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성곽, 마을, 생산 유적 등'에 해당되는 글 24

  1. 2021.08.26 드네프르 강 유역 벨스크 성곽의 조상신 모신 집1
  2. 2021.08.25 스키타이 벨스크 성곽의 신(神) 파파이?
  3. 2021.08.24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생산지
  4. 2021.08.23 드네프르강 유역의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성곽
  5. 2021.08.22 드네프르강 유역의 벨스크 성곽

 

드네프르강 유역의 최대 성곽인 스키타이 문화의 벨스크 성곽에서는 특히 동쪽 성에서 토제로 된 인간형상물들이 발견된다. 인간형상물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성을 알 수 없는 유물들도 발견된다. 모든 인간형상물의 출토 위치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지만 집자리에서 발견되었다.

 

누가 보아도 여성을 형상화 한 인간형상물(그림 1-11) 중에 한 점은 집자리 13-25-1974호에서 발견되었다.(집자리 호수가 이렇게 복잡한 경우는 처음본다. 1974는 발굴한 연도이고, 13과 25는 발굴범위내에서 1m간격으로 표시된 격자번호이다. 문제는 발굴평면도가 없어서 동쪽 성의 어디에 주거지가 위치하는지 정확치가 않다.) 13a-25-1974호는 13호 보다 늦게 생긴 것으로 이곳에서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내의 집자리 출토품. 1~3: 31-30-1982호 출토, 4,5: 40-26-1976호, 6: 1-19-1969호, 7: 14-22-1973호, 8,9: 8-23-1975호, 10~16: 13-25-1974호, 17~19: 13a-25-1974호

1,7-송곳, 2-무기의 앞부분, 3-주외, 4-칼, 5-날, 6-화살촉, 8-창의 지지대, 10-점토 숟가락, 9,11-인간형상물, 12, 15-소 형상물Bucranium, 13-가죽 가공 용도의 석기, 16-구멍이 뚫린 지지대, 17-동물형상물, 18-토기, 19-긁개(1-2,5,7-8: 철, 4: 철과 뼈, 3,6: 청동, 9~12, 14-17: 점토, 13-석제품, 19-뼈제품)

 

그런데 이 여성형상물이 출토된 집자리는 다른 집과는 다른 장방형평면형태(9.35×5.6m,깊이 1.1m)이고 규모도 크다(그림 2-1).

이 집자리에서는 원뿔 모양으로 된 점토 받침대(그림 2-16)가 발견되었는데, 막대기를 꽂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인간형상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동물모양의 점토인형(그림 2-15)이 함께 발견되었다. 여성형상물의 머리는 훼손된 채 매장되었다. 동물장식은 소를 형상화(букрании, Bucranium)했다고 보고자는 생각했으나 의아하다(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벨스크 유적에서는 좀 더 사실적인 동물모양형상물이 출토되기 때문이다(그림 3).

 

그림 2.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의 집자리

 

그림 3. 벨스크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모양 점토인형

 

아뭏튼 시람코는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내에서 발견된 집자리 중에서 13-25-1974호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집자리 8-25-1984호(그림 1-2)에서도 인간형상물이 토기 옆에서 출토되었다(그림은 없음).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집자리에서는 인간형상물이 출토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집과는 무엇가는 다를 수 있다. 일종의 신(神)을 모신 집자리 일 수 있다. 매우 현실적인 종교 생활?이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동유럽 최대의 성곽은 스키타이 시대의 성곽으로써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 까지 사용되었다. 거의 4000헥타르에 달하는 이 성곽은 20세기 초 모스크바의 크기와 맞먹는다.

 

벨스크 성곽은 동과 서쪽에 각각의 성곽이 따로 존재하다가 기원전 6~5세기경에 이를 통합하는 성벽이 만들어졌고 이를 볼쇼이 벨스크 성곽이라고 부른다. 북쪽에 있는 쿠즈민 성은 이 후에 생겼고, 현재는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동과 서의 성곽은 모양도 다르고 그 곳에서 발견되는 구조물의 성격도 다르다. 특히 동쪽에는 토기와 청동기를 만들던 노지가 발견되어서 공방을 주로 담당했던 것 같다.

흥미로운 필자에게는 반가운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토제로 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성을 구부할 수 있는 유물들이 있다. 남성은 성기(그림 1-1,3~10), 여성(그림 1-13~16)은 가슴이 강조되었다. 물론 애매한 유물도 있다.

