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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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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해당되는 글 2

  1. 2021.01.24 기원전 5세기 알타이와 페르세폴리스
  2. 2021.01.19 촉촉해진 유라시아 대륙
2021. 1. 24. 13:39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경에 고대 이란의 아케메니드 왕조의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는 사건은 아이러니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페르세폴리스를 자국의 장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국가의 장인을 모두 모아서 만든 결과였다. 그리고 알타이에도 서아시아 지역의 동물문양들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일부 등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루덴코는 알타이의 문양이 앗시리아 보다 이전 문양(루덴코 1961)이라고 했지만 이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과는 약간 다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아케메니드 왕조때 와서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중앙아시아에서 이 왕조에서 사용된 동물문양이 퍼졌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때 동물투쟁문양 가운데 원근법도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으나,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그림 1.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각배의 장식판(오른쪽)과 용(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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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투쟁문양은 페르시아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맹수가 포식자를 공격하는 장면과 맹수와 포식자가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으로 구분된다. 페르시아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은 두 동물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의 유물과 파지리크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의 맹수는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은 사실적인 것에 원칙을 두고 그 뒤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임으로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더 늦다. 반면에 두 동물이 물어 뜯는 장면은 사실적인 것이 알타이에서 발견되어서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림 2. 파지리크 2호 출토 안장덮개 장식 중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던 시점인 기원전 5세기는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 지역에서 스키타이문화가 나타난다. 기후변화를 다룬 논문(B. van Geel 외 2004)에서 가장 습윤한 시점을 2500B.P.(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라고 했는데, 이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습윤도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도 매우 습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이 시작된 시점은 기원전 1천년기 초(기원전 10세기 가량)부터 습한 기운이 형성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 태양활동이 감소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기후변화는 습지 퇴적물에도 기록되었는데, 볼가 북부 지역에는 매우 급하게 홍수가 일어났고 동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B. van Geel 외 2004).

 

루덴코(1961)과 페레보드치코바(1994)의견은 둘 다 맞을 수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서아시아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달랐을 수 있다.

 

 

참고문헌

 

B. van Geel, N.A. Bokovenkob, N.D. Burova, K.V. Chugunov, V.A. Dergachev, V.G. Dirksen, M. Kulkova, A. Nagler, H. Parzinger, J. van der Plicht, S.S. Vasiliev, G.I. Zaitseva, 2004, The sun, climate change and the expansion of the Scythian culture after 850 BC, Impact of the Environment on Human Migration in Eurasia, 151-158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9. 14:13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 남부 중앙의 투바에서 기원전 9세기 가량 시작된 스키타이 문화는 이웃한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기원전 7세기 가량이 되면 시베리아부터 흑해지역까지 퍼져나간다.

 

흑해지역의 유물에서도 시베리아 유물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확인된다. 특히 기원전 5세기 경의 재갈멈치에는 몸을 늘인듯한 이상한 사자형상을 한 장식들이 달리게 된다. 일린스카야는 이러한 유물은 다리를 뻗은 사자형상들과 함께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맹수장식과 상당히 자세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다(일린스카야 1971). 사자형상이 그리스문화의 영향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미 스키타이 문화 속에서 사자형상은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7세기 것을 리뉴얼 했을 수 있고, 이를 벗어난 유물은 새로운 지역과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베리아에서도 파지리크 유적에는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이 깊은 그리핀 장식이 안장덮개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페레보드치코바는 이러한 페르시아에서 있었던 페르세폴리스를 지을 당시(기원전 5세기)에 인접한 국가의 장인들을 모아서 제작했을 것이고 그때 많은 스키타이 문양이 퍼져나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가 팽창하는데 기후변화가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필자가 발견한 최초의 자료는 아르타모노프(1971)인데, 이는 흑해 지역의 스키타이 인보다 먼저 거주한 킴메르인과 스키타이 인과의 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카스피해의 해수면변동과 관련한 것이다.

