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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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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는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리는 아르잔 유적이 있다.그 중에서 아르잔 1호 무덤은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북안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뒤집어 놓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몇 번 설명 드렸지만 동물문양장식 가운데서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혹은 표범)장식이다. 이 유물은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동물장식과 비교되면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도 해당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보시면 알 수 있다.

 

2020/05/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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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의 투바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대략 2800~2900년 전 쯤인데, 필자는 말하기 좋게 3000년 전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연방국가이고, 소수민족들이 중심이 되는 공화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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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덤방 2번에서 출토되었고, 이곳에는 말 30마리가 각종 마구 및 말 장식과 함께 출토되었다.

 

필자가 어제 포스팅에서 말과 사람이 매장된 곳을 잘 못 소개한 곳이 있는데, 26a와 26b이다. 사람이 묻힌 곳은 정확하게 9번, 13번, 31번이다. 모두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이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속

 

9번 방(8×3.5m)은 중심 무덤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데, 13번(7.5×5.5), 31번(?)에 비해서 월등하게 작은 공간이어서 말이 함께 매장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13번과 31번 방에 묻힌 사람들과 비교해서 계급 등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유적에서 유일하게 사람만 들어간 곳이기도 하다. 13번과 31번 방에는 통나무 관 2개씩 들어가 있어 2인의 합장묘이다. 중심 무덤방 10인을 포함해서 총 15인이 아르잔-1호에는 들어가 있었다.

 

말이 매장된 곳은 중심매장부를 제외하고 15개의 방이다(13번, 31번 포함). 말만 매장된 곳은 13개의 방이다. 그리고 나머지 방(53개)은 빈방이다.

 

무덤의 평면구조를 살펴보면 동쪽방향의 무덤방과 북과 남쪽의 무덤방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는 2~7번 무덤방은 네모꼴(비교적 가까운)이고, 북쪽(8~10번, 29~37번)과 남쪽 방향(13~21번)은 중심 무덤방과 가까운 쪽은 사다리꼴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네모꼴 무덤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쪽의 무덤방은 명확하지 않다.

 

중심 무덤방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가는 무덤은 북쪽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8번과 9번 방은 사다리꼴 모양이지만 이 무덤을 최종적으로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심부 방에서 모서리에 위치한 10번 방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10번 덕분에 36, 37번이 만들어졌고, 51~53번 방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51 번 방 옆 공간은 왜 나무가 없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8번, 9번, 29~34번 섹션과 동시에 만들어서 빈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착오와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양 쪽 공간을 동시에 만들었고, 이미 거의 축조된 상태에서 서로 아귀는 맞지 않고, 다시 허물수도 없고, 나무는 이미 수천개를 써서 부족했다면 그냥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 무덤방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짜투리 공간에 나무를 덧대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또 흥미로운 공간은 31번 방과 34번 방 사이에 위치한 33번과 49번 방이다. 31번방의 서쪽 벽이 29번 방에서 계속 뻗어진 대로 나무를 연결했다면 이 방도 사다리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9번의 방의 서쪽벽에서 뻗은 나무와 다른 방향으로 틀면서 31번 방은 네모꼴이 되었고, 48번 방의 방향도 정해졌다. 34번 방은 사다리꼴로 유지되고, 50번과 50a번 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31번방과 34번 방 사이 공간에 49번방을 넣어서 49a번방이 만들어졌다. 이 방은 48번과 50번 방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33번의 북벽은 49번방의 남벽이 되는 역할이 된다.

 

큰 원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길다란 막대기로 엄청나게 계산을 했을 꺼라고 생각이 되지만,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 53개나 된다는 점이다.

 

 만든이는 어떤 심정이었으며, 묻힌이는 어떤 사람일까? 

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마 많은 분들은 이런 무덤구조에 대한 글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를 속속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랴즈노프가 쓴 글은 참고로 했으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필자가 관찰한 부분을 덧 붙인 것이다. 사실 이 모든 포스팅이 그렇지만, 무덤의 구조는 더 그렇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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