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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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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 남쪽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에서는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를 영위했던 사람들의 무덤이다. 이 지역의 문화를 흑해 스키타이 문화와는 다르다고 여기는 것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타나이스강(돈 강)을 건너면 스키타이 땅이 아니고 사브로마트의 영역이다’고 자신의 책(4권 21)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리포프카 유적의 사슴과 낙타 장식 등은 흑해 지역에서 나오는 유물과 다르다. 이 부분은 같은 시기(기원전 5세기)대의 흑해지역 유적과 비교해 본다면 더욱 뚜렷한 점을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래도 이 지역은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기원전 4세기이후 늦은 사르마트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와는 구분됨)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유물은 청동솥과 거울이다. 이 외에도 무덤 구조, 변형된 문양을 만드는 아이디어 등도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에서는 청동솥 4점이 출토되었는데, 2점(그림 1)은 도굴꾼이 파 놓은 가장 북쪽도랑에서 나왔다. 한점은 옆으로 누워있었고 한점은 거꾸로 엎어진 상태였다. 손잡이가 4개 달리고, 청동솥에 파상문양이 있는 것이다. 1점은 손잡이에 각각 2개씩 곰과 납작한 원판(그림 1의 위)이 달려있었고, 다른 한 점은 납작한 원판(그림 1의 아래)만 달린 것이다. 나머지 2점 가운데 1점(그림 2-위) 동쪽의 도굴구덩이에서 완전히 깨진 채 발견되었다. 나머지 1점(그림 2-아래)은 동쪽 도굴구덩이 입구에서 2~3m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나왔다. 동쪽 도굴구덩이에서 발견된 유물(그림 2-위)는 크기가 원판장식 손잡이 4개 달린 청동솥과 같다. 나머지 1점은 손잡이 모양과 솥의 동체 모양, 크기 등이 3점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그림 2-아래)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 청동솥, 도굴도랑입구에서 발견됨, 위-입구지름: 70cm, 높이 55cm, 다리 3cm, 다리지름 30cm, 아래-입구지름: 71cm, 높이 56cm, 다리 6cm, 다리지름 30cm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출토 청동솥, 위-그림1의 아래 솥과 크기 거의 같음. 아래-입구지름: 29cm, 높이 16cm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북쪽 도굴구덩이 입구에서 발견된 청동솥(그림 1의 두점)

 

청동솥 가운데 모양과 크기가 다른 1점은 시기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앞의 3점은 흑해지역에서 나오는 기원전 7세기 청동솥(켈레르메스 유적)(그림 4)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손잡이가 위로 붙고 장식이 있는 유물은 어쩌면 오래전에 이 지역에 들어와서 계속 사용되었을 수 있다. 손잡이가 가로로 붙은 청동솥은 흑해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는다.

 

 

 

그림 4. 흑해 스키타이 유적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청동솥

 

청동솥은 1호에서만 출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청동솥은 기원전 7세기 시베리아 아르잔-2호에서도 이중으로된 무덤방 사이에서 발견된 바 있다.

시베리아 유물은 배제하더라도 흑해지역과 비교해보면 왜 200~300년이나 지난 모양의 청동솥을 그대로 사용했을까?

매일매일 사용하는 물건의 중요성..그릇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동질감. 그래서 헤로도투스는 타나이스 강을 건너면 스키타이 영역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부정한다. 그들은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기원전 4세기 이전에는 지역색은 있지만 같은 스키타이 사람이었다.  

 

금제 쿱신, 은제 각배 이런 것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수천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은 장롱속에 모셔놓는 것이다. 에르메스 가방이 온 세상에 다 발견된다고 모두 프랑스 문화권으로 묶을 수는 없다. 하긴 금이나 은의 가치가 현재와 같았는지 어쩐지 알 수 없으니 이것도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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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남부 우랄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인 이른 사르마트 문화(혹은 사브로마트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은 필리포프카이다. 1호가 가장 크고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뉴욕에서 유물이 소개된 적도 있다. 특히 1호의 왼쪽에 위치한 감실(100×50cm, 깊이 90cm)에는 원래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황금사슴과 함께 외국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황금사슴 아래에는 금으로 된 쿱신(액체용기담는 그릇)(그림 1-1), 리톤(rhyton, 각배)(그림 1-2,3), 반구형 펜던트(그림 2), 동물문양장식(그림 3~6)이 출토되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반구형 펜던트, 높이 4.8cm(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산양(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쌍봉 낙타(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높이 4.1cm, 너비 5.2cm, 그림 4의 낙타는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서 어딘가에 붙여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맹수머리(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의 감실2호 출토품, 필리포프카 사슴(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이중에서 페르시아 유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손잡이에 산양이 장식된 쿱신과 각배이다. 실제로 페르시아에서 출토된 각배 가운데 아주 유사한 유물이 확인된 바 있다(그림 7).

