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000m의 쿠투르군타스 유적 남성은 이중으로된 나무방 속에 통나무관에 안치되었다. 통나무관이 매장되는 경우는 파지리크 문화에서 드물어서, 계급이 높은 신분에서 확인된다고 보았다. 통나무관이 발견되는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이 처음으로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도굴 때문에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남성도 해발 2500m위에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과 비슷한 사회적 역량이지 싶다. 이 유적에서도 모피조각이 발견되어서 남성은 모피로된 코트를 입었을 수 있다. 그나마 잘 남아 있는 남성의 모피코트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와 3호 남성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모피코트이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남성은 꼬리 달린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그림 2).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여성 모피는 통으로 발견된 예가 없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을 수 있고(포스팅 참고),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다.
2021.07.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탁사이 1 유적] -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은 통나무관에서 꺼내진 상태로, 미라로 처리된 시신은 찢겨진 상태로 발견되어서 몸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코트는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된 아플리케 장식(그림 3,4)과 그 위에는 둥근 금박이 씌워진 화려한 코트이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코트
그림 4. 그림 3의 디테일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은 쿠트르군타스 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는데, 주머니의 조각으로 보고 되었으나, 코트의 조각 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모피코트를 입었던 경우가 울란드리크 1유적 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역시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된 스타일이고, 여러 번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쿠바레프는 그 흔적이 여러 아이들이 돌려 입으면서 생긴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고깔모자와 코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르시아와 스키타이 왕의 전투 (3) | 2022.10.19 |
---|---|
앗시리아와 스키타이 외교 (1) | 2022.10.18 |
다리우스 1세와 스키타이 왕 (7) | 2022.10.17 |
기원전 5세기 알타이 남성모자 3종 (0) | 2021.10.19 |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모자 (0) | 2021.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