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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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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3.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에서 배 그림은 고래와 함께 그려진다. 그럼 배 그림은 고래와 같은 연대 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도 간단한 것이 아닌 것이 고래는 58마리나 등장하며, 다양한 종류의 고래가 그려졌다. 그 중에서 고래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장면 및 고래가 수평으로 놓인 장면 에 나오는 고래는 종류가 다르다. 그래서 반드시 고래도 같은 시기에 그려졌다고 볼 수 없다. 앞의 것은 북방긴수염고래로 페그티멜 암각화에 등장하는데 기원전 10세기경에 그려진 것이다(김재윤 2017b). 그 외 배와 함께 그려진 고래는 귀신고래, 범 고래(그림 2)등인데 북방긴수염고래(그림 1-A)와는 다른 종류이고 그려진 방향도 달라서 그려진 시점도 따로 생각 해 볼 수 있다(김재윤 2021).

 

그림 1. 반구대 암각화의 북방긴수염고래

 

 

 

그림 2.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와 배

 

 

실제로 우리나라의 8000년 전 비봉리 유적에서는 배(그림 3)가 발견되었고, 동삼동 유적에도 배를 모방한 토기(그림 4)가 확인되어서, 신석기시대에 배는 존재했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의 배도 신석기시대의 그림일 수 있다.

 

그림 3. 창녕 비봉리 유적

 

그림 4. 동삼동 유적에서 발견된 모형 배

 

 

다시 돌아가서 사카치 알리안의 호랑이와 사슴, 페그티멜 암각화의 사슴과 고래는 반구대에서 확인되는 같은 방법으로 그려진 문양이다. 여기에 환동해문화권의 배 그림도 그들이 이동한 바닷길을 말해주는 것 같다(김재윤 2021).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암각화가 발견된 것 만이 아니라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남부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김재윤 2017a).

 

 

 

참고문헌

 

김재윤 2017a, 『접경의 아이덴테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서경출판사

김재윤, 2017b, 「반구대암각화의 비교고찰-부산경남의 선사시대 지역성」,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8권 제4호

김재윤, 2021,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1.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아무르강 하류 사카치 알리안 유적의 배 그림은 그린 기법으로 신석기시대와 중세시대의 것이 있다. 신석기시대 배 그림(그림 1)은 16척이 6개의 바위에서 발견되었다. 배는 중앙이 둥글게 처리되어 휜 것이 있고, 편평하게 표현된 것이 있지만 대부분 호선을 이루는 형태가 많다. 모두 승선인원이 그려져 있는데, 가장 많은 인원이 탄 것은 18인이고, 15인승과 10인승, 9인승이 있으며 7인승이 4척으로 가장 많다. 3~4인승이 가장 작다. 10인승의 배를 그 뒤에 사슴으로 새로 고쳐서 그린 것도 있다. 암각화 그림 가운데는 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1.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배 그림(김재윤 2021a)

 

배 그림은 아무르강의 사카치 알리안 유적 외에도 칼리노프카(Калиновка, Kalinovka)(그림 2-3), 키야(Кия, Kiya) (그림 2-4)유적 등이 있고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 강의 세레미체보(Шереметьево, Sheremetyevo)(그림 2-1, 2)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의 배 그림 암각화(김재윤 2021a)

 

칼리노프카 유적에는 바위 전체(130×96cm)에 사람의 얼굴을 닮은 마스크형과 배 12척(그림 2-3)이 그려져 있다. 마스크형에는 귀가 없고 사카치 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등지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마스크형으로 볼 수 있다.

 

배 그림은 승선한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5인부터 34인까지 다양하며, 배는 양쪽 끝이 약간 부채꼴처럼 구부러지게 표현되었다(그림 2-3).

 

 

세레미체보 유적(그림 2-1,2)은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의 강가에 위치하며, 마을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한 절벽을 따라서 5개의 지점에 암각화가 남았다. 제 2지점에 2척의 배가 그려져 있는데, 중앙이 활처럼 휘도록 그린 것이고 19명과 20명의 사람이 탄 모습이 나란히 수평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그림 2-1). 3 지점에서는 마스크형 아래에 배가 그려져서 발견되어서 배와 함께 구성되었다(그림 2-2). 마스크형 암각화는 사카치 알라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스크형 암각화(그림 2-2).는 눈이 째진 모양이고 얼굴 주위로 방사선이 달린 채로 표현된 것인데, 사카치 알리안 유적과 세레미체보 유적에서 발견되는 암각화이다. 그렇다면 이 얼굴과 함께 그려진 배도 동 시기의 표현물로 볼 수 있다.

