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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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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5. 13:06 스키타이 동물장식

 

 

솔로하 유적에서 나온 곰 머리는 나무로 된 잔의 일부라고 소개했다. 어떻게 곰 머리만 보고 알 수 있었을까? 곰과 함께 출토된 금판(그림 1)은 삼각형 모양이다. 각 변에 구멍이 있고, 약간 곡률이 있어서 나무잔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그림 2). 특히 삼각형의 아랫변은 직렬이다.

이 유물을 관찰한 알렉세예프는 동물의 머리는 흑해지역에서 볼 수 있는 기원전 5~4세기 유물 제작법이고, 나무 잔은 스키타이 문화의 동쪽지역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알렉세예프 2012).

 

그림 1. 곰 모양의 손잡이와 금판

 

그림 2. 그림1의 복원도

 

흑해의 북쪽 드네프르 지역에서 차반초바 무덤(그림 3)과 졸토카멘카 무덤(그림 4)에서도 곰의 형상으로 볼 수 있는 금판 장식과 청동장식이 발견되었다. 금판(그림 3-1)은 목제 그릇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청동판은 은박으로 감싸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림 3의 유물은 얼핏 보면 꼬리가 거의 없는 맹수인 점으로 보아서 고양이과의 맹수와는 다른 유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3. 드네프르 강 유역의 유적 출토 곰 장식, 1-차반초바 유적, 금제품, 나무잔에 부착하던 유물,

 

 

 

 

그림 4. 드네프르 강 유역의 곰 장식, 2- 졸토카멘카 유적, 청동을 은판으로 감싼 유물

 

그런데 우리는 이미 볼가강 유역에 위치한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볼가 지역문화)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나무잔의 손잡이로 금판을 이용해서 동물문양장식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도 필자가 나무잔의 전통은 스키타이 서부 지역에서는 없는 것으로 동부지역의 것일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아르잔-2 유적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솔로하 유적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차스티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나무잔은 흑해지역에서도 사용했다고 보여진다.

 

2020/11/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 목제 그릇의 호랑이장식

 

우랄 남부 스키타이 목제 그릇의 호랑이장식

우랄 남부의 기원전 5~4세기 유적인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라고 불리고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의 무덤이다. 이른바 스키타이 3요소(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뿐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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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장식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흑해지역에 가장 먼저 나타나서 동쪽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여지는 목제 잔에 부착되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심플하게 결론 내릴 수 없다.

 

참고문헌

 

Гуляев В.И. Культ медведя и элитные курганы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7 № 3 2019с. 85 – 93.(굴랴예프 2019,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곰 의례의 요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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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의 우랄 남부 지역문화인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호랑이 장식이 목제 그릇의 장식판, 목걸이 등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목제 그릇의 장식판은 유적에서 가장 큰 무덤인 1호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다.

 

1호 무덤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발굴하고 황금 사슴으로 유명해 졌다. 그런데 이 무덤은 그 기간에 다 발굴되지 못했고 유적의 동쪽은 2013년에 야블론스키에 의해서 다시 조사되었다.

한국에서는 1기의 무덤은 대부분 발굴 기간동안 조사가 완료되지만 러시아에서는 1기의 무덤 안에서도 섹터를 구역하고 지정된 기간동안 발굴하지 않으면 후대에 조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평면도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앞서 살펴본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 평면도에서 동쪽 둑의 부분은 조사를 미쳐 하지 못한 구간으로 이곳에서 3.57×2.6m의 무덤방1곳이 더 드러났다. 사실 1호에는 1980년대 조사 당시에 무덤 내부에서 무덤방이 확인되지 못했는데, 가장 동쪽에 발굴하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간 보여 드린 유물은 서쪽 끝에 무덤방 바깥에 있던 감실 2곳과 바닥, 무덤 입구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필리포프카 1호무덤의 1호 무덤방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바닥에는 나무뿌리, 짚 등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바른자세로 누웠는데 두향은 남향이다.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의 피장자는 대부분 두향은 동쪽이고 무릎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자세였다. 피장자를 묻는 장법에도 차이가 있다.)

