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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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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 위에 말이 세 마리 확인되었는데, 이는 이 무덤을 위한 것이었다. 천장 위의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을 제거한 도면을 공개했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주인공 무덤에는 말이 6마리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무덤방 천장의 북쪽 가장모서리에 첫 번째 말이 확인되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2020/01/11 - [시베리아의 선사시대/철기시대: 2500년 전 샤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유적은 3m(지표에..

eastsearoad.tistory.com

 

아래의 사진이 공개되어 있어서 살펴보시면 카라-코바 무덤과 첫 번째 말이 드러난 상황을 잘 보실 수 있다.

 

 

그림 1. 아카-알라하 3유적 1호분의 호석(좌)과 무덤 복원도(우)

 

 

 

그림 2. 아크-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무덤 천장(좌)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과 첫 번째 말 뼈를 찾을 수 있다. 우측의 말 3마리는 카라 코바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사자를 위해서 묻은 말이다. 그래서 이 무덤에서 가장 먼저 팠을 때 말 3마리가 먼저 나왔는데, 가지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는 여성 미라의 말이 아니라, 여성 미라의 무덤 천장 위에 있던 카라 코바 문화의 무덤과 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말 5마리는 나무로 만든 무덤방과 무덩구덩이의 북쪽 공간에 5마리가 들어 있었다. 이 공간은 깊이 2.82m, 폭은 0.65m사이의 공간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무덤 구덩이

 

 

 

그림 4. 무덤 구덩이 속 5마리의 말, 가장 좌측의 번호가 설명드린 말의 번호이다. 

 

가장 첫 번째 말은 나무로 만든 재갈멈치와 멈치 끼우개 1점만 발견 되었다.(첫번째 말과 관련된 유물의 사진 혹은 그림은 없었다.

 

 

 

두 번째 말과 세 번째 말은 말 구덩이 동편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있는 채 발견되었는데,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리는 교차해서 굽혀져 있었고, 두개골의 정부에 도끼로 맞아서 생긴 구멍이 남아 있다. 말을 장식한 마구 굴레 일괄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멈치의 끝은 그리핀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말에는 안장이 있는데, 붉은색 펠트로 만든 것인데, 그 위에는 날개달린 사자 즉 그리핀 형상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이 그리핀은 날개, 뿔, 귀 등이 있고, 꼬리 끝에는 숱이 장식되어 있었다. 두번째 말에는 그리핀조각이 모두 13개 확인되었다.

 

그림5. 두 번째 말의 두개골, 말머리에 도끼로 맞은 자국이 있다.

 

 

 

그림 6. 두 번째 말의 굴레 장식과 재갈
그림 7. 두 번째 말의 재갈과 굴레장식, 마구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해 드리겠다.

 

 

세 번째 말은 철제 재갈이 채워져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치레걸이와 말 머리 장식이 확인되었다. S자형 대형재갈멈치는 그 끝은 팔메트 장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팔메트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두 번째 말의 굴레장식도 그리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모양은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말 안장도 확인되었는데, 세 번째 말에도 안장은 화려한 덮개로 덮혀 있었다. 그리핀 아플리케가 부착되었다. 안장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2 개의 땋음 장식도 확인되었다. 땋음 장식에도 3개의 목제 그리핀이 부착되었다(안장을 덮는 펠트와 땋음 장식 등은 다시 설명드리겠다).

세번째 말에는 그리핀이 말 굴레에는 장식되지 않았고, 땋음 장식에만 3개 있었다.

 

그림8. 세 번 째말의 마구장식
그림 9. 세 번째 말의 장식 복원, 우측은 안장을 장식한 묶음

 

 

네 번째 말은 굴레의 장식과 재갈멈치, 멈치 끼우개와 징식을 포함해서 완벽하게 부장되었다. 휘어진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이 조각되었다. 머리 위의 갈기, 날카로운 귀, 뻗은 갈기, 부리 끝, 세로로 눈금이 새겨진 목 등이 특징이다.

네 번째 말은 그리핀 3개가 모두 확인되었다.

 

 

그림 10. 네 번째 말의 재갈괴 굴레 장식

 

 

다섯 번째 말은 깊이 1.97m에 벽과 아주 밀착되었다. 전체 재갈 부속과 장식들이 잘 보존되었다.

다섯 번째 말의 장식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S자형 재갈멈치는 한쪽은 그리핀, 다른 쪽은 팔메트 장식이 새겨졌다. 팔메트 장식은 치레걸이에도 있다. 재갈멈치 끼우개 장식에는 영양의 머리 장식이 새겨졌다. 말의 이마 장식 대신에 정교한 그리핀 장식이 놓여졌다. 이 유물은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대제 컬력센의 유물중에 있다. 또 다른 그리핀 장식은 머리 부분과 몸체를 따로 만들어 조합했는데, 사슴의 뿔 같은 것이 새의 머리에 달렸다. 말굴레 장식의 일부로 같이 부착되었다.