 

상기한 유적에서는 마스크형 암각화와 배가 함께 그려지는데, 배의 그림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김재윤 2021).향토사학자인 졸로타레프는 암각화가 세워진 칼리노프카 마을은 울치족이 살던 지역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사자의 영혼이 저승세계로 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JEV8r-umyEoSl94ERNtzWwvr7cDReYf9&usp=sharing 

 

배그림 - Google 내 지도

배그림

www.google.com

 

참고문헌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Окладников А.П.,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го Амура,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Лениград, 1971, 333c.(오클라드니코프 , 『아무르강 하류의 암각화』, 197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2. 27. 21:0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한 사카치알리안은 강변의 화산암에 그려졌다. 주제는 동심원문양 뿐만 아니라 새, 사슴, 호랑이, 전쟁에 참가한 말, 사냥하는 장면 등 아주 다양하다. 그 중 동심원문을 기반으로 한 얼굴형마스크 등 여러 모양의 얼굴주제는 연대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아무르강 하류의 나나이족 얼굴로 소개되면서 집중적으로 조명받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그림 1 유적의 위치. 사카치알리안, 2. 세레미체보, 3. 쌍탑, 4. 지초리, 5. 영천보성리, 6. 포항 대련리, 7. 대구 진천동, 8. 대구 천내리, 9.고령 앙전동, 10. 고령 안화리, 11. 밀양 안인리, 12, 함안 도항리, 13. 동래 복천동(김재윤 2018)


사카치알리안의 연대는 주변에서 발굴된 유적출토 유물과 암각화 주제를 비교하면서 이루어졌다. 최초의 조사자인 오클라드니코프(1971)는 대략 네 시기정도에 걸쳐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최근에는 신석기시대 연대 조종으로 세 시기 정도에 걸친 것(라스킨 2015)으로 보기도 한다(1).

 



사카치알리안의 주제와 유사한 암각화가 우수리강에 위치한 세레미체보 유적에서도 확인되며, 사카치알리안과 동시기의 것으로 판단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두만강 유역에서는 동심원문만 집중된 유적이 지초리에서 확인되었는데(서국태 2004), 동심원 및 회오리문양, 뇌문 등은 과일군 청룡리유적, 염주군 반궁리 등지에는 뇌문과 타래문이 함께 출토되고, 서포항 유적에서는 타래문이 번개문 보다 이른 시기에 출토됨으로 지초리의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중간 정도에 위치하면 기원전 5000년 전반기의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서국태 2010).

 

종합하면 동심원문 암각화는 유사한 문양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사카치 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지초리 등은 신석기시대,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본다. 또한 동심원문과 다른 문양이 복합된 양전동 암각화는 삼국시대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암각화 제작시기의 직접적인 증거는 발굴을 통한 유물에서 나온 문양과 암각화의 문양을 비교 한 방법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카치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등도 연대추정되었다(1, 오클르다니코프 1971). 반구대암각화가 신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다는 주장(하인수 2012)도 동삼동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문양토기 와 비교에 의한 것인데, 비슷한 추정법이다. 이러한 연구법은 암각화가 밀집된 알타이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사용된다(블라지미르 D. 쿠바레프 2003)

 

필자는 사키치알리안의 동심원문 및 얼굴모양마스크가 이미 앞서서 연구한 오클라드니코프나 라스킨 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그려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일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1. 10. 20:4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것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한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 그려진 것이다.

암각화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그려졌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유적에서 바위그림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극적인 예가 확인되었다.

절대연대측정치도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해 볼까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얼굴모양을 그린 모티브가 원이라는 것이다


원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겹치고 있다.

이것에서 시작한다....



그림 1.2. 상단의 그림과 하단의 그림은 다른 유적이다.

그런데 유사하지 않은가.. 중앙의 동심원문을 축으로 눈을 그리고 있다.

사카치 알리안은 이런 그림이 많이 확인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가겠다.

한반도와도 관련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동아시아에서 발굴해서 출토된 선사시대 토기는 사진과 같은 재질입니다.
이것은 태토(토기나 도자기를 만드는 흙)을 반죽해서 약간 말려서 문양을 그린후 야외노지에서 구워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토기 가운데, 문양을 그리기 전에 붉은색 물질을 바르고 돌등으로 표면을 문질러 마연한 토기가 있습니다. 이를 적색마연토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붉은 빛을 띠며, 마연을 해서 맨들맨들 합니다.







(상단은 아무르강 하류, 하단은 양양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적색마연이라는 제작방법, 시문방법이 유사합니다.)


압날문은 문양을 그리는 방법을 말합니다. 시문도구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는 지역과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이 토기의 시문도구는 빗처럼 생긴 도구로 계속해서 찍어서 문양을 새긴 것입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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