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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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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에 해당되는 글 18

  1. 2021.09.09 뱀 다리 여성...?
  2. 2021.09.08 동유럽 기원전 4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과 남성
  3. 2021.09.07 드네프르강 유역의 거대 무덤 내부
  4. 2021.09.06 '무덤은 자궁이다'
  5. 2021.09.05 드네프르강 유역의 전통적인 스키타이 무덤

드네프르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문덤인 가이모노바 유적의 뱀 다리 여신이라고 명명한 반원형 골제판이 출토되었다.

2021.09.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동유럽 기원전 4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과 남성

 

동유럽 기원전 4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과 남성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인간형상물은 양손을 밖으로 벌이고 두 마리 동물을 잡고 있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여성신으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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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뱀다리 여신은 스키타이 문화만의 특성이 아니다. 그 이전 시대인 청동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도 출토되며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그리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북유럽에서도 뱀과 관련된 여신은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에도 20세기 초까지 뱀을 숭배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부분은 마리야 김부타스의 글을 인용한 것인데 그녀의 어머니가 집의 마룻장 아래에 뱀을 살도록 했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유럽인들에게 뱀은 오랫동안 숭배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흑해지역 주변에 동석기시대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초기 사바티니브카 II유적(기원전 4600~4400년)에서는 특별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면적은 70㎡이고 단이 있는 건물지 안에서 인간형상물 16개점이 출토되었다. 여성상으로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이 없다. 팔이 있는 여성형상은 뱀을 껴 앉고 있다. 여성형상물의 얼굴은 머리 끝이 뾰족해서 인간이 아닌 뱀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유구에는 빵을 구웠던 것으로 보이는 페치카와 태운 소뿔이 담긴 접시들과 토기도 출토되었다. 일종의 의례장소로 생각된다.

 

그림1.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사바티니브카 II유적의 의례장소(1: 돌바닥, 2: 페치카, 3: , 4: 의자, 5: 여신상 6: 토기)

 

그림 2. 사바티니브카 II유적의 여성형상물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여성형상물은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가슴보다는 둔부가 매우 크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신체 전면에 파도문이 있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그림 3.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여성형상물

 

스키타이 문화의 뱀다리 여성이라고 알려진 가이모노바 유적의 골제판 속의 여성과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뱀다리 여성(그림 2)은 너무 다르다. 출토된 곳도 전자는 무덤이고 동석기시대의 유물은 집자리 혹은 신전이다. 말은 같지만 가르키는 바가 너무 다르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골제판 위에 여성형상을 뱀다리 여신이라고 한 것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다르게 표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스키타이 문화 연구자들은 간과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뱀에 대한 숭배는 그리스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흑해지역의 순동시대에도 있었고 유럽전체에 신석기시대부터 퍼져 있던 신앙 중에 하나라는 점이다.

 

또 한가지 염두해두어야 할 것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하이브리드 동물형상이 발견되는 것은 맞지만 사람과 동물이 결합되는 하이브리드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베리아에서도 있어왔고 초원스텝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참고문헌

Gimbutas Marija ,1989. The Language of the Goddess: Unearthing the Hidden Symbols of Western Civilization. San Francisco: Harper & Row.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인간형상물은 양손을 밖으로 벌이고 두 마리 동물을 잡고 있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여성신으로 생각되었다. 주로 금속으로 제작되었고 기원전 7세기에는 의례품에 표현되었고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귀걸이, 장식품 등에 나타나면서 부적과 같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골제에도 비슷한 형상의 여성이 발견되었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4번 무덤방 입구에서 반원형(너비 10.1cm, 높이 4.3cm) 골판 위에 그려진 것이다. 골판은 상아색으로 앞면은 매끄럽게 마연되었지만 뒷 면은 울퉁불퉁한 면이다.

