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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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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연방의 시베리아에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한 곳인 투바공화국에는 대단한 무덤군이 발견되어서 고고학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곳이다. 필자가 러시아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의 성향은 소수민족 그대로를 인정해 준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해지는 지명을 그대로 둔다. 우리에게 알려진 아무르 강의 ‘아무르’도 만주어로 그물을 짜던 곳이라는 뜻이다. 극동의 지명은 1960~70년대까지 지역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 중국어 발음 그대로를 러시아어로 음차해서 쓰던 곳이 많다. 예를 들면 ‘coca- cola’를 ‘코카콜라’로 쓰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래서 1950년대 극동고고탐사단이 발굴하던 자료와 현재의 유적명은 대부분 다르다. 60년대 이후로 극동에서 중국과 국경마찰이 심해지고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러시아어로 바꾸게 되었다. 필자가 공부 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소에서 지명을 바꾸었다.

 

하지만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러시아어 지명 대신 지역민들의 언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쿠이루그-헴’, ‘울루그-후루움’ 등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쿠이루그-헴 I 유적에서 발굴된 16호, 17호, 18호 중에서 17호에는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어제 17호를 토광묘라 했는데, 어쩌면 나무시설이 있었을 수 있다. 인골이 흩어지긴 했지만 무덤구덩이 안쪽으로 라인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서 나무시설이 있었을 수 있다. 이 곳에서 발견된 청동검(그림 1-1)과 청동 그리핀(그림 1-2)은 16호와 18호에 없는 유물이다. 게다가 무덤을 만드는 사람은 16호와 18호 사람은 무시하고 그 위에 17호를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공간도 많은데... 아마 17호의 인물이 가정도 잘 만들었고, 직업으로도 훌륭하지 않았을까? 말탄 전사와 같은...

 

그림 1. 쿠이루그-헴 I 유적 1,2-17호, 3,4-22호의 1호묘, 5-7호의1호묘, 6-7호의 2호묘. 3, 5,6 유물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쿠이루그-헴 I유적에는 무덤의 봉분과 지하구조물이 너무 다른 무덤이 여러 기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7호와 8호이다. 8호를 무시하고 7호가 들어선 모습이다. 7호 쿠르간 아래에는 무덤이 3기가 들어 있었다.

 

그림 2. 쿠이루그-헴 I유적, 7호와 8호의 상부, 좌-돌을 드러내기 전, 우-7호만 돌을 드러낸 모습. 돌널무덤은 7호의 2호묘와 1호묘

그라치의 본문과 그림은 일치하지 않는다. 검토 결과 7호와 8호를 그림에 바꾸어 적었다. ‘7호 아래에 8호가 놓여있었으며, 7호에는 무덤 3기가 발견되었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림 설명과는 다르다. 특히 단면도는 같은 높이에서 7호 위를 덮은 적석이 더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7호 아래에 8호가 놓여 있었다는 본문이 정확하다.

 

 

7호와 8호가 앞에서 설명한 16호, 17호, 18호와는 무덤에 돌을 쌓는 상태가 다르다. 전자는 무덤의 가장자리를 돌린 돌(호석)과 그 안을 채운 돌이 달라서 그림 2-오른쪽과 같이 돌을 벗긴 것이다. 후자는 그냥 비슷한 돌로 무덤을 둥글게 만들었다.

 

7호의 1호는 중앙에 위치한 무덤으로 심하게 파손된 상태이고 청동칼(그림 2-5)만 발견되었다. 1호는 굴신장일 수 있다. 2호 역시 청동칼(그림 2-6)만 발견되었는데, 자루를 끼우기 위해서 구멍이 난 것이고, 두개골이 산산히 부서진 상태였는데, 처음부터 그 상태로 매장되었을 수 있다.

 

쿠이루그-헴 I유적 7호에서 발견된 사람과 함께 매장된 청동칼은 아르잔-2호의 돌널무덤에서 발견된 칼과 같다. 본 유적의 유물은 끝이 무디지만 같은 형식의 검이다.

이 유적도 기원전 7세기이고, 아르잔-2호도 기원전 7세기 중반으로 약간 늦지만 오차를 감안하면 비슷한 시대의 인물일 수 있다. 아르잔-2호에서 주인공과 함께 매장된 돌널무덤의 사람과 우육분지에서 벗어났지만 외곽에서 단독 봉분 아래에 묻힌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했을까?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여성무덤으로 미라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에서는 말 6섯마리가 함께 부장되었다. 재갈과 굴레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그러나 말은 매우 좁은 공간에 ‘우겨서’넣은 느낌으로 밀어넣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 9마리가 부장되었는데, 1차무덤방 안에서 확인되었고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말이 부장되어서, 이 공간을 ‘말무덤’으로 이야기 할 정도이다.

 

말 9마리 중에 7마리의 말 꾸미개가 출토되었는데, 5섯 벌은 말에 착장된 상태였고, 2벌은 말 옆에 둔 채로 확인되었다. 말 꾸미개는 1벌을 제외하고는 이미 소개했다.

말 안장의 앞에는 ‘메달’이라고 불리는 장식판이 붙었는데, 펠트(양모를 압축해서 만드는 소재, 이미 설명되었음)로 그리핀을 아플리케 조각으로 붙인 것이다. 안장의 옆에는 물고기 모양장식판이 있다.

 

아직 설명하지 못한 말 안장덮개는 늑대(그림2) 4마리를 양쪽에 각각 배치했다. 머리를 밑으로 향하게 둔 것이다. 길이가 85cm, 너비가 25cm이다. 늑대의 가장자리를 오려내고,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이다. 이빨을 드러낸 입, 발톱을 내고, 꼬리를 내린 채 앉아있는 맹수는 갈기와 몸통의 근육도 표현되었다(그림 1, 그림 2).

 늑대라고 발굴자는 이야기 하지만, 사실 표범이나 호랑이 일 수도 있다. 두 동물은 서식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구분될 것이다. 호랑이와 같은 고양이과의 동물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곳에 산다.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늑대를 장식한 안장덮개 복원도

 

이런 안장덮개와 화려한 말을 꾸며서 한 장례식은 무슨 의미일까? 그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의식이라도 있었나?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덮개 중 늑대장식

 

화려한 말은 어제 소개한 전사와 함께 부장되었다.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아래 그림에 다 표기했다.

기원전 5~3세기 사이의 출토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그림에는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창에 매단 적의 머릿가죽은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족을 묘사했던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3.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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