 

그런데 토우로 된 남성을 연구자들 대부분은 청동으로 된 파파이(그림 1-2, 그림 2)를 연상한다. 파파이(papai)는 헤로도투스가 전하는 스키타이 신화에서 제우스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에서 발견된 인간형상물

 

그림 2. 청동 파파이, 그림 1-2와 동일

 

그림 2의 청동으로 된 유물은 드네프르강 하류에서 발견된 유물로 기원전 4세기 유물이다.

2020.12.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지팡이 끝에 꽂는 방울이 있다. 간두령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방울 끝에 새 혹은 동물문

eastsearoad.tistory.com

 

하지만 토제로 된 유물과 청동으로 된 유물이 같은 인물일 수 있을까? 파파이가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필자는 시람코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림 1의 남성 인간형상물을 파파이로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동쪽 성 안에 ‘신전’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 매우 놀랬다. 물론 유적에서 그리스 토기가 발견되기 때문에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 주변에 거대한 성곽 유적이 16기나 더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이 요새화 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라면, 동유럽의 다른 스텝지역보다는 더 특별한 지역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쉽게 러시아 연구자들에 비해서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은 쉽게, 비판없이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믿는게 아닐까?

 

만약 토제로 된 유물이 스키타이 사람들의 남성신이라고 만들었다고 해도 기원전 7세기 경과 기원전 5세기 유물은 다른 생각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벨스크 성곽이 기원전 7세기 경의 유적이라는 점에서 인간형상물도 그 시기의 유물이다. 헤로도투스가 말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유물로 선사시대 이래로 전해져 오는 조상신 개념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보는 신화 속의 신과는 전혀 다른 이념일 수 있다. 다만 신의 이름은 참고할 수 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크라이나의 산림 스텦지역에는 성곽유적이 꽤 많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 거대한 성곽 유적은 평면적이 100~4000헥타르 정도되는 유적이 17기가 알려졌다.

 

가장 큰 유적은 벨스크 유적이다. 전체 평면적은 4020헥타르 정도 되고, 동쪽 성은 65.2, 서쪽 성은 72헥타르 이며, 두 성을 연결한 공간인 뵬쇼이 벨스크 성은 3868헥타르 정도 된다. 현재 북쪽의 쿠즈민 성곽은 거의 성벽이 남아 있지 않다(그림 1). 성은 자연적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평면도(다라간 2017)

 

그림 2 벨스크 성곽의 평면도(시람코 1987)

 

동쪽 성에는 마을, 제작공간, 공공 건물들지들이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 마을은 구덩이를 파고 만든 집과 구덩이를 파지 않고 만든 집이 발견되었다.

 

그림 3. 벨스크 성곽의 서쪽 성(1~3)과 동쪽 성의 집자리(4~5)

 

특히 동쪽 성에서는 청동을 제련하던 공간이 발견되었다(그림 4-1). 노(爐)의 주변에서는 청동주괴(그림 4-II)와 청동 슬래그(그림 4-III), 대량의 숯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토기를 구었던 가마도(그림 4-2) 확인할 수 있었다. 동쪽 성은 생산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4.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내에서 발견된 청동제작공간(1)과 토기가마(2), I-점토로 된 노, II-청동 주괴, III-청동 슬래그, IV-돌, V-숯, VI-토기제작을 위한 태토, VII-토기편, 로마자 숫자의 설명은 네모칸 안의 기호화된 표식 설명과 일치한다.

 

벨스크 성곽 유적은 유적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성곽 유적에서는 실제로 금속제품을 제작한 공간이 확인되었고 성곽을 제작하는 방법이나 스키타이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벨스크 성곽 유적은 단독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 거대한 성곽이 밀집해 있고 이를 요새화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지역은 스키타이 문화권역에서 서부지역에 포함된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지역에 들어가는 알타이를 포함한 시베리아에는 집이 거의 발견된 바가 없다.

 

참고문헌

 

 

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 강 유역(의 지류)에 위치한 스키타이 최대 성곽 유적인 벨스크에는 동과 서쪽에 별도의 성곽 유적이 있고 이를 연결해서 하나의 성으로 구성된 것이다. 동과 서의 성곽은 이름이 따로 없고, 위치를 그대로 부르고 있으나, 두 성을 연결하는 큰 성은 ‘뵬쇼이 벨스크 성(큰 벨스크 성)’이라고 한다. 북쪽에는 쿠즈민 성이 두 성이 통합된 후에 따로 생겼다.