그리핀은 모두 3개 확인되었다.

 

 

그림 10. 다섯번째 말을 장식 한 재갈과 굴레 장식

 

그림 11. 다섯 번 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 장식

 

 

 

6섯번 째 말은 가장 밑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S자형으로 약간 굽고 그 끝을 그린 그리핀 머리로 장식한 재갈멈치가 출토되었다. 다른 파지릭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핀 모양이다. 귀가 없고 갈기는 물결치듯 표현되었다. 부리와 상투머리가 크게 하나로 묘사되었다. 이마 장식은 둥글고 한쪽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왔다. 파지릭 1호 고분 출토장식과 유사한 팔메트 모양의 치레걸이도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그리핀은 2점 확인되었다. 재갈멈치에 양쪽으로 달린 것을 다르게 계산하면 4점이다.

 

 

 

그림 12. 여섯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 무덤에서 미라를 들어올리는 장면.

 

그림 2.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 샤먼 관 속 얼음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의 무덤방 속에서 들어난 목제 쟁반과 그 위의 동물뼈(고기덩어리)였음.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관에서 미라를 꺼낸 직후

 

*위의 사진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주인공이 다시 땅위로 올라오는 장면부터 거꾸로 편집해 보았다. 그녀는 무덤속에 들어갈때 이와는 반대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사진은 참고문헌에서 발췌된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미라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얼음공주라고 처음에는 제목을 붙이고, 어제는 여성 샤먼이라고 했다. 사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은 무덤 속에서 얼음이 꽉 차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베리아 알타이라고 하면 ‘춥다’라는 이미지와 신비로움, 대중성 때문에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였다. 그러나 정작 발굴한 사람들은 가장 최상위 계급은 아니며,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그녀는 살아서 샤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보다 더 화려한 부장품이 들어간 무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아니면 보이는 거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못살았는지 모르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말 6필을 무덤 속에 그녀와 함께 묻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설명할 때 학생들에게 벤츠 최상급 기종 6대를 무덤에 밀어넣은 거랑 같은 거라고 설명한다. 애들도 꺄르르 웃는다.

어느 문화에서나 장례식은 살아있는 자들의 잔치다. 보이기 위한. 레닌을 미라로 만든 이유도 스탈린의 권력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레닌 무덤을 만들고 보관하던 기술은 이 미라의 복원과 보관을 위해서 활용되었다. 또 김일성도...

 

스키타이 문화는 놀랍게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누구일까? 어느 책일까?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남아 있다. 이 책은 기원전 450년에 쓴 책인데, 이 책의 4장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스키타이 원정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때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스키타이 민족의 강역, 주변민족, 기원과 생활풍습, 전쟁풍슴, 종교 등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은 여러 곳이 있겠지만, 특히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 인이 어느 지역 사람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문화는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라는 주장과 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문화는 흑해북안부터 시베리아, 동쪽의 끝은 중국 오르도스 지역까지 그 분포범위가 광대하다. 헤로도투스가 시베리아까지 와서 스키타이족을 보았다는 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내용이 실제로 그대로 발굴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설명드리기로 하고 여성 샤먼을 주변으로 해서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 인들이 왕의 장례 치르는 모습을 다음과 설명했다.

‘왕이 죽으면 그 곳 땅에 큰 사각형 구덩이를 판다. 구덩이가 완성되면 전신에 발삼처리를 하고 마차에 시신을 싣는다. 그 전에 시신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전부 꺼낸 다음 그 안에 생강, 향료, 파슬리씨, 아니스를 넣고 다시 봉합한다. 그런 후에 시신을 마차에 실고 다른 부족에게 간다’

 

