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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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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철기시대 폴체 문화


폴체 문화의 사람들도 곶 위에 성을 축조하였다. 극동에서 폴체 문화의 유적 입지에 관한 것은 확실히 규명된 바는 없다. 폴체 문화의 유적은 아무르 강의 중부와 하류에 퍼져 있고, 연해주의 서쪽, 남쪽과 동쪽에 퍼져 있다. 폴체 문화의 상한은 리도프카 문화가 마지막 존재 존재했던 시기까지로 올라가며, 폴체문화의 마지막 시기는 말갈문화가 시작된다. 폴체 문화의 성곽 유적으로 알려진 곳은 콘드라티예프스코예(Кондратьевское, Kondrat'yevskoye), 케드로프스코예(Кедровское,Kedrovskoe) 성곽들이 알려져 있는데, 평면형태가 오각형에 가깝다. 메드베제프 박사는 이 문화의 마지막 단계가 8~10세기정도로 보고 있다. 폴체문화의 곶 성도 그 발달단계는 아직까지 연구된 바가 없다. 폴체문화 유적의 지형적인 특징으로 보았을 때 기본적인 교통로는 아무르 강이고, 그 중에서도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에서 기원해서 동쪽으로 가는데, 아무르 강의 지류인 우수리 강이 그 교통로의 제일 처음 단계였을 것이다.

 

3. 철기시대 크로우노프카 문화

크로우노프카 문화는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가 끝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폴체문화가 시작될 시기에 존재했던 문화로, 연해주 중세시대의 시작인 말갈문화의 시작과도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성곽은 페트로프 섬의 곶 위에 자갈로 벽을 쌓은 성지가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유일하다(브로댠스키 1965).

 

4. 말갈문화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이라는 종족은 고고학적인 유적으로 볼 때 아주 넓은 지역에 퍼져 살았다. 북한의 동북지역,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의 극동과 홋카이도와 사할린에도 일부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적으로 보아서 말갈문화는 10세기부터 13~14세기까지 이다. 연해주 중세시대의 퉁구스-만주족(그 중 일부는 말갈족)이 이 지역에 나타나게 된 것은 중국의 역사서와 여러 책에 기록되어 있다. 이상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곧 모든 곳에서 보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샤프쿠노프 1959). 당연히 극동에서도 이런 사건은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세 국가-발해(698~926), 여진(1115~1234), 동하국(1217~1234)가 탄생하게 된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말갈문화의 유적은 극동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적 중에서도 가장 많다. 연해주만 해도 모두 70여개의 유적이 알려졌는데, 대부분 성터와 무덤이다. 아무르 지역에서도 이 보다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곶 성(사카치-알리안, 우툐스노예, 타로프스코예 등)이 아주 많이 공간되거나 문서 기록소에 보관되어 있다(노빅코프-다우르스키 1961, 댜코바·샤프쿠노프 1975, 댜코바 1998). 연해주의 동북지역 타이가 산지에는 말갈의 곶 성은 5개가 알려져 있다. 미스 테플리이,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쿠즈네초프스코예, 오아시스, 에딘킨스코예 등이다(그림 136).


 

그림 136. 45-미스 테플리이, 50-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51-쿠즈네초프스코예, 52-오아시스, 54-예딘킨스코예 성곽의 위치

 

말갈인은 어느 시기까지는 자신의 고유한 성지를 축조했다.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갈인은 중국-돌궐 족-고구려인의 전쟁에 수천 기마병으로 참가하면서 그들은 다양한 방어물을 축조하게 되었다. 말갈 곶 성은 고대의 성벽 축조기술과는 차이가 있다. 어떤 성에서는 아주 복잡한 구조의 문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곶 성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계기는 발해와의 접촉이었을 것이다. 발해의 영역 확장에 대한 반발로 그럴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는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성곽이 이를 보여준다. 즉 트로이치코예 말갈인은 곶 성이라는 기본적인 특징은 유지 했지만, 이 성의 평면형태는 중국의 것을 모방한 발해 방형평지성의 것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말갈 토기의 형식으로 보아서 이 유적은 9세기 이상은 올라가지 못한다. 말갈인에게 아주 강한 기마병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도 극동 전체에서 교통로가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 중 곶 성은 부채꼴 모양의 궁형성, ㄷ자형, 부정형으로 구분된다.



(2) ‘자형 성곽


자형 성곽은 방어시스템으로 축조되었는데, 현재는 모노마호프스코예 성지 하나만이 해당된다. 이 유적의 평면적은 7000이다.(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 평면형태. 단순한데, 내성과 보루, 장대시설 등이 없다. 성안에서는 온돌이 설치된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 성벽의 축조방법. 치가 없는 성벽으로 지형적인 영향으로 성벽의 평면형태는 매우 복잡하다. 한쪽은 편평하고 다른 쪽은 지형에 따라서 울룩불룩하다. 절벽과 맞닿은 부분에는 성벽이 없다. 성벽에서 위험한 부분에는 부가성벽과 해자를 설치하였다. 성의 높이는 부분마다 다른데 최대 높이는 1.5m이다.

성지의 문은 적대시설이 있고 길로 바로 통하게 되어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혼합해서 축조했는데, 어떤 부분에는 돌을 경사지게 쌓은 부분도 있는데, 특히 모서리가 그렇다.

. 연대. 모노마소프스코예 성지를 연속발굴 결과 이 유적이 발해문화의 마지막 시기로 9~10세기에 해당하거나 혹은 더 발해 이후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 기원. 성곽은 성은 곶 위에 위치하고 부가성과 그 곳에 문이 설치된 자형 평면형태 방어시스템으로 보아서 그 기원은 혼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평지의 방형성은 말갈인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자연적인 방어기능을 갖는 곶에 성을 축조한 입지로 선정 한 것은 원주민의 전통이다. 그러나 성벽의 모서리를 직각으로 설정하는 것,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 돌을 경사지게 쌓는 것, 문지에 적대(적대)를 설치하는 것은 발해 전통으로 이 지역에 새롭게 들어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성지가 들어설 때는 국가가 평온하지 못하고 전운이 감 돌때였을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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