이 유적에는 쌍봉낙타가 등장하는데(그림 2,4) 얼굴이 실제 낙타와는 다르다. 특히 맹수얼굴 같은 낙타도 있다(그림 4). 같은 감실에서 출토된 맹수머리(그림 5)만 묘사된 유물과 쌍봉낙타의 얼굴은 거의 비슷하다.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는 쌍봉낙타가 동물장식으로 확인된 바 없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낙타가 사용된 경우는 이미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5호묘의 주인공 남성 목걸이에는 낙타문양이 사용된 바 있다. 또한 아르잔-2호 내의 돌판에 새겨진 그림에도 쌍봉낙타가 사슴과 함께 묘사되었다. 알타이의 칼박타쉬 암각화 유적(초기 철기시대 암각화)에도 확인되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확인된 낙타는 실제 낙타를 변형시키는 방법은 스키타이의 제작방법이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 나타난 낙타는 박트리아산으로 여겨지는데,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우랄 남부에도 전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의 낙타는 황금 쿱신과 리톤과 같이 수입된 물건이라기 보다는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되어 소비되었을 수 있다.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같은 스타일의 물건이 출토되었고 다른 모습의 낙타도 출토되기 때문이다.

 황금사슴과 같이 주둥이가 과장된 사슴문양(그림 6)은 목제를 금판으로 입힌 사슴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흑해 지역의 사슴과 같이 뿔을 몸통 전체까지 뒤 쪽으로 길게 표현하는 점은 같다.

 

기원전 4세기에는 그 이전의 사브로마트 문화를 대신해서 사르마트 문화가 이 지역에 정착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이란계통의 유물이 몇 점만 남아 있지만 기원전 4세기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 유적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뿐만 아니라 이란계통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문화와는 구분한다.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미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된 기점으로 보고 있는데,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5세기, 기원전 4세기로 학자들 마다 차이가 있다. 일단 1호 유적에서는 시베리아 사슴도 아니고 흑해 사슴도 아닌 필리포프카 사슴(입이 과장되게 튀어나온 사슴)과 맹수머리 쌍봉낙타가 눈에 띈다....그러나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림 7. 아케메니드 시기(이란), 기원전 5~4세기(The Golden Deer of Eurasia 2000)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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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이 1호무 덤이다. 높이는 7.11m이고 직경은 동서120m, 남북 103m이다(그림1). 무덤은 역 사다리꼴 모양으로 최상부는 편평하다(그림 2).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평면도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외관

 

 

무덤 내부에는 직경 22~25m의 목제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일종의 텐트 모양이다(그림 3).

 

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평면도

 

그림 3에서 무덤 구덩이 바깥에 방사상으로 놓인 것이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위에 설치된 목제 구조물의 흔적이다. 불탄 목제 구조물 위에는 덤불로 덮혀 있었다. 그 가장자리를 점토로 덮어서(1~3cm) 둥글게 돌렸다. 무덤의 입구는 남쪽에서 계단모양으로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이다. 무덤의 남쪽에 점토 범위 바깥에서 말뼈가 여러 조각 나서 확인되었다.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목제 구조물과 점토를 걷어 낸 후의 모습

바닥의 유물: 1-철제품, 2-인골의 흔적, 3-철제품의 흔적, 4-청동솥, 5-마구와 안장부속품, 6-청동재갈, 7-금제장식판, 8-목제잔의 흔적, 9-황금 장식, 10-철제 검, 11-금제 장식판, 12-황금 사슴의 귀, 13-석고? 판, 14-황금구슬, 15-황금 비드, 16-황금 사슴, 17-청동판, 18-철제 검, 19-청동검, 20-황금 나사, 21- 황금 귀걸이, 22-석제품, 23-황금 구슬, 24-황금 장식판, 25-깨진 토기, 26-황금 펜던트, 27-청동 솥, 28-청동 화살촉