헤로도투스도 언급했듯이, 그리고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도 죽은 후 곧바로 매장하지 않았다. 최소 3개월이 지나서 매장되었다는 분석에서 보듯이 그들의 장례 치르는 기간은 매우 길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같이 매장된 말이 먹은 건초가 6월 중순 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꽃가루분석결과도 이 시기로 판명되었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땅에 묻히자 말자 냉동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무덤은 관과 곽(관을 넣은 무덤방을 곽이라고 한다)이 얼음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도굴이 불가능했다.(알타이 산맥의 여러 유적 고분은 쉽게 도굴당했다. 아이러니하게 무덤을 상징하는 봉분이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알타이라고 해도 무덤 내부가 완전히 냉동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깊이 3m의 토광을 파자마자 지하수가 차올랐고 그대로 냉동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더운 여름이라도 3m정도를 파면 그곳은 얼음 덩어리처럼 단단하게 얼었다. 미라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특수한 처리 때문 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얼음 때문에, 영구동토대였기 때문이다. 우코크 지역에 살던 2500년 전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이를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정한 계급이상의 사람이 죽으면 미라 처리를 하고 땅이 바로 얼 수 있는 기간 까지 기다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죽은 지 3~6개월이 지나서 주로 봄과 가을에 매장했다(폴로스막 2001).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에서 설명 드린 2500년 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의 여성샤먼은 아크-알라하(Ак-Алаха-3,Ak-Alakh)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알타이 주민들에게 이 여성을 두고 고고학자들이 ‘고고학자료’니 ‘출토되었다’느니 이런 말을 써서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진열해 두고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두번 죽었다고 생각했겠지..그들에게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여성은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확인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1993년에 발굴되었는데, 그 때 찍은 비디오 사진이 유투브에 공개되어 있어서 아래에 링크해 둔다. 1993년에 발굴한 연구소에서 직접 찍은 건데, 러시아말은 모르셔도 그 분위기나 이런 것 등은 한번 보시기 바란다. 인터뷰의 내용은 아래에 간략하게 적어두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yLwxIkmw9M#action=share

 

(1993년은 러시아가 정말 힘들 때이다.1991년에  페레스트로이카가 있었다.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치를 떤다. 나의 지도교수님도 그때 부두에서 바나나를 옮기고 받은 돈으로 겨우 먹고 살았는데, 바나나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바나나를 보면 치를 떠신다. 러시아인들은 고르바초프를 저주한다. 마치 전두환처럼. 그래도 그 때 워낙 중요한 발굴이어서 러시아에서는 이를 지원했다.:필자의 해설

 

러시아에서는 기계로 발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고분의 돌도 사람들이 하나씩 다 들어냈다. 깊고 높은 산중(해발 평균 2500m)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냥 차도 못간다. 러시아군용트럭을 이용해야 물건을 옮길 수 있었다. 낮에는 매우 덮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져서 발굴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비디오에 보면 저 텐트에서 영하로 떨어지는 밤을 보냈다고 한다.

인터뷰한 발굴책임자인 폴로시막은 그 때 정말 힘든 발굴의 여정을 설명했다. 이 분은 이 유적을 발굴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두 번째 인터뷰인은 몰로딘인데, 이 발굴 과정에서 고분의 얼음속 사람을 꺼내기 위해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부위는 괜찮지만 이 여성의 얼굴은 그냥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과정이 사진과 비디오로 남아 있다고 하지만 본인도 아쉽다는 표정이다. 나중에 미라처리과정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가장 미라 처리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얼굴피부라고 한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상 죽으면 바로 매장하는 게 아니라 장례 치르는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이미 얼굴피부는 없어진다.)

 

 

이 여성의 나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 무덤에서 확인된 여성은 스위스 지리히대학의 의학연구소에서 그녀의 피부를 분석한 결과 그녀가 죽은 뒤 3~6개월 뒤에 무덤에 부장했고, 28~30세의 여성이었다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Хаури, Блаттер, 2000).

 

이 여성의 무덤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말이 6마리 함께 부장되었는데, 그 말의 위를 살펴본 결과 남아 있는 풀의 분석한 결과 6월에 말이 죽었다고 한다.

 

이 여성의 오른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그리핀과 사슴 등 동물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알타이 산맥의 여러 고분에서 미라가 확인되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문신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것은 파지릭 유적의 2호(남성), 아크알라하-3유적의 1호(여성), 베르흐-칼쥔-2 유적의 남성에서 확인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 샤먼은 61cm나 되는 높은 모자를 썼고, 가발도 썼다. 옷은 치마를 입었고, 그 위에 상의는 여밈이 없는 긴 셔츠를 입었다.

 

아래의 그림은 무덤에서 나온 의복과 가발, 장신구 등으로  그녀를 복원한 모습이다. (출토유물에 대해서도 계속 포스팅해드리겠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출토 여성샤먼 복원도(국립중앙박물관 1995)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었던 알타이문명전 도록에 복원도가 소개되었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유방암에 걸렸고, 두개골과 관절에 심한 외상이 남았는데,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을 가는성이 제기되었다(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두개골 뒤쪽의 큰 구멍은 미라 만들때 뇌를 빼낸 구멍이고, 왼쪽그림의 두개골 오른쪽에 심한 외상이 직접적인 사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그림은 위의 링크해 둔 잡지에서 본문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샤먼이 묻힌 무덤과 유물, 말 6마리, 말의 장식 등에 대해서 설명드리겠다.

 

 

그런데 비디오에 보면 무덤 속에는 왜 얼음이 차 있는지, 그리고 왜 죽은지 최소 3개월 이후가 되어서야 매장을 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셔야 한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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