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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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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에 해당되는 글 2

  1. 2020.08.27 말 탄 스키타이 무사2
  2. 2020.08.19 청동 헬멧을 쓴 스키타이 무사의 말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황금항아리도 이 시기의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4세기 무덤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이 왕국은 흑해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던 여러 부족 중에서 그리스와 중계무역을 하던 국가 혹은 부족으로 알려졌다.

 

초원 유목민이 흑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레치 반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역에 살던 부족은 자신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보스퍼러스 국의 수도는 파니카페움(Panicapaeum)으로 이 곳에는 공방이 있었고, 스키타이 귀족의 유물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올리비아는 이미 쇠퇴하고 그 역할을 이 도시가 물려받았다. 올리비아, 파나카페움 등에 있던 공방에서 그리스-스키타이 양식의 유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도. 쿨-오바 유적의 위치, 올리비아(노란색)

 

지역민과 함께 그리스인도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무덤이 쿨-오바 무덤이다. 무덤의 외부형태는 스키타이인의 무덤이지만, 그 내부의 무덤방은 그리스의 건축물인 판테온 스타일이고, 그 중앙에 놓인 관은 스키타이 관인 나무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

 

이 무덤의 벽을 장식하던 프리즈(frieze)로 사용된 장식판에는 말을 탄 남성무사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금판의 반대면을 눌러서 표면을 솟아나게 만든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긴 머리와 턱수염, 콧 수염, 벨트 자켓, 통이 넓은 바지, 부드러운 신발(moccasin)등은 스키타이 무사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이 가죽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로방향의 침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신발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데, 원래는 가장자리 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장식판에는 바늘구멍이 확인되는데, 무덤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하다가 무덤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4세기, 금, 너비 5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단면(상)과 무덤 바닥면(하)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은 헬멧을 쓴 남성 무사가 무기를 풀 착장한 채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동투구(헬멧)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었던 방어용구이다.

 

청동헬멧을 쓴 남성 무사는 어떤 말을 타고 다녔을까?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켈레르메스 유적 1호에서는 모두 24마리의 말이 남서쪽벽에 나란히 매장되었다(그림 5). 서쪽벽에 말 12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그 중 10마리는 마구를 착장하지 않았다. 두 마리에는 은제 마구장식(말의 볼 가리개)(그림 1) 이 착장되었다. 남쪽벽의 말(13~18번)은 6마리는 황금 굴레장식, 나머지 6마리는 뼈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2)을 착장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동물이 새겨진 굴레장식, 뼈(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황금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필자편집)

 

그중에서 말의 얼굴장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남쪽벽의 13번 말이다(그림 3)

이마부터 콧 등까지 가리는 앞 장식판(그림 3-1)과 재갈멈치 위에 달린 볼 가리개(그림 3-2, 3)와 굴레를 감싼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이다. 볼가리개는 양 면(그림 3-2,3)의 문양이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선문양을 배치했다는 점은 같으나, 왼쪽 뺨 가리개(그림 3-2)는 다섯 개의 동심원문양 안에 나선문양을 배치한 것이고, 오른족 뺨 가리개(그림 3-3)은 두 개의 동심원문양을 기본 프레임으로 한 것이다. 굴레를 감싼 다른 장식판에도 모두 나선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의 복원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의 평면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고분에서 남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말을 매장한 것은 왕실의 환경이 혼합민족을 구성을 암시하며 스키타이 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사람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의 장식이 은, 뼈, 금으로 차등을 둔 것에 대해서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고도 한다(갈라리나 2006).

 

갈라리나의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의 장식을 만든 소재가 다른 것은 용도에 따라서 달랐을 가능성도 한 가지 덧 붙이고자 한다.  청동 헬멧을 쓴 무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의전용이라면 황금장식판을 단 말을 탔을 것이고,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면 뼈로 만든 굴레장식이 달린 말을 탔을 것이다.  동물장식은 일종의 부적(amulet)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3번 말의 굴레장식은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나선문양은 동물문양과 함께 흑해 스키타이에서 유행하던 유물이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검과 투부, 은제 거울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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