 

이 여성은 금판(그림 4-1~4)을 부착한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측면에서는 뼈와 청동으로 된 바늘로 문신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죽 주머니 안에는 안료가 가득 들어 있었고, 석제 그릇안에는 파란색 광물체가 들어 있는 상태였다. 밤과 호두 껍질로 만든 용기, 돌 외에도 목제그릇을 장식한 동물문양 금판도 출토되었는데 얀블론스키는 이 동물을 곰(그림 3-1)으로 보았다. 그 외에도 화려한 장식판(그림 4-2)과 은제 거울(그림 4-3)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출토품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출토품

 

목제그릇 장식판은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호랑이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꼬리가 길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1호의 감실 1호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지만 먼저 발굴한 프세니축은 곰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이 여성은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동물투쟁문(그림 4-1)을 묘사한 금제 장식판을 옷에 달고 있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가장 큰 무덤인 1호무덤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야블론스키(2013)는 이 유적의 여성이 매우 높은 지위였다고 평가했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2013 : Золото сарматских вождей. Элитный некрополь Филипповка 1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2004-2009 гг.). Каталог коллекции. Книга 1. М.: 2013. 232 с.(야블론스키 2013, 사르마트 문화 신의 황금,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1 유적, 2004~2009년 발굴품)

Яблонский Л.Т. 2014: Новые находки в "царском" кургане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야블론스키 2014, 필리포프카-1유적의 1호  차르무덤에서 나온 최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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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직경 80m 안에 주인공 무덤을 제외하고도 무덤 25기가 함께 매장되었다.

 

주인공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고 검과 칼, 활과 화살촉, 투부가 모두 철제로 제작되었다. 금으로 장식한 것은 덤이다. 주인공 무덤과 비슷한 무기세트가 출토된 곳은 무덤방 20호였다. 시간차를 두고 매장된 두 남성은 먼저 들어간 남성 무덤에서는 무기세트가 확인되지만 검은 없었고 모두 청동제였다. 이 남성은 손잡이가 뿔로 만들어진 목기그릇이 있었다. 목기부분은 없어졌고 손잡이만 확인되었다. 나중에 들어간 남성은 칼 한자루를 제외하고는 유물이 없었다.

 

2020/06/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의 청동 무기

시베리아의 청동 무기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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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와 비슷한 무기세트가 확인되는 곳은 25호이다. 청동제 칼, 투부, 화살촉이 있었다. 청동제 칼은 두 종류인데, 손잡이 부분이 꺽어지는 것(그림1-4과 손잡이가 곧은 것(그림1 –3)이다. 손잡이가 구부러진 것은 끝에 장식이 달려 있다.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 주변에는 가죽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칼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칼잡에 달았던 장식(그림1-2)도 청동제이다. 청동제 투부(체칸, 전투용도끼)도 출토되었다. 투부의 자루는 상태가 좋지 않지만 길이 5.9cm 가량이 남아 있었다. 청동제 거울(그림1-1) 및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그림2-2), 목제 펜던트 함께 무기류는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과 화살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의 좌측 골반뼈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칼은 가죽집에 넣어져서 남성의 우측 팔 부근에 놓여 있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화살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남성의 우측 다리 아래에서 8점(그림2-6)이 확인된다. 그 외 7점(그림 2-6)은 남성의 우측 팔 부근(그림 4-4)에서 확인되었다.

 

남성의 머리 부근에서는 목제그릇(그림 2-4)도 확인되었는데, 손잡이가 하나 달린 형태이다. 주인공 여성 및 20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같이 손잡이가 아래쪽으로 꺽인 모습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출토품

 

그 외에 남성은 귀걸이와 목걸이 등도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아르잔-2호의 남쪽 경계벽 아래에 무덤이 설치되었다.