 

그림은 오른쪽 하단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남아 있는 상태이다. 중앙에는 매우 큰 날개를 달고 있고 신부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다리가 꼬인 문양으로 표현되었다. 유적을 발굴한 보고자들은 이 여성을 ‘뱀다리’여신이라고 했다. 여신의 머리에는 칼라프 라는 일종의 모자장식이 놓여져 있다. 다리 역할을 하는 부분의 끝에는 화초가 표현되어 있다. 반원형 원판의 가장자리에는 금박으로 감샀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여성형상물

 

4번방 무덤 입구에서 같은 구덩이에서는 남성이 있는 골제판이 함께 출토되었다. 여성형상물이 그려진 골판과 같은 재질과 크기이고 9개의 작은 조각으로 발견되었다.

 

두 명의 스키타이 전사가 거대한 동물과 싸우는 장면인데, 가장 왼쪽에 있는 남성은 창을 들고 있었고 무릎을 구부린 자세이다. 창의 길이는 신체의 비율로 보아서 1.5m가 넘는 큰 창이다. 동물과 첫 번째 전사 사이에 있는 남성은 이미 땅에 거의 누워 있는 상태로 동물에게 당한 장면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눈은 크게 뜨고 눈썹은 치켜 올라 있고 입을 벌이고 있다. 얼굴은 면도하지 않았고 카프탄 이라고 하는 복장을 두 명다 입고 있었다.

오른쪽의 동물은 비늘이 있는 것으로 보고자들은 ‘해마’라고 했다. 그러나 동물은 매우 큰 동물로 단순히 해마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해마는 기원전 5세기 이후 스키타이 문화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동물로 그리스 동물장식이라고 알려졌고 대부분 소형이다.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남성전사

 

보고자는 이 유물의 아이덴티티 보다는 작은 골제판 위에 생생하게 표현된 그림의 예술성에 경의를 표했다.

 

한 구덩이 속에서 나온 유물에서 여성은 신격화되어서 표현되었고 남성은 거대한 동물에게 당하고 있어서 상당히 대조적이다. 동물에게 당하고 있는 전사와 신격화된 여성이 함께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유물과는 많이 다르다.

 

젠더간의 갈등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왜냐하면 필자가 이 유적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소개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항아리’라고 불리는 은제 항아리였다.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연상하는 듯한 고리트와 아키나케스 검을 들고 있는 두 남성은 비스듬하게 누어서 표현되었고 1번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2021.09.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드네프르 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성배

 

드네프르 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성배

이제까지 규모가 큰 성곽 유적만 보니 재미가 없어서, 무덤 유적 하나를 파고자 한다. ‘가이마노바 무덤 유적이다(지도에 이미 표시되어 있음). 흑해 주변의 유적에서는 워낙 흥미로운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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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 위에서 기절하기 직전의 남성 2인으로만 당시의 남성상을 그려낼 수 없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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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 강 유역의 거대 무덤 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은 직경이 70m 정도이다. 그 안에는 4개의 무덤방이 있는데 1번과 2번 무덤방은 바닥을 파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3번과 4번은 남쪽에 위치하며 규모도 작다. 3번 무덤방은 2번 무덤방을 중심으로 생토바닥까지 판 경계선의 가장 끝에 위치한다. 봉분의 가장자리에 돌을 쌓았는데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가서 무덤방을 만들 것이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무덤의 평면도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 무덤의 단면도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 무덤의 단면도(평면도의 3번 단면도) 1: 봉분의 첫 번째(I층) 흙, 2: 첫 번째 흙을 덮은 돌층, 3: 두 번째 덮은 흙, 4: 3번 무덤방 입구에서 발견된 청동, 5: 봉분의 I,II,III층 시작점, 6: 3번 무덤방의 입구를 막은 흙, 7: 4번 무덤방의 단면도, 8: 검은 흙(체르노젬)9: 무덤 생토층

 