매장 III 유물(네모칸 아래의 번호): 1-토기조각. 2-토기의 손잡이, 3-토기편, 4-말 머리 장식, 5-황금구슬, 6-붉은색 구슬

 

무덤방에는 3곳에서 매장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인골이 매장된 곳의 시설이 따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 무덤과 유사한 구조의 다른 무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구덩이를 파고 인골을 매장한 상태이다. 특히 1호분은 인골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성별은 알 수 없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유물을 걷어내고 난 후의 모습

 

유물을 걷어내고 난 후의 모습(그림 5)에는 무덤의 좌측에 감실이 드러났다.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무덤의 입구에는 좌우에 구덩이가 있다. 왼쪽에는 황금 사슴 5마리, 오른쪽에는 마구와 안장 부속품이 들어 있었다. 1호와 2호 감실에는 각각 사슴 8마리와 다양한 그릇이 가득 들어 있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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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남부 우랄의 기원전 5?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 나타나면서도 남부 시베리아 지역의 특징도 보인다. 또 이란계통의 유물 특징이 드러나서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이 지역에 들어선 사르마트 문화가 이미 이 시점에 보여서 이른 사르마트 문화 혹은 유럽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라고도 한다.

남부 시베리아의 특징이라는 유물은 바로 목제 잔이다. 기원전 7세기 투바의 아르잔-2호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도 계속 나오는 유물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에서는 2개의 감실이 있었고 그 곳에는 ‘황금 사슴상’ 뿐만 아니라 목제 잔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목제 잔의 손잡이는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세로로 부착되는 손잡이(그림 1)과 가로로 부착되는 손잡이(그림2)다. 앞의 것은 동물의 몸통 자체가 손잡이가 되는 모습이고, 동물의 종류는 맹수, 새 등 다양하다. 뒤의 것은 동물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모양이 가로 방향으로 묘사된 (그림 2의 1의 상단)이다. 이 손잡이는 사슴문양 장식판 사이의 구멍에 끼울 수 있는 형태(그림 2-2)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 높이 11.5cm, 입구의 지름: 9.5cm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The Golden Deer of Eurasia, 필자편집)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The Golden Deer of Eurasia)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 그림 2의 복원도(.(Пшеничнюк А.Х. 2012)

 

투바 아르잔-2호는 손잡이 부분의 장식판 없이 목제 잔의 목제 손잡이를 금판으로 감쌌는데, 5호무덤의 주인공 무덤에서는 양다리 모양이었다. 기원전 5세기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는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도록 손잡이가 장식된 유물이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도 목제잔은 여전히 출토된다. 너무 많아서 쿠바레프 보고서에는 도면 없이 출토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잔 부분은 유적 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바닥이 편평하고 U자형에 가깝다. 그러나 손잡이는 약간 씩 차이가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목제잔은 손잡이 옆에 장식판을 붙였는데, 앞서 보여 드렸던 필리포프카의 특징적인 사슴문양이다. 그리고 세로 손잡이의 목제 잔(그림 1)과 가로 손잡이의 잔(그림 2)은 동체부의 모양이 다르다(그림 3). 가로 손잡이의 잔은 바리모양에 가까운데, 사실 이 그릇 모양은 흑해 스키타이 유적인 쿨-오바 유적(그림 4)에서 출토된 은제 그릇과 비슷하다. 동체부의 모양, 가로 손잡이 등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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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살펴본다면 쿨-오바의 은제 그릇은 바닥에 굽이 받어 있어서 필리포프카 유적의 목제 그릇과는 차이는 있다. 그러나 흑해 지역에서 가로 손잡이가 달린 그릇은 그리스식 암포라 토기 혹은 금제 항아리에 달린 손잡이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특히 기원전 7세기 가량에는 출토되지 않고 기원전 5세기 이후의 몇 몇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적인 그릇이다. 

