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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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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파라랄디(카파로프) 신부(1817~1878)의 역사-민속학적 연구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는 1870~1872년에 연해주, 아무르, 만주 지역 지질학회 회원이었다(그림 4, 5). 그는 러시아 동방학자 가운데서 기록된 최초로 고고학 유적을 찾았던 학자이다(카파로프 1871, 파노프 1898). 우수리스크 지역에 처음으로 카파로프가 왔을 때, ‘어떤 중국 책’에 적힌대로 레푸 강(현재 일리스타야 강)과 다우비헤(현재 아르세네프카 강)의 수계를 따라서 잔존한 성벽을 찾았다. 이 성은 치키르-무둔이라는 중국 사람이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둔다스 만과 포시에트 만에서 고대 항구의 흔적을 찾았다고 적었다(카파로프 1871, 파노프 1898). 그 외에도 크레포치나야, 케드로프카, 라드돌라야 강, 페레보조치나야, 크라스노야르스크, 니콜라예프스코예 성의 성벽을 연구했다.


그림 4. 카파로프가 발견한 라즈돌나야 강(중국명: 수분하)의 토루

그림 5. 카파로프 신부


상트-페제부르그로 돌아가는 길에 신부는 죽고, 그의 연구 결과물은 일부는 도난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그의 출판물은 사후에 출판 되었는데, 고고학적 유적과 민속학적 문화적인 해석에 대한 것이다. 카파로프는 수분하의 북쪽 성지들을 관찰했는데, 이 성지들은 한국사의 프리즘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하고 있다. 성의 일부분은 고려인이 축조한 것이고, 일부는 여진의 것이라고 하였다. 수분하의 우안에 남은 성벽은 트랙터에 의해서 많이 파괴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성의 대부분은 발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역사적인 사실과 지역적 위치 등으로 보아서 유즈노-우수리스크 지역에 남아 있는 고대의 유적들은 만주에 있던 발해의 중요한 행정관청 중에 하나로 생각된다. 그 뒤 이 지역에서 고려와 여진(중원에 금을 세우게 됨) 사이에 충돌이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흔적은 전쟁과 관련된 유적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아르히만드르트 파랄랄디 1871).


이.페. 나다로프는 연해주 성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882~1883년 동안 극동지역에서 이만 강 하류 부터 아르세네프카 강까지 조사하였는데, 노보포크로프스키의 2개 성지, 예카테리노프스크, 파브로프스키 성지, 바라바쉐프카 강의 고대 도로 등이다. 나다로프의 보고서(나도로프 1887)에는 ‘이만강가에는 고대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기술되었다. 나파로프가 언급한 것은 고대석성으로 생각되는데, 부정형의 평면형태 이며, 성벽과 해자의 크기를 측량하였고, 성벽이 3중이었던 것으로 밝혔다. 그는 이 성지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이상 올라간 고려의 것으로 보았다. 지역주민들 사이에도 옛날 석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흙으로 구운 기와와 전돌 등이 발견되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