 

기후변화 관련자료는 기술적으로 좀 더 최신의 자료가 더 정확할 수 있다. 습지토탄의 분해한 결과와 기원전 850년까지 측정된 탄소연대 결과 태양활동이 감소되었다는 것을 발견했고, 유럽의 습지 퇴적물에도 남아 있고 볼가 북부에서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동유럽 전체에 기후변화가 아주 심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동유럽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지역에도 확인된다. 그 증거가 몽골과 러시아 남부 투바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가장 습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2500B.P.,기원전 5세기 가량)이고 이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3000B.P., 기원전 10세기 이후)이다.

 

미누신스크 분지(스키타이 문화권 중 타가르 문화가 있던 지역)의 Kutuzhekovo 호수(53º 36’N, 91º 56’E)에서 발견된 꽃가루 분석에 따르면 2800년 전(기원전 8세기 가량)에 환경이 극심하게 변했는데, 습한상태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전에는 상대적으로 마른 곳이었고, 촉촉해지면서 식생변화가 생겼고 풀이 많이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곳의 고고학적 문화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에는 사람이 산 흔적(유적)이 드물게 발견되다가 청동기시대 아파나시에보 문화부터 발견되기 시작했고(기원전 37~25세기), 오쿠네보 문화(기원전 25~19세기), 안드로노보 문화(기원전 19~15세기), 카라숙 문화(기원전 14~10세기)가 확인되었다. 이후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타가르 문화가 시작된다.(타가르 문화의 시작을 기원전 7세기로 보기도 하지만 기원전 9세기 부터로 보는 연구도 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변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누신스키 분지의 남쪽에 위치한 투바 지역의 사정은 약간 다르다. 이 곳은 Sayan Mountains산맥에 속하는 지역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유적은 투바에서 발견되지 않고 카라숙문화의 후기에만 유적이 약간씩 발견되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러나 기원전 9세기 이후에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는데,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 중반 혹은 기원전 9세 후반)에 거대한 유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는 인구밀도가 매우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이때 투바는습윤한 상태였고 이는 인접한 지역도 시간차를 두고 초지로 바뀌게 되었다.

 

투바는 이미 습윤한 상태로서 초지를 바탕으로 한 유목시스템(?)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아르잔-1호를 지을 만큼 문화적으로 뛰어났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구가 점차 많아지면서 좀 더 넓고 기후가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접한 지역도 전부 초지로 변화되게 되면서 이동도 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투바 사람들의 생계시스템을 포함한 투바사람들의 생활방식은 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원래의 삶을 바꾸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이 넓은 지역에 퍼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사람들이 사용해서 일것이고, 그들이 이동하면서 남겼을 것이다. 결국 기후가 변화되면서 생업도 바뀌어야 했을 것이고, 초지 시스템을 가장 잘 운영하던 사람들을 보고 따랐을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을 좀 더 세분할 필요가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은 북위 42 °~55 ° N 및 동경 30 ° 100 ° E.사이에 위치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71 : Роль климатических изменений VIII-VII вв. в переселении киммерийцев и скифов в Азию и возвращение их в степи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в начале VI века до н.э. // Этнография народов СССР. Л.: Геогр. общество СССР. 1971. С. 45-60(아르타모노프 1971, 기원전 8~7세기 소아시아(아나톨리)지역의 킴메르인과 스키타이 인의 이주에서 기원전 6세기 동유럽 초원으로의 귀향과 기후변화)

B. van Geel, N.A. Bokovenkob, N.D. Burova, K.V. Chugunov, V.A. Dergachev, V.G. Dirksen, M. Kulkova, A. Nagler, H. Parzinger, J. van der Plicht, S.S. Vasiliev, G.I. Zaitseva, 2004, The sun, climate change and the expansion of the Scythian culture after 850 BC, Impact of the Environment on Human Migration in Eurasia, 151-15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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