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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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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스팅은 흑해 지역의 철기 제작소를 찾아서 헤매어 다닌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빠짐 없이 출토되는 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활과 관련된 스키타이 신화가 있다.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특유의 화살통)를 늘 차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타르기타우스와 관련된 것이다. 타르기타우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신화 속의 인물로 스키타이 땅에 최초로 태어난 인물로 알려졌다. 그에게 3아들이 있었는데, 활을 당기고 허리띠를 맬 수 있는 아들을 드네프르강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이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 3째 아들(schytes)로 타르기타우스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신화와 관련된 유물이 차스티예 쿠르간(기원전 4세기)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 은 항아리인데, 타르기타우스는 고리트를 차고 있고(그림 2의 우측, 그림 3-2), 그가 활을 건너는 인물이 3째 아들이다(그림 3). 첫 번째 아들은 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으며(그림 2) 두 번째 아들은 창과 방패(그림 4)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가 적은 역사의 4권에 스키타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 중에 한 부분이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신화, 강역, 주변 민족, 기원과 생활풍습, 전쟁풍습, 종교, 왕이 장례치르던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기원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자신들의 신화와 그리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키타이 신화는 약간 다르다.

 

 

그림 1. 차스티예 쿠르간 출토 은 항아리

 

그림 2.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우측)와 큰 아들(좌측)

 

그림 3.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와 셋째 아들(1)

 

그림 4.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둘 째 아들

 

한편,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가 쿨-오바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위에서 전한 신화 속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그림 5).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5. 쿨-오바 유적 출토 금 항아리

 

신화와 고고유물을 비교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유물에 대한 스토리를 넣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다는 기왕에 있는 신화로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분명한 사실은 활과 화살을 넣는 고리트는 스키타이 유물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동과 서쪽 지역의 대부분 연구자(알렉세예프, 쿠바레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들이  화살촉을 연대 판단의 근거로 삼는 다는 점이다.(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살촉은 연대판단의 근거로 삼는 예가 왕왕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타르기타우스가 고리트를 차고 다녔다는 문구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상징하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돈 강 유역의 스키타이 성곽이라고 알려진 하지만 남겨진 건축물은 그리스식 건물지 밖에 없는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은 어떻게 스키타이 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윗층에 남은 그리스 건축물은 기원전 3세기 1/4분기에 해당되며, 그 곳에는 그리스식 토기(그림 1)들이 발견된다. 그리스식 집과 토기는 이 성곽에서 가장 마지막 시기에 발견되는 것이지만, 어찌되었던 스키타이 인의 입장에서는 불리하다.

 

그림 1.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기원전 3세기 그리스 토기

 

스키타이 문화에서 연대측정의 근거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화살촉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화살의 중요성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던 것 같다.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은 고리트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에서 타르기타우스(그림 7) 라고 하는 사람이 스키타이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인데, 늘 고리투스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에 살았던 스키타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남겨놓았다. 화살촉과 아키나크라고 불리는 단검 및 청동창이다. 단검과 청동창은 사실 스키타이 연대를 세밀하게 알지 못한다. 기원전 7~4세기까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단검은 길어지며, 손잡이 끝장식은 동물의 뿔을 형상화 한 형태(그림 2-5~7)가 아니라 T혹은 역 V자(그림 2-37, 51~54,) 로 바뀌게 된다.

 

그림 2. 유럽 스키타이 문화의 무기변화, 상단: 기원전 4~2세기, 하단: 기원전 7~4세기, 1~15: 검, 16: 투부(전투용도끼), 17~21: 청동창, 22: 찰갑(미늘 갑옷), 23-26: 갈고리

 

그림 3.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검

 

그림 4.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창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청동검(그림 3)에도 뿔 모양처럼 생긴 손잡이 끝장식이 달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적의 청동창(그림 4)의 모습도 기원전 7~4세기 유물과 유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살촉이다. 화살촉을 연대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유럽 스키타이 문화나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시대별로 변화에 비교적 민감하게 변화되고, 지역성(지역)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 5.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화살촉

 

그림 6. 유럽 스키타이 문화의 화살촉 변화, 2,4-볼가~돈강 유역, 3,5-우랄 남부

 

화살촉은 신부(몸통)의 단면과 자루를 끼우는 부분, 평면형태 등이 중요하다. 유물에 따라서 다른 부수적인 부분들도 판단의 기준이 된다. 대체로 유럽스키타이 유물들도 세 가지 기준으로 구분했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단면)양쪽으로 날이 있는 형태(양익형, 兩翼)이고, 기원전 6세기 이후가 되면 삼익형이 된다. 혹은 간혹 그냥 삼각형도 있는데, 외면에 홈이 없는 경우라서 그렇다. 삼익형의 단면은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대부분 삼각형으로 변화되고, 자루 끼우는 부분도 몸통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6세기는 신부(화살촉의 몸통)형태도 변화가 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평면형태가 마름모에 가깝고 앞 부분만 날이 있는 형태이지만, 기원전 6세기 이후 삼각형에 가까우며 신부 전체가 날이 선 형태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형태들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과 우랄 남부지역의 화살촉은 이 점은 비슷하지만 화살의 동체부에 홈의 깊이 정도가 다르다.

기원전 5~4세기 유물은 단면과 자루끼우는 부분은 직전 시대와 유사하지만 화살촉의 앞 부분이 길어진다. 뿐만 아니라 화살촉 신부의 날이 좀 더 커지는 경향도 있다. 돈강 유역과 우랄 남부지역은 약간 다른 경향이 있는데, 우랄 남부지역(그림 6-)5에 단면이 양익형인 것이 생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와는 달리 자루끼우는 부분이 신부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이후는 훈-사르마트 문화 시기에 해당하는데 화살촉의 앞 부분이 더 길어지고 자루끼우는 부분이 바깥으로 나와 있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엘리자베틴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화살촉(그림 5)은 기원전 6세기 유물 혹은 기원전 5세기 유물과 유사하다. 그리스인이 집을 짓은 것은 기원전 3세기 1/4분기라고 하니, 이전에 이미 스키타이 인들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자료를 찾다가 스키타이 성곽이 생각보다 많이 발견되며, 훨씬 오래된 유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림 7. 차스티예 고분에서 발견된 은제 항아리 속의 타르기타우스

 

참고문헌

 

Марченко К. К., Житников В. Г., Копылов В. П. Елизаветов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ону. М., 2000(마르첸코, 지트니코프, 코피로프, 2000, 돈 강 유역의 엘리자베트토프스코예 성곽)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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