 

25호 남성은 28~30세의 남성으로 무릎을 굽힌 채 좌측으로 누워 있었고 머리방향은 북향이다. 무릎은 굽혔으나 팔은 쭉 뻗은 상태였는데, 그 곳에서 화살이 놓였던 것 같다. 무덤방(1.85×1,25m)은 남쪽 경계벽 아래에 깊이 1.3m의 구덩이를 파고 설치되었다(무덤배치도는 여러번 공개한 바 있음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남성의 인골 아래에는 아주 얇은 점토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남성의 무기류는 대부분 좌측 골반뼈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하지만 . 화살 한 무더기는 팔 부근에서 출토되었고,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도 우측 손 부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확인된 것이다. 그 옆에는 25호 남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뼈가 놓여 있었다(그림 4-4).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남성의 무덤.

 

 

이 무덤방과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던 무덤방 20호는 인골 1호가 먼저 들어가고 2호는 나중에 들어갔었다. 1호는 무기세트와 함께 많은 유물이 들어갔으나, 2호에게는 칼 한자루만 부장되었다. 무덤방 25호 남성도 무기세트와 함께 부장되었고, 다른 사람의 손뼈도 함께 무덤안에 들어갔다......

 

25호(그림 4)에 매장된 사람은 두 명이었다고 해야 하나?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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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목제 잔, 우유를 담은 그릇, 쿠미스와 버터를 받친다고 한다. 알타이의 카미족에게도 특별한 제기는 없다고 한다. 삶은 고기를 평소에 사용하는 목제 장반과 잔으로 국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는 특별한 미라와 공간은 있지만, 음식물을 뻑쩍하게 공헌하는 의식은 없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에위치한 파지릭문화의 고분 중에 한 곳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나무방 안에 통나무 관이 안치되었다. 나무방 안에는 통나무 관을 안치하고 빈 공간은 생활공간으로 생각된다. 그 곳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던 목제 쟁반, 목제 잔, 뿔잔, 토기 3점이 있었다. 말 6섯 마리와 61cm가발을 쓴 시신을 미라로 처리해서 넣은 무덤 치고는 매우 소략하다. 대신해서 토제, 목제, 뿔제 등 여러 소재로 제작되었다. 금속기로 만든 그릇은 없었다. 대신 칼이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그릇은 대부분 몇 차럐 수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제쟁반(그림 1) 위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었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주변에는 유독 갈색으로 변해졌는데, 냄새도 났고, 마치 고기 국물처럼 변했다. 목제 쟁반 아래에 손잡이가 둥근 철제 칼(그림 2)이 놓여 있었다.

 

그림 1. 목제 쟁반(목제 쟁반은 다리가 잘린 채 확인되었고, 다리는 같은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목제 쟁반 아래서 발견된 칼의 손잡이

나무방 바닥에는 깨진 토기(그림 3,4)가 확인되었는데, 목이 긴 ‘장경호’ 3점이 확인되었다. 2점은 구경(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붙고, 어깨 부위에도 2줄의 점토띠가 붙었다. 다른 1점은 역시 목이 긴 장경호인데, 수탉모양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토기에 가죽 아플리케(그림 5)를 붙인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뿔로 만든 그릇이 확인되었는데, 야크의 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야크 털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알타이 산맥에서 고분을 만들었던 파지릭 문화의 사람들은 야크라는 동물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러시아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인데….야크는 고산에 사는 일종의 소인데, 쉽게 검색가능하다.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콜렉션에는 같은 형태의 뿔 잔이 금박이 입혀져서 발견되었다.

그림 3. 토기, 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부착되어 있다.
그림 4. 토기, 수탉 모양 아플리케가 부착됨
그림 5. 그림 4에 붙은 가죽 아플리케

목제 잔과 막대기가 세트(그림 6)로 확인되었다. 유제품(쿠미스)을 젓고 마시던 잔으로 추측된다. 목제 잔의 손잡이는 표범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맛대고 부착되었고, 36cm가량의 막대기 끝에는 ‘U’자형으로 따로 제작되어서 막대기와 축조되어 끼우게 되어 있었다.

유목민들에게 표범은 신, 조상, 저승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안토노바 1986)

그림 6. 목제 막대기와 목제 잔, 손잡이가 표범 장식이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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