

Членова Н.Л. 1992 : Тагарская культура. //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М.: 1992. С. 206-224.(츨레노보 1992, 타가르 문화, 스키타이-사르마토프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내의 아시아 추원지역/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Сунчугашев Я.И. 1975 : Древнейшие рудники и памятники ранней металлургии в Хакасско-Минусинской котловине. М.: 1975. 176 с.(순추가세프 1975, 하카시아-미누신스크 분지의 고대 광산과 야금술 유적)

Гришин Ю.С., Тихонов Б.Г.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производства в Приуралье и Южной Сибири в эпоху бронзы 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МИА №90(그리신, 티호노프, 1960,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우랄과 시베리아 남부 지역 제작기술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대형과 소형의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그 중 대형 청동솥의 용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타가르 문화의 암각화 그림이었다. 이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가운데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다.

 

(지도에서 여러 사람이 올려놓은 현재 그곳의 경관을 살필 수 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타가르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잘 알려진 곳은 살브이크 쿠르간(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Salbyksky Kurgan)이다. 키셀료프가 1954~1956년에 발굴했다. 살브이크 계곡에는 높이 20m까지 거대한 쿠르간이 30여기 이상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셀료프가 발굴한 쿠르간은 높이가 11m가량이고 꼭대기가 편평한 봉분과 거대한 판돌로 된 호석(무게 약 50톤)이 무덤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호석의 높이는 3~6m가량이고 한 변의 길이가 70m이다. 입구는 동쪽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마르살돌로프가 키셀료프 발굴 무덤과 그 주변의 타가르 문화 유적을 새롭게 조사한 바 있다.

 

무덤 주변을 돌린 호석의 판돌은 20km 정도 떨어진 흐질-하야(Хызыл-Хая) 산(구글지도 참고)에서 운반한 것으로 키셀레프는 판단했다.( 산에는 타가르 문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청동솥이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볼샤야 보야르 유적과 비슷한데, 청동솥으로 요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그림 1. 키셀료프가 발굴하기 전 살브이크 쿠르간

 

그림 2. 살브이크 쿠르간의 동쪽 호석 가운데 한 곳, 1956년 (데블레트 2019)

 

그림 3. 살브이크 쿠르간의 입구, 북쪽을 향해 찍음 1956년 (데블레트 2019)

 

그림 4. 키셀료프가 발굴한 살브이크 쿠르간의 외형(1)과 평면도(2), 발굴 전

 

 

그림 5. 마르사돌로프가 복원한 축조당시의 볼쇼이 살브이크  무덤

 

이 유적은 새롭게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8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알려졌다.

 

살브이크 쿠르간은 도굴당했지만 타가르 문화의 유물은 여러 유적에서 발굴당해서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청동검과 투부, 마구 등이 출토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Киселёв С. В. 1956, Исследование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в 1954 и 1955 гг. //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на сессии Отд.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и Пленуме ИИМК, посвященных итога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1955 г.». M.-Л., 1956.(키셀레프 1956, 1954년과 1955년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의 연구)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

Л. С. Марсадолов 2015, НОВАЯ ДАТИРОВКА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Научное обозрение Саяно-Алтая № 1(9) 2015 (마르사돌로프 2015,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새로운 절대연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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