그림 4. 쿨-오바 유적 출토, 은제 그릇, 높이 13cm, 직경 18.7cm(Артамонов М.И. 1966)

 

동물모양손잡이 달린 목제 잔과 그릇은 무덤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에 하나인 감실에 황금사슴과 함께 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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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제 잔은 이 유적의 지리적 위치(시베리아와 흑해 중간지역) 및 문화적 성격(사르마트 문화 보다는 스키타이 문화적 성격이 더 뚜렷함, 두 개의 스키타이 문화적 성격이 더 뚜렷함) 을 대변하는 유물로 볼 수 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무덤평면도, 좌측의 별도로 마련된 아주 작은 두 개의 구멍이 감실이다.(Пшеничнюк А.Х. 2012)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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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런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도 중심무덤방 옆에 또 다른 무덤방이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체르토믈리크 무덤은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로도 유명한데, 고리트를 감쌓던 황금 장식판, 의례용 철검과 금제 검집이 함께 출토되었다. 무덤 입구를 통과하면 처음 들어가는 무덤방에서 남쪽에 위치한 일종의 감실(k)(그림 1)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의 평면도(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필자편집, 본문의 내용대로 넘버링)

 

고리트의 본체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드러진 것이지만 남아 있지 않고 금판장식만 남아 있다. 상하단에는 동물투쟁문과 식물문양이 타출되어 표현되어 있다. 타출은 반대편을 도구로 두드려서 다른면이 튀어나오도록 하는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판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트 장식판(Алексеев А.Ю. 2012)

 

 

중앙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은 상단왼쪽 에 있는 활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킬레스다(그림 3-위). 두번째 장면은 스코로스 섬의 리코메데스 궁전에 아킬레스를 여장해서 숨기는 장면, 리코메데스의 딸 사이에서 아킬레스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그림 3-아래), 리코메데스 왕에게 아킬레스가 작별인사하는 모습이다.

 

 

 

그림 3. 그림 2의 상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하단은 리코메데스의 아내이자 데이아미아(리코메데스의 딸로 그의 궁전에 숨어서 연애함, 아킬레스의 연인?)의 어머니인 여왕, 리코메데스의 다른 딸과 작별인사하는 장면이다(그림 4의 위). 벽에 기대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이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를 보여주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은 아가메논이라는 설이 있다. 또 아킬레스가 트로이왕 프리암(프리아모스)이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 받으러 온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란계 영웅서사시를 묘사했다는 설도 있다(그림 4의 아래). 하단의 마지막 장면은 파리스에게 화살을 맞아 죽은 아킬레스의 유골을 항아리에 운반하는 그의 어머니 테티스를 묘사한 장면이다(그림 5).

 

 

 

그림 4. 그림 2의 하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그림 5. 그림 2의 하단 가장 마지막(Алексеев А.Ю. 2012)

 

이 유물을 분석한 알렉세예프는 유물이 제작된 곳은 보스포러스 왕국(케르치 해협에 위치, 스키타이 유목민족과 그리스 인이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 대표적인 유적 쿨-오바)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본다. 다른 부족과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의식적이고 권위 있는 물품을 배포해서 외교정책을 한 Perisade I(Paerisades I)때로 기원전 330~320년에 제작되고 배포되었던 것으로 본다.

 

체르톰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문양(동물)과 함께 그리스 신화가 묘사된 것으로 확실히 스키타이 특징만 나타난 지역에서는 제작되기 힘들었던 유물이다. 그래서 드레프르강 하류의 체르톰리크 유적이 위치한 스키타이 지역 보다는 당시에 그리스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 캐레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의 연결반도)보스퍼러스 왕국의 공방이 제작지였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캐레치 해협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은 보르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여겨지는데 스키타이 차르의 체르톰리크 무덤과는 전혀 다른 무덤구조(포스팅 참고)이다. 확실히 이 시점에는 흑해 스키타이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신의 지역색이 뚜렷해졌다.

 

이 유물이 그리스 신화로만 구성되었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것인데, 가장자리는 동물과 식물문양을 넣어서 장식했다는 점은 중요한 점이다. 특히 상단에 위치한 동물이 투쟁하는 문양의 특징은 스키타이 특유의 문양이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 Чертомлык.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91. 416 с.(알렉세예프, 무르진, 롤레 1991, 체르토믈리크(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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