 

그래서 벨스크 성곽에는 4개의 공간이 별도로 존재하며 이를 통합해서 벨스크 성곽이라고 부른다. 서쪽 성과 동쪽 성은 서로 시간 차를 두고 생긴 것처럼 기술된 곳이 있었으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겼는데 기원전 7세기 무렵이다. 하지만 두 성의 구조는 매우 차이가 크다.

 

동쪽 성은 지점마다 높이가 다른데 3~5m이고, 해자의 깊이도 1.6m부터 깊은 곳은 3.5m까지이다. 해자의 바닥에서 성벽까지 가장 높이 차가 심한 곳은 8m가 넘는 곳도 있다.

 

그림 1. 벨스크 성과의 전체 평면도

그림 2.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 네모칸은 발굴된 곳이고 숫자는 발굴범위를 넘버링한 것이다.

 

그림 3.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벽 단면도

 

그림 4.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벽 평면도, CMR(Conventional Magnetic Recording)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미 보여드린 적이 있는 동쪽 성벽의 성벽 단면도는 발굴범위 20(그림 2)에서 조사된 것인데, 성벽을 한 번 마무리 한 뒤에 다시 올린 흔적이 발견되었다(그림 3).

1차로 올린 성벽은 나무로 된 성벽을 세우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고 그 뒤에 다시 성벽을 올려서 나무 성벽을 지지하도록 축조된 것이다. 가장 넓은 곳은 최대 7.2m이다.

 

이 성은 불이 한 번 난적이 있는데 그 뒤에 다시 개축했으나 처음 성벽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성벽은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흙으로 먼저 성벽을 쌓았을까? 자료를 찾다가 최근에 흥미로운 연구를 발견했다(다라간 201). 먼저 나무성벽을 쌓고(그림 5-1), 이를 지지하기 위해서 흙으로 나무를 고정했으며(그림 5-2) 이때 해자도 팠다. 그러한 뒤에 나무 성벽의 높이까지 뒤 부분은 흙으로 더 쌓아 올리고, 앞 부분의 흙은 제거한 것이다(그림 5-3). 해자의 바닥도 편평하고 넓게 팠다.

 

그림 5.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벽 축조순서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을 구성하는 흙(그림3)에는 체르노젬(Чернозём, Chernozem)이라고 불리는 검은색 흙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흙은 아주 영양분이 많은 기름진 흙이다. 러시아어로 검은색을 ‘쵸르느이’이라고 하는데, 그 단어를 내포한 용어이다. 동유럽 스텝지역에 많이 발견되는 흙으로 우크라이나 곡창지대를 만든 흙이기도 하다. 도시 체르노빌도 체르노젬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성곽 조사에는 역시 물리탐사기법을 활용한 논문들이 눈에 뛴다.

 

 

 

참고문헌

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posted by 김재윤23

벨스크 성곽은 동과 서의 개별 성곽과 이 두 성을 연결하는 또 다른 성벽 및 북쪽에 위치한 쿠즈민 성으로 이루어졌다. 동과 서의 성곽 이름은 따로 없고, 벨스크 성의 동쪽 성과 서쪽 성이다.

 

동과 서의 성곽은 축조되시 시작한 시점에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거의 비슷한 시점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는 거 같다. 하지만 두 성의 구조차이는 크다.기원전 7세기 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기원전 3세기까지 유적에서는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서쪽의 성곽은 지점마다 성벽높이의 차이가 있지만 5~8m이고, 성벽의 가장 아래 너비는 22~32m이다. 해자의 깊이는 6m에 달한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서쪽 성

 

1985년에 성벽을 절개조사했는데(어느 지점인지는 정확하지 않음), 성벽을 4번에 걸쳐서 올렸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벨스크 성곽의 서쪽 성벽의 단면도, 단면도에서 기호가 다른 것은 각 층을 이루는 흙을 설명한는 것이다. 

 

서쪽 성에서는 많은 구덩이가 확인되었는데, 집자리도 있고 토기들이 들어간 구덩이도 있다. 서쪽 성에서는 집은 땅을 파고 만든 집이지만, 동쪽 성은 상황이 다르다. 서쪽성과 동쪽성에서 모두 그리스 토기가 발견되지만, 그리스와 무역이 본격화 된 것은 기원전 5세기 경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필자가 참고하고 있는 책은 1987년에 출간된 것으로 이 후에 좀 더 자세한 자료가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1987년에는 성의 평면도와 성벽 단면도 그리고 성 내의 구조물들이 보고 되기는 했지만, 성벽의 구조물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못하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