가이모노바 유적은 봉분을 흙을 채운 후 돌로 덮은 층이 모두 4개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3). 그림 3은 3번 무덤방과 4번 무덤방의 봉분에서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른 단면도(3번)로 이 곳에서는 가장 최상위는 보이지 않는다. 무덤의 바닥은 검은 흙을 깔고 그 위에 흙과 돌을 4번 번갈아서 봉분을 축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4. 가이모노바 유적의 3번 무덤방

 

3번 무덤방 역시 수직으로 파고 내려간 무덤바닥아래에서 바로 무덤방이 있지 않고 연도를 통해서 횡으로 들어간 곳에 무덤방이 만들어졌다(그림 4). 바닥에는 나무가 깔렸었다. 4번 무덤방 역시 입구--> 복도-->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4번 무덤방의 복도 바닥에는 매납구덩이가 발견되었고 3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그림 5).

 

그림 5. 가이모노바 유적의 4번 무덤방(김재윤 편집)

 

1~4번 무덤방은 모두 입구 바로 아래에 무덤방이 있지 않고 복도를 통해서 무덤방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4번 무덤방은 입구가 상당히 크고 방형이라는 점, 무덤방입구에 별다른 시설 없이 노출했다는 점에서 약간은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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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펴보고 있는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무덤인 가이마노바 유적은 하나의 봉분 아래에 2개의 큰 무덤방(1번, 2번 무덤방)과 작은 무덤방 2개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깊은 곳에 만들어진 무덤은 2번 무덤방이다. 무덤방은 수직으로 판 입구 아래에 있지 않고 입구를 파고 연도(무덤방과 연결되는 복도시설)를 통해서 동굴처럼 생긴 무덤방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졌다. 무덤방은 네모반듯한 것이 아니라 천정이 둥그스럼하게 생겼고, 무덤방의 입구도 타원형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전통이어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전통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깊은 구덩이를 파고 동굴과 같은 무덤방을 만드는 것은 쿠르간의 구조에서부터 발견된다. 쿠르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동유럽 초원의 동석기시대부터 쿠르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드네프르강 유역과 볼가 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스레드니스톡 문화(Среднестоговская культура, Srednestogovskaya culture) 인 기원전 4000년기 전반을 쿠르간 I기라고 하며,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는 동석기시대에 해당된다. 쿠르간 III기가 되면서 얌나야 문화 공동체(기원전 3000년 기 전반)가 되는데, 동유럽부터 시베리아 초원에서도 얌 문화가 발견된다. 동유럽의 동석기시대 마지막시기이다. 

[문화공동체는 문화권과 같은 개념이다. 암나야 문화 (Ямная культура, Yamnaya culture). 얌(Ям)은 구덩이라는 의미이다.]

 

쿠르간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마리야 킴부타스는 ‘무덤은 자궁이다’라고 하는 이론을 유럽의 신석기(그림 1) 및 동석기시대  무덤에 대입했다.

 

그림 1. 아일랜드 신석기시대 널길무덤문화 기원전 4천년기 후반

 

무덤은 자궁이다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구의 학자들 사이에 있었다.

 Dames(1977)는 무덤은 실제 주검을 묻는 방과 긴 회랑 같은 통로로 구성되는데 자궁과 질을 나타낸다고 했다. 무덤을 만드는 자의 목표는 가능한 어머니의 몸에 가깝게 가는 것처럼 만들었을 것이고 그 개념이 무덤의 배치에도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보았고, 마리야 킴부타스는 이를 인용했다(1989). 무덤을 자궁으로 보는 시각은 구석기시대라고 르로이 구르한(1967)이 생각했다. 구석기시대에 지형적으로 좁튼 통로나 타원형 지대 또는 절개된 틈새나 동굴속 작은 구멍들에 표시한 흔적들이 이미 무덤을 자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비슷한 생각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무덤은 자궁을 의미하며 만들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그 의미가 약간 다르게 변질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무덤을 자궁이라고 생각한 시점이 구석기시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쿠르간에서 발견되는 입구의 모양이나 통로 및 땅에 주검을 매장하는 의미가 자궁의 형상화 했다는 생각은 필자가 늘 생각해 오던 바이다.  필자가 경험한 장례식에서 가족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위는 다음에는 더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빌어주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히는 이런 말과 행위는 남아 있는 자들이 스스로 위안을 삼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무덤 구조가 스키타이 시대 들어와서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은 단순히 주검매장을 위한 공간으로만 보기에는 경제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사상적인 의미(+알파)가 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 포스팅에서 마리야 킴부타스를 약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쿠르간에 대한 연구방향이 처음과 달라서 개념이 불분명해졌기때문이다. 소비에트 연구자 이지만 원래는 리투아니아 연구자였고 마지막에는 미국학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 전 포스팅에서 라트비아라고 했는데 그녀는 리투아니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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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 중3쯤에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것이 외국사람들과 펜팔하는 것이었다. 다들 미국 혹은 영국사람들과 펜팔 신청을 했지만 나는 동유럽사람을 신청했다. 원하는 것은 러시아였지만 원하는 국가로 러시아를 신청할 수는 없었고 퉁쳐서 동유럽이라고 되어서 적었는데, 우연하게 당첨된 것이 리투아니아의 또래 여학생이었다. 거의 2년 동안 한달에 한번쯤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어느 순간에 끊기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리투아니아 사람과도 인연이 있었네....ㅋ

 

참고문헌

Dames, M. 1977 The Avebury Cycle. London: Thames and Hudson

Leroi-Gourhan, A. 1967 Treasures of Prehistoric Art. New York: Harry N. Abrams.

Gimbutas Marija ,1989. The Language of the Goddess: Unearthing the Hidden Symbols of Western Civilization. San Francisco: Harper & Row.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가장 큰 무덤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은 하나의 봉분 아래에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된 것이다. 1번과 2번은 땅을 파고 무덤방을 설치한 것이고 3번과 4번은 무덤봉분을 파서 만든 무덤이다.

 

특히 2번 무덤방은 땅을 가장 깊게 파고 설치한 곳이다. 무덤평면도에서 2번 무덤방을 중심으로 생토층이 표시되어 있는데, 인간이 손대지 않은 땅을 표시한 것이다(그림 1). 2번 무덤방의 깊이는 7m 정도이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평면도

 

2번 무덤방의 중심무덤방은 매우 특이한데 입구는 돌로 막았으며 수직으로 파고들어간 무덤방 아래에 매장주체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파고 들어가고 다시 옆으로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든 구조이다(그림 2-라). 무덤방 입구아래에 무덤을 설치하지 않고 굴을 파서 만든 구조는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무덤방의 평면 모습은 다르지만 입구 아래에 바로 무덤방을 만들지 않은 것은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무덤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2번 무덤방 평면도(가)와 단면도(나~다)(필자편집), 나: 평면도의 I단면, 다: 평면도 II단면, 라: 평면도의 III단면

 

2번 무덤방 입구의 서쪽에는 가짜 입구와 말무덤이 설치되어 있다. 말 무덤을 위해서 구덩이를 파고 한쪽에 돌로 채운 구조인데(그림 2-나) 2번 무덤방 입구 만큼 깊지 않다. 말 무덤 아래로 도굴괭이 다달았다. 도굴괭은 중심무덤방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말 무덤 아래까지만 있었다. 그리고 중심무덤방은 말 무덤, 입구, 도굴괭 보다 가장 깊었기 때문에(그림 3) 2번 무덤방까지 손대지 못하고 말 무덤에서 방향을 틀어서 1번 무덤방의 입구인 2번 무덤방 입구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그림 1).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 2번 무덤방의 단면도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은 매우 특이한 것이 크게 만들면서도 어느 정도 도굴을 방지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도 무덤입구 아래에 바로 매장주체부를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덤방을 여러 개 만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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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봉분을 크게 만들면 후대에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전통? 혹은 규칙?의 예절?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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